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 웨슬리 표준 설교
[웨슬리표준설교] 잠자는 자여 일어나라
김동환  |  drdonghwan1@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7년 09월 02일 (토) 01:21:57
최종편집 : 2017년 09월 08일 (금) 03:57:21 [조회수 : 74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김동환 박사의 ‘풀어쓴 웨슬리 표준설교 44편’

누구나 알아야 할 구원의 핵심을 다룬 설교, ‘웨슬리표준설교’

누구나 쉽게 읽고 응용하도록 풀어 쓴 설교, ‘풀어쓴 웨슬리표준설교’

 


 

9월에 함께 읽을 설교

제 목: 잠자는 자여 일어나라

원문제목: Awake, Thou That Sleepest

 

성경본문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엡 5:14)

 

설교이해를 위한 가이드

존 웨슬리에겐 찰스라는 동생이 있었습니다. 찰스는 형 존과 같이 성공회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예술적인 재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수많은 찬송시를 지어 많은 심령들을 깨웠는데 이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찬송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찰스도 형 존 만큼은 아니지만 때때로 설교를 했습니다. 이 설교는 그 중의 하나인데, 찰스가 1742년 4월 4일에 옥스퍼드 대학 교회였던 성 메어리 교회에서 행한 설교입니다.

이 설교의 주제는 제목처럼 영혼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데 초점이 모아져 있습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마음에 불편함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설교자들이 꺼려하는 주제입니다. 그러나 존과 찰스 형제는 ‘회개야말로 하늘나라에 이르는 현관’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 인기 없는 설교주제를 언제 어디서든지 선포했습니다. 이 설교의 대단원에 나타나는 연속적인 도전적 질문들은 청중들로 하여금 ‘지금 여기에서의 회개’를 촉구하는 가장 준엄하면서도 뛰어난 문장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질문들은 당시 교만에 가득 찬 옥스퍼드 지식인 청중들에게 회개에 이르게 하는 복음의 메시지가 아니라 불편함을 야기하는 큰 짐으로 여겨졌습니다. 오히려 이 설교는 옥스퍼드가 아닌 곳에서 복음을 사모하던 이들로부터 크게 환영 받았습니다.

   
 

 

풀어 쓴 설교

 

서 론

인간은 잠든 존재입니다. 인간의 원래 상태가 깊은 잠에 빠져 든 상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원죄’라고도 부릅니다. 영혼이 잠들어 있는 이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무감각한 것이 특징입니다. 잠자는 이가 자신이 잠든 것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이런 사람은 심각한 질병에 걸려 있으면서도 오히려 온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의 족쇄로 매여 있어 시시각각 죽음의 골짜기로 향하고 있음에도 자신은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억센 마귀가 자신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데도 평안하다고 말합니다. 심판의 불이 자신 앞에서 타고 있어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영혼은 문둥병에 걸려 하나님 형상을 상실했고 날마다 죽어가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고 그저 현실의 삶에 만족하고 자신의 질병과 그 치료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는 영혼의 잠에 취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런 사람은 깨우면 깨어날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이보다 더욱 깊은 잠에 빠져 깨우기조차 어려운 이도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매우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런 사람은 은총의 수단을 열심히 사용하며 악을 피하고 할 수 있는 선을 행하는 ‘경건의 모양’이 두드러져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들에게 의와 공로가 되어 깊은 잠에서 깨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에 취해 있느라 참된 경건의 능력을 추구할 의지조차 갖지 않기에 더욱 위험한 상태라 볼 수 있습니다.

 

[설교 이해를 위한 팁] ‘다 안다 병’

우리의 믿음에 치명적인 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 안다’라는 병입니다. 대개 교회생활의 연조가 있는 분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병인데, 처음 믿음생활을 할 때의 생동감이 점점 사라지고 교회생활이 습관화 되는 병입니다. 교회생활이 오래되다 보면 하나님과 그 나라에 대한 ‘정보’는 많이 갖게 되지만 그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집니다. 이 병이 깊어지면 하나님에 대한 영적 지각 능력(히 5:14)이 상실되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하나님을 볼 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생명의 말씀을 손으로 만질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이런 일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갖고 있기에 스스로를 ‘다 아는 자’로 여기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에 바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자는 자인지 심각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잠들어 있는가? 아니면 깨어 있는가?

 

 

잠자는 자

우리는 스스로 잠든 자인가 깨어있는 자인가 질문해야 합니다. 다음 질문을 하며 우리 스스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티끌만한 죄악도 차마 보지 아니하시는 정결하신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설 준비가 되었습니까? (합 1:13)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약속된 유업(상속분)을 받을만한 합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골 1:12)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믿음을 지키고 있습니까?(딤후 4:7)

하나님의 형상(의와 거룩함)을 온전히 회복했습니까?

옛사람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었습니까?

심령의 등잔에 기름을 준비했습니까?

마음과 생명과 생각과 힘을 다해 주님 되신 하나님을 사랑합니까?(막 12:30)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소유하고 있습니까?(벧후 1:4)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계심을 확신하고 있습니까?(고후3:5)

자신이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이 자신 안에 계심을 알고 있습니까?(고전 3:16)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행 19:2)

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불행히도 우리는 아직 잠든 자입니다. 경건의 모습을 갖춘 그리스도인일 수는 있어도 온전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저주의 자식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질문들이 죽은 자를 일으키시는 음성이 되고 단단한 바위를 깨뜨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망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증거하는 예언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소리와 진동이 있고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지는(겔 37:7)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 때에 생기가 사방에서 와서 죽은 자들을 살리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겔 37:9). 마음을 닫지 마십시오. 성령을 막지 마십시오. 그 분은 우리가 잠에 빠져 있는 자신을 보게 할 것입니다.

 

깨어나라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이 잠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주는 거짓 평강과 기쁨에 취해 잠들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쉴 때까지 참된 평강이란 없습니다. 이 세상은 머물 곳도 쉴 곳도 아닙니다. 이 세상이 주는 행복은 하나의 사라질 피조물일 뿐입니다. 죽음의 잠에 빠져 영원한 죽음의 운명에 처한 자신의 가련한 모습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죽음의 잠에 취해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의 심연에 빠져드는 자신의 모습을 보십시오. 비록 이 일이 참으로 두렵고 비참한 일일지라도 진실로 바라보십시오 회피하지 말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십시오. 이런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하늘나라가 가깝기 때문입니다.

깊은 잠에 빠진 사람은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자신의 의에 취해 깊은 잠에 빠진 사실조차도 알지 못하는 가련한 자입니다. 다가오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십시오. 옥에 갇힌 사형수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두운 지하 감옥에 이중의 쇠사슬에 결박되어 있고 사형집행의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습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 무서운 상황에서도 영혼은 너무 깊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깊은 낭떠러지 영원한 멸망의 어구에서 잠에 취해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빛을 비추시는 이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죽음의 감옥에 생명의 빛을 비추시는 은혜로우신 분의 손길을 느끼십시오. 빛으로 오셔서 영혼의 옆구리를 쳐 깨우시는 그 음성을 들으십시오. “급히 일어나라…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겉옷을 입고 따라오라”(행 12:7-8) 머뭇거릴 틈이 없습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참된 의이신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영혼을 깨우는 은총의 빛

잠자고 있는 영혼이 깨어나는 일은 영혼의 도덕적 삶이나 선행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늘로부터 비취는 빛입니다. 이 빛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즉, 이 빛은 죄의 용서이며, 또한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며 완성하도록 이끄는 안내자입니다. 우리 영혼은 이 빛으로 인해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터가 굳어지며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으로 채워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엡 3:17-19).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빛은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입니다. 우리 영혼에 빛을 비추셨다는 의미는 다름 아닌 성령을 우리에게 부으신 하나님의 은총의 섭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이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즉 아직 잠에 빠져 있을 때, 성령을 부으셔서 지난 죄악을 고치시고 또한 다시는 범죄하지 않고 죄에 승리하는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인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빛을 통해 잠자고 있는 영혼에게 행하시는 일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잠을 자는 영혼을 깨게 합니다. 그는 이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됩니다. 또한 성령과 그 능력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행10:38).

그는 지난 죄악을 고침 받았을 뿐 아니라 다시는 범죄하지 않고 죄에 승리하는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즉 그는 이제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가 되었고(갈 6:15),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자가 되었습니다(빌 2:12).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게 됩니다.(골 1:27)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게 됩니다(눅 17:21). 그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화평과 기쁨을 누립니다(롬 14:17). 여기서 말하는 평안은 사람의 지각을 넘어선 평안(빌 4:7)이며, 이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벧전 1:8)입니다. 한 마디로 그는 ‘그 어디나 하늘나라’를 누리게 됩니다.(롬 14:17 참조)

하나님의 빛의 인도함을 받는 영혼은 이제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가 되었고(갈 6:15),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자가 되었습니다.(빌 2:12) 이 일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바의 성취요 율법의 완성이며(사 44:3, 겔 36:27) 지금도 우리 가운데 지속되는 일입니다.

 

믿음을 통해 비취는 은총의 빛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총의 빛을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잠든 영혼을 깨우는 일은 우리의 고도의 도덕적 삶이나 선행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로는 우리의 잠자는 영혼을 깨울 수 없습니다. 영혼을 잠으로부터 깨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빛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은총의 빛을 우리가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가난한 심령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가난한 심령만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영혼, 곧 심령이 가난한 자(마 5:2)에게는 깨어남의 은총이 주어집니다. 이 심령은 아버지의 용서함을 받기를 간절히 구하는 탕자의 심령(눅 15:17)이요, 하나님의 의를 간절히 사모하는 심령입니다. 이런 심령에게 하나님은 한 없는 은총을 베푸시는 것입니다(엡 2:8-9).

 

[설교 이해를 위한 팁] ‘성령사역은 곧 구원사역’

웨슬리는 ‘이성적이고 신앙적인 사람들을 향한 호소’라는 글을 통해 성령의 네 가지 사역에 대해 설명합니다. 첫째는 잠자고 있는 죄인들의 심령에 빛을 비추시는 사역이고 둘째는 죄사함 받은 영혼 안에 새로운 생명을 탄생케 하는 신생의 사역이고 셋째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확신하게 하는 확증의 사역이며 마지막 넷째는 거듭난 영혼이 성숙한 영혼으로 자라게 돕는 인도하시고 가르치시는 사역입니다. 이 모든 사역들을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 안에 일으키시는 구원 사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성령 사역은 곧 ‘구원사역’인 것입니다.

깨어나는 일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지금 깨어나야 할 때입니다. 영원한 죽음의 잠에서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엡 5:14). 믿음으로 받으십시오. 믿음으로 은총의 빛을 받아들이며 믿음으로 이 빛에 머무십시오.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오늘 이 순간 마음을 완고히 하지 말고 가난하게 하십시오(히 4:7). 탕자가 가졌던 간절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십시오. 부들부들 떠는 간수처럼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겠는가”고 (행 16:30) 부르짖어야 합니다. 세상의 것으로부터 주어지는 거짓된 행복과 부요함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십시오. 성령이 임하실 것입니다. 영혼이 깊은 잠에서 깨어날 것입니다. 죄의 용서함이 임하고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결 론

하나님의 은총의 빛은 지혜롭고 총명하다고 하는 자들에게 숨겨져 있고, 때로는 이들에게 조롱 받고 비난 받기도 합니다. 이 빛을 발견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오히려 희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에 치중하고 경건의 능력을 무시하는 자, 참 믿음에는 무관심하고 종교적 행위에만 열심인 자에게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비추시는 빛을 찾아야 합니다. 마음을 가난하게 하여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계 2:5). 복음의 진리와 단순성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긍휼의 빛을 구하십시오(합 3:2). 그리하여 잠에서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잠에서 깨어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십시오.

 

 

웨슬리표준설교를 기초로 한 2018년 목회디자인 세미나

일시: 9월 18일 오전 10시-오후 3시

장소: 동부연회

참가신청: 010-28871968(최형만 목사)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6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1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24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