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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로 심판하신다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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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0월 07일 (토) 22:05:45 [조회수 :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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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편 7-12절

공의로 심판하신다

 

가. 하나님은 심판의 주님이시다.

7절,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 본문은 하나님을 심판하시는 주님으로 선포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며 통치하신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로서 선악 간에 판단하신다. 하나님은 결코 저 멀리 높은 보좌에 앉아서 구경하시는 방관자가 아니시다. 하나님은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다.

* 여기서 보좌를 ‘예비하셨도다’(코넨, 강조완료)는 하나님의 심판이 확실하게 준비되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라고 하였다(9절). 하나님은 압제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압제당하는 자들을 구원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라고 하였다(12절). 하나님은 피를 흘리게 하는 이들을 심판하시고 부르짖는 이들을 구원하신다.

* 하나님은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는 하나님이 초월적인 존재지만 동시에 역사 속에서 계속 행동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는 말이다. 하나님은 종살이하며 고통중에 호소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는 애굽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출3장).

 

나. 숨어계신 하나님을 오해하면 안 된다.

7절,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숨어계시지만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 본문에서 ‘영원히’(올람)는 ‘숨기다’(알람)에서 유래한 말이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언제나 어디에나 계신다는 뜻이다. 그는 숨어계신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

*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의 임재를 의심하면 안 된다. 시편 139편 기자는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라고 하였고(2-3절),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라고 하였다(7절). 항상 주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

* 하나님은 특별히 연약한 이들과 함께 하신다. 주님은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라고 하셨다(마18:10).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

 

다. 공의와 정의를 따라 살아야 한다.

8절,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이 공의와 정의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신다. 여기서 ‘공의’(체데크)는 공평과 공정을 뜻한다. 그리고 공의가 무너지면 백성들의 ‘부르짖음’(체아카)이 커진다(사5:7). 또한 ‘정의’(미쉬파트)가 무너지면 ‘포학’(미스파흐)으로 인하여 압제를 당하는 사람이 많아진다(사5:7). 이에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게 된다.

* 본문에서 ‘심판’(미쉬파트)은 ‘정의’와 같은 단어로 사용된다. 즉 하나님은 정의에 따라 심판하며 정의가 심판의 기준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라는 말씀도 맥을 같이 한다. ‘정직’(메샤르)은 ‘똑바르다’(야샤르)에서 유래하였는데 성실, 정의, 공의, 공정, 등의 뜻을 갖고 있다. 공의와 정의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는 길임을 알 수 있다.

* 성도는 공의와 정의를 따라 살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는 길이다.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이것이 성도가 갈 길이다.

 

라. 주님은 그를 따르는 이들과 함께 하신다.

10절,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 하나님은 주의 이름을 ‘아는’(야다) 자 즉 ‘알고지내는’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신다. 이들은 주님과 인격적으로 연합하고 결국 하나님을 의지한다. 그런데 ‘의지하다’(바타흐)는 ‘신뢰하다’와 ‘안전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하나님을 신뢰하고 맡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된다.

* 또한 주를 ‘찾는’(다라쉬)다는 말은 공의나 하나님의 법을 실행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에 전념하고 충실하게 실행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찾는 사람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신다.

* 그리고 주를 ‘아는’(야다, 분사)과 ‘찾는’(다라쉬, 분사)은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을 온전히 따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삶이 숨어계신 하나님 그러나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어울리는 삶이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주님과 연합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은총 아래 안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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