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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대로 들어야 이해되는 설교들[어느 평신도의 외침]
당당뉴스  |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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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8월 18일 (금) 00:00:00 [조회수 : 4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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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과 희망(www.gospel-hope )에 "이민성도" 라는 필명으로 올린 글 내용이 좋아서, 필자를 확인하고 필자의 허락을 받아 익명으로 전재합니다. 필자는 미주교회에서 전문직업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분으로 미주교회들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쳤는 바, 오늘날의 한국교회 실상에서 대단히 유익하고 귀담아 들어야할  "어느 평신도의 외침"이라고 판단하여 연재합니다. 당당뉴스가 책임지고 실명을 보호합니다. (당당뉴스 운영자) 



지난 수년 동안 뉴욕 뉴저지 몇몇 중대형교회들이 내부문제로 몸살을 앓은 적이 있고 지금도 앓고 있는 교회들도 있다. 그 내용을 살펴 보면 한국교회에서 겪고 있는 내용과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런데 기괴한 것은 중대형교회들이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평이동해 오는 신자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며 교회재정은 수백만 달러가 넘어서고 교회건물은 날이 갈수록 대형화 되어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교회나 이민교회의 중대형교회들 가운데 건강한 목회자들도 있지만 건강치 못한 목회자가 있다는 것은 이미 언론의 통해서 줄기차게 보도되어 왔다.

성경중심의 설교를 하는 목회자가 있는 교회 속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 저 목회자는 설교는 엄청나게 복음적으로 하는데 왜 성경과 완전히 동떨어진 말도 되지도 않는 짓을 할까?" 라는 말이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의 고민이기도 하고 바른 교회를 선택해야 하는 모든 신자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우리들과 같은 평신도들은 이러한 상황을 정확하게 분별하고 통찰하기 위해서는 전해지는 설교 내용자체 보다는 "설교의 목적성과 방향성" 을 보는 훈련을 쌓아야 이해할 수 있들이 너무나 많다.

오늘날 문제시 되는 이단사이비들의 설교내용을 살펴보면 웬만한 중견교회의 목회자들보다 훨씬 더 복음주의적인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의문을 품을 정도로 성경본문 중심으로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따라서 내용만을 보고서 홀까닥 넘어 가는 신자들이 예상외로 많다. 따라서 그 문자적인 내용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설교를 하는 목적성과 방향성' 을 읽어내는 훈련을 해야만이 사이비들에게 걸려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에 세계최대교회의 C담임목사의 교회성장원리를 바탕으로 한 교회성장선교회가 창립되어 창립일에 참석한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일단 덩치를 키우고 보아야 한다” 면서 큰 소리 치는 것을 기사를 통해서 본 적이 있다.

교회가 대형화 되는 자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가 않을지 모른다. 문제는 대형화를 시켜 놓고서는 담임목사를 영웅이나 우상시 하고, 친인척을 동원한 족벌목회를 하며,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하고, 재정운영에 대한 불투명과 비윤리적인 행태로 교회를 부끄럽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세상 언론이나 교회개혁을 표방하는 사람들만이 타락한 목회자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전도단의 창설자였던 해외의 영적지도자가 한국교회를 향해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음행을 좋아하고 돈을 좋아한다” 고까지 하면서 회개를 촉구하는 전자메일을 한국교회의 지도자급 목회자들에게 보낸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러한 메일을 받아 보았던 저명한 원로 목회자는 하나 더 첨부하여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거짓말을 잘 한다” 고까지 목회자 세미나에서 통탄하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서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부는 아니지만 과거에 음행하고 돈을 좋아하며 거짓말을 하였던 중대형교회의 목회자들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지었던 죄를 공식적으로 회개한 적도 없으며 자신을 계속 합리화시키면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재주가 여전히 있다는 것이다.

법정과 언론을 통해서 목회자의 비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이며 불법적인 행태가 적나라 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목회하는 교회는 전혀 동요가 없고 도리어 신자가 늘어나는 일조차도 있는 것을 본다. 특히 그러한 목회자들의 설교내용을 들어보면 표면적으로는 대단히 성경본문중심의 복음적인 설교를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어떻게 보면 평생을 소박하면서도 깨끗하게 목회를 해왔던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의 설교와 그들의 설교를 객관적으로 비교해보면 (성경본문중심, 성경인용구절수, 지적인 능력, 연설의 능력) 비록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목회를 해왔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설교능력은 탁월하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예리한 시각을 가진 개혁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어떤 초대형교회의 어떤 목회자의 기복적이고 신비주의적이라는 설교를 비판하기 위하여 설교를 듣고 분석하다가 도리어 “그 목회자야 말로 가장 복음적인 설교를 한다. 역시 복음적인 설교를 하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고까지 결론을 내리는 것을 본 적도 있다.

그 설교분석가는 설교내용만을 보았을 뿐이지 그 목회자가 추구하는 교묘하게 숨겨진 "설교의 목적성과 방향성" 을 읽어내는 분별력과 통찰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결론을 내리게 된다고 여겨진다.

어떻게 보면 작은 교회에서 죽도록 고생하면서 목회하는 목회자들에게 “제발 철저하게 성경중심으로 십자가의 복음으로 가득 찬 복음적인 설교를 해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교회가 부흥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라고 말을 해주고 싶은 정도로 대형교회목회자들의 설교력과 작은 교회 목회자들의 설교력에 차이가 나는 것으로 몇몇 사람들은 평가하기 조차 한다.

예를 들면 뉴욕일대의 캐이블 TV방송에 매일 저녁 11시에 여러 교회의 설교방송이 나오는데 그 중에 한국에서 오는 것으로는 세계최대감리교회인 K교회의 K감독에 대한 설교가 있다. K감독에 대한 과거의 배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설교를 보여 주면 아마 다른 교회의 설교자들의 설교에 비하여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말씀중심의 복음적인 설교” 라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을 것이다. “한국의 대법원에서 횡령과 배임과 그리고 여성문제까지 거론된 확정 유죄판결까지 난 목회자인데 어떻게 저렇게도 자신만만하게 설교를 할 수 있는가? 어떻게 거대한 건물이 건축되어지고, 신자들이 저렇게 많이 모일까? 무언가 우리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반미 친북의 좌파성향이 있는 정권에 반대가 되는 골수반공을 부르짖고,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교수들을 이단으로 지목하는 일에 앞장 섰기 때문에 당하는 핍박이 아닌가? 고로 대법원의 판결은 전부 조작된 것이 아닌가? 고로 K감독은 정말 고난 당하는 종일지 모른다” 라고 결론을 내리고서 비판의 화살을 접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설교내용자체를 보면 당연히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K감독가 행하였던 대부분의 설교를 정반대로 듣고 해석하면 그 설교의 "목적성과 방향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03년에 콩밥을 먹고 난 후에 정권에 대하여 비판하는 설교의 목적성과 방향성이 어디에 있겠는가?

예수가 아니고도 구원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 교수들을 다원주의자들이라고 지목을 하고서 이단자들이라고 쫒아내기 위한 종교재판을 K교회에서 열도록 한 후 거세하는데 주도를 하였던 K감독이 캐톨릭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으며 같은 성경과 같은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개신교회는 캐톨릭교회를 위한 구원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교리로 여전히 무장한 카톨릭교회와 감리교의 칭의론 일치 서명을 높이 평가하는 것을 보면 그가 지금까지 근본주의적이며 복음주의적인 설교를 해왔던 그 표면과 그 이면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제 아무리 입으로는 복음적인 칭의론을 유창하게 설명하여도 그의 가르침의 "목적성과 방향성" 은 그의 드러난 행위들을 통해서 실증될 수 있을 것이다. 성경대로 일어나는 것이다. 과거는 어떠하였는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적어도 콩밥을 먹고 난 후 지금 행하는 모든 설교의 목적성과 방향성은 오직 자신이 저지른 불법에 대한 회피와 교묘한 커버링이나 숨겨진 목회야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드라난 불법에 대하여 공개적을 회개하지 않는 한 K감독이 전하는 그럴 듯한 모든 복음적인(?) 설교는 전부 반대로 들어보면 그의 칭의론 설교에 대한 목적성과 방향성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 한국교회로부터 맹비판을 받은 적이 있는 세계최대의 교회의 C담임목사에 대한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흐름이다. 따라서 “초대형화되면 누구도 이단이라고 무시를 하지 못한다. 꿩 잡는 것이 매다. 일단 무조건 크고 봐야 한다. 양이 많아야 질도 올라간다” 라는 대형주의, 성장지상주의, 물량주의와 기복주의적인 C목사의 의식이 그대로 K감독에게 전이된 듯한 현상을 목격할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전이" 가 지금 한국교회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으며 도리어 그러한 의식전환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허황된 꿈을 꾸는 목회자들이 많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수평이동으로 성장하는 대부분의 이민교회들의 모습을 보면 한국교회의 모습과 별로 차이가 없다. 따라서 성장하고 있다는 대형교회들 속에는 작은 교회에서 수평이동을 해 온 신자들이 이명서나 이적서를 가지고 오지 않더라도 무조건 새신자로 받아주는 일들은 결국 자기의 목적성과 방향성에 들어맞기 때문에 부담없이 받아들여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태를 해왔던 전력과 전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설교만 그럴 듯하게 잘 하고 교회만 무조건 부흥시키면 지은 죄와 허물을 탕감 받는다” 는 기괴한 현상이 벌어진 이 사태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혼돈을 주고 미혹시킨다는 것이다.

"목회자의 삶이 어떠하든 그 설교 내용만 좋으면 되었지 하는 식" 이 오늘날 교회를 타락시키며 결국 교회가 존재하는 진정한 "목적성과 방향성" 을 상실한채 영향력이 전혀 없이 거대한 난파선과 같이 표류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1960년대 박 태선씨 (이단인 전도관 교주, 당시 남대문교회 장로)가 한강변이나 공설운동장에서 구름떼 같이 모여든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고 이적을 행하였을 때, 한 번 들어보라는 다른 목회자들의 권유로 참관하였던 고 박윤선교수(당시 고려신학교교장)가 박씨의 설교를 듣고서 단번에 돌아와서는 박씨는 이단사이비이며 학생들과 목회자들에게 참석하지 말 것을 권고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다수의 사람들이 박교수에게 “잘나가는 사람에게 대하여 시샘하고 질투하고 있다” 고까지 말한 적이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오늘날도 동일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교회개혁과 교회자정을 바라는 교회의 목회자들이나 신학교수들이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을 비판하면 바로 돌아오는 대형교회의 소리는 “시기하고 질투 때문” 이라고 한다. 이러다 보니 옆의 큰 교회들이 저인망식으로 교회버스를 돌리고 싹쓸이를 해가는 상황 앞에서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이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데도 말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벌어져 있다는 것이다.

얼마전 뉴욕에서 한국 만민중앙의 이재록씨의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대형집회를 한 적이 있다. 뉴욕교협의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집회를 반대하고 이단에 대한 주의를 촉구하였을 때 돌아오는 만민측의 반응은 “복음을 잘 전하고 교회가 성장하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질투” 라는 교묘한 비판이었다. 이러한 현상들은 오늘날 한국교회나 이민교회 내에서 중대형교회들이 자신들에게 받는 비판을 돌려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태를 보였던 몇몇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매주 전하고 있는 복음으로 보이는 설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목회자들과 교인들에게 있어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분명히 드러난 행위는 불법과 불의 속에 있는데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내용은 지독(?)하게 복음(?) 처럼 보이는 설교를 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정통교회와 동일한 성경과 찬송가를 사용하면서 정통의 탈을 쓰고 있는 이단사이비교주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질문일 것이다.

드러난 행위는 분명히 문제가 있는데 설교를 복음적인 설교를 하여서 교인들이 분별을 하지 못하면서 모이게 되며 거대한 대형건물을 짓고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형태를 가진 초대형조직을 가지고 있는 설교자들의 말을 디코딩(코드화 된 것을 푸는 것)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말하는 사람의 그 내면의 심리를 디코딩하지 못하면 평생 속고 따라갈 수 있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남부에 있는 교회의 목회자들은 근본주의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들은 역사적으로 노예제도를 찬성하였으며, 노예제도의 철폐 후에도 1960대 중반까지 흑인들의 공민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각종 전쟁을 합리화 하였으며, 백인우월주의 속에서 미국이 팩스로마화 되는 것을 강력하게 지지 해왔다. 그런데 근본주의적인 목회자들의 설교문을 분석해보면 정말 일점 일획도 오류가 없을 정도로 정확한 복음적인 설교들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을 강조하고 복음이 가득찬 설교를 하였다.

그런데 근본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의 이혼률, 범죄행위(마약, 혼외정사, 가정폭력, 살인, 강간, 인종차별, 미성년학대) 들을 보면 진보적인 교회보다 훨씬 많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져 있다.

근본주의적인 성향의 교회에서 자랐던 필립얀시와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는 근본주의 교회의 폐단을 저서들을 통해서 적나라 하면서도 신랄하게 표현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에 미국에 충격을 주었던 것은 오순절계통의 목회자이면서 근본주의적인 TV설교자로 유명하였던 지미스와커트목사의 타락이었다. 그는 평소에 음행과 불법과 비도덕에 대하여 대단히 신랄하게 공격하면서 설교를 하였던 사람이다. 심지어 자유주의적인 삶을 가진 목회자들의 음행에 대하여 뒷조사를 하여야 한다고까지 과격한 설교를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설교한 본인은 수년 동안 매춘부와 놀아났던 것이 것이 드러났으며 결국 100개국 이상에 설교방송이 나갈 정도의 사역현장을 접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들은 한국교회에 이민교회내에서 대단히 복음주의적인 설교를 하면서 뒤로는 호박씨를 까는 설교자들의 설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그 분별이 간단하지 않다. 더구나 그러한 설교자 밑에서 배우는 교인들이 가지는 목회자에 대한 신뢰는 거의 절대적인 맹신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성경지식으로 무장한 고단수의 "말빨" 에 눈이 멀어져 있는 것이다.

강해설교와 성경본문중심의 멧세지를 문자적으로 또는 대단히 지성적으로 전해지는 설교의 표면만을 보지 말고 그 이면과 행위를 조합하고 통찰해 보면 지미스와거트목사와 같이 자신의 내면 속에 들어 있는 야망과 죄성을 정반대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파악알 수가 있다.

죄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목회자는 지독하게 거룩을 부르짖고 싶어하는 역심리가 있다. 교회재정을 전횡적으로 사용하고 횡령과 배임을 무감각하면서도 상습적으로 해왔던 목회자는 교회재정을 관리하는 장로들에게 대하여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멧세지를 전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왜 교회가 세상처럼 감사가 필요하느냐는 이상주의적인 멧세지를 전한다는 것이다.

은밀하게 음행하는 목회자들은 자신의 죄를 가리기 위하여 간음죄가 얼마나 무서운가에 대하여 맹비판을 가하거나 아니면 사랑의 삶을 지나치게 강조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고단수에 와 있다는 것이다. 보통 죄성의 레벨이 낮은 사람은 횡령을 하면 횡령하지 말라고 하지 못하고, 간음을 하면 간음을 하지 말라는 설교를 일부러 피해간다. 그러나 죄성의 레벨이 고도화된 사람은 자신의 죄의 레벨과 비례하여 더 강력한 율법주의적인 설교를 하게 되거나 또는 초월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역심리가 발동되는 인간의 심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제에 대항하여 만주빨찌산운동을 하고 미제에 대항하여 민족해방운동을 하고 지상의 낙원으로 건설하였다는 김 일성이 “인민민주주의공화국”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북한주민을 가장 사랑하고 가장 인민민주주의를 하여야 하는데도 정반대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상태로 몰라 넣었고, 가장 억압하고 가장 고통을 가하였으며, 가장 비민주적인 폭력정권을 55년 동안 유지하여 왔던 것은 바로 인간이 표면적으로 부르짖는 것과 그 속에 잠재된 죄성과 역심리가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는가를 상징적이면서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한국에서는 좌파 성향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골치 아프다고들 많이 말 한다. 그 중에 상당수가 권위주의 정권시대에 민주화 투쟁과 인권투쟁을 외치면서 청춘을 바치고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많은 납북자들의 문제, 돌아오지 못하는 국군포로문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20만명이 넘는 동포들, 그리고 핍박과 배고픔 때문에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떠돌아다니면서 비참하게 쫒기는 신세가 되어 있는 수 십만명의 동족이자 탈북자들의 생명과 인권에 대해서는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라는 십 수 년이 지난 민주와 인권을 가장 존중한다는 정권들 하에서 침묵에 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북한인권문제에 대하여 유엔에서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한국정부는 기권을 하는 행위를 보면 속다르고 겉다른 것을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가진 어떤 정치권력의 "목적성과 방향성" 을 위해서는 인권과 민족과 민주투쟁까지 이용해왔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것들이다. 진짜 전면에서 인권과 민주투쟁을 해왔던 상당수의 사람들은 지금도 그 때 당한 고통으로 쓸쓸하게 죽어가거나 소리도 없이 살고 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누구보다도 인권과 생명을 존중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엄청나게 많은 소자들이 비참하게 유리방황하고 다니고 있는데도 정치적인 구호의 외침들은 있지만 그 누구도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믿음을 보이는 지도자들은 많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한마디로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민교회 가운데 최근에 급성장하는 교회를 개척하여 대단히 잘나가는 동부지역의 어떤 목회자가 있다. 설교를 통해서 교인들에게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하지 말아야 하고, 복음 안에서 자유하고 누려야 한다고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은밀하게 숨겨진 행동이나 인격을 보면 전한 설교와 정반대의 삶을 사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즉 강단에서 전하는 말들을 문자적으로만 보지 말고 그 모든 것을 정반대로 듣는다면 이중적인 태도와 인격에 대한 의문들이 실타래가 풀리듯이 전부 풀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본인 스스로도 잘 모를 수 가 있을 것이다.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하면 진짜 처럼 생각되는 심리가 인간 속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평소에 설교에서 “저는 교회 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릅니다. 저의 사례는 사찰집사님이나 전도사님들이나 부목사님과 같습니다. 저의 용돈은 한 달에 200달러이고 100달러에 두 벌하는 양복을 사서 입고 다닙니다. ” 라고 즐겨 설교하는 목회자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늘 설교 가운데 눈물까지 흘리면서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4:11, 12) 라고 하는 고백적인 멧세지를 듣는다면 생각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이민자들이 감동하고서 간까지 빼 놓을 수 있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1년 열 두 달 세상을 초월하고 정욕과 명예와 이생의 자랑에 초월한 사람처럼 설교를 지속적으로 한다면 그 소리를 듣는 교인들은 콩을 팥이라고 하여도 믿어버리게 되는 세뇌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설교를 하는 목회자가 만약 교회재정에 교묘하게 관여하고 교인들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주머니를 알아서 열도록 만들고 고급브랜드를 받아 챙기며, 자신의 말과는 달리 결코 적지 않는 사례를 받으며, 교회가 부어준 돈으로 60만달러가 넘는 주택까지 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면 과연 그의 복음적인 설교를 신뢰할 수 있고, 그 멧세지가 삶의 능력이 되겠는가? 완전히 말장난이 되며 결국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피자학적인 쾌감을 맛볼지 모르지만 그 설교를 듣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예수처럼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지 심히 우려가 된다는 것이다. 목회자가 꼭 가난하게 살거나 일부러 청빈하게 살필요는 전혀 없다. 교회가 재정이 있다면 교회내 모든 목회자들이 제대로 생활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해주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강단에서 자기의 허상적인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하여 자기의 삶과 내면적인 인격과는 전혀 다른 인기성 발언이나 하고 세련되게 보이는 책들이나 읽고서 갈고 닦은 이론이 마치 실제인양 떠들고 있는 것은 정신질환자들이나 하는 소리에 불과한 것이 될 소지가 있다.

자신의 실제적인 삶과 다른 이론적인 멧세지를 늘어 놓는 것은 결국 자신의 억눌린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불만의 표출이자 희망사항에 불과하며 자신의 계획된 허상적인 이미지를 계속 꾸미고 있는 가공되고 가상적이며 계산적인 위선에 가득찬 멧세지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교회도, 멧세지도, 교인들도, 훈련프로그램도 전부 목회자의 교묘하게 숨겨진 야망과 허무를 채우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당장에 나타나지 않겠지만 수년이 흐르면 결국 실제적인 복음의 열매들은 빈쭉정이가 되고 반복적으로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형태로 드러나게 되어 있으며, 그것을 가리기 위하여 또 다른 프로그램과 프로젝트들을 반복적으로 돌리는 "정지하면 죽는다는 식의 성장지상주의의" 불행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이름을 내 걸고 성경을 전하는 표면적인 상황과 감추어진 인간의 아망과 죄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설교의 목적성과 방향성"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지 안타까울 뿐이다.

최근 교회성장선교회에서 축사를 하였던 목회자들 가운데 평생을 복음주의 노선을 걸어 왔던 장로교회의 보수적인 목회자이자 신학교 교수이며 초대형교회인 H교회의 K담임목사의 발언은 가히 충격적이다. "한국교회에는 이상한 풍토가 있다. 교회 성장을 싫어하는 목사와 교수들이 있다. 교회 성장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인간들이 반대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성장주의라고 비판하면 하나님이 섭섭해 한다. 비판을 중단하라"

도대체 누가 교회 성장을 비판하는가? 교회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대형화 해 놓고서는 담임목사를 우상숭배시 하고, 교회건물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속이면서 성도들의 피를 빨아내어 피로상태로 만들어 실제적인 선교와 구제를 하지도 못하며, 족벌 목회를 예사로 하고, 아들에게 세습하고, 불법을 행하고 있으니 그로 인하여 교회의 진정의 존재성과 참된 가치가 날로 추락되어 전도의 문이 막히고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당연히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목회자의 발언이 이 정도의 저수준이니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의 의식이 어느 수준에 도달해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복음주의 노선을 걸어오면서 평생 목회를 잘해왔다고 평가를 받아왔던 K목사의 발언은 결국 강단에서 지금까지 “참영성은 예수를 닮아가는 것이다” 라는 수 많은 그의 설교내용과 그의 실제적인 속마음과 인격과는 정반대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언제 수많은 작은 교회를 무너뜨려서 수평이동시켜서 대형교회하라고 하였는가?

지난 10년 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는 중대형교회들은 있지만 작은 교회들 수 천개가 문을 닫아야 하였고 그래서 택시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교역자의 숫자가 2천명이 넘으며, 결국 타종교들은 전부 부흥성장하였는데 유독 개신교회만 마이너스 성장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인가?

한국 교회의 마이너스 성장을 대형화시켜서 물량주의 때문에 불신자들에게 들돌리도록 한 자기들이 아닌, 전부 없어진 작은 교회들, 목회를 접고서 길거리에 나가 있는 목회자들에게 돌리는 그 파렴치가 과연 성경적인 목회자가 할 말이냐는 것이다.

수만명 앞에서 예수이름을 팔고, 고급차와 고급주택과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같은 주의 종들이지만 야간에 택시를 몰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 앞에서 조금도 안타까움이나 부끄러움도 없이 떠 벌이는 “대형교회에 대한 비판을 중단하라” 는 그 발언이 과연 평생을 복음주의 목회를 하였던 그 내용이 과연 진짜인지, 과연 성경 중심인지를 강하게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성경에서 한참 벗어나 있고, 재정운영에 불법을 행하고, 수평이동으로 작은 교회들이 폭삭 망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내 배만 두들기겠다는 의식을 가진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전하는 복음은 말이나 단어 자체는 복음인지 모르지만 그 속에 흐르는 “목적성과 방향성” 은 전혀 예수의 복음과 관련이 없다라는 것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복음의 목적성과 방향성” 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와 예수 믿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도록 하는 것이자 동시에 그 방향성은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들이 모두가 더불어 함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일 것이다.

그런데 내 배만 채우고 내 교회만 성장하면 된다는 의식과 안과 밖이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몰지각한 목회자들의 부르짖는 복음의 “목적성과 방향성” 은 어디에 초점이 맞혀져 있는가?

작은 교회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수평이동시켜 놓고서는 교인들의 호주머니에 돈을 털어내거나 은행융자를 받아서는 수백억이 넘는 거대한 교회건물을 짓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게 만들고서 그것이 하나님의 생명 역사인줄 알고 그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로 속이고서 그 속에서 왕노릇하고자 하는 목적과 방향성을 보이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교인들로 하여금 결국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 보다는 내 교회를 확장시키고 내 목회자를 위해서 목숨까지 걸도록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복음의 목적성과 방향성” 이 정말 바르다고 하였다면 5명에 1명이 예수를 믿는 곳이 한국땅인데 어떻게 전세계가 공산주의가 망해버린 상황 속에서 때아닌 보수와 진보, 부자와 가난한자, 경영주와 노동자의 대결이라는 극단주의적인 양극화와 무신론 공산주의가 준동하고 있으며, 악성 부동산투기가 여전히 넘치고, 전과자의 숫자가 10명에 1명 꼴이며, 부패지수가 아시아의 최빈국들과 맞먹을 정도가 되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아 가는 것이 아니고 더 심해지고 있다고 말할 정도이다.

동부지역에 1천 개 이상의 교회들이 있고, 서부지역에 2천 곳 이상의 교회들이 있어서 수백 만 달러짜리 건물을 짓는 데는 혈안이 돠어 있지만 정작 1.5세와 2세를 향한 비전이나 미본토인들과 수천만명의 소수민족들에게 복음을 거의 전하지 못하는 “복음의 목적성과 방향성” 을 완전히 상실한 채, 타종교와 비슷한 종교의식이나 하고 친목회장 또는 심하게는 불법의 온상으로 전락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다른 교회에서 이동한 수평이동신자들로 성장한 중대형교회들이 철저한 비판을 받아야 마땅한 것은 바로 죄인을 회개시켜 예수 믿음으로 사람답게 세워져 이제는 만방에 나가서 복음 전하는 자로서 그리고 주거지에 있는 지역교회로 돌아가 큰 교회에서 배운 것으로 섬기며 교회를 세우고 지역을 복음화 시키는 복음의 진정한 목적성과 방향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교회들이 그렇게 하였다면 70%이상의 작은 교회들이 피해를 보지도 않을 것이며,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맛볼 것이고, 한국이 마이너스 성장하는 부끄러운 일들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명확한 불법을 저질렀으면서도 여전히 교회가 대형이고 본인이 목회하는 기간동안 부흥시켰다는 이유로 강단에서 고개를 쳐들고서 “나는 죄 없다” 는 식의 목회자에게 설교를 듣는 교인들은 그 “설교의 목적성과 방향성” 이 어디에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도전적으로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1, 과연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에서 이동해 온 사람들에게 이명서(이적서)를 확인하고 다른 목적으로 수평이동 해 온 기존 신자들을 본인들의 교회로 돌아가도록 권면하고 있는가?

2. 과연 우리 교회에서 5년 이상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주거지에 있는 지역의 미자립 교회에 나가서 섬기도록 가르치고 있는가?

3. 과연 우리 교회는 돌아오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누구도 알아 주지 않는 보상이 없는 선교와 구제에 예산의 50% 이상을 투입하고 있는가?

4. 과연 우리 교회는 교회에서 1시간 이상 떨어진 지역에 있는 교인들을 데리고 오기 위하여 저인망식의 교회버스를 돌리고 있지는 않는가?

5. 과연 우리 교회는 목회자와 직분자들과 교인들이 자유로우면서도 인격적인 교제가 있으며 모든 직분은 임기제이며, 정기적으로 신임투표를 받고 있는가?

6. 과연 우리 교회는 건의와 직언과 비판이 가능한 교회내 언로는 항상 열려서 민주적인 의회제도와 재정의 투명성은 확보되어 있는가?

7. 과연 우리 교회는 돈 없고, 병 들고, 배운 것도 없고 나이 든 사람들이나 정신박약과 지체가 부자유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교회에 찾아와서 마음대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환영하는 분위기인가?

상기의 일 곱개 항목에 단 한가지도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 복음적인 설교를 하면서 교회가 성장하였다면 그 성장은 진짜로 인정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복음적인 설교를 하는 목회자의 설교는 정반대로 들어야 이해되는 설교이며, 한마디로 겉 다르고 속 다른 “복음의 목적성과 방향성”을 완전히 상실하였거나 다른 목적과 방향이 숨겨져 있는 가짜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글쓴이: 이민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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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1 (220.82.69.55)
2009-07-10 14:25:36
흠....돈없는 교회는 답변에 답도 못달겠네..
버스는 커녕 건물성전도 없는 천막교회가 얼마나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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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준 (222.101.218.195)
2006-08-20 00:57:06
당당 뉴스는 많이 정돈되고 깔끔해졌습니다.
요즘 유치장이나 구치소 등은 콩밥이 아니라 보리밥입니다.
돌리고 싹쓸이를 해가는 상황 앞에….라고 하셨는데 차떼기로 만일 성도를 모셔다 드릴 테니 영적이든 육 적이든 먹여 살려 보세요.
아마 당장 교회 재산이 거덜나든지,
많은 성도의 요구나 교회 사역의 기피 등으로 피곤해질 것입니다.
욕심 없는 목회자시라면 언젠가는 이런 생각들도 불필요하다고 느끼실 때가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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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민)+ (211.226.171.24)
2006-08-19 10:43:28
진짜같은 가짜와 가짜같은 진짜...!
기독교 말세의 증상이다.

붉은 저녘노을이 아침 노을같고
아침노을이 저녘노을 같으니

이 세상 가짜 명품들이 진짜같지 아니하면
그 누가 그 가치를 높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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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나무 (222.113.15.83)
2006-08-19 09:09:38
교회가 꼭 들어야 할 말입니다.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님의 글에 동감할 텐데..
그것이 목회자들의 변화로 이어져서 궁극적으로 한국교회가 변화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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