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갛게 세수한 얼굴로 밖에서 기다리는 친구에게 뛰쳐나가려 엄마 손을 뿌리치는 아이 같지 않습니까. 소풍가는 날 아침, 배낭 메고 집 나서는 1학년 꼬맹이처럼 보이기두 하고요. 두손으로 살포시 치마자락 들고 사뿐사뿐 무도회장으로 향하는 가슴 부푼 처자들 모습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금방이라도 카메라 화면에서 벗어날 태세입니다.

동해 바닷가에서 자라는 매화노루발을 보러 발걸음을 했으나 올해는 가뭄이 심해 몇 개체 겨우겨우 올라오는 것을 보고는 발길을 돌렸었습니다. 한차례 비가 내린 후 서해 바닷가 솔밭에서 막 피어나는 녀석들을 만났지요. 매화노루발이 있는 곳에는 노루발이 같이 있지만 노루발이 있는 곳에 매화노루발이 꼭 있지는 않습니다. 흔히 볼 수 없고 꽃이 노루발에 비해 예뻐서, 또는 꽃이 매화를 닮았다고 ‘매화노루발’입니다.

매화노루발은 겨울에도 푸른빛을 띠고 있습니다. 초본이지만 다년생이라 여러 해 지난 것들은 작은 나무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잎은 제법 단단한 것이 언뜻 사철나무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매화노루발은 꽃을 피우기까지 오랜 시간을 벼릅니다. 꽃망울은 일찍 맺지만 한달 이상을 꽃봉오리 상태로 있다가 5~6월이 되어서야 피어요. 그리 시간이 걸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꽃은 꽃자루 끝에 한두개씩 종 모양으로 달리는데 크기가 1센티나 되려나요, 새끼손톱만합니다.

한 곳에 머물러 움직이지 못하는 꽃들을 담을 때는 차분하기 십상인데 매화노루발을 네모 속으로 바라보는 동안 생동감마저 느껴옵니다. 삶의 시작과 끝이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식물들이 깊숙하게 품고만 있는 정중동(靜中動)! 그 은밀한 세계를 엿본 듯해 가슴이 콩닥콩닥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