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령의 단풍이 최고로 아름다운 한 주가 지났습니다. 출퇴근길에 바쁜 마음으로 운전을 하다보면 단풍을 감상하느라 천천히 운행하는 차들을 자주 마주칩니다. 그러면 저도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고 다니던 단풍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껏해야 한두 주 동안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매일 보면서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문득 차들이 하나 둘 갓길에 차를 세우기에 ‘왜 이렇게 다들 차를 세우나’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알록달록한 단풍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들은 시간과 돈을 들여와서 보고 가는 단풍을 지척에 두고도 감상하지 못하는 저는 눈 뜬 장님과 같았습니다. 서두르느라 마음을 닫아버리면 곁에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 존재한다 해도 볼 수 없습니다. 바쁜 중에도 잠깐씩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석 달 전에 마을 다문화가정의 어머니가 가출을 했습니다. 원인은 딱 한 사람에게 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남편과 며느리가 살아온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부모, 그리고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며느리,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했습니다. 누구 한사람이라도 이해하고 배려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입니다. 어쨌거나 어른들의 선택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자기만의 몫입니다. 하지만 남겨진 어린 아이들의 설움은 아무도 책임져 주지 못합니다. 이 가정의 큰 아이(A)는 저희 작은아이와 같은 분교 1학년입니다. 여태껏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지내던 아이가 지난주에 심하게 앓았습니다.

   장로님과 권사님 내외분이 8살, 6살 된 두 아이를 맡아서 기르고 계시는데 작은아이는 “엄마가 왜 안 오지?”하고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을 내보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큰 아이는 그런 마음을 내보이지 않았고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느닷없이 지난주에 이틀 동안 “엄마가 보고 싶다.”며 밥도 먹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았습니다. 수요예배에 온 권사님께서 이런 정황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도 마음으로 아이가 참 짠했습니다.

   지난주일 예배 후에 저희 집 두 아이와 그 아이(A)를 함께 데리고 수영장에 갔다가 베트남 쌀국수 집에 저녁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음식을 먹지 않는다던 아이는 볶음밥과 쌀국수를 잘 먹었습니다. “엄마밥이 먹고 싶은데 엄마가 없어서 못 먹어요. 그런데 쌀국수에 엄마밥 맛이 나요.”라며 쌀국수에 들어있는 고기도 잘 먹었습니다. 입이 짧아서 얼마 못 먹는 아이인데 성인이 먹는 1인분은 거뜬히 먹었습니다. 아이가 그리운 것은 엄마의 냄새가 나는 밥이었나 봅니다.

   그런가하면 지난주에 또 다른 다문화가정 여성은 경찰관 3명을 대동하고 저와 함께 남편과 시어머니가 함께 살던 집에 짐을 가지러 갔습니다. 9살 된 딸(B)와 함께 알콜중독이 있는 남편을 피해 별거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경찰들이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 여성은 눈물을 흘리면서 9살 난 딸아이의 옷가지와 자신의 살림살이들을 챙겨서 담았습니다.  어린 딸아이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나야할지 막막했을 것입니다. 함께 간 여성경찰도 안타까운 마음에 짐을 정리하며 함께 울었습니다.

   하지만 가끔 마주치는 아이(B)는 해맑기만 합니다. 엄마와 함께 지역 행사에 참여해서 이사람 저사람 따라다니며 춤도 추고 맛있는 것도 얻어먹었습니다. 어른들은 성실하고 반듯한 아이(B)의 엄마를 모두 좋아하기에 이 아이에게도 누구나 친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관련기관의 후원으로 6개월간 지낼 방을 얻었으니 두 모녀가 겨울을 춥지 않게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로 인해 마음의 상처가 있지만 항상 곁을 지켜주는 엄마가 있어 아이가 미소를 잃지 않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아이들은 정확하게 자신이 왜 아픈지를 말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안전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누구도 사라지지 않고 자신의 곁에 함께해 주기를 바랍니다. 싸우고 화해하지 않는 어른들, 잘못인 줄 알면서도 바로잡지 못하는 어른들, 자기주장만 하는 어른들, 사랑할 줄 모르는 어른들로 인해서 아이들은 상처받고 눈물을 흘립니다. 싸우고도 금세 화해하는 어른들, 잘못인 줄 알면 고치려고 노력하는 어른들, 다른 사람의 입장도 듣고 이해하는 어른들, 진정으로 사랑을 줄 줄 아는 어른들에 둘러싸인 세상이라면 아이들이 뜻 모를 상처를 받는 일은 확연히 줄어들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혹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어서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하고 아파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 부디 저를 포함한 어른들의 선한 본성(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귀한 어린 생명들이 상처받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주어진 사명을 다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