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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비판에 대한 반론
오세영  |  sumkim0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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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0월 09일 (월) 00:36:57
최종편집 : 2017년 10월 09일 (월) 00:41:03 [조회수 :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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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비판에 대한 반론

 

오세영 목사

국내 기독교계에서 방언은 각 교회로 부터 거의 거부되지 않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냉정히 살펴보면 100여년 남짓한 시점부터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역사적으로 고찰해 볼 수 있다.

초대교회 이후 거의 보이지 않던 방언현상이 왜 20세기 이후에 관심사항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하고 있을까!

물론 랄라라 방언으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대부분 방언은 오순절 때나 사도행전에서 나타나는 방언과는 분명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흔히 알고 있듯 방언은 대신방언, 대인 방언으로 분류 할 수 있다.

오순절 성령강림에서는 대인 방언이었고 대부분의 방언은 대신방언 이었다.

방언을 비판 하는 입장에서 대인 방언을 누가 하고 있으면 어떤 시비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말을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신 방언을 하는 사람을 보면서는 알아들을 수 없기에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또 대신방언은 랄라라 방언과 같이 나타나기에 더욱 의심을 받게 된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방언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의해 보아야 한다.

영어성경에서는 방언을 “tongue”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혀, 말, 언어, 이야기 등으로 번역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방언은 혀에서 나오는 소리 같은 의미로 규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소리는 우주만물에 가득 차 있다.

그 모든 소리는 뜻을 전달해 준다. 뜻 없는 소리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바람소리, 시냇물소리, 빗소리, 각양각색의 새소리, 파도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등 들을 수 없어서 그렇지 심지어 지구 돌아가는 소리도 있다.

우리는 어떤 소리건 들으면 분별이 된다.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하나님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의 흔들림에서 나오는 소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 저 공중에서 지저귀는 새들을 통해서도 그들의 말을 들으시는 분이다.(시148편) 즉 이세상의 모든 소리에는 뜻이 있다는 말이다.

피조물들이 내는 소리는 하나님과 소통이 된다.

 

사람과 사람은 인간의 언어를 통해 서로 소통을 한다.

사람이 언어를 통해 서로 소통할 때는 생각하게 되고 논리가 필요하다.

즉 이성적 지배를 받게 된다. 이성적 언어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정확히 담아 전하게 된다.

이성적 지배와 한계 이것을 초월하는 것이 방언의 필요성이고 원리가 된다.

방언기도는 인간 내면에 있는 소리를 그대로 올려드리는 기도이다.

이성의 제한을 받지 않는 기도이기에 영혼의 기도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적 표현을 초월하여 광범위하고도 깊은 언어로 하나님께 전달되는 기도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혀로 발성되는 소리를 통하여 그 영혼의 고백을 받으시게 된다. 그 소리는 이성의 세계가 아닌 4차원의 세계에서 기도 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다. 즉 생각을 비우고 마음도 비우고 혀로 발성을 하는 것이 방언의 원리인데 하나님은 이러한 차원으로 기도 할 수 있기를 원하셔서 방언기도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방언의 시작은 무아지경에서 또는 위로부터 혀를 강력하게 제어하는 어떤 힘으로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성에서 나오지 않는 혀의 소리를 통하여 인간 내면의 소리를 들으신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이 혀의 놀림을 통하여 어떤 소리를 내든 하나님은 그 뜻을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랄라라로 한 시간을 기도한다 해도 수많은 내적이며 영적인 기도가 고백되는 시간임을 알아야 한다. 모든 피조물 보다 뛰어난 인간의 혀에서 나오는 어떤 소리가 랄라라라 하여도 하나님께 전달되지 않을 수 없다. 구체적 고백이 필요하듯 혀의 소리가 있을 때 영적고백이 일어난다.

방언을 처음 받을 때는 신비의 차원에서 혹은 혀의 강력한 충동에서 시작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또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어린아이들의 옹알이가 엄마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듯 우리가 입을 벌려 우리의 혀로 어떤 소리를 옹알이하듯 내 뱉는다 해도 주님은 그 뜻을 알고 계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모든 사람이 방언으로 말 할 수 있기를 바랐던 바울처럼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방언으로 기도 할 수 있다.

물론 특별한 방언의 은사에 의해 행해지는 방언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혀로서 고백되는 방언을 말하고 있다. 방언의 이러한 원리를 알게 하시기 위해 방언을 받을 때 절제할 수 없는 혀의 놀림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방언기도를 특별한 분위기나 어떤 힘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입으로 인간의 말이 아닌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어떤 말을 할 때 방언이 되는 것이다. 피조물의 소리에 하나님과 통하는 언어가 있듯 인간의 소리가 랄라라로 계속된다 해도 그 속에는 하나님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무궁무진하게 들어있다.

 

   
▲ 오세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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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183.109.98.239)
2017-10-11 06:35:59
벌거벗은 임금님.

중언부언 하지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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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 (221.167.226.172)
2017-10-09 08:18:38
목사이여서

성경을 다 안다고 생각하면 부작용 발생.

부분 부분 알고,

예수님 오시면 완전하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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