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 송화 가루가 많이 날리는 계절이라 저의 작은 차가 노랗게 물들었습니다. 주말에 아이들과 세차를 하고 차를 말리기 위해서 집 뒤에 세워 두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여기저기 시커먼 먹을 뿌려놓은 것 같은 자국이며 하얀 새 똥이 떨어져 있어 세차하기 전보다 더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떨어진 것인지 살펴보니 차를 세워둔 곳이 바로 오디나무 아래였습니다. 밤 새 떨어진 오디들이 차 이곳저곳에 부딪치며 으깨졌고 차 위에는 까만 오디들이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문득 세차한 차 한 대도 어디에 세워두는지에 따라서 깨끗하게 유지될 것인가 세차하기 전보다 더 더러워질 것인가가 결정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다시 세차를 한다고 해도 같은 자리에 세워두면 또 같은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더러워진 차를 다시 닦아서 자리를 옮겨 고로쇠나무 아래에 세워 두었습니다. 차도 사람도 그 선 자리의 영향을 받습니다. 개인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있고 삶의 자리가 바뀌어야만 해결되는 것도 있습니다.

   새로운 정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사람들의 입에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장면을 꼽자면 수석회의에서 대통령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커피를 직접 따라 마시는 장면과, 회의 시 “대통령 지시에 이견을 제기하는 것은 해도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의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마실 커피를 스스로 따라 마시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이것이 빅 이슈가 될 만큼 우리 사회는 약자의 노동과 뒷받침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또 이견을 제시하고 다각도 대안을 마련하고 나랏일을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고위직에 있는 한 두 사람의 의견에 이견을 제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 책임이 막중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업무를 잘 해내기 위해서 참모진을 두게 됩니다. 그리고 그 참모들은 자신이 돕고 있는 사람이 맡겨진 일에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조력하게 됩니다. 조력자는 헌신과 열정, 전문성 등 여러 조건과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악마의 대변자’ 역할입니다. 악마의 대변자는 어떤 정책적인 결정이 이루어지려 하면 실제로 그 결론에 반대하지 않더라도 충실하게 반대편에 서서 그 결정에 대한 문제점만을 대변합니다. 그렇게 악마의 대변자가 ‘모두가 합의하여 가장 좋은 결론’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그 결론이 최선인지를 검토하고 혹시 생길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대안들까지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대표적인 어진 임금인 조선 세종 시대에도 이런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바로 고약해와 허조 였습니다. 고약해는 임금의 사생활부터 정사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세종은 말을 듣지 않는 신하에게 “이런 고약해 같은 놈이 있나!”라고 할 정도였지만 고약해를 호조참판 자리까지 등용했습니다. 고약해는 일평생 직언을 멈추지 않았고 세종은 고약해의 직언이 기분이 나쁘더라도 귀담아 들었습니다. 조선 개국 시기부터 세종 때까지 관직을 지낸 허조 역시 강직한 발언을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주 원리원칙을 앞세워 세종과 언쟁을 벌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세종 당시 우의정, 영의정을 모두 역임했습니다.

     원리원칙에 따라서 직언을 하는 신하, 자신의 신념에 따라 평생 왕에게 “이의있습니다."라고 외친 신하, 이들을 더 나은 정치를 펼치기 위한 동력으로 받아들인 왕. 그 시대에 문화는 융성했고 민중의 삶은 안정되었습니다. 타인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당당하게 의사표현을 하고도 인정받을 수 있을 때 나의 삶도 당연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흔들리는 갈대처럼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법과 신념에 따라 바른 길을 가는 사람이 많아져야 더 나은 세상이 옵니다.

   성경에서 다윗이 간음과 살인죄를 저질렀을 때 선지자 나단이 이를 책망했고, 북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에게 엘리야가 용감하게 직언했습니다. 한 사람은 그 책망을 듣고 통회자복하고 울며 회개했고 삶을 돌이켰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직언한 이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고약해’는 존재해 왔습니다. 이 ‘고약해’의 말에 귀를 기울인 이는 위대한 왕이었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고약해’를 눈에 가시로 여겨 죽이려 한 사람은 악한 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21세기 이 시대에도 수많은 ‘고약해’들이 직언을 함으로 미움을 받고 상해를 입으며 일터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원칙에 어긋날 때 “이의 있습니다."라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말할 수 있는 ‘고약해’는 귀한 사람입니다. 또 자신에게 고약한 사람의 말일지라도 그것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의 삶의 자리가 바로 이런 ‘고약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비옥한 터가 되기를 기대해 보게 됩니다.

  오늘 하루, 저도 작은 실천으로 먼저는 지키기 어려워 피하고 싶었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다음은 제 귀에 거친 말을 하는 타인을 무시하고 미워하지 말고 그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