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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소수자는 정녕 ‘이웃’이 아닌가?두개의 경험을 통한 학습
홍주민  |  juminh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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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0월 05일 (목) 16:26:42
최종편집 : 2017년 10월 12일 (목) 05:07:08 [조회수 :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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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개신교 총회는 일종의 동성애자 낙인찍기와 더불어 그들의 이웃되려는 사람까지 낙인찍어 퇴출시키자는 결의대회였다. 진보교단이라고 자처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성적소수자들을 위한 목회를 연구하자는 연구제안도 기각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물론 이 주제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나라의 문화나 종교적 신앙과 대치되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겨울 우리는 촛불광장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의 물결을 보았다. 그들이 추위를 무릅쓰고 거리에 나선 것은 비단 박근혜라는 개인의 일탈뿐만이 아니었다. 지나온 독재와 권위주의의 사슬을 완전히 단(斷)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이유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에는 이런 나라는 나라도 아니라는 근본적인 자기부정위에 기초한다.

그런 가운데 한국개신교는 점차 존재지반의 심각한 균열을 감지하게 된다. 적폐세력의 동지였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교회나 자신들을 개신교 주류라고 자처하던 세력들이 더욱 그러하다. 이는 위기의식의 보편화로 이어졌고 이에 대한 출구를 다양한 주제로 찾게 된다. 교인들로 하여금 문제의 근원으로 집중하지 못하게 전선을 흐트러뜨리는 전략을 택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전략의 주제가 이슬람, 가톨릭, 세금, 동성애 등이다.

 

   
 

 

성적소수자 문제와 관련하여 요즈음 교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분이 임보라 목사이다. 나는 이분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사건이 있었다. 몇 년전 나는 시간강사신분으로 대전의 모 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디아코니아를 주제로 하여 학기절반이 흘러갔을 즈음, 어떤 학생이 면담을 신청한 적이 있다. 평소에 좀 다른 행동이 눈에 들어오는 친구였다. 질문도 많이 하고 쉬는 시간에는 복도에 나가서 누워있거나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불안감을 보이는 친구였다. 내게 그 친구는 자신이 성적 소수자라는 고백을 하면서 디아코니아 강의가 참 좋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장애관련 주제로 강의한 것에 대해 인상적이라고 말하면서 자신도 신앙인이지만 교회에 나가면 교회에서 자신을 이상하게 보고 배제를 당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임보라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만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성적 소수자를 전제없이 받아들여 그곳에 출석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한국교회의 성적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심한 것인가에 대해 처음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내게 또 하나의 성적소수자에 대한 경험이 있다. 독일에 교환프로그램으로 참여하여 통역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열흘의 일정 중 이틀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는데, 가서 묶게 된 곳이 남성 동성애자 부부의 집이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그 노회에 노회장으로 오래 시무하다가 얼마전 은퇴를 하신분이시다. 교회 사택에 살다가 아직도 교회옆에 머무시는데, 나는 얼마 안되는 시간동안 그 분과의 대화를 통해 독일교회와 사회의 성적소수자문제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았다. 처음에는 당황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내게는 소통과 학습의 기회였다. 이 분의 삶은 아주 ‘평범’하였고 어쩌면 ‘인간적’인 면이 넘쳐나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 지역의 주민들과의 거리낌없는 관계를 거리나 식당에서 여과없이 느낄 수 있었고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의 폭에 놀라웁기도 하였다.

일정 중에 한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내게 충격적인 사실하나가 머리를 강타했다. 히틀러가 국가사회주의 시절 희생을 강요한 것에 대한 죄책을 동판위에 새긴 글이었다. 나는 좀 더 이 문제에 접근하여 물어보았다. 동성애는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시대 배제정책의 희생물이었다. 1933년 국가사회주의, 일명 나찌가 권력을 잡기 전까지 베를린은 동성애자들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국가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건강한 민족만이 살아남는다는 우생학에 기반한 다윈주의에 입각한 아리안주의를 통해 아돌프 히틀러는 1935년부터 법적으로 동성애자를 법령을 통해 처벌한다. 1934년 일명 ‘청소’라는 조처이후에 게슈타포 비밀경찰이 조직되었고 동성애자 리스트가 작성되었다. 1936년 하인리히 힘러 나찌 수뇌는 동성애자에 대한 공식적인 선전포고를 한다. 1941년 히틀러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사형제도를 제정하고 비밀경찰들을 동원하여 색출하기 시작한다. 이미 그들에게는 ‘부적절한 생명’이라는 낙인이 1937년부터 찍혀있었다. 일종의 블랙리스트였다.

히틀러는 동성애자의 행동을 ‘퇴폐적인’ 행태라 규정하고 동성애자를 건강한 독일제국의 걸림돌 정도로 여겼다. 히틀러는 동성애자를 ‘국민의 적’으로 규정하여 집단수용소로 보내 가스실의 희생물로 만들었다. 히틀러 시대에만 10만명 이상의 남성들이 비밀경찰에 채포되어 동성애자 블랙리스트에 실렸고, 그 중 5만명 정도가 법적 심판을 받아 정신병원 시설에 감치되거나, 상당수는 감옥에 영치되었다. 동성애자는 나찌시절 집단 수용소에 10.000-15.000명정도 수용되어 그 중 53%가 생명을 잃었다고 추정한다. 당시 이들을 집단 수용소에 수감한 이유는 ‘재교육조처’차원이었다. 다시 치료를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한다.

1945년 이후 동독은 1968년 나찌시절 제정된 동성애관련 차별조항을 없애고, 1988년 이성애와 동성애의 동등성을 합법화한다. 1994년에야 비로소 통일독일은 형법조항에서 동성애관련 범죄조항을 완전히 삭제하게 된다. 2002년에는 독일의회에서 나찌 집권아래 희생되었던 동성애자 희생자들에 대한 잘못된 죄를 고백한다. 2008년 5월 ‘국가사회주의에 희생된 동성애자들을 위한 기념비’가 베를린에 세워졌다. 이스라엘의 텔 아비브에도 2014년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박해를 경고하는 기념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독일의 예를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오늘 종교개혁 500년을 맞는 한국개신교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디아코니아로의 전적인 회귀였다. 성서의 정신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본질을 되찾자는 개혁운동이었다. 여기에 이웃은 약자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한국개신교는 이러한 약자 리스트에서 ‘성적 소수자’를 제외하려는 우를 이번에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전적으로 잘못된 결정이다. 앞으로 신학교에서 약자의 문제에 깊이 개입하는 ‘디아코니아신학’이 개설될 수 있을까? 아니 그와 관련된 강의가 개설될 수 있을까?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 현실화되었다. 마치 히틀러시대에 반나찌전선에 저항하였던 이들이 새로운 신학운동을 일으켰던 당시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지 자문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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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 (122.35.176.192)
2017-10-07 03:07:53
동성애 문제는 현대문화의 추세입니다. 지금은 극렬하게 반대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풀릴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이 관습에 관한 것일 경우 그것은 문화의 변화에 따라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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