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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와 해원(解冤)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후에 예물을 드리라
김홍섭  |  ihom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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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7월 12일 (수) 15:11:52
최종편집 : 2017년 07월 15일 (토) 03:31:07 [조회수 : 4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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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숙여사,윤이상 묘소앞

동백꽃은 아름답고 우리에게 정겨운 꽃이다. 반도 중남부 이남 어느 곳에도 어렵지 않게 동백나무를 보게 되며 특히 추운 겨울이 아직 끝나지 않은 계절에 일찍 붉게 열정을 태우는 동백은 추운 겨울에 대한 아쉬움과 따뜻한 봄을 향한 희망으로 우리 곁에 사랑을 받고 있다. 동백은 그 나무결의 희고 매끄러움에서 귀풍(貴風)과 잎새의 진한 녹색에서의 생명력 그리고 꽃의 진한 붉음에서의 열정과 깊은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동백은 무엇보다 꽃이 그 아름다움의 순간에 통째로 떨어져 또 긴 시간을 딩구는 영락(榮落)과 진퇴(進退)의 미학에 세인의 높임을 받기도 한다. 유행가의 동백아가씨는 보통 사람들의 사랑과 애환의 정서를 잘 나타내 또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유명한 동백꽃의 명소로 오동도나 지심도 그리고 강진의 다산 초당과 백련사 등지가 알려져 있다. 옛적에는 동백나무 씨에서 기름을 짜서 등잔기름· 머릿기름, 약용으로 쓰여 여인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근래 문재인 대통령의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통영의 동백나무를 베를린 한 묘역에 옮겨 심어 관심이 되고 있다. 묘소의 주인공은 작곡가 윤이상(尹伊桑,1917~1995)이다. 그는 경남 산청에서 선비 출신의 윤기현(尹基鉉)과 농가 출신의 김순달(金順達) 사이에서 태어나, 1920년 충무( 통영)로 이사를 해 학교를 다녔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윤이상은 음악을 반대한 아버지 때문에 통영협성상업학교에 진학했지만, 군악대 출신의 바이올린 연주자로부터 화성학을, 도서관에 있는 악보를 보며 서양 고전 음악을 독학했다. 일본 오사카 상업학교에 입학하고 오사카 음악대학에서 첼로, 작곡, 음악 이론을 배웠다. 1937년 통영으로 돌아와 화양학원(화양초교)에서 교사로 첫 동요집 《목동의 노래》를 냈다. 이후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4년 일제에 체포되어 두 달 간 옥살이를 했다. 1956년 4월 《현악4중주 1번》과 《피아노 트리오》로 ‘제5회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다. 1956년에는 파리에 머물다가 1957년에 베를린으로 가 라인하르트 슈바르츠쉴링, 보리스 블라허, 요세프 루퍼 등으로부터 배웠다. 동아시아 음악의 요소를 서양 음악에 접목시킨 《일곱 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초연해 유럽 음악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1965년 초연한 불교 주제에 의한 오라토리오 《오 연꽃 속의 진주여》(1964)와 1966년 도나우싱엔 음악제에서 초연한 관현악곡 《예악》은 그를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1963년 4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오랜 친우인 최상학을 만났고, 루이제 린저(Luise Rinser,1911~2002)와 예술적 교류를 심화시켰다.

소위 동백림 사건으로 1967년 6월 17일 중앙정보부에 의해 체포, 송환돼 갖은 고문과 협박을 받으며 자살시도 까지 해 사형선고 받고 몇 차례 감형되고, 독일 예술인의 탄원 등으로 집행유예로 풀려나 독일로 갔다. 그는 평생 조국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한국 방문을 희망했으나 조국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작품공연도 금했다. 그의 사후 2007년 9월 14일에는 미망인 이수자가 윤이상 탄생 90주년 기념 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40년 만에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당대 한국 최고, 최대의 음악가이자 세계의 유명 예술인 윤이상이 정략적이고 개인 정권의 연장과 정치적 계산으로 허위 조작된 동백림사건에 의해 인격이 파괴되었다. 윤이상 개인의 인권과 자유는 물론 최고 예술혼을 말살하고 죽음 직전까지 가게한 우리의 과거는 반성해야 한다. 한 때 그의 친북적 행동에 대한 다른 의견이 있다하더라도, 그가 죽기 전 꼭 한번 가보고 싶던 고향과 조국을 우리는 허락하지 않았고 그 가슴에 깊은 상처와 회한과 절망을 쌓아올렸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방독 일정에 동행한 김정숙 여사가 독일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있는 고(故) 윤이상 선생의 묘지에 통영에서 가져온 동백나무를 심었다. 김 여사는 고향땅을 못 밟았던 윤 선생을 언급하며 “생전에 일본에서 타신 배로 통영 앞바다까지만 와보고 정작 고향땅을 못 밟으셨다는 얘기에 많이 울었다”며 “고향 통영에서 동백나무를 가져왔다. 선생의 마음도 풀리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묘비 앞 동백나무에는 석판에 ‘대한민국 통영시의 동백나무. 2017.7.5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이란 글씨가 새겨졌다. 이국 땅에 묻힌 위대한 예술가에게 동백꽃의 아름다움과 그 깊은 의미를 전달하고 싶은 것은 여사만의 마음은 아닐 것이다.

오늘 우리 인간의 일은 인간 본래의 가치를 회복하고 성장하고 꽃피우게 하는 것이다. 과거에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눌리고 억압받고 피멍들어 한(恨)이 되었다면 하루속히 해원(解冤)하는 것이 우리의 길이다. 자유영혼 윤이상의 꿈과 예술혼은 이 땅에 평화가 오고 남북이 통일되어 한민족이 세계에 우뚝 서기를 바랬을 것이다. 음악은 물론 예술과 문화와 경제, 사회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통일 한국의 기상과 정신이 유럽과 온 세상에 펼쳐지기를 간절히 고대했을 것이며, 자신도 한 기초를 닦고 불꽃을 피우기를 바랬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근원적인 가치와 자유와 정의, 평화 더 나아가 인류와 민족 사랑의 그것까지 옹골차게 지향하는 윤이상의 정신을 새롭게 조망할 필요가 있으며, 이번의 동백나무는 그런 의미를 우리에게 새롭게 한 일이라 생각된다.

성경은 제사보다 원망과 원한의 해원이 중요함을 가르쳐 준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또 한 때 진리를 위해 싸우다 핍박을 받아도 하나님의 카이로스(Kairos)에 밝음을 주실 것을 말씀하신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 윤이상 부인과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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