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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이진경  |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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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8월 05일 (토) 00:04:37 [조회수 : 4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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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휴가의 계절이다. 장마를 지난 뜨거운 태양에 방학까지 더하여 휴가의 물결은 한반도 자락 사방으로 사람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거의 모든 대한민국의 가족은 어떻게라도 짬을 내어 단 하루라도 함께 휴가를 즐기고자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휴가는 조금 특별한 삶의 시간이다. 가끔씩 연중에 똑같은 길이로 연이어 쉬는 날들도 있지만 이 휴일들은 왠지 한 여름의 휴가와는 뭔가 다르다.

독일에서의 여름휴가 기간은 한국보다 훨씬 극단적인 느낌이었다. 거의 모든 나라가 멈춘 느낌이랄까? 휴가에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아예 포기해야 한다. 거의 모든 공무원들이 자리를 비우고 휴가를 즐기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그럴 정도니 일반 직업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말 그대로 거의 두 달은 나라가 멈춘 것과도 같다. 어쩌면 이 현상은 공과 사의 철저한 분리와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독일인들의 삶 속에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이 공과 사가 분명하게 구분된 삶이었다. 교수는 학문적인 일 이외에는 조교들이나 학생들에게 거의 금기에 가깝게 절대로 사적인 부탁을 하지 않는다. 언젠가 학위 공부를 하던 대학의 한 독일 교수님께서 이사를 하셨는데 학생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 적이 있었다. 많은 책을 나르고 정리하는 일이었다. 일이 끝나자 교수님은 정확하게 일당을 계산해서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셨다.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일당을? 금시초문이었고 심지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학교에서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업무가 끝나고 나서는 절대로 업무 관계로 전화를 걸거나 메일을 보낼 수 없다. 단순한 관습적 금기가 아니라 법적인 금지다. 그런 사회이니 철저한 사적 시간인 휴가에 공적인 일이 끼어들 자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처리해야 할 아무리 급한 공무가 있더라도 휴가철의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담당자가 휴가를 끝내고 돌아오기를 그저 기다리는 것. 사정이 이러니 독일의 휴가철에 내가 해야 할 일 역시 정해져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나 역시 철저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라가 멈췄으니 나도 멈춰야 한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독일인들은 꼭 여름휴가를 위해 사는 사람들 같이 보였다. 지역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가정의 삶도 여름휴가철 해외여행은 정례적인 연례행사였다.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가족은 돌아오자마자 내년 여름휴가를 위한 여행을 예약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쉼은 일을 잘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휴가의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휴가는 과거에 열심히 일한 것의 보상도 아니고, 미래에 열심히 일하기 위한 준비도 아니다. 휴가는 그 자체로 목적인 쉼이다. 이 쉼이 없다면 삶의 팽팽한 긴장은 반드시 끊어지고 말 것이다.

휴가를 뜻하는 영어의 vacation은 진공을 뜻하는 vacuum과 그 어원이 같다. 라틴어 어원의 뜻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비우다, 없애다, 벗어나다.’ 우리의 삶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이 진공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므로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창 2:3) 하나님께서 인간 이외에 유일하게 축복하시고 심지어 거룩하게까지 하신 것은 시간이었고, 이 시간은 다름 아닌 쉼의 시간이었다. 하나님이 쉬셨다는 뜻이 인간 역시 쉬어야 한다는 뜻이며, 더 나아가 쉼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쉼을 보장하게 하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그러니 휴가를 가벼이 여기지 말도록 하자. 삶의 진공을 가벼이 여기지 말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오직 그 한 가지만 하면서, 많은 일의 허망함을 깨닫는 이 거룩한 삶의 시간을 반드시 제대로 누리도록 하자.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눅 10: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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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 (221.167.226.172)
2017-08-06 15:09:01
휴가.

홈런.

방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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