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 > 김학현의 삶
값을 매길 수 없는 행복의 길, 여기 있습니다[안면도 뒤안길] 바위에 붙은 소나무가 질긴 생명력을 주문합니다
김학현  |  nazunja@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7년 10월 02일 (월) 11:46:32
최종편집 : 2017년 10월 02일 (월) 11:56:42 [조회수 : 20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삼봉의 바닷가 쪽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특히 붉은 색의 바위가 멋집니다. 바위 위의 소나무 두 그루는 환상적이고요
   
▲ 곰솔 숲길에 다소곳이 안개가 내려 앉았습니다. 사진으로는 희미합니다. 마치 선녀가 미처 허리춤을 못 여민 모습입니다.

 

(이전 기사 : 마술을 부리는 길, 인생을 가르치는 길)

아직 채 안개가 걷히지 않은 노을길(태안의 둘레길 중 해변길 5코스로 백사장항에서 꽃지해수욕장까지 12km)의 숲길은 한낮보다는 이른 아침이 운치가 있습니다. 아스라이 잦아들지 못하고 공중에 부양하고 있는 안개는 마치 하늘나라 선녀들이 미처 허리춤을 못 여미고 하늘을 나는 것 같습니다.

금세 치마를 잃어버릴 때가 있거든요. 그네들의 허리춤에서 치마가 흘러내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숲길이 맑아지죠. 흐느적거리다가 마침 불어오는 바람과 만나면 너울너울 춤사위를 펼칩니다. 이쪽으로 몰려갔나 싶다가 다시 저쪽에서 무리지어 덩실거립니다.

그러다 바람이 스쳐지나가고 나면 이내 다소곳한 선녀의 자태로 내 앞길을 인도합니다. 이제 이르렀나 싶으면 다시 저쪽에 있습니다. 술래잡기, 맞아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미증유의 선녀와 술래잡기를 하는 모양새입니다. 아침 산책에서 만나는 안개를 ‘부옇다’고만 표현하기에는 너무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감사하며 걷는 길, 안개는 친구가 되고

또 어떤 때는 안개가 아닙니다. 내와 는개로 변신하기도 합니다. 어느 집 담장을 넘어왔는지 비릿한 냄새가 되었다가 앞을 가리는 매몰찬 는개로 변하기도 합니다. 이걸 누가 만들었을까요. 이건 얼마짜리일까요.

한국인들은 외국 여행을 하다가도 어떤 건물이나 보물을 만나면 얼마짜리냐고 묻는다는데.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답니다. 태국의 황금사원에서 얼마만큼의 금이 들어갔냐고, 진짜 금이냐고. 하하하. 값을 매길 수 없는 무가보의 길을 오늘도 한 푼 들이지 않고 걷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른 아침 바지런한 어부는 낚싯줄을 바다에 드리고 있습니다. 곰솔 사이로 빛을 발하는 배 한척이 눈에 들어옵니다.

 

내 속에서는 조물주를 향한 감사가 치솟습니다. 내 마음은 행복 지수가 치솟습니다. 내 발걸음은 날 듯이 가볍습니다. 안개와 조우하며 상념에 빠질 때 벌써 바지런한 어부는 낚싯줄을 바다에 드리고 있습니다. 곰솔 사이로 빛을 발하는 배 한척이 내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은 주꾸미가 잡히려나, 망둥이를 잡아볼까, 갑오징어는 아닐까, 어부의 마음도 이렇게 설레겠지요. 내 마음도 덩달아 어부의 마음과 오버랩 됩니다. 이 길을 벗어나면 또 어떤 신천지가 나를 반길까, 날마다 이런 설렘이 내 가슴을 두드린답니다. 같은 길인데 갈 때마다 같은 모습이 아닙니다.

백사장해수욕장을 다 지나고 나면 올라갈 것인지 내려갈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작은 봉우리 하나가 버티고 있거든요. 이 봉우리를 지나지 않고 삼봉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동산 길을 택할 것인지 바닷길을 택할 것인지 취사선택하는 시간이 반드시 옵니다.

노을길의 매력 중 하나는 바로 이 선택에 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장담하건데, 어떤 길을 선택했더라도 후회는 안 합니다. 인생길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어느 방향으로 들든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면 좋겠습니다. 노을길은 그렇거든요.

계단을 오릅니다. ‘태안 해변길 안내도’가 가지런히 서서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합니다. 처음에는 이 앞에 서서 그 인사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세밀히 살폈죠. 여러 번 가니까 지금은 본숭만숭 그냥 지나쳐 올라갑니다. 이 안내판은 곳곳에 있습니다. 세밀하기도 하고 친절하기도 하게.

가로막는 봉우리는 타고 넘으면 되고

   
▲ 백사장해수욕장과 삼봉해수욕장 중간에 있는 봉우리 정상의 전망대입니다. 이곳에서는 백사장항의 대하랑꽃게랑다리까지 조망할 수 있습니다.
   
▲ 삼봉 앞의 섬들을 안내하는 표지판입니다. 그냥 지나치면 보이지 않는 작은 섬들인데 이곳에서 자세히 안내해 주고 있군요. 삼봉은 높이 22m, 20m, 18m의 세 봉우리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것도 밝혀 줍니다.

 

백사장해수욕장과 삼봉을 가로막은 이 작은 봉우리를 오르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가쁜 숨을 몇 번 몰아쉬면 가능합니다. 이른 운동을 하는 이들을 만나 “안녕하세요!?” 인사도 합니다. 인사를 잘 받아주는 이들도 많지만, 어떤 사람은 아는 사람인가 싶어 그런지 멀뚱히 쳐다보고 가는 이도 있습니다.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인사를 함께 하든 안 하든, 내 아침 노을길 걷기는 항상 안녕하니까요. 작은 봉우리 꼭대기에는 백사장해수욕장을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백사장해수욕장을 향해 한 컷 날립니다. 의자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십니다. 땀이 식을 만하면 이내 일어납니다.

이제는 내리막길입니다. 삼봉에서 백사장해수욕장 쪽으로 간다면 이 길이 오르막이겠지요. 그러니까 오르막과 내리막이 방향 차이인 겁니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 어느 쪽에서 가느냐, 어떤 생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거죠. 오르막인 게 때론 내리막이고, 내리막인 게 때로 오르막이라는, 기가 막힌 진리를 길이 가르쳐 줍니다.

봉우리를 내려가면 삼봉이 반깁니다. 세 개의 봉우리가 있어 삼봉이죠. 방금 내려간 봉우리는 바닷길로도 돌아갈 수 있습니다. 단 물이 빠졌을 때에 한해서 말입니다. 바닷길도 비경입니다. 할아버지 상 같기도 하고, 원숭이 같기도 하고,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외로운 바위 하나가 서 있는데 이름이 없어 내가 ‘같기도 바위’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바위의 형상은 무언가 머리가 우뚝 솟은 것 같은데 방향에 따라, 앞을 보느냐 뒤를 보느냐 옆을 보느냐에 따라 여러 형상으로 보입니다. ‘같기도 바위’ 어때요? 바닷길로 ‘같기도 바위’를 끼고 돌면 앞에 다시 봉우리들이 보입니다. 이게 바로 삼봉입니다.

봉우리와 삼봉 사이는 바다와 맞닿은 차량이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길이 있습니다. 삼봉 쪽으로 주차된 차들이 빼곡하군요. 차량들을 비집고 가는 게 싫어 바닷길로 걸어 삼봉까지 갑니다. 삼봉은 주차장으로 육지와 분리되어 있는 외로운 바위군입니다.

규모도 작은 봉우리 셋이 가지런히 키 재기를 하고 서 있습니다. 바닷길로 가면 붉은색 물감을 뒤집어쓰고 있는 삼각형 바위가 일품입니다. 분명히 바위인데 그 위로 소나무 두 송이가 그림처럼 붙어있습니다. 어떻게 수분을 흡수하고 저리도 낭랑하게 서 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생명력의 신비가 여기 있습니다. 붉은 바위에 붙은 소나무 두 구루가 ‘살고자 하면 산다’고 외치는 것 같습니다. 옆으로 누운 바위에도 이끼류의 생명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물론 그 바위에도 소나무는 여지없이 위태롭게 붙어 생명을 부지하고 있고요.

조금만 힘들어도 엄살을 부리던 삶이 부끄럽습니다. 감사로 시작한 오늘의 걷기는 소나무가 가르쳐 주는 신비한 생명력 앞에서 오래 머뭅니다. 아자, 아자! 오늘도 그 생명력으로 견디자, 다짐합니다. 그대의 삶도 이리 질긴 생명력이기를...

   
▲ 백사장해수욕장에서 삼봉해수욕장으로 가려면 올라야 하는 계단입니다. 오르막이지만 삼봉에서 오려면 내리막길이겠지요.

 

[안면도 뒤안길]은 김학현 목사가 안면도에서 목회하면서 걷고, 만나고, 생각하고, 사진 찍고, 글 지으면서 들려주는 연작 인생 이야기입니다. 안면도의 진면목을 담으려고 애쓸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김학현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5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1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24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