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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와 음모론
지성수  |  sydneytax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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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0월 21일 (토) 22:27:56
최종편집 : 2017년 11월 11일 (토) 20:51:18 [조회수 : 4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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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 건강제품을 파는 사람의 반강요로 무료 시술을 받았다. 그가 취급하고 있는 통 속에 들어가서 30분 정도 누워 있었더니 실제로 땀으로 300그램이 빠졌다. 그러나 분명히 효과는 있었지만 어쩐지 사기 같아 보였다. 이유인즉슨 사람은 진실한데 말하는 방법이 사기같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사기 같이 느껴졌느냐 하면 의학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면서 제품에 대하여 너무 의학적으로 자신 있게 말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한의사로서 전적으로 신뢰하는 이가 있는데 이유는 그가 대단한 의술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설명하는 방식 때문이다. 흔히 한의사들은 맥을 한 번 짚어 보거나 몸을 여기저기 만져 보고는 “간이 나쁘다. 신장이 나쁘다”라고 단정적으로 진단을 내리는 이들이 많다.

몸의 잘못된 부분을 찾기 의해서 종합병원에서 온갖 현대의학의 최첨단 장비로 온 몸을 살피고 혈액 검사, 소변 검사. 대변 검사, 조직 검사를 하고 매시간 단위로 혈압과 체온을 체크해도 정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때도 있는 법인데 손가락으로 한번 눌러 보고 진단을 내리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내가 믿는 한의사는 진단을 할 때 “당신의 몸 상태는 한방에서는 이러 이러하게 설명 합니다.”라고 한다. 즉 판단의 근거를 주관적인 자신의 직관에 두지 않고 객관적인 한방의 이론에 근거를 두는 것이다.

나는 목사가 설교 할 때 주장을 강하게 할수록 의심을 한다. 진리에 대하여 무엇을 안다고 자신이 다 아는 것처럼 강조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무식한 목사일수록 성경 몇 구절 가지고 목에 핏대를 세운다. 성서 전체를 이해하고 예수의 삶과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수록 감히 핏대를 세울 수가 없는 일이다. 더욱이 역사와 철학을 이해하고 기독교를 이해할 때는 더욱 소리가 낮아질 수 밖에 없다. 기독교가 잘못한 일, 아니 이 시간에도 잘못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목에 핏대를 세울 수 있다는 말인가?

중세 수도원의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에서 노수도사 윌리암이 제자 아드소에게 하는 이야기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나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강자의 입장에서 자기 주장을 목소리 높여서 할 수 있는 반면에 약자의 입장에서 주장을 하는 방법으로 '음모론'이라는 것이 있다. 음모론은 보통 자본과 국가와 같은 총체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체제에 필사적으로 대항하려는 약자의 상상력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건전한 음모론자가 되려면 의심하되 의심을 지나치게 확신해서는 안 되는 조건이 있다.

김어준은 한국의 대표적인 음모론자였다. 이명박근혜 시대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음모론을 치밀하게 전개하는 일 뿐이었다. 그러나 대명천지가 오자 그가 그 동안 상상력을 가지고 전개했던 많은 일들이 음모론이 아니라 정권 차원에서 치밀하게 계획된 공작이었다는 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요즈음 이명박 등극이래 한국 사회는 상식과 원칙 대 편법과 몰상식의 긴장 상태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이 조금씩 들어나고 있다.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것은 현실에서는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세상의 상식으로는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망할 것으로 보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음모론적인 시각일 수도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음모론적인 시각에서 보면 현실은 모두 전복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참된 기독신앙을 가진 자들은 이 세상에 대하여 음모론자들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얼마든지 사이비 음모론으로 빠질 함정이 있는데 복음서가 아닌 요한계시록에서 길을 찾는 이들이다.

 

   
 

 

그러나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한낱 음모론에 지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이를 위하여 끊임없이 실천하고 투쟁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21 세기에 대중들로부터 예수나 부처보다도 더 사랑 받는 아이콘이 있다. 바로 턱수염을 기른 얼굴에 먼 곳을 응시하는 눈, 베레모 아래서 카리브 해의 바람에 흩날리는 장발. 사진작가 알베르토 코르다가 찍은 체 게바라의 얼굴이다. 이 사진은 체 게바라에게 낭만적인 반항아로서의 아이콘적인 위치를 부여했다.

오늘날 이 얼굴은 없는 곳이 없다. 한 번은 우리 집에 노인 손님이 왔는데 거실 소파에 앉고 보니 양말에 체 게바라의 아이콘이 새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어쩌다가 50년 전 볼리비아 정글에서 사살 당한 한 아르헨티나인의 얼굴이 세기의 아이콘이 되었을까?

체 게바라는 세속적인 권력이 아닌 도덕을 따라 자신의 조국도 아닌 곳에서 두 번이나 목숨을 내놓고 싸움을 벌였고, 세 번째 싸움에서 목숨을 잃었으니 ‘현대의 성자’로 추앙을 받기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은 많아도 예수를 본 받으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반면에 그를 믿지는 않지만 본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많은 이가 체 게바라이다. 그래서 금년으로 전사한지 50년이 되는 체 게베라는 현실 교회가 포기한 하나님 나라 운동을 그 나름대로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다 사라져간 것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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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 (1.243.131.74)
2017-10-30 09:24:37
게바라가 주님보다 더 사랑받는 아이콘이라고요?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타인이 나를 보고 좌빨(?)이라고 해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제 성향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글은 제게 10여년전에 읽고 들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아 보입니다. 체 게바라를 논하는 점에 있어서는 "21 세기에 대중들로부터 예수나 부처보다도 더 사랑 받는 아이콘이 있다......." 참 발전이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저는 체 게바라 전기도 사서 읽어보고, 영화도 보고, 떠도는 글도 좀 읽었습니다만 그는 특정한 계층, 특정한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아이콘이 더 정직한 표현이라고 봅니다. 더우기 현대의 성자는 더더욱 아니라고 봅니다.^^ 관심 있는 사람만 아름아름 알지 않나요? ^^
저는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하는 부분이 있고, 여러 사상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지만, 신앙의 신비 또한 요즘들어 더욱 공감합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불의한 이 세상 나라에 대한 개혁의 성향도 있지만, 우리가 이루지 못할, 결국 그 분이 이루실 깊은 신앙의 의미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것은 현실에서는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였다.....그러나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한낱 음모론에 지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이를 위하여 끊임없이 실천하고 투쟁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 그런데 제가 볼때 기독교 역사는 "무식한 목사일수록 성경 몇 구절 가지고 목에 핏대를 세운다."로 표현된 무식한 목사와 무식한 성도들에 의해 2,000년을 왔다고 봅니다. 근대에 들어 문맹화가 거의 없어졌지만, 무식한(?) 몇 가지 진리는 분명 기독교의 생명을 이어가게 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 글은 하나님의 나라는 무식한(?) 민초들이 만들어갔다는 것이 아니라 약간 엘리트적인 체게바라가 있어 서 만들어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무식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나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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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110.47.216.79)
2017-10-22 17:26:34
한국의 좌익들에게, "체게바라를 영원히 묻어버리고 박정희를 배워라!"(조갑제의 글 퍼옴)
지난 10월9일은 아르헨티나 의사 출신의 공산혁명가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의 안데스 산맥에서 붙들려 볼리비아 대통령의 특명으로 미국 CIA 입회하에 총살된 지 50년이 지난 날이었다. 장기집권중인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라레스 등 수천 명이 그를 추도하였다. 아일랜드는 아일랜드계인 체를 추모하는 우표도 발행하였다. 한국의 한 소설가는 좌경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그를 ‘전(全)세계 청년들의 영원한 별’이라고 미화하였다. 세계 도처에 혁명의 대의(大義)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 체 게바라의 순진한 이상주의를 높게 평가하는 이들이 많은데 문제는 그가 남긴 악의 유산이다.

최근호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 칼럼에 ‘체 게바라를 영원히 매장할 때’란 제목을 달았다. 체의 혁명운동이 불러온 부작용을 고발한 글이다. 체는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공산 혁명을 성공시킨 뒤 산업부 장관을 하다가 세계 혁명을 꿈꾸면서 쿠바를 떠나 아프리카의 콩고, 남미의 볼리비아에서 공산 게릴라 활동을 하였다.

당시는 월남전쟁이 한창 때였다. 체는 미국 제국주의와 싸우면서 평등사회를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었다. 체는 콜롬비아의 공산주의 게릴라 활동에 영감을 주었는데 이들이 일으킨 내전으로 나라는 분열되고 수십만의 희생자를 낸 끝에 최근 휴전이 이뤄졌다. 체 게바라 숭배자였던 유고 차베스는 자원부국 베네수엘라를 통치하는 데 좌익적 선동과 독재적 폭력을 행사하여 나라를 파산시켰다. 또 다른 숭배자 볼리비아 대통령도 독재의 길을 걷는다.

게바라는 반(反)제국주의와 평등사회 구현을 가장 높은 목표로 삼았는데, 이는 1960년대 식 세계관이고 냉전이 끝난 후에는 맞지 않는 전략이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한다. 냉전이 끝난 뒤 남미 국가는 미국을 제국주의로 인식하지 않고 번영의 동반자로 여기게 되었다. 투자를 해줄 나라, 일자리를 제공해줄 나라, 그리고 과학기술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나라로 여긴다. 체는 쿠바 산업부 장관을 할 때 모든 농장과 상점까지 국유화하여 이른바 하향평준 식 평등을 달성하려 하였다. 혁명이 났을 때 쿠바는 남미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였지만 지금은 낙후되었다. 의료 부문만 발전하였지만 이것도 다른 부분의 희생으로 가능하였다.

체 게바라와 추종자들은 반미와 평등을 외치면서 독재와 부패엔 너그러웠다. 유고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좌익 독재를 통하여 나라를 파탄내고 집권층은 부패하였다. 이코노미스트는 체 게바라 노선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독재와 부패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전락하였다고 비판한다. 남미의 좌익은, 부패하고 독재적인 현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을 비판하지 않는다. 이게 체 게바라의 악의 유산이란 것이다.

남미에서 칠레, 브라질, 콜롬비아는 사회주의적 노선을 거부한 개혁 노선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볼리비아나 베네수엘라는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할 체 게바라 노선을 따르다가 나라를 거덜 내고 있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남미의 좌익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여야 국가 발전의 길을 열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잘못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체를 영원히 파묻고 새로운 상징을 찾으라고 충고하였다.

체 게바라-차베스 노선이 망친 베네수엘라는 물가상승률이 연간 수백 %, 살인사건 발생률은 이라크를 능가하는 세계 최고 수준, 그리고 어린이 영양실조의 확산이란 재앙을 불렀다.

이런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를 따라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한 좌익 정치인도 있었다.

체 게바라가 세계 젊은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때 박정희는 욕을 먹어가면서 국가주도의 실용주의적 근대화 개혁으로 베네수엘라에 한참 뒤떨어졌던 한국을 발전시켰다. 현재 한국은 소득 평등도에서 세계적으로도 가장 우수한 나라인데 평등을 좋아하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쿠바, 월남, 베네수엘라보다 더 평등하다.

남미의 좌익이 체 게바라를 영원히 묻어버리고 새로운 모범을 찾으려면 박정희가 답이 될 것이다. 최소의 희생으로, 최단기간 내에, 최대의 성고를 올려 대한민국을 자존심 강하고 평등한 나라로 만든, 그리하여 체 게바라가 꿈꾸던 그런 나라를 만든 박정희의 위대성을 일찍 알아본 이가 칠레의 강권 통치자 피노체트였다. 그는 선거로 당선된 공산주의자 아옌데가 칠레를 체 게바라 노선으로 끌고 가려하자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구하였다. 국가를 구하기 위하여 민주주의를 파괴하였다는 말도 듣는다. 그의 집권 시기 칠레는 내부 개혁에 성공, 지금은 남미의 최우등국가로 번영하고 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혁명가는 나라를 망치고, 세상의 이치와 인간의 심리를 간파한 박정희는 부국강병에 성공하고 복지와 민주의 토대를 놓았지만 지식인들의 반감(反感)을 사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 게바라는 영원히 묻어버리고 박정히는 영원히 살려야 세계가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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