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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사랑 이상을 목표함
정재헌  |  yesupeo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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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1월 15일 (수) 00:37:07
최종편집 : 2017년 11월 15일 (수) 00:47:01 [조회수 : 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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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사랑은 짧고 어머니의 사랑은 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이 다만 격언에 그치기를 바랍니다. 극히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만, “거기에 나는 예외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부가 이 땅에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그리운 이름은 어머니요, 아버지는 아니라지요. 어머니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는데 아버지는 별로 그런 것이 없다 합니다. 왜 그럴까요?

대개 아버지는 엄하시거나 얼굴을 많이 볼 수 없었는데 반해, 어머니는 늘 함께하시고 부드러움을 보여주셨으며 내가 아플 때나 어려울 때에 더욱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볼 때에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두 요소는 친절과 희생입니다. 만약 아버지가 평소 친절히 대해주고 희생을 보였다면 자식들은 아버지를 그리워하겠지요.

그럼 부모자식만 아니라 부부관계도 친절과 희생이 중요함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아내에게 얼마나 자상하게 말하고 정답게 대해주었는가? 남편에게 얼마나 부드럽게 이야기하고 존경하고자 애썼는가? 이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부부라면 그들은 서로가 애틋하니 그립게 되리이다.

대한민국 30대 부부들이시여,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능가할 그리움을 배우자에게 심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나의 배필은 어머니보다 나를 더 그리워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그에게 베푸셨던 친절과 희생 이상의 친절과 희생으로 그에게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진정 행복강국이 될 것입니다!

부부관계만 아니라 친구사이든 교우사이든 얼마나 상대에게 친절하였고 그를 위해 나를 희생하였는가에 따라 나는 그리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요.

이러한 인간 사이의 친절과 희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구체적으로 피부에 닿게 재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친절’은 ‘하나님의 희생’과 동전의 양면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고 복되게 하신 ‘친절’은, 그의 독생자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 죄를 대신 감당토록 하신 ‘희생’으로 성취되었습니다(요3:16).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셨고 독생자는 목숨을 주셨습니다. ‘주심’은 친절입니다. 그런데 ‘주심’이란 그 자체로 희생입니다. 하나님과 독생자의 ‘주심’보다 큰 희생이란 우주에서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희생이기에 그것은 가장 깊은 친절이기도 했습니다. 쓸모없는 이 죄인이 무엇이라고 친절을 베푸시되 목숨을 주심까지 희생하신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것이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친절은 더 나아가 우리를 사랑 받는, 하늘왕의 자녀로 삼으시고 천국 가문의 후계자로 정하셨습니다. 이를 확고히 보증키 위해 다시 한 번 최상의 ‘주심’으로 우리를 축복하시었으니 바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는 각각 가장 좋은 ‘주심’으로써 가장 악한 죄인들을 살리시고 의인과 성도로 삼으신 것이요, 이는 우리가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딛2:14). 다시 말해, 우리도 하나님의 친절과 희생을 나타나며 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친절과 희생은 천국의 산소요 에덴의 흔적이며 인간의 영광이요 마귀의 침몰입니다.

세상의 모든 친절과 희생은 하나님의 구원 행동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친절과 희생으로 서로를 섬길 때에는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화하고 있는 참 경건의 신앙행위요, 복음의 가시적 선포임을 기억할 것입니다. 자격 없는 나에게 최상의 친절과 희생을 베푸신 우리 주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부부가 상대의 자격을 따지고 점수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그대가 나의 배필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위하여 죽으시고 그대를 사랑하신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 친절과 희생을 나타내는 경계에 들어간다면 완전한 사랑에 이르렀다고 할 것입니다. 그 복된 날을 먼저 대한민국 30대 청년들이 누리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는 바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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