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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적으로는 평등하나, 기능적으로는 위계적인?
백소영  |  christa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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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8월 02일 (수) 23:30:21 [조회수 : 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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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성에 따른 역할과 차이를 말하고 있는가요? 만약 있다면 어떤 것이 ‘성경적인 차이’인가요? 이를 현대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21세기 후기근대(late-modern)를 살아가는 전문가 여성들이 ‘걸크러쉬’를 일으키며 종횡무진 활동하는 이 시절에, 참으로 안타까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하나의 ‘기독교’적 주장이 존재하지 않듯이, ‘성경’이라고 하나의 주장만 담긴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적어도 기원전 2000년경부터 구전된 신앙고백부터 기원후 1~2세기까지의 수천 년의 역사가, 그리고 모두 하나님과 소통했으나 자신의 자리와 숙제가 달랐던 수많은 저자들의 입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홀로 살라고 계시를 내리셨지만, 호세아에게는 결혼하여 그 삶으로 메시지가 되라 하셨다.

도대체 각자가 신앙인 단독자로 받은 소명(calling)을 어찌 획일화 하랴. 드보라는 한 남자의 아내였으나 사사로서 공적 역할을 감당했으며, 훌다는 유대 공동체가 다 잊어버린 율법의 핵심을 왕과 서기관 앞에서 구구절절 풀어낼 만한 능력의 율법학자였다. 한나와 마리아는 자신의 아들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노래하며 개인사의 공적 의미를 되새겼던 여인들이다. 여성은커녕 평신도 남성들도 가까이 할 수 없었던 성막 입구까지 당당히 걸어가서 모세와 뭇 이스라엘에게 여성의 상속권을 주장했던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은 또 어떠한가! 모세도 처음 겪는 ‘당황스런’ 일이라서 즉답을 못하고 야훼께 아뢰었을 때, 신의 답이 어떠했던가? 여자들이 자기 본분도 모르고 설쳐대니 혼줄을 내주라고 하셨나? 천만의 말씀이다. 그녀들의 말이 옳다고, 그 말을 들으라고 명하셨다.

물론 성서에는 가부장제가 이상화하는 현숙한 여인에 대한 묘사나 칭찬도 가득하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은 근현대 사회의 핵가족 중심의 삶이 도래했을 때 개신교 가정담론을 이루는 중요한 본문이 되었다. 중세적 경건은 독신 수도자들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었고, 남자든 여자든 가장 이상적인 신자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금욕적 수행으로 살아가는 단독자라고 주장했다. 이 시절 그들이 즐겨 읽었을 본문은 뻔하지 않은가. 주를 위하여 단독자로 살아가는 소명 가득한 인물들이 강조되었을 거다. 그러나 행위가 아닌 믿음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종교개혁의 주장은 경건 수행으로서의 독신의 이상을 허물었다. ‘결혼을 소명’으로 인식하는 개신교도들에게는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여성의 역할을 가장 ‘성경적인 소명’이라고 강조하는 본문들이 즐겨 채택되었다.

그 후 지금까지 개신교 담론은 성역할의 칸막이화(compartmentalization)를 정당화했다. 남성의 역할은 공적인 세계에서 자기를 확장하는 것으로, 여성의 역할은 사적인 영역에서 내조의 삶을 사는 것으로 양분시켜왔다. 남편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죽음마저 불사하는 헌신적인 사랑을 받으며 ‘집안의 천사’로서의 소명을 다하라! 이것이 ‘여성의 본분’이라는 메시지는 16세기 유럽을 출발점으로 해서 21세기 한국의 교회 강단에서도 여전히 울려 퍼진다. 바로 낭만적 결혼과 결부된 ‘부드러운 가부장제’(soft patriarchy)의 핵심 메시지다.

‘부드러운 가부장제’는 ‘채찍’이 아닌 ‘사랑’으로 여성을 종속시킨다. 여성은 “훌륭한 남성”이 될 필요가 없으며 그것은 자연의,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동(루소의 주장)이라고 말이다. 개신교 가정 담론은 ‘부드러운 가부장제’의 기독교 버전이다. “하나님의 선물” “영혼의 친구” “돕는 배필” 쏟아지는 찬사와 더불어 여성의 자리를 ‘가정’이라고 설교했던 개신교 목회자들은 여성이 “구원에 있어서는 평등한 존재”이나,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기능’에 있어서는 “위계적”이라고 주장했다.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처럼, 남편은 가정의 머리이니 그에게 순종, 그게 어려우면 복종하라고 말이다.

하지만 질문 하나 해 보자. 어찌 가정의 머리가 남편인가? 가정도 하나의 작은 교회라면(그렇지 않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두 세 사람인데), 가정의 가장은 누구여야 할까? 가장 ‘성경적’인 가정은 그리스도를 가장으로 모신 형제자매들이 사랑으로 삶을 나눌 때 비로소 건설된다. 그 형제자매의 역할은 각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재능(달란트)에 따라 달라질 거다. 전업주부가 재능인 여성도 분명 있다. 그러나 그건 개인의 재능이지 모든 여성의 천직은 아니다. 태초부터 운명 지워진 여성의 소명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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