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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부제 섞인 인간
지성수  |  sydneytax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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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2월 13일 (수) 00:50:02
최종편집 : 2018년 01월 27일 (토) 23:18:16 [조회수 : 5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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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야당의 어느 앙칼진 여 의원이 임종석 비서실장을 향하여 현 정권에 들어간 386 세대에 대하여 정권을 빼앗긴 원한 맺힌 한풀이로 악담과 저주를 퍼부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386 세대 중에서 소위 ' 빛을 본 사람'은 이 땅의 무수한 연예계 지망 청소년들 중에서 걸그룹이 된 수 보다 적을 것이다. 절대 다수는 그야말로 "사랑도 명에도 이름도 남김 없이 "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한번은 대학 때 학생운동도 하고 졸업 후에는 '위장취업을 해서 공장에 가서 2 년간 노동자로 일을 하기도 했던 386 세대의 사람이 “나는 그 시절을 생각하기도 싫다.”고 해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가 대학을 다녔을 80년대 중반에는 최루탄 가스 냄새를 1 주일만 못 맞으면 삶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정도의 시대이었다.

내가 이해하기 힘이 들었던 것은 젊은 시절 역사와 민족을 위하여 자신의 젊음을 희생했던 가치를 남이 부정해도 섭섭한 일일 터인데 어떻게 자기 스스로 부정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아마도 짐작컨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젊은 시절 자신의 희생이 현재의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때문이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 자신과 같은 386 세대의 희생이 역사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쯤은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무 소득이 없었다는 자기 고백적 감정일 것이다. 즉 젊은 시절 학생운동을 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투자 했으면 현재의 자신의 상황이 더 나아졌을 것이라는 계산일 것이다. 그 내면에는 어떤 사람은 386의 효과로 잘 나가는 사람도 있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속쓰림도 있을 것이다. 물론 틀린 전적으로 틀린 계산법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계산이라면 이제 와서는 조금이라도 더 이상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역사의 발전을 위해서 애를 쓰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초가 아까워서라도 촛불을 들 수 없을 것이다. 만일에 이런 계산이 아니라면 인간적인 옹졸함에서 나온 판단이 아닐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자세를 ‘옹졸한 역사관’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실은 역사인식의 문제라기 보다는 개인의 품성문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졸한 역사관’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역사가 옹졸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옹졸하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주말 마다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찬바람을 맞지 않으면 어찔어찔하고 현기증이 나고 호흡이 곤란 하고 심장박동이 느려지고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었다. 그들은 개인적인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촛불을 들었다. 그런 사람들은 또 다시 자신을 희생해야 할 때가 오면 계산하지 않고 행동을 할 것이다.

세상에는 누가 무엇이 필요하다고 하면(심지어는 당사자는 말도 하지 않는데 미루어 짐작하고) 무조건 주었다가 정작 내가 필요 할 때는 없어서 쩔쩔매는 나처럼 계산도 못하고 사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조금이라도 자기 것을 손해를 보거나 희생해야 되는 일이 생기면 스스로 속이 부딛겨서 견디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희생’ 하면 대표적인 선수들이 하나 뿐인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자살테러범 아닌가?따지고보면 예수도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죽음의 길을 갔다. 그런데 예수는 자기를 죽여서 많은 사람을 살리는 길을 택했고 테러범들은 죽으면서 천국에 같이 갈 동창생들을 모집한다. 즉, 될 수 있는 데로 많은 사람이 함께 죽는 삶을 택한다.

세상에는 인류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종교, 사상, 철학이 무수하게 많다. 그 모든 것들은 ‘내 한 몸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에서 ‘남들 생각하며 살자.’로 바뀌도록 하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전자는 나쁘고 후자는 좋은 것 같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전자와 같은 사고방식이 있어야 경쟁이 있고 소비가 되고 경제가 돌아갈 수 있는 법이다. 물론 그 부작용은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그 부작용을 고치는 장치가 얼마나 잘 발달되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가 구별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목사, 신부, 수녀, 승려, 이맘, 랍비 등등 소위 직업적 종교인들은 ‘남들 생각하며 살자.’는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일 것이다. 기독교에서 직업 종교인을 길러내는 곳을 신학교라고 한다. 그러면 신학교는 어떤 사람들이 가는 것인가? 한국의 경우 특별한 경우를 예외로 하고는 대부분 공부를 아주 잘하는 사람들은 신학교에 가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은 좀 어떤가 하고 궁금해서 미국에 갈 때 마다 그 쪽 신학교 사정도 알아보았더니 그곳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런 현상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왜냐하면 똑똑하고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의대. 법대, 상대로 가서 돈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살자는 쪽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나? 오히려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남들 생각하며 살자.’는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법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아프리카 밀림에서 봉사하다 죽은 슈바이처 박사처럼 머리 좋고 마음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흔한 것은 아니다. 신학교에 가는 사람들을 우습게 보자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평가해서 공부 보다는 신앙이나 희생 등등 비이기적 욕구가 더 강해서 가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 신학교라는 것이다.

예수는 ‘한 알이 밀알이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나 썩나? 원래 마음바탕이 괜찮고 민감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잘 썩는 법이다. 무엇이든 괜찮은 놈이 잘 썩는 법이다. 음식은 잘 썩어야 괜찮은 음식이고 식물도 괜찮은 놈들이 잘 썩는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 괜찮은 사람이 잘 썩는다. 방부제 들어간 인간처럼 절대로 안 썩는 인간이 문제다.

이명박은 공채사원으로 들어가서 현대 건설 사장까지 등극해서 ‘샐러리맨 성공신화’를 창조한 그의 전력이 말해주듯이 열심히 돈 벌어 출세하고 성공하느라고 한 번도 썩어본 일이 없을 것 같은 방부제 섞인 사람의 대표적 모습이다. 그런가 하면 유신공주 공주였던 박근혜는 자기를 위해서 희생을 하는 사람만이 ‘진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정치인을 보는 나의 기준은 딱 한가지이다. ‘자기 희생을 해보았는가? 아닌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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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112.172.203.5)
2017-12-25 12:58:18
정치인을 보는 나의 기준은 딱 한가지이다.
‘자기 희생을 해보았는가? 아닌가?'이다.

<본문의 마무리에서>

지극히 당연하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진실이지요.
그래서 진실과 진리는 역설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아직도 자신의 성공과 욕망을 위하여 모든 방도를
사용하는 사악한 자들을 숭배하는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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