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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문재와 50년만의 해후, 행복합니다[안면도 뒤안길] 노을길에서 만난 나문재 그리고 낚시꾼들
김학현  |  nazun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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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9월 27일 (수) 06:45:28
최종편집 : 2017년 09월 27일 (수) 18:59:11 [조회수 : 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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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사장항의 나문재 밭입니다. 참 오랜만에 봅니다. 너무 감격했습니다. 저만치로 대하랑꽃게랑다리가 보입니다.
   
▲ 나문재, 함초랑 헛갈릴 수도 있습니다. 조금 다르죠.

 

(이전 글 : 지는 인생, 뜨는 인생? '그런 거 없습니다)

길이 있습니다. 태안에는 솔향기길, 해변길, 태배길, 안면송길이 있습니다. 길마다 중간 지점들을 구간별로 나눠 바라길, 소원길, 솔모랫길, 노을길, 샛별길 등으로 부릅니다. 모두 아름다운 이름들입니다. 태안군이 아름다운 비경을 감상하며 걸으라고 만든 이 길은 전체 길이가 170.3km입니다.

솔향기길은 만대항에서 냉천골 산림공원까지 51.4km입니다. 해변길은 학암포 탐방지원센터에서 안면도 영목항까지 97km입니다. 해변길 중간에 태배길이 있습니다. 태배전망대에서 의왕해수욕장을 한 바퀴 도는 길로 6.4km입니다. 안면송길 역시 한 바퀴 도는 길로 안면읍사무소에서 출발해 안면도자연휴양림을 거쳐 버스터미널까지 오는 15.5km의 길입니다.

저는 오늘도 길에 서 있습니다. 길을 걷습니다. 새벽에 노을길을 걷습니다. 노을길은 해변길의 중간 지점으로 안면도의 백사장항에서 꽃지해수욕장까지입니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길입니다. 같은 길을 가도 갈 때마다 다른 일이 일어나는 게 신기합니다. 그냥 걸으면 그 길이 그 길입니다. 쉬엄쉬엄 걸으면 그 길이 절대로 그 길이 아닙니다. 그래서 늘 기대가 됩니다.

나문재를 아시나요?

   
▲ 어릴 때 나물로 먹던 나문재와 50년만의 해후는 저를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 나문재는 어린 순을 따서 고추장에 고물고물 버무려 먹습니다. 참 맛있죠. 가을인 지금도 이리 어리다는 게 신기합니다.

 

대하랑꽃게랑다리를 건너 백사장해수욕장으로 들어서는데 바닷가가 온통 빨갛습니다. 어? 혹시? 제 머리를 갑자기 스치고 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혹시 나문재? 왜 아니에요. 나문재였습니다. 어렸을 때 추억이 마구 떠올랐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이 나문재나물을 얼마나 많이 먹었게요.

나문재는 바닷가 특히 갯벌에 사는 한해살이 염생식물입니다. 나문재와 함초를 헛갈리는 사람이 있는데 비슷하기 때문에 오는 오류입니다. 둘 다 명아주과라는 것은 같지만 나문재속과 퉁퉁마디속으로 갈립니다. 함초는 퉁퉁마디를 말합니다.

봄에 막 새 순이 피어오르면 나문재를 따다 고추장에 조물조물 무쳐 먹었죠. 참 많이도 먹었는데.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옛날 먹던 음식이 눈에 띄면 전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혹 독자 중에 어머니 살아계신 분은 살아계실 때 잘 하시기 바랍니다.

돌아가시면 생각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잘 해드리지 못한 일이 말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나문재를 만나는 순간 또 박완서 선생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생각나는 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래요. 어머니, 박완서 작가... 나문재가 많은 이들을 살려내네요.
예전에 이 소설을 읽고 실망했었거든요. 싱아 이야기가 아니라서. 하지만 제목만은 잊을 수 없었죠. 그게 지금 막 생각난 거예요. 저의 추억 속에서 잊히고 있는 것들이 싱아, 나문재, 삘기 등이거든요. 나문재를 보는 순간 돌아가신 분들이 살아 제 곁으로 옵니다.

정말로 지천이었습니다. 산에 올라가면 싱아가 지천, 강변으로 가면 삘기가 지천, 바다로 나아가면 나문재가 지천. 그게 다 간식거리, 먹거리였거든요. 하지만 고등학교 입학하고 고향 강화도를 떠난 이후 한 번도 이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진갑이 되어 만난 나문재가 어릴 때 매콤 짭짜롬 하던 나문재나물의 추억으로 확 살아날 수밖에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는지 모르겠다는 박완서의 투덜거림 섞인 책 제목에 절대 공감하며 살아 온 지 몇 해만인가요. 나문재도 삘기도 누가 다 먹었기에 이리 눈에 띄지 않았던 걸까요. 그러다 오늘 확 제 눈앞에 나문재가 나타난 거예요. 그것도 꽤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었습니다.

속으로 '이 귀한 게, 이 귀한 게' 하면서 사진에 담았습니다. 물론 이는 제 경우만일 수도 있습니다. 나문재가 그리 귀한 게 아니거든요. 제가 사는 공간이 나문재와 거리를 둔 공간이었던 것일 겁니다. 어쨌든, 아무튼, 하여간, 좌우간 나문재와의 해우는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사람숫자만큼 주꾸미가 있을까?

   
▲ 백사장항입니다. 이곳에서 노을길이 시작됩니다. 상가, 숙박시설, 수산물 판매점 등이 있습니다.
   
▲ 백사장항의 너른 마당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고 일찍 주꾸미 낚시를 합니다.

 

이 길을 걸으며 얼마나 더 많은 즐거움에 빠지게 될까요? 생각만 해도 기운이 팍팍 솟습니다. 건강해지는 엔도르핀이 마구 솟구칩니다. 나문재와 50년만의 해후가 낳은 행복을 뒤로 하고 백사장해수욕장 쪽으로 걷습니다. 평일에는 없던 사람들이 바닷가로 줄을 지어 서서 무엇을 하네요.

다가가니 낚시꾼들이군요. 아니 이 이른 시간에 이리 많은 낚시꾼들이 무얼 잡는지 참 궁금해졌습니다. 그들의 바캉 안을 들려다 봤지만 물고기는 없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아저씨에게 곧 질문했죠. 제가 궁금한 거하고 얌체 짓하는 거 하고는 못 참거든요. 하하하

"무얼 잡으세요?"
"주꾸미 잡아요."
"주꾸미는 봄이 제철 아닌가요? 낙지가 가을에 잡는 거구?"
"요새 한창 주꾸미가 잘 잡힐 때예요."
"...."

어라? 본토인도 모르는 걸 서울 사람이 다 아네, 생각했습니다. 대화 중 그는 서울에서 와서 하루를 야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랬군요. 이미 휴가철이 지나서 평일에는 없던 텐트가 오늘따라 백사장항 너른 터로 가득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대하랑꽃게랑다리 상류 쪽으로도 하류 쪽으로도 낚시꾼들의 늘어섬이 참으로 장관입니다. 백사장해수욕장 쪽으로는 삼봉해수욕장까지 해안가마다 사람들로 빼곡합니다. 좀 뻥 튀겨서 안면도 인구만큼은 되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안면도 인구는 고작해야 1만2000명가량입니다.
 

   
▲ 주꾸미 낚시를 하는 이들이 바다 물가로 줄을 섰습니다.
   
▲ 주꾸미 낚시꾼은 주말이면 그 인원이 늘어납니다.

 

이 많은 사람이 주꾸미를 한 마리씩이라도 잡을 수 있을까. 이른 시간이라서 그렇긴 하지만 빈 바캉을 보며 조바심이 났습니다. 모든 낚시꾼들의 조황이 좋기를 바랐습니다. 안면도 사람의 억누를 수 없는 사명감이죠. 안면도 와서 한 마리도 못 잡았다고 다음에 안 오면 어떡해요.

오늘은 길을 걸으며 차이는(?) 게 낚시꾼입니다. 야영을 하고 낚시를 하는 이들도 많지만 막 도착한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작은 보트(피싱 카약)를 타고 좀 더 멀리 나가 좋은 조황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눈에 띕니다.

막 출항 준비 중인 분에게 카약 값을 물었더니 100만 원 주었다더군요. 인터넷에는 더 싸게도 살 수 있군요. 종류와 재질이 다 다르겠죠. 하나 준비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이 분이 좋은 장비까지 동원해 출조에 나섰으니 조황에 만족했으면 좋겠습니다.

길 가다 만난 횡재, 나문재였습니다. 나문재와의 만남이 가져다 준 설렘이 글을 짓는 지금도 가시지 않는군요. 그리고 또 기대하게 만듭니다. 다시 가는 노을길에서는 어떤 것들과 만날까요. 독자들께서도 저와 함께 설렘으로 기다려 보시죠.
 

[안면도 뒤안길]은 김학현 목사가 안면도에서 목회하면서 걷고, 만나고, 생각하고, 사진 찍고, 글 지으면서 들려주는 연작 인생 이야기입니다. 안면도의 진면목을 담으려고 애쓸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일반 매체에도 실리기에 신앙면이 덜한 점을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 어느 주꾸미 낚시꾼이 낚시를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피싱 카약을 타고 해변과는 떨어진 곳에서 낚시를 합니다.

   
▲ 낚싯배가 시원스레 대하랑꽃게랑다리 밑으로 미끄러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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