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성경구절’의 저자 박창수 목사(선한목자교회)가 ‘낭독을 위한 로마서’를 발간하였다. 그가 스스로 대한성서공회에 저작권료를 지불하면서까지 ‘쪽복음’을 편집한 것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자기 나름으로 기획한 기념방식이다.

  보통명사로서 ‘쪽복음’은 한 동안 낱낱의 복음을 단권용으로 제작하여 전도용으로 활용했던 작은 책을 가리킨다. 얼마나 유용했던지, 요즘의 전도용 물티슈나 뻔한 소모품들과 비교할 수 없다. 그때는 성경 자체가 귀한 시절이라 소책자도 소중히 여김을 받았지만, 이젠 성경이 흔하디 흔해져 더 이상 효용성을 평가 받지 못한다.   

  이런 현실에서 박 목사가 낸 로마서는 몇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먼저 그는 자신을 권서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평생 성경연구와 전달방법에 심취한 그 다운 선택이다. ‘낭독을 위한 로마서’는 본문의 배열을 차별화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른바 ‘아크로스틱’ 방식인데 중세수사학의 배열을 본 딴 것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낭독, 그것도 말씀읽기의 집중을 돕기 위해서다.

  박 목사가 로마서를 ‘쪽복음’ 형태로 편집한 까닭은 로마인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야 말로 종교개혁의 핫이슈가 된 루터의 95개 논제에 대한 해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루터에게 황금율과 같았던 로마서는 500년 전만이 아니라 개혁이 필요한 모든 시대와 세대의 생생한 모범답안이었다. ‘2017 로마서 백만낭독’을 주창하는 배경이다.

  어거스틴은 ‘톨레레게’(Tolle lege)란 음성을 듣고 즉시 로마서 13장을 펼쳐 읽은 후에 비로소 긴 방황을 그쳤다. 어린아이들의 놀이소리처럼 들렸으나 그는 ‘집어들고 읽어라’는 생생한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가 펼친 성경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였다. 그는 <고백록> 8권 12장에서 자신의 회심과정을 극적으로 기록하였다.

  어거스틴 뿐이랴. 존 웨슬리의 심장을 따듯하게 한 회심의 불씨는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들으면서 피어올랐다. “...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9시 15분 경에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을 때 나는 내 마음이 갑자기 뜨거워짐을 느꼈다”(존 웨슬리의 일기).

  칼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는 루터의 신앙고백을 변질시킨 독일국가주의교회에 반대하는 독일고백교회의 저항 선언이었다. 바르트는 초판 서문에서 이렇게 증언한다. “자기 시대의 한 아들로서 바울은 자신의 동시대인들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이 진리보다 훨씬 중요한 다른 진리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고 하는 진리이다”(조남홍 역, ‘로마서 강해’).

  무엇보다 박창수 목사는 로마서가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응답을 주었듯이, 불확실성과 단절의 시대인 오늘에도 응답하리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로마서 낭독에 참여함으로써 누구는 어거스틴이, 누구는 루터가, 누구는 존 웨슬리가, 누구는 칼 바르트가 되자는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일을 100일 앞두고 시작한 로마서 성경낭독은 현재진행형이다. 한낱 이벤트가 아니다. 로마서 낭독을 통해 개인의 영성은 물론 교회공동체의 회복을 모색하려는 소박한 시도는 미래완료형으로 귀결될 담대한 의지이다.
 
  500년 전 종교개혁은 마틴 루터가 권서인으로 데뷔한 사건이다. 이를 증명하듯 종교개혁 500주년 포스터에는 핏빛처럼 선명한 바탕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 1:1)란 성구가 쓰여 있다. 종교개혁의 대표적 브랜드는 바로 성경임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성경은 개혁의 열매 중 가장 빛나는 성과였다. 토착독일어는 비로소 문화세계어로서 세례를 받은 셈이다. 독일성서공회(DB)는 올해 루터 판 번역본을 무료로 개방한 바 있다. 
    
  개혁의 산 현장인 독일 비텐베르크 광장의 루터 상(像) 아래에는 “복음을 믿어라. 내 주는 견고한 성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한마디로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시킨 장본인이다. 루터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최종적인 권위가 교회나 교황이 아니라, 성경에 있음을 분명히 선언하였다. 성직자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성경을 뭇 사람에게 ‘거룩한 책’으로 돌려준 것이다. 

  성경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따라 살려는 사람은 누구나 권서인이다. 한 책의 사람이요, 만권의 사람인 존 웨슬리의 동역자이다. 종교개혁의 전통을 계승하고, 우리 시대의 교회를 개혁하려고 한다면 바로 말씀을 회복하는 일에서부터 쟁기질을 시작해야 한다. 더 많은 권서인 박창수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