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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성 잃은 기독교를 향한 일갈[책 뒤안길] 정현천의 <포용의 힘>이 말하는 ‘살길’
김학현  |  nazun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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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7월 15일 (토) 07:20:48
최종편집 : 2017년 07월 15일 (토) 07:21:58 [조회수 :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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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포용의 힘> 표지

이 책은 <나는 왜 사라지고 있을까>(2011, 리더스북)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던 것을 다시 <포용의 힘>이란 이름으로 개정 출판한 것입니다. 저자 정현천은 개정판 서론에서 원래 자신이 책명을 <포용의 힘>으로 정했지만 당시는 ‘포용’보다는 ‘정의’가 요구되는 시기여서 ‘포용’은 시기상조라 판단했기 때문에 책명을 바꿔 출판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정의’보다는 ‘포용’이 화두가 되었다고 판단한 것인데, 개정판 서론의 이런 변명이 좀 거슬리긴 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보려는 얄팍한 의도는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좀 더 자극적으로 표현하면 책을 ‘팔아먹겠다는 상술논리’가 시대와 맞물린 것 아닌가 해서 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시대는 ‘화합과 합치’가 화두니까요.

박근혜 정부를 살던 우리네는 줄곧 ‘불통’을 불편해했습니다. 저자도 지적합니다. “정치권은 소통과 포용으로 위기를 헤쳐 나가는 지혜를 발휘하기는커녕, 갈등과 반목을 부추기는 모습에 국민들은 답답하기만 했다”고.

저자도 말하듯, 이제 국민은 새로운 정치를 선택하며 ‘소통과 포용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 조류에 영합하는 듯한 책 제목에 대하여 저자는 민망해합니다. 출판사의 설득 때문에 개정판을 냈다며, 개정판은 보다 더 ‘포용’에 충실했다고 말합니다.

책장을 넘기며 인기영합이라 여기며 불편했던 마음은 이내 사라졌습니다. 책 내용이 그야말로, ‘포용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저자의 의도로 꽉 차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서평을 쓰면서 더 이상 민망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제 생각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고 있어, 책을 읽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까지 했습니다.

포용성 잃은 기독교, 이 책을 만났으면

저자는 프랑스의 사상가 자크 아탈리의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을 인용하여,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망할 것이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라며, 생존과 번성이 다양성과 변화의 가능성을 확보하고 실천함으로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포용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지요.

예수께서도 당시 유대인들만이 선민이라 고집하며 교만의 늪을 헤매던 종교주의자들을 향하여 열린 마음을 주문했습니다. 독선과 아집, 불통과 교만은 한통속으로 예수 당시 유대 종교주의자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자신들만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자랑하던 유대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태복음 3장 9절)

‘유대인만’을 외쳤던 그들에게 예수는 ‘온 인류를 위하여’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제가 크리스천이어 그런지 저자의 ‘포용의 힘’이 예수의 정신과 닮아 더욱 마음에 꽂힙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포용은커녕 독단에 빠져 있는 일부 교계지도자들을 볼 때마나 역시 마음이 아픕니다. 예수 당시 유대 종교주의자들과 너무 닮아있으니까요.

저자 또한 성경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의 일꾼 비유’를 예로 들며, 예수의 포용력을 말합니다. 일찍 온 사람(유대인)도 늦게 온 사람(이방인)도 같은 품삯을 받는다는 내용인데, “늦게 믿게 된 것에 대해 따듯이 감싸주고 포용해주는 예수의 사랑이 더없이 감사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게 예수의 정신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반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한국의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 말입니다. 저자의 “적어도 진실한 종교인이라면 오늘날 자신들의 모습이 창시자의 원래 가르침에 부합하느냐는 질문을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는 충고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고립을 자초하고 폐쇄집단을 이루려는 현상에 대하여 일침을 가합니다. 지금은 득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폐망할 거라는 걸 책의 논리로 읽을 수 있습니다.

“(폐쇄적이 되는 이유가) 종교적인 이유, 문화적인 이유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특히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고 특권적인 혜택을 향유하는 계층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일입니다. 강남 아이들은 강남 아이들끼리 어울린다든지, 재벌이나 고관대작의 자식들은 더 좁은 폐쇄적인 사회 속에서만 어울리고 그들끼리만 혼인하는 식으로 말입니다.”(65쪽)

강남, 부자 그리고 그들의 대변자 일부 기독교 지도자... 훤히 앞이 보여 마음 아픕니다. 진정한 예수의 포용성으로 회귀하지 못한다면 한국 기독교의 갈 길은 뻔합니다.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그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살길은 협력과 포용뿐

저자는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로 ‘공룡과 개미’를 예로 듭니다. 공생이 뭔지 몰랐던 공룡은 멸망했지만, 나무와 공생하고 서로 협력하며 사는 개미는 살아남았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심지어 생물계도 포용하고 공생하는 개체가 살아남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세균과 진핵생물 사이의 건널 수 없는 틈을 이어주는 다리로 공생이 꼭 필요했고, 복잡성의 씨를 뿌리는 데 미토콘드리아의 연합이 꼭 필요했던 것입니다. 공생이 없었다면 미토콘드리아도 없었고, 미토콘드리아가 없었다면 복잡한 생명체는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며, 미토콘드리아의 연합이 없었다면 우리는 한갓 세균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41쪽)

저자는 나라와 정치의 흥망성쇠도 포용성의 여부에 달려 있음을 강조합니다. 로마의 번성은 패배자들까지 끌어안음으로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패한 장수를 처벌하지 않고, ‘로마연합’을 꾀하며 적에게서도 좋은 점은 모방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게 로마 흥왕의 원리라고 합니다.

저자는 칭기즈 칸, 유방, 세종대왕, 링컨과 오바마 등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게 포용력이라고 말합니다. ‘협치하느냐 못하느냐가 조직과 사회, 나라의 운명을 가른다’고 말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협치’를 강조합니다. 경쟁상대, 적, 특정 정파나 계급, 충성도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성공한 정치가들의 이런 면면을 문재인 정부가 벤치마킹했으면 좋겠습니다.

포용은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지 틀린 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기에 먼저 사실을 확인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자는 포용을 방해하는 요소로 타성, 선입견, 도그마(독단), 휴브리스(성공체험의 우상화), 서열 매기기, 동조화, 완벽주의를 들고 있습니다. 한편 포용을 위해서는 자아확장, 역지사지, 경청과 관찰, 여유와 기다림, 호기심과 회의, 능동성과 유연성, 재분류, 뒤섞기(하이브리드), 나를 포용하기 등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시시덕이는 재를 넘지만 새침데기는 골로 빠진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살길이 바로 시시덕이가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누구하고도 어울리는 포용력이야말로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시시덕이가 되어 주변과 끊임없이 소통한다면 누구든 살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포용의 힘> (정현천 지음 / 트로이목마 펴냄 / 2017. 6 / 296쪽 / 1만45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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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종 (58.XXX.XXX.23)
2017-07-20 00:19:19
폐쇄할 건 폐쇄하고, 포용할 건 포용하고.
이슬람 받아들일지?
IS 받아들일지?
불교 받아들일지?
사도신경이 이단 기준 아니라는 네오천지 받아들일지?
공산주의 받아들일지?
동성애 받아들일지?

예수께서 들이 엎을 건 엎으신 걸로 압니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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