제 자식한테 상 준다고 항의하는 부모

“개가 짖는다고 기차가 못 가랴!”

평생을 두고 자신이 대한민국 국민인 게 그렇게도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던 적이 있다. 어둠을 밝히며 하나 둘 광화문광장으로 모여든 촛불이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던 때였다.

작년(2016) 10월 29일(토)에 3만 명으로 시작한 촛불집회는 매주 주말마다 모이며 수를 더해 가더니 어떤 때는 한 번에 232만 명이 모이기도 하였고, 23회로 막을 내릴 때까지를 다 합하면 1700만 명이라는 놀라운 수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런데 내가 자랑스러웠던 것은 모인 인수도 아니요 횟수도 아니다. 그 많은 사람이 모이고도 연행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고 다친 사람도 없이 평화적이었다는 것이다. 집회가 끝나갈 시간이 되면 자기들이 차벽에 붙인 스티커를 경찰들의 수고를 덜어 주어야 한다며 스스로 떼어내는가 하면, 다음날 아침이면 광장에 어지럽게 널려 있어야 할 쓰레기가 종이 한 조각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노래가 있고, 춤이 있고, 재기 넘치는 입담이 있었다. 요구하는 주장이 있으니 시위라 못할 것도 없으나 그 표현방법은 창의적이고 예술적이었다. 시위나 집회라라기보다 문화제요 축제였다.

옛날 같으면 몽둥이에 화염병이 등장했을 터인데, 그런 자리가, 그도 그 많은 사람이 모인 그 자리가 불상사 하나 일어나지 않은 축제장이 되었으니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어찌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이 같은 대한민국의 촛불시민에게 독일의 유서 깊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에버트 인권상을 수상(授賞)했다. 이 상은 매년 세계 각지에서 인권 증진에 공헌한 개인이나 집단에게 주는 상으로 특정국가의 국민에게 수상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 한다.

“귀하는 대한민국의 평화적 집회와 장기간 지속된 비폭력 시위에 참여하고, 권위주의에 대항하며 신생민주주의 대한민국 법치국가의 실현을 위해 헌신하고, 집회의 자유 행사를 통한 모범적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이 상을 수여합니다.” 에버트 재단이 대한민국 촛불시민에게 수여한 상장의 내용이다. 지구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집회였으니 가능한 상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일부 국내 단체들이 인권상을 취소해달라는 항의 서한을 에버트 재단 측에 보내어 수상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제 자식한테 상 준다고 화를 내는 부모를 연상케 하는 처사이다. 만약 부모가 그럴 수 있다면 그건 잊을만하면 다시 매스컴을 장식하곤 하는, 전실 자식을 학대하여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의붓어미와 동류의 사람일 것이다.

하기야 그 같은 일이 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 12월 10일, 당시의 대통령 김대중은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2000년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하여 상을 받았다. 그때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한 명도 내지 못하고 있던 우리 한국인으로서는 가슴 벅찬 감격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국민의 다는 아니었던 것 같다.

여기에서 노벨위원회 군나르 베르게 위원장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난 김대중 선생에게 노벨상을 주지 말라는 한국인들의 로비 시도를 받았다.”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반대하는 편지 수천　통이 전달되었다.” “한국인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지도자를 비난하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노벨연구소 올라브 욜스타드 연구실장은 2000년 11월초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열린 한반도 국제심포지엄에서 "김 대통령이 로비를 통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 독일학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 한국으로부터 로비가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김대중 정부로부터의 로비가 아니었다. 정치적 반대자 등으로부터 상을 주면 안 된다는 로비가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벨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월이 얼마간 흐른 이명박 정부 시절에 국가정보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취소해달라고 청원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정황이 드러났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으로 인한 촛불집회 때 터져 나왔던 “이게 나라냐?”는 한탄의 씨앗은 이때부터 이미 배태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치고 ‘다스는 누구 것이냐?’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인데, 그렇게 묻는 질문자의 머릿속에는 이미 한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있음 또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적폐는 전 정권 때에만이 아니라 전전 정권 때부터 쌓여 온 폐단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쏟아져 나온 그 폐단의 실체들은 지금까지도 그치지 않고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져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적폐의 청산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대선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당선과 동시에 취임하자마자 공약이행에 팔을 걷고 나섰다. 적폐청산 없이 국가를 번영으로 이끈다는 것은 시궁창에서 생수를 구하는 것이나 매일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의 적폐청산이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의지가 약해서도,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마라토너라 할지라도 페이스메이커가 오히려 진로를 방해한다면 좋은 성적은 기대할 수 없는데, 지금의 한국의 정치 판도가 꼭 그렇다. 정부가 적폐청산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데, 정치보복이란다.

어느 정도는 그런 면도 없지 않다 치자. 그렇다고 적폐를 그대로 두고 가야 하는가. 사실 나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복의 심리가 햇빛에 비치는 먼지만큼도 없다고는 단정하진 않겠다. 없다고 믿지만 그의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도 아니니 말이다. 어떻든 적폐라는 이름이 붙은 청산에는 ‘묻지 마’ 식의 마구잡이로 몽둥이질이니 나라를 적폐의 왕국으로 만들자는 건지 모를 일이다. 하기야 적폐청산이 아니더라도 그들이 문재인 정권이 하려는 일에 무엇 하나인들 제대로 도와 준 일이 있었던가.

저들이 하는 말에는 논리라는 게 없다. 생각도 없고 염치도 없다. 생각이 전혀 없진 않겠지만, 제 앞에 놓을 큰 감만을 생각하다 보니 억지스럽다. 그런 게 아니라고? 그렇다면 저들이 하는 말을 어디 한 번 들어 보자.

•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

• (문재인 정부는) 초보 정권의 난폭운전, 보복운전, 역주행에 다름없다.

• (친박을 가리켜) 암덩어리 안고 가면 같이 죽어.

• 좌파 광풍 시대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 대통령 의사결정에 청와대 주사파가 주도하고 있다.

• 최근 청와대·정부·여당의 행태를 보니 마치 조선시대 망나니 칼춤을 연상시키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 이상 홍준표 자한당 대표

• 홍 대표를 보고 있으면 꼭 어린 애 같다. - 김태흠 자한당 최고위원

• (문재인 대통령 등을) 법치파괴의 내란죄와 국가기밀누설죄 등으로 형사고발 해야 한다. - 심재철 자한당 의원

• 김정은의 기쁨조가 문재인 대통령 - 김문수 전 경기지사

• 청와대 내부는 심각하다. 주사파와 전대협이 장악한 청와대 면면답다. - 전희경 자한당 의원

청와대를 주사파가 주도하고 있다니 섬뜩하다. 주사파는　한 마디로 말해 “북한의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삼은 남한의 반체제 운동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청와대를 주사파가 주도하고 있다는 말은, 청와대가 공산화됐다는 말과 크게 다를 게 없고, 그것은 대한민국이 공산화됐다는 말과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촛불이 왜 광화문광장에서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전국 각지에서도 크고 작은 물결을 이루었는가. 나라에 폐단이 쌓이고 쌓이다가 국정을 농단하는 데에까지 이르러 적폐의 거대한 산을 이루자 분노한 민심이 ‘이것이 나라냐’며 든 촛불 때문이 아닌가.

우리 대한민국의 위대한 국민들은 분노를 분노로 폭발시키지 않고, 노래가 있고 춤이 있고 해학이 있고 창의력이 있는 문화축제로 승화시켰다. 따라서 그 힘 또한 위대했다. 적폐세력에게 철퇴를 가하며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러니 그 새 정부는 당연히 적폐청산에 온힘을 다 하고 있다.

그런데 적폐의 온존세력들은 정부의 적폐청산에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 발을 걸고, 그 발목을 잡고 늘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가리켜 ‘독재’를 한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 모두를 독재와 독재가 아닌 둘로 줄을 세워 볼 일이다.

말을 하자면 한이 없을 터이니 이쯤해서 저들의 버전으로 저들에게 한 마디 하여 남기며 글을 맺고자 한다.

“개가 짖는다고 기차가 못 가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