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간직하자.”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로부터 ‘20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는 칭송을 받은 체 게바라, 지난 학생들과의 독서 모임에서는 이 아르헨티나 의사 출신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시집을 함께 읽었다. 시집이라고는 하나 본래적 의미의 시를 모아놓은 것은 아니고 체 게바라의 단상을 포함한 그의 짧은 글들을 시 형식으로 모아놓아 기획한 책이었다. 책의 여러 시 중 다음의 내용을 지닌 <대장의 접시>라는 글이 마음에 닿았다. 새로 온 취사병이 식량을 분배하면서 유독 대장인 게바라에게만 고기와 감자를 한 덩어리씩 더 주었다. 그러자 게바라가 취사병에게 접시를 집어던지며 호통을 쳤다는 얘기. 그를 부대에서 쫓아내고 나서 그는 자신의 시를 이렇게 끝맺었다. “그는, 단 한 사람의 호감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평등을 모독했다.”

그의 철저했던 규율을 엿볼 수 있는 이 시를 읽고 한 학생은 게바라가 너무 심했다고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물론 지켜야할 규율과 신념이야 이해하지만 어쨌든 대장을 향한 마음과 성의였는데 모욕을 주고 쫓아내기까지 하다니, 아무리 그래도 취사병에게 너무한 것 아니냐고. 나는 그 학생에게 다음과 비슷한 대답을 했다. “그건 그에 대한 조치 이전에 자신에 대한 조치였을 겁니다. 취사병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유혹에 흔들리는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한 조치였겠죠.”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의 분노는 많은 부분 필경 자신을 향한 것이었으리라. 취사병의 작은 특별대우에 흔들렸던 자신을 향한, 흔들릴지도 모를 자신을 향한. 충분히 대접을 받을 만한 행동을 했을 때, 너는 그 대접을 받아도 마땅해,라는 목소리는 얼마나 감미롭고 매혹적인가. 그러나 이 생각이야말로 신념을 위해 싸우는 사람에게는 금물이다. 하늘의 명령을 수행한 종은 자신이 이룩한 성과를 앞에 놓고 언제나 이렇게 대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눅 17:10)

비슷한 얘기를 예수님의 이야기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말씀하셨을 때 수제자 베드로는 매우 강한 어조로 예수를 말렸다. “주님, 안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됩니다.”(마 17:22) 그때 예수는 베드로를 똑바로 쳐다보시면서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사탄이라니, 게바라의 이야기에서처럼 어쩌면 예수님은 늘 자신의 곁을 지키고 시중들었던 수제자에게 너무하신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 이야기를 예수께서 받으셨던 유혹의 이야기로 읽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받고 싶지 않은 죽음의 잔을 받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길이 혹시라도 있는 건 아닐까...?’ 아마도 그래서 예수는 베드로에게 그렇게까지 심하게 말씀하신 것일 것이다. 베드로가 아니라, 자신이 들으라고. 사탄은 유혹하는 자, 유혹은 결코 사납거나 무섭지 않고, 달콤하고 강렬하다. 그러니 이 달콤한 목소리를 떨쳐내기 위해서는 모질고 매정한 고함이 필요하다. “사탄아, 물러가라.” 사역의 시작에 앞서 광야에서 유혹 받으셨을 때, 유혹하는 자의 유혹을 벗어나시면서 하신 예수의 마지막 고함도 바로 이것이었다. “사탄아, 물러가라.”(마 4:10)

체 게바라는 규율에 매우 엄격했던 사람이었다. 규율의 엄격함은 일차적으로 흐트러지기 쉬운 군인들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신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차갑고 날카로운 규율, 흔들리는 자신을 향한 호통과 고함, 언제나 이 가운데 머물렀기에 아마도 그는 모든 영광을 뒤로 하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이국의 정글에서 자신의 최후를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규율, 삶 속에서 이것은 생각보다 중요하고, 생각보다 결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