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이인규 칼럼
베뢰아(성락교회, 김기동목사) 연구보고서 1
이인규  |  dsmedic@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7년 07월 07일 (금) 01:01:27
최종편집 : 2017년 07월 08일 (토) 19:18:30 [조회수 : 154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베뢰아(성락교회, 김기동목사) 연구보고서 1

목차

   
▲ 김기동 목사

1. 양태론
2. 천사의 이름
3. 성령과 보혜사
4. 인간론
5. 하나님의 의도
6. 이중아담론
7. 김기동목사의 황당한 주장들

8. 귀신론
 1) 베뢰아 귀신론 비판
 2) 용어적인 구분
 3) 성경이 말하는 귀신
 4) 베뢰아의 변명
 5) 벙어리 귀신과 귀머거리 귀신
 6) 잘못된 귀신론
 7) 기타의 주장
 8) 우주가 마귀의 감옥인가

참고서적 목록


 - 성락교회(김기동, 베뢰아)는 귀신을 쫓아내서 문제가 된 단순한 이단이 아닙니다. 그곳은 우리와 같은 기독교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개념이 기독교와 전혀 다릅니다. 신론, 기독론, 인간론, 구원론, 종말론, 교회론까지 기독교와 전혀 다르며, 성락교회에 대한 이단연구가들의 보고서가 그동안 많았지만 모두 10여 년이 지난 연구보고서였습니다. 최근에 김기동목사가 베뢰아원강이라는 책(1100 페이지)을 출간하였기에 그 책을 모두 읽고 연구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성락교회의 이단성은 전보다 더 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성락교회는 과거의 이단성이나 문제점을 수정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
 


1. 양태론


 
베뢰아 김기동목사의 양태론은 많은 이단연구가들에게 오래 전부터 비판되어 왔는데, 양태론은 중요한 교리적 이단성을 갖는다. 김기동목사가 쓴 많은 책을 보아도 양태론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또 베뢰아 출신의 목사들도 같은 양태론을 주장하여 왔다. 특히 김기동목사는 시대별로 많은 책을 써 왔는데, 그 책들을 통하여 그의 사상이 양태론이라는 것이 증거되고 있으므로, 오히려 그가 양태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에 성락교회(김기동)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일부 정통교단의 목사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심히 유감으로 생각한다.
 
- 또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라 영이십니다. 영이 아니시면 하나님이 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영으로서는 성령이 되십니다, 이렇게 본질, 본체, 본영은 위계질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시냐? 할 때 그 하나님은 본질을 말하는 것이기에 아버지시며, 그가 나타나셨을 때는 본체이시며, 영으로 오셨을 때에는 본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그가 유일하신 자존자로 아버지시며, 모든 피조물에게는 본체로 나타나셨습니다. 삼위를 이렇게 이해해야 위계를 뛰어넘어서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면 아버지시고 인자로 나타내시면 아들입니다, 예수는 자기 안에 계시는 이를 아버지라 하셨고, 우리 안에 계신 이에 대해서는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곧 어느 측면에서 봤느냐 하는 것입니다.(성령을 알자, 74쪽)
  
- 그리스도는 하늘로 가시고 성령이 오셨습니다. 우리는 하늘로 가신 그리스도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영광 받기 위해 왕권으로 오신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가 곧 성령이십니다(성령을 알자, 95쪽)
 
- 만일 예수가 지금 이 땅에 육신으로 계신다면 우리 안에는 성령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지체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 안에만 계신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것은 그가 하늘로 가시고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한 다음부터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예수 안에 계신 성령이 제자들 안에도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과거 선지자들과 침례요한이 받은 성령충만은 모두 은사적인 것, 사역적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이 예수 안에도 계시고 제자들 안에도 계시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절대 오해입니다. 성령이 예수 안에 계실 때에는 어느 장소에도, 어느 사람 속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늘로 가신 다음에 비로소 예수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교회 안에 성령이 오셔서 각 사람에게 역사하는 것입니다(성령을 알자, 96쪽)
 
성락교회는 베뢰아 원강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2004년 3월 20일에 초판을 발행하여 2005년 11월에 재판을 발행하였는데, 페이지수가 1100페이지가 넘은 두꺼운 분량으로 베뢰아 아카데미에서 직접 가르친 것을 정리한 것이다. 이단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베뢰아 아카데미에서 직접 가르치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좋은 증거자료가 되어진다. 김기동목사는 머리말에서 베뢰아원강이라는 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 시무언이 베뢰아 강의 1기부터 24기까지 강의한 내용을 정리하여 한곳에 모았고 20기 강의를 중심하여 엮은 것이다”
 
김기동목사의 양태론은 명백하였다. 그런데 최근의 베뢰아 원강에서는 말하는 김기동목사의 삼위일체는 예전의 양태론과 조금 달라진 것 같다. 그러나 아직도 양태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명목상 삼위를 언급하고 있지만, 결국은 변질된 양태론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 하나님은 한분이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라고 하면 아버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일체이신 한분을 말합니다.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세분이란 말이 아닙니다. 삼위를 한분으로 부를 때에 하나님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버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버지를 말할 때에는 성부, 또는 하나님아버지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며 성부 위, 성자 위, 성령 위, 이렇게 삼위가 되십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을 완전히 무시합니다. 삼위일체론이라는 말은 신학적인 용어이고 교리적인 용어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가 일체 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리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삼위일체 되심을 성경에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에는 하나님이 세분인 것같아 보여도 성경에는 하나님이 유일하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베뢰아원강, 197쪽)
 
전과 달라진 삼위일체론은 명칭적으로만 삼위를 인정하며, 실제로는 한 인격만을 인정하며, 삼위의 이름이 예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보다 더욱 이상해진 양태론을 주장하고 있다.
 
- 성령은 은사를 베푸시고, 성자는 은혜를 베푸시고, 아버지는 사랑을 베푸신다. 하시는 일이 각각이지만 우리에게는 한 성령으로 나타내신다(베뢰아원강, 198)
  
- 하나님은 관념적 존재가 아니라 실존이십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실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실존하신 하나님을 이야기할 때 본체의 형상이신 예수를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무도 본 적이 없지만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또 아무도 하나님을 체험한 자가 없지만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으로 말할 때에는 성령이라 하고, 하나님의 실존을 말할 때는 하나님의 아들을 말하며, 하나님의 본질을 말할 때는 아버지를 말합니다(베뢰아원강, 207쪽)
 
- 또 ‘성령이 예수 이름으로 너희 속에 임하신다’(요14:26)고 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의 이름은 보혜사이고, 성자의 이름은 예수이고, 성부의 이름은 여호와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보혜사는 성령의 이름이 아니고 직분을 일컫는 말입니다. 예수만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 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에게 주셨고, 또 아들이 하늘로 간 후에 성령이 그 이름으로 오셨습니다.(베뢰아원강, 356-357)
 
김기동목사는 삼위의 이름이 예수라고 주장하는데, 놀랍게도 여호와는 천사의 이름이었다고 주장하며, 구약의 ‘하나님의 신’도 천사였다고 주장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 삼위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다. 우리에게 예수 이름을 주신 것은 우리를 보전하기 위해서다(베사 2,17) 
 
- 인자는 아버지 품 속에 나오실 때 예수란 이름을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그 전에는 예수 이름이 불리지 않고 여호와 이름이 불렸습니다. 인자가 세상이 오시자 비로소 예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하늘로 가시면서 이 세상에서 예수 이름만 알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동안 여호와 이름으로 했던 것은 인자가 오심으로 폐하여 없어진 것입니다(베뢰아원강, 608)
 
김기동목사가 말하는 삼위일체는 결국 인격적으로는 한분이시며, 그 삼위의 이름이 예수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주장은 조금이라도 개선된 주장이 아니라, 더욱 변질되었고 더욱 비기독교적이며, 더욱 위험한 이단적인 주장이 되어진다.


 
2. 천사의 이름


 
김기동목사가 우리가 믿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천사의 이름이었다고 주장하고, 구약의 ‘하나님의 신’(성령)도 천사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심각한 신격모독이 된다. 과연 베뢰아 김기동목사가 믿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인가? 김기동목사는 자신이 추측하고 상상하여 만든 하나님을 믿는가?
 
(1) 하나님의 신이 천사인가?
 
- 구약의 하나님의 신, 하나님이 보내신 영들은 천사들을 말하는 것이지 성령이 아닙니다.(마귀론 108 페이지)
 
- 구약시대에는 모두가 천사에 이끌림을 받았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사람이 없었습니다.(마귀론 61페이지)
 
- 창세기 1장2절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를 운행하시니라" 할 때의 그 신은 성령이 아닙니다.(마귀론 65 페이지)
 
- 구약에서 아브라함이나 모세에게 나타난 여호와가 천사였던 것처럼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느니라고 한 말은 하나님이 그의 천사들로 지키게 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사자(신)는 그의 천사를 말합니다.(마귀론 65페이지)
 
베뢰아 김기동목사는 구약의 “하나님의 신(Spirit)"은 성령이 아니고 천사라고 주장을 한다.
 
- 하나님은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느니라”(창1:2) 하신 것처럼 음부를 물로 결박하셨습니다. 여기서 신은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이 형무소를 지키지만 직접 총을 메고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밑에 있는 교도관들이 지키는 것 같이 하나님의 천사들이 우주를 지킵니다. 심판자가 들어오셔서 사단을 정죄하고 멸할 때까지 결박해 놓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139쪽)
 
김기동목사의 무지가 그대로 나타난다. 창세기 1장2절의 “신”(루아흐, Spirit)은 복수가 아니라 단수이다. 게다가 “수면을 운행하다”라는 단어는 “물로 결박하다”라는 뜻과 전혀 다르며, “라하프”라는 단어는 “알을 품다, 날개짓을 하다, 날다”라는 뜻을 갖는다. 이 성경구절을 물로 결박하는 것이라고 이상한 해석을 하는 사람은 난생 처음이며, 더욱이 천사가 감옥을 지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김기동목사는 신약에서 성령도 천사라고 주장한다
 
- 그러면 지금 천사들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1장8절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성령을 받고”라고 했는데, 이는 천사들의 사역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권능은 본래 손가락을 뜻합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손가락 즉 하나님의 자체입니다. 사도행전 2장2-3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의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여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귀로 들을 수 없고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실 때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이고 바람소리가 났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느낄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은 천사를 말합니다(베뢰아원강, 2005년, 239쪽)
 
본문에서 ‘권능’은 ‘뒤나미스’로 힘(power)를 뜻한다. 헬라어 사전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손가락이라는 뜻은 발견한 적이 없으며, 천사라는 뜻도 없다. 불의 혀와 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고 하여, 천사라고 추측하는 것은 더욱 이상하다. 그렇다면 천사가 불의 혀와 같이 갈라지는가?
 
- 성령은 하나님이시고 권능은 성령에 의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는 것은 그의 지체가 되어 그를 수종드는 천사들이 임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과 함께 천사들이 와서 성도를 돕게 되는 것입니다....성령은 불이 아니고 바람이 아닙니다. 바람과 불로 나타난 것은 그가 부리는 천사입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는 그의 천사들이 권능으로 나타납니다. 바람과 불같은 현상을 통해서 나타납니다(베뢰아원강, 2005년, 240-242)
 
권능은 천사이고 권세는 천사가 아니라는 이런 황당한 생각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의문이다.
 
- 천사는 권세가 아니라 권능입니다. 천사는 마귀에게 정죄하거나 능력을 해체시킬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가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하면 얼마든지 권능을 더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느 때는 능력이 많았다가 어느 때는 적었다 하는 것은 기도할 때는 천사가 더 많이 오고 구하지 않을 때는 천사가 내 곁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귀신 쫓을 때 권세뿐만 아니라 권능도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귀신이 “간다, 간다”하면서도 안나간다면 이는 권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나가 주인이 나가라는데 왜 안나가”하고 밀어내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밀어내 주는 천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천사가 없기 때문에 귀신이 “나가요 나가요” 하면서도 안나가는 것입니다. 귀신을 불러 내놓고 내쫓지 못하는 것은 권세는 있지만 권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권세와 권능은 구별됩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은 권세가 있지만 군인은 권능이 있습니다.(베뢰아원강, 2005년, 297쪽)
 
성경에서 “권능”과 “권세”라는 단어는 주로 “엑수시아”와 “뒤나미스”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엑수시아”라는 단어는 ‘권능’으로만 번역된 것이 아니라 ‘권세’로도 번역되었고, “뒤나미스”라는 단어도 ‘권능’ 혹은 ‘권세’로도 번역되었다.
 
엑수시아 : 마10:1 권능(엑수시아) 마7:29 권세(엑수시아) 마9:6-8 권세(엑수시아)
뒤나미스 : 마7:22 권능(뒤나미스) 행4:7 권세(뒤나미스) 계11:17 권능(뒤나미스)
 
김기동목사는 ‘권능’을 천사로 해석하는 이상한 해석을 하는 동시에, 김기동목사는 예수가 부활하여 승천한 이후에 비로소 성령이 임하였다고 주장을 하는데,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그가 양태론을 주장하기 때문이며, 김기동목사가 말하는 성령은 오순절 이후에 처음 세상에 나타나게 된다.
 
- 예수께서 하늘보좌에 올라 왕권을 가지신 후 비로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셨으면 우리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요, 우리는 그 권능을 가진 것입니다, 성경에 성령에 대해서는 존대하지만 권능은 물건 다루듯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 받고”라는 말은 “성령이 임하시면 종들을 보내시고”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입장에서 보면 천사는 종입니다. 인자가 왕권을 얻으신 후에 그 왕권을 가지고 오실 때는 종들을 주신다는 말입니다(베뢰아원강, 2005년, 301쪽)
 
- 또 ‘성령이 예수 이름으로 너희 속에 임하신다’(요14:26)고 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의 이름은 보혜사이고, 성자의 이름은 예수이고, 성부의 이름은 여호와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보혜사는 성령의 이름이 아니고 직분을 일컫는 말입니다. 예수만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 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에게 주셨고, 또 아들이 하늘로 간 후에 성령이 그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베뢰아원강, 356-357쪽)
 
소위 사역적삼위일체(기능적삼위일체)를 주장하는 내용도 나타난다. 성령과 사역하시는 성령을 구별한다.
    
이러한 주장은 다른 책에서도 발견된다
 
- 그러므로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만약 믿을때 성령 받았다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때 믿은 사람도 성령을 받았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나 분명히 성령은 예수님 부활하신 50일 후에 오셨습니다. (마귀론 상 110쪽)
 
또한 베뢰아 김기동목사에게 있어서 성부, 성자, 성령은 모두 한 분 하나님으로서 형태와 사역만이 달라진 한 인격일 뿐이며, 즉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것 뿐이라는 것이다. 전에는 단순한 양태론이었는데, 현재는 변질된 황당한 양태론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김기동목사는 보혜사 성령이 구원과 관계가 없다는 이상한 주장을 말한다. 도대체 그의 상상과 추측은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 성경을 믿고 구원을 받은 다음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38절에 믿고 죄사함 받은 자가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아도 구원은 받을 수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구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았던 50일 간도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은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를 변호하기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성령을 알자 100쪽)
 
앞에 살펴본 것과 같이 김기동목사는 양태론자이다. 그리고 김기동목사에게 성령은 오순절 이후에 처음 등장하는 존재이므로, 그 전에는 성령없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 밖에 없다. 처음 단추를 잘못 꿰면 나중 단추는 잘못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 여호와는 천사의 이름인가?
 
김기동목사는 구약의 하나님의 신이 천사였다고 주장하였는데, 구약에서 현현하신 여호와도 천사라고 주장한다. 물론 천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타난 적도 있지만, 여호와는 하나님이 아니며, 천사가 여호와라는 주장은 황당하다.
 
- 구약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에게 나타난 사건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약때 하나님이 직접 현현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천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현현한 것이다. 여호와는 성부 하나님이 아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뵙지 못했다. 아버지 품속에서 나오신 아들을 통해 인간은 처음으로 하나님을 봤다. 하나님이 구약에서는 천사를 통해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나타내셨고, 신약에서는 아들을 통해 예수라는 이름으로 나타내셨다(베뢰아아카데미 19,13) (베뢰아원강 224)
 
물론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나타나실 때에 다양한 가시적인 모습으로 현현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천사가 여호와라는 이름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의적인 추측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베뢰아 김기동목사는 여호와는 천사에게 부여한 이름이고, 아버지의 이름은 예수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여호와는 심판과 형벌은 할 수 있지만 은혜는 베풀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 여호와는 하나님의 사자가 현현할 때에 천사에게 부여한 이름이고, 예수는 아버지의 이름인데 아들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이나 예수 이름은 둘 다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이름은 천사에게 부여한 이름으로 심판과 형벌은 하지만 은혜는 베풀 수 없습니다. 여호와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는 일을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자라는 뜻입니다(베뢰아 원강, 2005년, 541-542)
 
- 둘 다 하나님의 이름인데 구약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신약에서는 예수라는 이름으로 나타났습니다(마1:21).... 어떤 사람은 여호와가 성부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름은 ‘예수’ 하나 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구약의 여호와를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 했고, 신약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을 예수라 했습니다. 본래 예수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이었는데, 그것을 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 이름은 천사가 받은 이름이고, 예수 이름은 아들이 받은 이름입니다.(베뢰아원강, 2005년, 123-124쪽)
 
베뢰아 김기동목사는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짜맞추어서 하늘보좌까지 만들고 있다. 김기동목사는 예수가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기까지 하늘보좌는 비어있었다고 주장하며, 그 대신 여호와라고 불리는 천사가 보좌에 있었다고 주장을 한다.
 
- 하나님이 아들을 위해서 하늘을 창조하시고 하늘에 아들의 보좌를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보좌에 오르시기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하늘에 두시고 천사들이 그 이름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때 그 이름을 맡아 영광을 돌리는 자가 있었는데, 이렇게 최고로 영광받은 천사가 바로 주의 이름으로 온 여호와의 천사였습니다(베뢰아원강, 2005년, 361쪽)
 
과연 하나님의 보좌가 비어있었으며, 천사가 대신 있었는가?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시 93:2)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시 45:6)
 
하나님의 보좌와 예수의 보좌는 영영하며 견고하며 영원부터 있었다. 이 시편을 인용한 것이 곧 히브리서이다. 물론 천사가 하나님의 사자로서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기 위하여 사람에게 나타난 적은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던 것은 결코 아니며, 더욱이 여호와라는 천사가 있었다는 주장은 성경에 전혀 없다.
 
“너희는 삼가 그(여호와의 사자)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여호와의 이름)이 그에게(여호와의 사자에게) 있음이니라”(출 23:21)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사자에게 있다는 것은, 실제로 천사들이 하나님과 동일한 인격이라는 뜻이 아니며, 어떤 천사가 여호와라고 불리웠던 것은 더욱 아니다.
그 옛날 왕의 사신은 왕의 명령(어명)을 전하기 때문에 왕과 동일하게 간주되어 왔던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천사를 통하여 사역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천사를 통하여 그 이름을 선포하신다.
 
베뢰아 김기동목사는 위 성경본문의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여호와가 천사라고 생각하는가? 또 아래 성경에서 여호와가 천사라고 생각되는가?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예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또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요 환난 때의 산성이시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너희는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시 9:7-11)
 
영광을 돌리며 그에게 경배하실 여호와가 천사인가?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시 29:2)
 
여호와께서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심판주이시며, 천군천사의 경배와 찬송을 받으시는 분이시며, 하늘보좌에 앉아 계신 분이라는 성경구절은 성경에 너무 많기 때문에 일일이 인용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여호와가 천사의 이름이라면 우리는 천사에게 찬송하고 그를 경배하는 것이 되고만다.


 
3. 성령과 보혜사


   
김기동목사는 보혜사 성령이 우리의 보혜사가 아니라 예수의 보혜사가 되신다고 주장한다. 즉 그가 사용하는 용어는 기독교와 같으나 그 개념은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과 다르다.
 
- 이와같이 예수는 죽으러 오셨기 때문에 자기를 변호하지 않으셨고 그가 죽으심으로 우리의 보혜사가 되셨습니다. 예수가 우리의 보혜사이심을 강조하는 이유는 성령은 우리의 보혜사가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자로 오신 예수는 우리의 보혜사가 되시나, 내주하신 성령은 인간의 보혜사가 아닙니다(성령을 알자, 81쪽)
 
- 그러면 보혜사 성령은 누구의 증인입니가? 바로 예수의 변호자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보혜사 성령을 말할 때 예수를 떼아놓고 말하기 때문에 사람의 협력자로 오해하고 있습니다(성령을 알자, 78쪽)
 
-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변호자라는 뜻입니다. 물론 보혜사에는 경호자, 봉사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인본주의 교과에서는 보혜사를 주로 ‘사람을 변호하는 자’라는 의미로 씁니다. 보혜사를 봉사자쪽으로만 이해하여 성령께서 그리스도인을 지켜 주시고 도우시는 분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 성령은 사람을 변호하는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변호하시는 분입니다(베뢰아 원강, 2005년, 389쪽)
 
보혜사(파라클레토스)는 법정용어로서 피고측 변호인이라는 뜻이다. 김기동목사는 보혜사가 예수의 변호자라는 기상천외한 주장을 하는데,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심판주이신 예수를 변호할 필요가 있을까?
 
- 성령은 예수그리스도의 보혜사입니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것 같이 보혜사 성령은 예수께서 이루어 놓고 가신 그 나머지 일을 완성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그의 일을 하지 않을지라도 성령은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변호하실 것이며, 예수가 죄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거하실 것입니다. 인간의 협조가 없이도 이미 성령께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변호하셨습니다.(성령을 알자, 84쪽)
 
“보혜사”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이며 그 단어는 ‘파라’(옆에서)와 ‘클레오’(부르다)라는 단어의 합성어로서 “옆에서 도와주고 불러주는 존재”라는 뜻을 갖는다. 그 단어가 법정용어에서는 ‘피고측 변호인’이라는 뜻을 갖는다. 다시 말하면 성령이 우리의 보혜사가 된다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도와주신다는 뜻을 갖는다. 성령이 예수님의 보혜사라는 김기동목사는 예수님이 심판을 받으신다고 생각하며, 성령께서 예수님의 변호자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파라클레토스)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예수가 곧 보혜사이며, 성령은 또 다른 보혜사가 되신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성도들의 피고측 변호사가 되신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4. 인간론


 
(1) 죄의 분류

김기동목사의 책을 읽어보면 그가 신학적인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김기동목사는 본죄와 자범죄를 서로 다른 것을 구별하고 있는데, 본죄(actual sin)는 자범죄와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것이다. 원죄(origin sin)와 구별하여 자범죄 혹은 본죄라고 말한다.
 
- 이와 같이 인간은 누구나 이 세가지, 원죄와 본죄와 자범죄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하와가 마귀의 유혹을 받고 선악을 알게하는 실과를 보니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게도 보였습니다. 이것은 정욕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후 그것을 따먹었습니다. 품행으로 따먹고 먹지말라 한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영이 죽었습니다. 지금도 죄를 범하는 양상은 똑같습니다. 이렇게 죄를 짓는데 하와가 지은 죄는 일종의 자범죄이며, 아담이 범한 것은 원죄가 되었습니다(베뢰아원강, 667쪽)
 
- 인간에게는 원죄와 본죄와 자범죄가 있다. 원죄는 아담이 지은 죄이며 유전한다. 본죄는 성품죄다. 자기 마음에서 솟아나는 죄다. 자범죄는 마음에 품은 생각을 행위로 지은 죄다. 자범죄를 짓거나 본죄를 지으면 죄에 대한 의식이 강해진다(베아 22,8) 원죄는 영에서 나오고, 본죄는 육신의 생각이고, 자범죄는 본죄의 결과이다. 원죄는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해결되고 본죄는 성령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자범죄는 훈련을 통해 억제할 수 있다(베아 16, 29) (베뢰아원강 667쪽)
 
자범죄와 본죄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명칭만 다른 것으로 동일한 용어이다. 김기동목사는 자범죄와 본죄를 서로 다른 것으로 구별하더니, 본죄는 성령에 의하여 다스려지고, 자범죄는 훈련을 통해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김기동목사는 원죄는 영에서 나온다고 주장하며, 예수그리스도에 의하여 원죄만 해결되었다고 주장한다.
 
(2) 영혼유전설(실재설)

더욱이 김기동목사는 원죄가 유전한다고 주장하는데, 아담을 통해 한 영이 계속 유전되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영혼의 기원에 대해서 “실재설”이라고 하는 이단적인 주장이며, 또 죄의 전가에 대해서는 “유전설”을 주장하고 있는데, 김기동목사는 이 두가지를 전혀 구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즉 전자는 “영혼의 기원”에 대한 주장이며 후자는 “죄의 전가”에 대한 주장이라는 것을 전혀 이해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통신학에서는 영혼의 기원에 대해서는 “영혼창조설”을 주장하며, 죄의 전가에 대해서는 “언약적대표설”을 주장한다.
 
- 그러면 범죄는 하와가 먼저 했는데 왜 하와의 죄가 유전되지 않고 아담의 죄가 유전됩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그 후에 하나의 영만 지으셔서 그 영이 유전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을 통해 계속 한 영이 넝쿨처럼 유전되어 나갑니다. 하와가 먼저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 먹음으로 사단적인 죄를 범했을지라도 이 사단적인 죄가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하와가 주는 실과를 먹음으로 불순종한 아담의 죄가 유전됩니다, 그래서 하와의 죄는 유전되지 않고 하와 한 사람만 사단적인 죄를 범한 것으로 끝납니다(베뢰아원강 659쪽)
 
- 아담의 죄와 그 후손의 죄의 관계

(1) 실재설- 셋 중의 처음 것은 실재설이다. 이 설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최초의 하나의 보편적 인간성을 창조하셨는데 이것은 시간의 과정 속에서 많은 부분으로, 곧 인류 각 개인으로 나뉘어졌다는 것이다. 아담은 이 보편적 인간성 전체를 소유하였으나 죄의 결과로 그것은 유죄하게 되었으며 또한 부패해졌다. 그 결과로 그것의 모든 개체의 부분도 역시 이 죄책과 오염을 지니게 되었다. 이 설은 우리가 왜 아담의 최초의 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고, 동일한 인간성에 의하여 범한 그의 나머지 죄와 또 우리 조상의 죄에 대하여는 책임이 없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그리스도는 아담 안에서 범죄한 그 인간성을 취하셨는데, 어찌하여 그는 아담의 죄에 대하여 책임을 갖지 않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도 답을 주지 못한다.(루이스벌콥 기독교신학개론, 성광문화사, 153쪽)
 
성경은 영혼이 유전된다고 말하지 않으며 영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주신다고 말한다. 김기동목사의 주장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으며, 모두 자신의 추측과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영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주신다고 말하고 있다.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spirit)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사42:5)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히12:9)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민16:22)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눅12:20)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12:7)
 
김기동목사는 모든 교리를 자신이 추측하고 상상하여 만들고 있다. 영혼유전설을 주장하다보면 우리는 아담 이후의 모든 조상들의 죄까지 다 유전을 받아야만 한다. 왜 원죄만 유전되고 다른 죄는 유전되지 않는가?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더욱이 실재설에 의한 영혼유전설은 영혼이 대대로 후손에게 전해진다는 점에서 윤회설을 근거로 한다. 그렇다면 모든 인류의 영혼은 결국 하나라는 뜻이 아닌가? 모순은 점점 모순을 낳고, 오류는 점점 오류를 낳게 된다. 이미 김기동목사의 주장은 기독교의 것이 아니다
 
- 영은 아담이라는 한 영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영 자체가 유전됩니다. 온 인류는 아담 한사람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왔습니다. 하와는 먼저 죄를 범했어도 그 영이 아담에게서 분리되어 나왔으므로 불순종한 아담의 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유전되는 죄를 원죄라고 합니다. 금방 태어난 아이에게 도덕적인 죄는 없지만 이미 원죄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 원죄로 인해 영이 죽은 것입니다(베뢰아원강, 664쪽)
   
실재설이라는 영혼유전설을 주장하면, 예수의 무죄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어처구니가 없게도 이것을 변명하기 위하여 김기동목사는 여자의 죄는 유전되지 않고 남자의 죄만 유전된다고 주장한다.
 
- 여자의 후손이 누구입니까? 예수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께서 여자의 후손이 되는가를 봅시다. 여자의 죄는 유전되지 않습니다. 본래 사람의 영은 남자에 의해서만 유전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여인의 몸에 태어나셨다 할지라도 사람의 혈통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베뢰아원강, 671쪽)
 
죄는 생식적인 방법에 의하여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이 온 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께 언약을 하므로서 그 죄책은 전가되며, 그 오염된 죄성이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이것을 언약적대표설이라고 하며, 로마서5장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라.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7-19)
 
죄는 물질이 아니라 관계를 말한다. 예를 들어 내가 A에게 죄를 지었다면 A에게는 죄가 있지만, B에게 죄를 짓지 않았다면 B에게는 죄가 없다. 즉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의도 유전되지 않는 것과 같이, 아담의 죄도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사람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모든 인류가 죄를 전가받은 것이 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산 각종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2:16-17)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에는 “먹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는 반대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아담은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첫사람으로서, 온 인류를 대표하는 것이다. “아담”이란 히브리 단어는 “인류”를 뜻한다.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당부는 아담과 하나님만의 관계가 아니라, “인류 전체와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언약”이었다. 아담은 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과 언약하였다고 보는 것이 바로 언약적 대표설이다. 만일 그 실과를 먹으면 죽게 되며, 그 실과를 먹지 않으면 영원히 죽지 않게 되는 언약인 것이다. 성경은 아담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겼다고 언급하고 있다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호 6:7)
 
(3) 정녕 죽으리라

인간의 죄에 대해서 황당한 주장을 하던 김기동목사는 이제 더욱 해괴망칙한 주장을 하고 있다. “먹으면 죽으리라”는 말은 “예수가 죽는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 첫 아담에게 “네가 먹으면 죽으리라”고 한 그 죽음은 예수께서 담당하시게 됩니다. 인간은 심판받아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먼저 죽으십니다. 여기서 “먹으면 죽으리라”고 한 것은 첫 아담이 먹으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마지막 아담이 죽으신다는 말입니다(베뢰아원강, 699쪽)
 
더욱이 예수가 죽었으므로 인류는 죄값으로 죽는 일이 없으며, 육체적인 저주만 받는다고 주장한다.
 
“동산 각종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2:16-17)
 
김기동목사의 주장은 성경을 살펴보면 곧 확인할 수 있다.
히브리어 동사는 인칭이 표시되어 있다. 본문에서 “죽는다”와 “먹다”는 동사는 동사는 모두 2인칭 동사이다. 김기동목사의 책을 읽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상상과 추측으로 성경을 짜깁기로 만들어서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한 해석은 완전하게 성경의 근거를 무시하며, 기본적인 상식까지 부정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라는 말이 과연 예수가 죽게된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는가? 본문에서 “네가”가 누구를 말하는가? 그러나 불과 몇페이지 앞에서는 김기동목사는 또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영이 죽는다”는 뜻이라고 해석을 한다.
 
“선악에 알게하는 실과를 먹으면 죽으리라” 할 때 “죽으리라”라는 것은 영이 죽는다는 말입니다..... 영이 죽으면 영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부가 육에 속하여 육을 충족시키고 육을 만족하게 하는 생활을 합니다.(베뢰아원강, 650-651)


 
5.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의도’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예수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며, 구원론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신 예수님의 보혈, 즉 가장 중요한 기독교의 구원론에 대해서 베뢰아는 그 자체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1) 베뢰아 김기동목사는 예수가 오신 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라, 마귀를 멸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한다
(2) 또 인간이 창조된 이유는 마귀를 멸하는 예비적인 도구로 창조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3) 그렇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굳이 예수를 보내실 필요가 없이 범죄한 마귀를 멸하시면 되지 않는가? 김기동목사는 하나님이 마귀를 합법적으로 멸하시기 위하여 예수를 보내셨다고 주장한다,
(4) 김기동목사는 영은 인격이 없으므로 육체를 가져야만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네가지의 황당한 주장이 바로 김기동목사의 “예수가 세상에 오신 목적”이며 “하나님의 의도”라는 제목으로 가르쳐온 내용이다. 베뢰아에 영향을 받은 베뢰아 계열의 인사들에게는 위와 같은 주장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1) 베뢰아 김기동목사는 예수가 오신 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라, 마귀를 멸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 인류구원보다는 사단의 정죄가 먼저다. 사단이 정죄되지 않으면 구원도 있을 수 없다. 아직 인류가 없을 때 마귀 정죄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실 것이 작정되었다(베아10,30) (베뢰아원강, 574)
 
- 하나님의 아들은 그가 보좌에 앉으실 때까지 자기 직분을 잘 지키고 있어야 할 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것을 심판하시고 보좌로 들어가십니다. 처음부터 아들이 보좌에 계셨더라면 천사는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들은 자신이 오시기 전에 하늘을 더럽힌 천사들을 신판하시고 하늘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이 임하심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3장16절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일반 기독교교리는 성경을 구원사적으로 봅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구원의 역사로 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은 단면만 본 것입니다. 인류구원의 목적이 목적이라면 단 한 사람도 멸망하는 사람이 없이 다 구원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심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입니다. 이것이 그의 목적입니다.(베뢰아원강, 573-574)
 
요한복음 3장16절은 “저를 믿는 자마다”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데, 김기동목사는 만약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다면, 단 한사람도 멸망하는 일이 없이 다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이상한 해석을 한다. 언제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로 오셨다고 하였는가? 성경은 1예수를 믿는 자를 구원하시겠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주일학교 학생들도 암송하는 요3:16을 김기동목사는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하고 있다.
 
- 그런데 아들이 하늘을 기업으로 상속받으시기 전에 사단이 반역했습니다. 이에 그 사단을 먼저 심판해야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사단이 마음대로 짓밟고 모독했던 그 이름을 영화롭게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들이 세상에 오셔서 마귀의 일을 멸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데 동원된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귀를 멸하신 후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마귀의 일을 완전히 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으므로 인간을 구원하지 않으셔도 하나님께서는 아무 아쉬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구원을 선물로 부여하신 것입니다(베뢰아원강, 576-577)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딤전1:15)
 
성경은 마귀를 멸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마귀의 일(Satan’s work)을 멸하러 오셨다고 말하고 있다. 마귀의 일은 죄로 인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sadan's work)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를 멸하려 함"이 아니라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마귀의 일에서 "일"(work)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엘곤"으로 "노역, 사업, 행위"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예수께서 마귀를 멸하러 오셨는가,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는가.....그것은 전혀 다르다. 물론 궁극적으로 마귀는 무저갱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므로, 마귀를 멸하려고 오실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마귀를 멸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마귀로부터 미혹되어 죄를 짓던 인류를 위하여 죄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시다. 베뢰아는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라고 써놓고 그것을 “마귀를 멸하러 오셨다”라고 읽는다.
 
(2) 또 인간이 창조된 이유는 마귀를 멸하는 예비적인 도구로 창조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 예수의 죽음으로 하늘에서 마귀를 멸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제물이 된 것이다(베아10,34) 우주는 마귀를 멸하기 위해 창조하신 것이고, 인간은 마귀를 멸하기 위해 오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오실 길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안내하는 안내자로서 지으신 것이다(베아 19,34)
 
- 그리고 우리를 데려다가 함께 있게 하시고 상까지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죄짓고 오는 인간에게 상까지 주시겠다는 것은 인간이 마귀를 멸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실 길을 위한 사전의 안내자였기 때문입니다."(김기동저, 마귀론 상78쪽)
 
성경은 마귀를 멸하는 도구로 삼기 위하여 인간을 만들었다는 구절이 하나도 없다. 그러한 주장은 김기동목사의 자기 생각일 뿐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라고 성경은 말하는가?
첫째, 세상과 피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함이다.(창 1:26-28, 창 9:1-2)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으셨다.(사 43:7, 사 43:21, 계 4:11)
 
(3) 만약 사단을 멸하기 위하여 예수가 이 세상에 오셨다면, 굳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실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마귀를 그 자리에서 멸하시면 되지 않았는가? 김기동목사는 하나님이 마귀를 합법적으로 멸하시기 위하여 예수를 보내셨다고 주장한다. 과연 합법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러한 주장은 베뢰아의 독특한 주장이다.
 
-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한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 하나님이 마귀를 멸하시는 것은 합법적인 일이다. 하나님의 대적으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증거를 잡아 형벌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누가 하나님을 대적했다고 해서 그를 상대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정죄하여 형벌을 내리신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므로 합법적으로 처리하신다.(베뢰아원강, 706쪽)
 
- 어떤 사람은 '마귀가 도전했을 때 당장 하나님이 멸하시면 될텐데 왜 그렇게 오랫동안 묵인했느냐?'고 하지만 하나님은 반역하는 천사를 인정해서 묵인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불법을 합법으로 처리하시려고 한 것입니다.(김기동저, 마귀론 상66쪽)
 
하나님께 범죄하고 타락한 마귀를 멸하시는 것이 불법인가?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합법적인가?
 
(4) 김기동목사는 영은 인격이 없으므로 육체를 가져야만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지방교회 위트니스 리에게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만약 영이 인격이 없다는 주장이 옳다면 하나님과 성령도 인격이 없는 존재가 되고만다. 신학적인 용어에서 인격(personality)이라는 용어는 성격(character)이라는 뜻이 아니라, 지정의를 주체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영이 인격이 없다는 주장은 영이신 하나님과 성령이 실존하시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라고 말할 수 없는 주장이 된다.
 
- 우리는 육체를 통해서 인격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가 없으면 인격을 발산할 수 없습니다. 귀신도 육체가 없으면 인격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귀신이 육체를 파고 드는 것입니다(베뢰아원강, 277)
 
- 귀신은 육체를 떠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오즉 다급했으면 돼지 육체 속에라도 들어가겠다고 했겠는가? 귀신은 육체가 없으면 활동할 수 없다. 귀신은 육체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사람의 인격과 똑같이 나타난다. 말하는 것도 그렇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행동도 육체 안에서 나타난다(베아18,12). 귀신은 몸을 가졌던 존재요 몸을 가졌을 때 인격을 나타낼 수 있었던 존재였기 때문에, 사람의 몸에 들어와야 자기 구실을 할 수 있다.....따라서 귀신은 사람의 몸 안에 들어와 있을 때 지정의의 인격활동을 하지만, 일단 몸 밖으로 내쫓기면 그냥 영적존재일뿐 아무런 인격 활동을 할 수 없다(베아, 15,19). 귀신은 사람의 몸 안에서만 인격이 나타난다.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인격으로서 구실을 못하기 때문에 사람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베아14,23) (베뢰아원강, 277-278)
 
- 영은 항구적 존재다. 어떤 사람은 영이 인격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격은 혼이고 몸과 함께 있을 때를 말한다. 따라서 영이 인격이라면 사람 속에 혼인 인격과 영인 인격, 두 인격이 들어있다는 말이 된다. 영은 인격이 아니고 항구적 존재, 영원한 존재다(베뢰아원강, 283)
  
- 영은 투명한 유리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영은 인격도 아니다, 육체에 영이 들어감으로써 영원한 사람이 되었다. 원래 몸과 혼을 합하여 인격이라고 하기 때문에 아담은 ‘영과 몸’, ‘영과 혼’이라고 한다(베아17,28)


  
6. 이중아담론


 
아담은 첫사람이 아니었는가? 이러한 주장은 신천지, 김풍일, 신옥주등도 주장한다.
베뢰아에서는 하나님이 짐승과 같은 영이 없는 사람을 만들고,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생기를 불어 넣어줌으로서 아담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 곧 아담이라는 사람 하나를 뽑으셨습니다.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입니다. 땅에 충만한 사람 중에서 최고로 나은 자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에게 생기를 부어 생령, 곧 영적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베뢰아원강, 644-645)
 
- 창세기 1장은 짐승을 먼저 지으시고 그 후에 사람을 지으셨는데, 2장에는 사람을 먼저 지으시고 짐승을 지어서 그것들을 사람에게 이끌어 오셨다. 이 때까지 아담은 독처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계획하신대로 아담을 잠들게 하여 그에게 아내를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지키라”고 하시고 곧바로 하와를 만들어 주신 것이 아니다. 아담과 하와가 동시에 지으신 것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는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지으셨다.(베아21,21) 이렇게 창조된 남자와 여자, 창세기 2장의 아담과 하와는 동일한 사람이 아니다(베아 23,26)(베뢰아원강, 655)
 
- 아담 이전에도 사람은 있었는데 그들은 네피림입니다. 그들은 아담을 얻기 위한 존재였으며 영적사람은 아담부터 시작됩니다. 네피림은 노아때까지 계속 존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노아때에 홍수로 호흡있는 모든 피조물을 쓸어버리시는데 이는 네피림을 멸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를 에덴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이 이끌어 낸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그가  생령이 되셨습니다. (베뢰아원강, 695-696)
 
"이와같이 땅에 충만한 수의 사람 중에서 아담 하나를 뽑았으니, 그 아담이 얼마나 개화된 인간이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한 사명자를 불러 이 기존적인 인격 위에 항구적 가치를 부여 하심으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마귀론 상. 85페이지)

이제 베뢰아의 인간론, 이중아담론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이며 비성경적인가를 증명하여 보자. 베뢰아는 하나님이 동물적인 암컷과 수컷을 만들어 놓고, 그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개화된 인간을 하나 골라 생령을 불어 넣어줌으로 아담이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논리를 주장한다면 다음과 같은 성경적 모순이 생긴다.
 
1) 성경에서는 "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졌다"(창2:7)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아담은 흙에서 창조된 것이 맞는가? 아니면 짐승적인 인간 중에서 선택되어진 것인가? 어원적으로 볼 때에, 히브리어 “아담”이란 말의 의미는 "사람, 인류"이며, 또한 아담이란 말의 어원은 흙(히브리어, 아다마)에서 어원을 갖는다. 즉 아담이 흙으로 만들어진 첫 사람이라는 말이다. 김기동목사는 성경에 기록된 사실을 무시하고, 아담이 동물적인 인간 중에서 골라진 사람이라고 주장을 하는 근거가 과연 무엇인가?
 
2) 고전15:45과 고전15:47은 왜 "첫사람 아담"이라고 기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아담은 땅에서 났다고 분명히 기록되어있다.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45)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15:47)
 
3) 창5:1-3의 기록은 베뢰아의 주장이 오류임을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1:27-28)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베뢰아의 주장과 전혀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창세기1장27절의 사람이 창세기5장1절에서 이담자손의 계보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더욱이 베뢰아에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창1:26-27)을 아담이 아니라 짐승과 같은 암컷과 수컷이라고 주장한다면, 아담의 계보에 왜 동물적인 암수가 등장하는가?
 
4) 눅3:38의 계보에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라."라고 되어 있다. 성경이 잘못 되어있다고 보는가? 아담의 이상은 짐승과 같은 사람이라고 되어 있지 않다.
  
5)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영이 없는 짐승적인 사람인가? 베뢰아는 창세기1장의 사람이 영이 없는 짐승과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러한 짐승과 같은 영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인지 아닌지를 설명하여 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6-27)
 
6) 창세기 1장과 2장의 연결을 하여주는 2장4절의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라는 구절은 창세기 1장의 내용의 대략을 2장에서 다시 상세하게 설명을 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대략"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톨레톳"으로, 성경에서는 항상 앞문장을 다시 재설명하고자 할 경우에 사용되었던 단어이다. (대략. 계보. 사적등....) 히브리어 "톨레톳"은 창세기 5장1절, 6장9절, 10장1절, 11장10절, 25장12절, 36장1절, 37장2절등에서 앞문장을 다시 상세하게 재설명할 경우에 사용되었다.
즉 창세기 2장은 창세기 1장과 다른 내용이 아니라, 창세기 1장을 줌렌즈와 같이 다시 상세히 설명하기 위한 기록인 것이다.
 
7) 창1장과 2장이 같은 내용이며 연속성을 갖는다는 것을 예수님이 직접 말씀에서 증거하시고 계신다. 베뢰아에서는 예수님 말씀과 김기동목사의 견해 중에서 어느 것을 믿는가? 마가복음10장6-8절을 보자....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다.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창1:27),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창2:24)
 
만일 창세기 1장과 2장의 내용이 서로 다른 사건이라면, 예수님이 마가복음에서 한 구절로 함께 인용하셨을 리가 없지 않는가? “이러므로”라는 단어는 “앞의 문장을 이유로”라는 뜻을 말한다. “이러므로”라는 단어는 KJV 영어성경은 For this cause, NIV영어성경은  For this reason 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만일 창세기 1장에서 창조된 남자와 여자가 창세기 2장의 아담과 하와와 다르다면 예수님이 “이러므로”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한 문장으로 인용할 수 없다.


   
7. 김기동목사의 황당한 주장들


     
1) 하나님을 부르면 육체의 복과 구원을 받으며, 예수를 부르면 영혼과 육체를 모두 구원받는다는 주장.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여호와 이름을 부르는 자는 육체마다 복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구약사람은 육체의 복과 육체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영혼과 육체 모두 구원 받습니다. 오직 예수 이름만이 영혼을 구원하는 이름입니다. 여호와 이름은 심판하는 이름이지 구원하는 이름이 아닙니다(베뢰아원강, 195)
 
한마디로 기가 막히다. 하나님을 부르면 육체의 구원을 받고, 예수를 부르면 영혼과 육체의 구원을 받는다고 구별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호와하나님을 믿던 구약의 성도들은 영혼의 구원을 받지 못하였는가? 구약의 성도들은 육체만 구원을 받았고 천국에는 없다는 것인가?
 
2) 무소부재를 어느 곳에나 계시는 것이 아니라, 영광이 미친다고 해석하는 김기동목사.
 
- 하나님이 무소부재하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뜻이다. 만약 무소부재를 말 그대로 안계신 곳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하나님은 지옥에도 계시다는 뜻이 되고만다.(베뢰아원강, 202쪽)
 
무소부재(편재)라는 것은 어느 곳이나 계신다는 것을 뜻한다. 주일학교 학생들도 아는 이러한 용어를 왜 김기동목사는 다르게 해석하는가?
김기동목사는 아래 성경을 읽어보지 못한 것 같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139:8-10)
 
3) 하나님의 뜻은 천사에게 우선권이 있으므로, 사람의 의지는 천사에게 양보하여야한다는 주장
 
- 사람의 의지는 때로 천사에게 양보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뜻으로는 사람보다 천사에게 우선권이 있다. 천사는 하늘로부터 온 심부름꾼이다. 인간은 땅에 있고, 천사는 하늘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러 왔기 때문에 사람은 천사에게 의지를 양보해야 할 때가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의지와 천사의 의지   
김기동목사는 아래 성경구절을 하늘로부터 온 천사에게 인간은 의지를 양보하여 다른 복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해석하는가?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 6:3)
 
4) 사람만이 영적인 존재이므로 생령이 되었다.
 
- 창세기 2장7절에 “사람을 지으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흙으로 모양을 만들고’가 아니라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입니다. 사람을 지으시고 거기에 생기를 부어 생령, 곧 영적인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생기를 부어 생령이 되었다는 것은 곧 영을 부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에게만 특별히 생기를 부어 영적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동물의 모양을 만들고 동물에게 생기를 부은 것이 아닙니다. 동물은 그냥 동물로 만드신 것입니다. 동물에게는 생기를 붓지 않으셨습니다. 이들이 생령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에게만 생기를 부어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베뢰아원강, 268쪽)
 
생령(네페쉬하야)라는 단어는 생명체라는 뜻이며, 동물에게도 생령(네페쉬 하야)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성경을 보면, 사람만 “생령”(네페쉬 하야)이 된 것이 아니라, 짐승들도 동일한 “네페쉬 하야”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창1:21, 1:24, 1:30, 2:19등)
만일 생령을 영적인 존재로 해석하려면, 짐승들도 모두 영적인 존재로 해석되어야만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하이 네페쉬: Living Creature)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2:19)
 
“생령”이라고 번역된 “네페쉬 하야”는 살아있는 영이 아니라, 전인적인 “Living Being”이라는 생명자체를 말한다. 흙으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이 불어 넣어주신 생기를 가진 전인적인 존재가 바로 아담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네페쉬 하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창1:24)
 
네페쉬 하야(생령)는 창1:20(생물), 1:21(생물), 1:30(생명), 2:9(생물)에서 짐승에게 사용되었다. 그것을 영적존재로 해석하여야 하는가?
   
5)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120년 생애를 채운다는 주장
 
- 만약 어떤 사람이 두 살 때 죽었다면 그는 귀신으로 백십팔년 정도 활동하게 됩니다. 그러다 만수가 되면 자연히 무저갱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귀신을 쫓을 때 늙어서 죽었다는 귀신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병들어 죽거나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합니다. 누가복음16장에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자가 병들어 죽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연락하며 편히 사다가 죽었고 죽어서 음부에 갔습니다. 무저갱은 음부 안에 있습니다.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 속에 들어갔지만, 부자는 음부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가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라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아직 불속이 아닙니다. 불못이 아니라 불꽃입니다.(베뢰아원강, 287-288) .
 
불못과 불꽃을 다른 장소로 주장하는 것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 불꽃은 불(Flame) 자체를 말하며 불못은 불이 있는 장소를 말한다. 불못에 불꽃이 있는 것이 아닌가? 부자가 불꽃 가운데 고통을 받고 있었다면, 그곳이 불못이 아니라면 부자는 촛불로 고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가?
 
- 육체가 없어지면 그 사람의 영은 낙원에 가지만, 귀신은 제삼자에게 들어갑니다. 옛날에는 인간이 천년 가까이 살았는데 노아때부터 인간의 수명은 백이십년으로 제한되어 버렸습니다. 사람의 수명은 평균적으로 백이십년입니다. 이는 예수 당시의 자연수명입니다. 불신자가 자연수명을 마치고 죽으면 무저갱으로 갑니다. 그러나 자연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으면 나머지 기간은 음부에 머물렀다가 마침내 무저갱으로 들어가게 됩니다(베뢰아원강, 286)
 
김기동목사는 아래 성경구절을 보지 않은 것 같다. 인간의 평균 자연수명은 칠십에서 팔십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물론 아주 건강한 사람은 드물게 백세를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강건하면 팔십을 살 수 있다고 본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
 
노아의 홍수 사건을 앞두고 백이십년을 말한 것은 인간의 수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 6:3)
 
대부분의 정통신학적인 주석은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한다. 그 이유는 노아의 홍수 이후에도 인간의 수명은 120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호크마주석은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한다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 당시 모든 사람들의 수명이 일백 이십년으로 한정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 기간이 지난 후 대홍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적 경고이다. 따라서 이 기한은 당시의 타락한 인간들에게 주어진 심판의 유보 기간이자 동시에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은혜의 기간이었던 것이다”(호크마주석)
 
그래서 [현대인의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을 한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죽어야 할 육체이므로 내 영이 영영 사람에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내가 그들에게 120년 동안의 여유를 주겠다.’"
   
6) 예수가 죽음을 담당하였으므로 이제 인류는 죄값으로 죽지 않으며, 저주만 받는다는 주장
 
- 죽음은 둘째 아담이신 예수께서 담당하셨으므로 인류는 이제 죄값으로 죽는 일은 없으나 저주는 담당하여야 한다(베아 15,30) 영적인 일은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담당하셨으나 인간은 죗값으로 육체가 저주를 받는 것이다(베아 16,30)(베뢰아원강, 409쪽)
  
7) 방언이 장차 있을 사고나 비밀을 미리 알려준다는 주장
 
- 방언은 하나님께 하기 때문에 알아듣는 자가 없습니다.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합니다. 우리 영은 미래를 압니다. 우리는 한시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십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우리 마음은 과거부터 진행된 일과 현재 당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알고 그것을 기도할 뿐 미래는 모릅니다. 내일 아침에 교통사고 날 것을 영은 미리 볼 수 있습니다. 영은 알기 때문에 영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 영으로 하여금 이것을 피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나 우리 영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기도합니다. 방언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악한 영들로부터 오는 시험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영은 미리 올 시험을 막고 장래 일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해야만 합니다(베뢰아원강, 457쪽)
 
도대체 이런 황당한 주장들은 어떤 성경을 근거로 하는가? 기가 막힌 정도를 넘어서서 차라리 슬프다. 사고를 미리 알려준다면 성락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사고를 당하지 않는가?
 
8) 기독교가 낙원을 부정한다는 김기동목사의 주장과 기독교에서 요한계시록을 계시록이라고 하지 않고 묵시록이라고 한다는 거짓말
 
- 기독교교리는 낙원을 부정합니다. 성경에 낙원이 있어도 낙원을 이야기하면 이단시합니다. 그들의 신앙고백의 교리가 예수 믿고 죽은 사람은 천국 갔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지옥갔으니 다시 올라올 수 없기 때문에 불신자의 사후존재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낙원에 있다가 부활하여 천국가는 것인데, 교리주의자들은 낙원을 부인하고 믿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의 재림 때에 첫째 부활이 없다하여 첫째부활을 부인합니다. 첫째 부활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더라도 요한계시록을 계시록이라 하지 않고 묵시록이라 합니다. 요한 혼자만 본 묵시이므로 계시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베뢰아원강, 715)
 
김기동목사는 기독교의 기초적인 교리조차 모르고 있다는 증거이다. 기독교가 낙원교리를 부정하는가? 기독교가 첫째부활을 주장하는가? 정말 웃음만 나온다.
기독교가 요한계시록을 계시록이라고 하지 않고 묵시록이라고 하는가?

 

<베뢰아(성락교회, 김기동목사) 연구보고서 2에 계속 >

 

 

참고서적
 
베뢰아원강(김기동, 2005년)
마귀론 상.중.하(김기동, 1985년, 1995년)
성령을 알자(김기동, 1986년, 1999년)
하나님의 의도(김기동, 1997년)
영혼과 육체(김기동, 1998년)
요한복음강해(김기동, 1992년)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김기동, 1998년)
하나님의 이름(김기동, 1995년)
예수그리스도(김기동, 2007년)
내가 체험한 그리스도의 신유와 거룩한 이적(김기동, 2003년)
이단종파비판2 (박영관, 1994, 예수교문서선교회)
베뢰아귀신론비판 (원세호, 1994, 국제신학연구소)
각 교단의 이단연구보고서 (통합, 합신, 한기총등)

 

 

이인규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1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2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묵묵이 (183.XXX.XXX.31)
2017-07-08 18:04:11
당신은 성경을 다 아는가?
너무 이단이단 하지 맙시다. 성경을 아는 것 만큼 말하게 되어 있는데 좀 모자란다고 이단으로 몰아 붙이면 몽땅 이단이 된다. 좀 빼딱해도 '자라는 과정'이라고 여깁시다. 자신이 성령이니 예수니 하나님이니 하면서 놀고 있는 자는 이단이지만........
리플달기
0 2
포이멘 (183.XXX.XXX.239)
2017-07-07 16:32:36
권사님께서도 아시는 내용을

성락교회의 성령론을 칼럼으로 퍼와서 사용하는 목사는 무엇인가?

게으른 목사인가? 무식한 목사인가?

얼마 전에 최바울의 빽투예루살렘을 따와서 설교를 하던데

선교가 서진을 해서 유럽으로 미국으로 한국으로

그리고 계속 서진한다는 말을 강단에서 할 수 있는가?

한국과 중국을 지나면 종말이 다가오는가?

복음이 초기에 땅 끝으로 전해진 것을 모르는가?
리플달기
2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