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앞에 잎의 생김새를 일컫는 ‘둥근잎’ 이라는 단어가 붙어있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나팔꽃도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나팔꽃, 둥근잎나팔꽃, 미국나팔꽃, 둥근잎미국나팔꽃, 별나팔꽃, 애기나팔꽃...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나팔꽃들입니다. 잎의 갈라짐 정도와 꽃의 크기로 기준을 삼는데 오늘은 갈라짐이 없는 하트모양의 잎에 꽃의 크기가 가장 크며 빛깔이 제일 화려한 ‘둥근잎나팔꽃’ 입니다. 겨울이 일찍 찾아오는 강원도에서도 서리 내리기 전까지는 피고지네요. 평창 시댁 동네에서 만났습니다.

어느해, 어머님께서는 꽃이 다른 것 보다 크고 색이 이쁘다며 구해오신 씨앗을 마당초입, 나지막한 소나무 옆에 심으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저 나팔꽃이라고만 여겼고 그 동네에서는 보이지 않던 꽃입니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그곳 문화마을 전체에 ‘둥근잎나팔꽃’이 퍼진 것은 어머님 덕분이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나팔꽃은 오래전 약재용, 관상용으로 외국에서 들어왔으나 담장을 뛰쳐나가 들꽃이 되어버린 귀화식물입니다.

지지대가 있어야만 살아가는 덩굴식물답게 줄기 끝의 솜털이 기댈 곳을 찾는 더듬이 역할을 한다네요. 시계 반대방향으로 감고 올라가고 꽃봉오리는 시계방향으로 꼬여있는데 이유가 있으려나요. 나팔꽃은 환경오염 정도를 알려주는 좌표의 구실도 합니다. 오존, 이산화황, 옥시던트에 반응하면 정도에 따라 잎에 흰반점이 생긴다니 가벼이 지나치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루를 사는 꽃이지만 시작과 끝이 남다릅니다. 해가 진 저녁 무렵부터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해 아침해와 더불어 활짝 피었다가 대부분 오전이면 그 생명을 다합니다. ‘모닝글로리’라는 영어이름을 실감합니다. 햇볕이 없는 날에는 오후에도 여유롭게 피어있어 저처럼 게으른 사람도 맘껏 느긋하게 담았습니다.

캄캄한 밤 동안에 다가올 새날을 준비해 새아침을 활짝 열어젖히는 나팔꽃의 꽃잎이 결코 얇게만 보이지는 않는군요. 허락된 하루가 더욱 소중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