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긴 명절연휴는 처음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저도 긴 연휴가 반갑기만 합니다. 하지만 하루 일당을 받고 일을 하는 근로자들은 10일을 일 없이 지내야 한다며 걱정을 하였습니다. 미안하고 무안한 마음에 드러내놓고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주 화요일에는 가을 운동회가 있었습니다. 본교와 분교의 전교생 40여명과 가족들이 함께 본교 운동장에 모여서 운동회에 참여했습니다. 아침에 아이들이 먼저 선생님의 차를 타고 본교로 내려간 뒤 남편과 저는 못다 싼 김밥과 초밥을 싸고 설거지를 한 후 본교로 내려갔습니다. 운동회를 9시 30분에 시작한다고 하여 10시쯤 가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저와 남편이 10시가 되지 않아서 본교에 도착해보니 이미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하는 경기를 시작한 상태였습니다. 차에서 짐을 내리다 말고 저도 다급한 마음에 아이들에게 뛰어가서 경기에 참여했습니다.

   사실 저는 지난 2년 간 큰아이의 가을 운동회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남편만 혼자 운동회에 갔고 저는 점심시간에 잠시 들리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올 해는 큰아이와 작은아이 모두 초등학생이 되었고 저도 휴가를 내고 참여를 했습니다. 오후 3시까지 진행된 운동회는 거의 대부분의 경기가 부모님과 함께하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한 경기도 있었습니다. 운동회는 그야말로 마을의 잔치였습니다. 분위기를 보니 지난 2년간 아는 아이들도 별로 없는 본교에서 엄마 없이 운동회에 참여해야 했던 큰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작년 말 이직한 현재 직장은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니 앞으로는 운동회에 꼭 참여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학부모로서 처음 참여하는 운동회이다 보니 저는 아이들에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겠다는 결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계주 선수를 뽑을 때 학창시절 그다지 달리기도 잘 하지 못했으면서 벌떡 일어나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저 몸무게가 적게 나가니 다른 어머니들보다 빠르지는 못해도 민폐야 안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꼴찌를 해도 괜찮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기회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달리기를 싫어했습니다. ‘땅’하는 총소리에 한 번 놀라고 보면 이미 다른 아이들은 뛰고 있었던 어설펐던 달리기 실력으로는 꼴찌나 면하면 고마웠습니다.

   계주에서 두 번째 주자로 자리를 잡은 저는 첫 번째 주자가 열심히 달려와 건네준 바톤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바톤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얼른 바톤을 다시 주워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렸습니다. 세 번째 주자가 바톤을 받으려고 저를 쳐다보는 순간 저는 잔디에 슬라이딩을 하면서 누워서 바톤을 건네주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남편의 말로는 제가 아주 세게 넘어진 것으로 보였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결과는 제가 속한 팀이 계주에서 우승했습니다.

   제가 자리로 돌아가자 큰아이가 “엄마, 괜찮아요?”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습니다. 속으로는 다른 어머니들은 다들 잘 뛰는데 바톤도 떨어뜨리고 넘어지기까지 한 엄마로 인해 아이들이 부끄러워 할까봐 걱정이 좀 되었습니다. 계주가 끝나고 계주에 참여한 어머니들은 선물을 받아가라는 방송이 나오자 큰아이가 저보다 먼저 뛰어가서 선물을 받아왔습니다. 계주를 하면서 보여줄 수 있는 실수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바톤 떨어뜨리기와 넘어지기를 한 번에 보여준 엄마지만 두 아이는 별 말이 없었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운동회 날엔 항상 아버지 계주가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운동회는 단연 친정아버지가 계주에 참여한 운동회였습니다. 아버지는 빨간색 반바지를 입으셨고 (제 기억에 따르면) 구두를 신고 계셨습니다. 계주에 참여할 계획이 없었는데 참여를 하신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아버지는 계주 주자로 섰고 이전 주자의 바톤을 받아서 달리셨습니다. 마을에서 체력 좋다는 인정을 받으셨던 아버지는 잘 달리셨습니다. 그런데 거의 바톤을 다음 주자에게 건네줄 시점 즈음에 아버지는 미끄러져 넘어지셨습니다. 당시 운동장은 모래와 흙이었기에 다시 일어난 아버지의 무릎에서는 피가 났습니다. 달려온 다음 주자가 바톤을 가지고 떠난 후 아버지는 다리를 절룩이며 어머니와 제가 있는 자리로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함께 운동회에 참여한 친구들(아저씨들)과 이야기 하며 운동장이 왜 그리 미끄러운지 모르겠다고 웃으셨습니다. 당시 저는 미끄러져 넘어진 것도 부끄럽고 무릎도 아프실 텐데 아버지가 왜 그렇게 웃고 계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올 해 제가 계주에서 미끄러져 넘어져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수 없고, 아이들을 위해서 학부모로서 달린 것이기에 넘어진 부끄러움도 피가 나서 아픈 무릎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기려고 한 경기가 아니고 아이들을 위해 뛰기로 마음먹은 경기이기에 ‘내 자녀의 축제(운동회)에 참여했다.’는 목표는 이미 성취된 것이었습니다.

   넘어지는 순간에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다시 일어나서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넘어져서 우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더더욱 상황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서로 다른 모습이겠지만 우리의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위해 인생의 어딘가에서 넘어지고 다쳤지만 다시 일어섰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부모님의 넘어짐을 딛고 자라왔습니다. 추석명절입니다. 이 명절에는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 넘어짐을 기쁨으로 여긴 부모님의 노고를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가 부모님을 위해 기쁘게 넘어질 수 있기를 기도해봅니다. 칼럼을 읽는 모든 분들의 가정에 웃음과 배려가 넘치는 한가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