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는 길

“72년 나의 삶에

지나온 자서 일기를 묵상하며,
하나님이 주신 삶으로 고백하고 싶으나,
내가 선택해 온 삶 길...
프러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 ' 을
언제나 처럼 넋두리 하여 외우며
자축하여 지난다.
60살에 써 둔 유서를
수정하고 수정한 것을
오늘 다시 수정하며
죽음의 날을 두려움 떨치고,
기다리고 기다림의 마음으로......
그 날에,
과연 환송가를 부를 수 있을까?

침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도 침묵으로 기도를 한다.

아, 살아 온 날이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거웠구나.
감사하고, 안타깝고, 부끄럽고, 후회도 되고, 반성도 하고,
회개도 한다.
평범했던 나날이 나에게는 비범하기도 했구나.

그 날이 오면,
베토벤의 축배 교향곡을 환송가로 불러야 할텐데.......
요한 계시록 22장을 아멘으로 화답 하여야 할텐데.......
그리움과 기다림.
지금은,
촛불도 켜지 못한 채
출구를 모르는 터널을
아내와 아들과 함께 지나고 있다.

2017. 8. 1. “

평생 그리움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는

대학 선배이자 벗인 김 목사가  자신의 생일날에 띄운 글이다.

대학 일학년  때 일년 선배인  김 목사와 나는

한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시절  매일  새벽 4시가 되면 예외 없이 내 방문을 두드리며

개으른 나를 깨워  숲속 새벽 기도회로 인도했던 사람이 바로 김  선배였다.

그리고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  미안마 선교지에서

먼길 마다 않고  날아와 나와 케롤의 초졸한 결혼식 주례를 서 준 분도

김 목사였다.

친구(도반의 벗) 라는 단어는 내가 가장 가까우면서도 경외롭게 느껴지는 분들의

이름 앞에 붙여주는 성스러운 단어다.

나의 개인적인 구세주  예수 이름 앞에도 나는 친구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김 목사는  나의 그렇게 소중하고 귀한 친구 중 한명이다.  

김 목사와 나는 만날 때마다 심한 입씨름을 하며  다투곤 한다.

가까운 바닷가에서 며칠  보낸  케롤과 나의 신혼여행에도

김 목사 부부는  함께 동행했었다.  그 때에도 눈을 뜨면  내 방에 모여

갑론을박  논쟁으로  며칠  밤을 지새웠었다.

그리고나서  새벽이면 예외없이  우리 부부를 새벽기도와 성경공부로  인도했다.

오즉했으면 케롤이 인류 신혼여행 역사 상 유일 무이 한 사건일 거라며

기네스북에 등제해야 한다고 불평을 했었을까?

우리는 신앙적 신념 , 가치관,  철학 그리고 살아온 삶,

갈야할 길이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그가 낮이라면 나는 밤이고, 그가 바다라면 나는 산이며,

그가 하늘이라면 나는 땅일 것이다.

그런 다름에도  불구하는 우리는 아직껏,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는 연인같은 친구다.

며칠 전에   10월 중순경에 케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해서

10일 간 머룰거라는  소식을 김 목사에게  카카오 톡으로 전했다.

그는 당장 예정된 시베리아 가족 여행을 취소하고  ‘우리 부부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내내 동행, 안내하겠다.’ 는  멧세지를  보내왔다.

“ 그 간절한 마음만을 고맙게 받겠습니다. 제발 예정된 가족 여행을  즐기십시요.” 하는

나의 진정어린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그는 막무가였다..

사실 13년 만에 찾는 이번 한국방문은 나에겐 여행이 아니다.

평소에  그리워 하고 보고싶어 하는  인연들과의 만남에 그 목적이 있다.

여러차례 나의 딱한 사정을 털어 놓으며 가까스레

“ 단  한 시간을 만나도 만리장성을 쌓을 수 있습니다.” 는  말로 일단

휴전협정을 끝내고  10월 20일에  김 목사의  거처인  기림원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다투지 말아야지…… ?  ‘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로 시작되는

‘가지 않는 길’  은 청춘시절에  내 가슴을 뛰게 했던 시 중 하나이다.

그 시는 이렇게  길의 선택에 대한 아쉬움으로  끝난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공자가 말하는 從心의 나이인 70을  눈앞에 바라보고 있는  지금,

그 시에 대한 나의  감상은 젊은 시절과는 사뭇  다르다.

여전히 그 시를 읽을 때마다  프로스트 의 아름다운 詩心에

 가슴이 출렁거린다.

 그러나  ‘길’ 에 대한  이해는 그와는  다르다.

내 지난 인생에는 두 길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한 길 밖에 없었다.

내가 걸어온 길,  살아온 삶,  그게 나의 유일한 길이었고 삶이었다.

중국의  임제 선사는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에

" 이것이 저것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우주 속으로 사라졌다.

나의 구세주  친구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어 졌다." 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눈을 감았다.

그가 살아온 삶이 유일한 길이었고,  

그 삶 자체가 유일한 완성이었다는 의미가 나이겠는가?

.

몇달 전에 America  Leadership Conference 에 참석해서

미국인들과 원탁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토론을 마치고  몇 참가자들이 내 명함을 달라고 요청했었다.

그 때 나는 그들에게

“나는 명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내 얼굴이 살아있는 유일한  명함입니다.” 하고 웃었다.

그들도 의아한 눈초리로  내 얼굴을 쳐다보며  함께 웃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폭소했었다.

나에게는 유언은 없다.

내 얼굴이  내가 남기고 갈  얼굴이

유일한 유언일 것이다. .

08/01/20 17  아침 메모

버지니아 숲속에서  

해암 박평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