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는 SF 영화의 단골 주제입니다. 시리즈마다 흥행에 성공했던 ‘터미네이터’가 대표적입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인류는 기계와의 전쟁에 직면하게 되고, 기계와 맞서서 인간군을 지휘할 지도자 존 코너를 살리기 위해 미래에서 현재로 터미네이터가 보내진다는 것이 기본 줄거리입니다.

영화에서 컴퓨터 기계인간이 보여주는 물리력은 압도적입니다. 어떤 인간도 당해낼 수 없습니다. 영화에서 디스토피아는 두 가지를 통해 현실이 됩니다. 하나는 핵입니다. 인류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핵을 보유한다고 말해 왔지요. 핵이 인류를 지켜줄 것이라는 신화가 깨지는 순간 인간은 파멸합니다. 둘째는 스카이넷입니다. 스카이넷은 군사용 컴퓨터 소프트웨어입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진화를 합니다. 스카이넷의 진화속도와 진화의 질이 놀랍습니다. 진화를 거듭한 스카이넷은 모든 기계들을 제어하고, 마침내 새로운 기계인간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 지능을 가진 스카이넷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인공지능 알파고가 세계 바둑 랭킹 1위인 중국의 커제 9단을 이겼습니다. 알파고가 마침내 바둑의 신에 등극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사의 최고경영자 데미스 허사비스는 ‘알파고가 인간을 따라잡기에는 여전히 격차가 크다’고 말합니다. 허사비스가 ‘여전히 격차가 크다’고 한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아직은 알파고가 인간 지능과 격차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머지않아서 인간 지능을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선언은 아닐까 해서 말이죠.

이미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는 지난해에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 ‘스프림스’를 선보였습니다. 인간의 몸 상태를 스스로 학습하여 몸에 위험이 오기 전에 치료를 하는 헬스 케어 분야에서 크게 쓰일 것이라고 합니다. 인공지능 스프림스가 개발되면 질병진료와 치료에 획기적인 변화가 올 것이란 기대가 한껏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구글 딥마인드사’가 인공지능 개발에 몰두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분야에서 ‘범용 인공지능’을 개발하여 인류에 기여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인류는 상업적 목적을 가지고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이 바른 길인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구글 딥마인드에서 개발하는 인공지능은 철저하게 상업용 소프트웨어입니다. 세계 최대검색엔진회사에서 개발하는 인공지능이 앞으로 계속해서 착한일(?)에만 사용될까요. 그건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인공지능은 스스로를 인식하고 학습하는 소프트웨어입니다. 하지만 구글 딥마인드의 허사비스는 인공지능의 핵심 사항을 협소하게 말합니다. “시스템 자체가 스스로 학습하긴 하지만 바둑경기에서 이기라는 목표값을 준 것은 인간이다. 인간이 제어하면 알파고는 행위를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목표값을 바꾸어 주면? 아마 스스로 진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 활발히 개발되고 있는 ‘감정 의식 로봇 페퍼’ 같은 하드웨어와 본격적으로 결합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경제적인 면을 강조하길 좋아하는 매스 미디어는 이미 인공지능이 가져올 4차 산업혁명의 풍성한 떡밥에 포섭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나 로봇은 결코 인간 문명에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닐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영역으로 성큼성큼 진격해오는데 이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자꾸만 미루면서 경제 문제로 치환해버리려는 시도에 점점 익숙해지는 우리의 모습이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