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천경자의 그림 ‘미인도’의 진위 여부가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 전문가들도 혼란스럽게 할 만큼 잘 그린 가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과 그렇게 나름 완성도 있는 작품도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 값어치가 하늘과 땅 차이로 갈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림에서만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아닙니다. 충격적이고 서운한 이야기이지만 오늘까지 2주 동안 소개하고 있는 ‘영화롭도다’역시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닌 위작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의심할 만 한 단서가 몇 가지 있긴 했었습니다. 먼저 이 곡이 종교적인 미사곡임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모차르트의 오페라처럼 들린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서곡 및 몇몇 아리아와 닮은 부분이 몇 군데 등장합니다.

 모차르트의 교회음악은 그의 세속음악과 매우 다릅니다. 우리의 편견과 달리 모차르트는 매우 엄숙한 신자였습니다. 당시의 카톨릭 신자들이 그러했듯이 모차르트의 교회음악을 들어 보면 그는 죽음과 연관 지어서 하나님을 매우 두려운 존재로, 인간과 상당한 거리감이 있는 제왕적 하나님으로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곡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미사곡임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나 들을 수 있는 자유로움과 축제적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이 곡이 모차르트 위작임을 유추할 수 있는 다음 증거는 마치 독립된 한 곡처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이 곡은 미사곡 중에 들어 있는 한 곡일 뿐인데 독립된 하나의 작품으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모차르트의 미사곡은 전체가 한 곡을 이루고 있지 미사곡 중의 한 곡이 독립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모차르트의 미사음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 중의 하나인 ‘대관식미사/Mass No. 15 in C major, K. 317’ 의 ‘하나님의 어린양/Agnus Dei’도 그 곡 안에서 종결 되지 않고 다음 곡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하지만 ‘영화롭도다’는 이 한 곡 안에 모든 것을 다 담으려는 작곡가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입니다. 또한 모차르트적인 것들이 너무 많이, 그리고 변화무쌍하게 담겨있어 마치 모차르트의 음악적 모자이크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모든 위작이 그러하듯, 아마 이 곡의 작곡가는 모차르트 음악으로 보이기 위해 모차르트적인 선율과 음악적 표현에 과한 집착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사실이 밝혀진 것이 수십 년 전이지만 한국에서 출판된 모든 악보에는 아직도 작곡가의 이름으로 모차르트가 당당하게 기재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몇몇 악보에는 이 곡의 제목 아래에 ‘G장조 미사’라는 전체 미사곡의 이름과 쾨헬번호(K.V. 232)까지 병기되어 있습니다. 쾨헬번호(Köchel-verzeichnis)는 모차르트의 모든 음악작품을 번호를 매겨 정리한 것으로서 ‘연대와 주제 순으로 정리한 모차르트의 모든 음악작품 목록/Chronologisch-thematisches Verzeichnis sämmtlicher Tonwerke W. A. Mozarts’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쾨헬번호 목록에서 ‘K.V. 232’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곡은 모차르트의 위작으로 분류되어 ‘K. Anh. C1.04.’의 번호를 달게 되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괜히 이야기 했나 싶기도 합니다. 한국교회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에 생채기를 내는 듯해서 말입니다. 저 또한 이 사실을 몰랐을 때는 모차르트를 생각하면서 즐겨 지휘했던 곡인데 이제는 약간 김이 빠진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이 불변의 진리인줄로만 알고 열심히 공부하며 살았는데 우리에게는 이미 그를 뛰어넘는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속담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서양의 대표적인 지성을 뛰어 넘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 경탄합니다.

 이 곡의 실재 작곡가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겸 지휘자였던 벤첼 뮐러(Wenzel Müller, 1767–1835)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뮐러가 이곡을 불순한 의도로 작곡한 것이 아니라 모차르트에 헌정하는 뜻을 가지고 모차르트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Mozart) 작곡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전히 이곡에서 모차르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그토록 자유롭게 노래하고 싶어 마지않았던 하나님을 이 곡을 통해서 모차르트와 함께 찬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