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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충’과 ‘지층’이 동글동글 어울리는 곳, 여깁니다[안면도 뒤안길] 두에기해변에서 천만년의 역사를 읽습니다
김학현  |  nazun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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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2월 14일 (목) 11:54:19
최종편집 : 2017년 12월 14일 (목) 12:03:14 [조회수 : 4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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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에기해변 한가운데서 방포항 쪽으로 잡은 사진입니다. 이 끝자락 산등성이 아래로 퇴적암 뭉터기가 발견됩니다.
   
▲ 몽돌해변, 두에기해변에는 서덜길, 바위, 모래, 몽돌밭이 모두 있어 다양한 해변을 경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전 기사 : 가파른 언덕을 넘은 자의 행복, 같이 느껴봐요)

어느 쪽으로 보느냐, 어느 쪽으로 가느냐 하는 게 항상 우리의 문제입니다. 처음이 어딘지, 끝이 어딘지에 따라 아주 다른 평가를 하죠. 태안 해변길 중 안면도 해안길은 더욱 걷는 이의 주관에 따라 다른 길입니다. 나는 태안군 남면의 끝자락 드르니항을 마주 보는 백사장항으로부터 안면도의 남쪽 끝인 영목항까지 향하는 길입니다.

이 길에는 또 다른 이름들이 있습니다. 노을길, 샛별길, 바람길이 그것입니다. 이런 길 이름조차도 어디서 시작하느냐에 따라 바람길, 샛별길, 노을길의 순서로 기록할 수도 있습니다. 전자는 백사장항에서 시작하는 순서이고, 후자는 영목항에서 시작하는 순서입니다. 사람들은 이 순서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허나 그런 이름들로 불리는 자연은 전혀 그런 데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게 인간과 자연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누구는 그랬다지요. 왜 산에 오르느냐 물으니, 그냥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고요. 맞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한순간의 흐트러짐도 없이 내가 걷는 길은 거기 그대로 있습니다. 다만 내가 느끼는 감정과 감상만 다를 뿐입니다.

‘지충’을 아십니까?

   
▲ 지충은 새끼를 꼬다 만 듯 뭉뚝하고 작은 줄기를 자랑합니다. 언뜻 보면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뭉뚝한 게 줄기이고 그 줄기에는 작은 입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 바다고둥, 지충 곁에서는 바다고둥들이 자신들도 있다고 바들바들 떨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군요.

 

바람이 스르르 불었습니다. 나뭇가지 위로 오롯이 눈꽃이 앉았습니다. 파도가 드나들며 작은 흔적들로 모래 위에 상형문자를 그렸습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내가 걷는 두에기해변은 여전히 거기 호젓하게 앉아 있습니다. 오롱조롱 지충이며 바다고둥을 바위에 가득 이고 말입니다.

‘지충’을 아세요? 저는 안면도에 와서 처음으로 지충이란 걸 보았습니다. 보기만 한 게 아니고 먹기까지 했습니다. 맨 처음 지충을 본 건 교회 점심식사 때 밥상 위에서였습니다. 그때 두 가지 해초가 나란히 다른 반찬들과 함께 나왔습니다. 물론 나는 그때까지 그 두 물건(?)의 이름조차 몰랐습니다.

옆의 성도에게 물었죠. 아주 용감하게. 젓가락으로 한 물건을 가리키며 “이건 뭐하는 물건이에요?”라고. “모르세요? 이건 꼬시래기라는 해초인데유.” 그렇게 시작된 나의 탐색은 기어이 ‘지충’이란 물건으로 젓가락을 향하게 했답니다. “그건, 지충이지유. 건강에 좋아유. 안면도에는 많이 있어유.”

그때 이후 지금도 여전히 가끔씩 교회 식사 때면 두 물건이 밥상에 올라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쩌다 식당에서 꼬시래기 무침은 본 듯도 합니다. 하지만 지충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먹어 봤답니다. 맛이요? ‘맛좋다!’는 아닙니다. 다른 이들에겐 어떨지 모르지만 나에겐 그렇습니다. 한 번 식사에 한 번 정도 젓가락이 갈까 말까 합니다. 다른 해초들에 비해 입맛이 까칠하거든요.

그런데 그 일생일대에 처음 보았던 지충이란 해초가 두에기해변에 지천이군요. 이미 말씀드렸죠? 두에기해변은 모레, 바위, 몽돌 모두가 어우러져 있다고요. 네, 그 바위들이 난무한 지역에 지충이 지천이랍니다. 날카로운 바위 날에 벨까 걱정이 드는 건 나의 기우인가 봅니다. 지충은 그런 날카로움 따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온 바위를 뒤덮고 있습니다.

지충은 새끼를 꼬다 만 듯 뭉뚝하고 작은 줄기를 자랑합니다. 언뜻 보면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뭉뚝한 게 줄기이고 그 줄기에는 작은 입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하여튼 먹음직스런 모습은 아닙니다. 어째 안면도 사람들은 이런 걸 먹을 생각을 했을까요. 웬만하면 전리품으로 몇 줄기 따올 만도 하지만 그리 내키지 않았습니다.

내게 지충은 안 맞는 듯합니다. 건강에 좋다는 한 성도의 설명이 자꾸 뇌리를 스치는군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내게 맛을 안겨주지 못하는데. 허. 아무리 건강에 좋아도 맛이 따라주지 않으면 ‘노 땡큐!’입니다. 좀 까다롭죠? 지충 곁에서는 바다고둥들이 자신들도 있다고 바들바들 떨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군요.

천만년의 역사가 여기 있습니다

   
▲ 켜켜이 시루떡을 쪄 놓은 듯한 바위들이 즐비합니다. 천만년의 역사가 여기 누워있습니다.
   
▲ 지질에 대해서는 문외한인지라 어떤 성분의 퇴적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퇴적암의 숭고한 역사는 그 끝이 없을 거란 생각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두에기해변에는 또 하나 특이한 게 있습니다. 방포해변 쪽으로 해변길을 걷다가 서덜길의 끝에서 만나는 지층인데요. 켜켜이 시루떡을 쪄 놓은 듯한 바위들이 즐비합니다. 천만년의 역사가 여기 누워있습니다. 뾰족한 다른 바위산이나 둔덕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어 생경스럽습니다.

이 무더기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고작 100년도 못 사는 인간에게 이 돌무더기 하나가 주는 위압감이 대단하다고. 그러나 이 퇴적층 돌무더기는 하나 둘이 아닙니다. 파도가 잘게 부셔 놓아 널브러져 있지만 그의 수명으로 말하면 몇 만 년, 몇 천만 년을 다 어찌 헤아릴까요.

지질에 대해서는 문외한인지라 어떤 성분의 퇴적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퇴적암의 숭고한 역사는 그 끝이 없을 거란 생각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주변의 다른 돌들과는 달리 고등색을 많이 띄고 있습니다. 좀 더 검은 부분, 조금은 흰 부분, 더 패인 부분, 덜 패인 부분 등 하나의 바위이지만 그냥 하나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파도가 잘라놓아 만신창이가 되어 있지만 돌무더기들이 안겨주는 기나긴 역사의 뒤안길은 고스란히 퇴적층들 속에 묻혀 있습니다. 때론 깊이, 때론 얕게, 때론 딱딱하게, 때론 물렁하게 역사의 흐름에 자신을 맡겼겠지요. 그렇지 않고는 이리 몽글몽글 다듬어질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까탈스러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주변의 날카로운 바위들과 매우 비교가 됩니다. 나는 어디 속할까, 느닷없이 이런 잡념(?)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아직 모나고 일그러지고 날카로우니 어쩔까요. 언제쯤이나 이리 자신을 흐르는 역사에 맡길 수 있을까요. 이게 저만 아니라 모든 인생의 숙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혹시 당신은 너무 날카롭지는 않은가요. 그 날카로움 때문에 남도 상처 주지만 자신도 상처받는다는 거, 아셔야 할걸요. 우리 한 번 안면도의 두에기해변에 누워있는 퇴적암들에서 배우면 어떨까요. 역사에 맡기는 둥근 삶 말예요. 시작과 끝을 너무 자로 재려던 생각 버리는 거 말예요.

그냥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는 말도 괜찮지 않아요. 의미가 있든, 의미가 없든 의미를 부여하며 앞뒤를 가르지 않고 사는 것도 좋을 듯해요. 그게 시작이면 어때요. 그게 끝이면 어때요. 순서 정하지 말고 오늘도 밝은 얼굴로 나를 보고 상대를 보는 삶이면 어떨까요.

[안면도 뒤안길]은 김학현 목사가 안면도에서 목회하면서 걷고, 만나고, 생각하고, 사진 찍고, 글 지으면서 들려주는 연작 인생 이야기입니다. 안면도의 진면목을 담으려고 애쓸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 퇴적암이 둥그런 것과는 대조적으로 주변의 돌무더기들은 날카롭기 그지없습니다. 언제쯤 둥글둥글 모가 난 게 사라질까요.
   
▲ 때론 깊이, 때론 얕게, 때론 딱딱하게, 때론 물렁하게 역사의 흐름에 자신을 맡겼겠지요. 그렇지 않고는 이리 몽글몽글 다듬어질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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