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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끝이 예루살렘인가?
이인규  |  dsmed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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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6월 04일 (일) 23:43:13
최종편집 : 2017년 06월 07일 (수) 20:58:40 [조회수 : 3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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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성경에는 분명하게 예수님의 재림의 시간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하고 있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한부종말론이 성행을 하고 있다.
더욱이 마태복음 24장14절의 “끝이 오리라”와 사도행전 1장8절의 “땅 끝”을 혼합시켜서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땅 끝”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단정하여 “예루살렘, 북한, 이슬람국가등...”으로 해석하여 그곳에 복음이 전하여지면 예수가 재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해석을 자기만이 알고 있는 시대의 마지막 징조라고 주장한다.
 
어떤 단체에서 “땅 끝”이 “자기 자신”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보았다. 그곳은 기독교가 잘못된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자기 자신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땅끝”이 자기 자신을 개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참으로 기발하다 못해 웃음만 나온다. 성경의 단어를 비유풀이하여 성경을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하는 신천지와 무엇이 다른가?


   
1) “땅 끝”의 의미
                              
성경에서 ‘땅 끝’은 어느 특정한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땅 끝’이라는 의미는 거리적으로 매우 먼 곳을 말할 수도 있다. 또한 모든 곳, 세계 전체를 말하고 싶을 때에 관용구로서 ‘땅 끝’을 언급할 수도 있다. 
                                   
‘땅 끝’이 먼 거리를 뜻하는 표현은 다음과 같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마 12:42)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롬 10:18)
  
만약 땅 끝이 예루살렘이나 북한을 뜻한다면, 남방여왕이 예루살렘이나 북한에서 왔는가? 위 성경본문은 어느 특정한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먼 거리’를 뜻하는 표현이다. 더욱이 마 12:42와 롬 10:18의 헬라어 원문을 보면 ‘땅 끝’은 복수명사로 기록되어 있다.                            
‘땅 끝’이 가장 먼 거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온 세상’을 뜻하는 표현도 있는데, 다음과 같다.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막 13:27)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행 13:47)
 
다시 말하여 성경적인 “땅 끝”은 어느 특정한 장소나 지역을 말하지 않는다.


                                            
2) 마 24:14의 의미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적지 않은 선교단체에서 이 본문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 마치 우리 인간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면 그 때에 비로소 종말이 온다는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성경본문을 땅 끝과 연결시켜서 우리가 어느 특정지역을 전도하면 예수가 재림한다고 주장한다.
                                         
[공동번역] 이 하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백성에게 밝히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끝이 올 것이다."
[표준새번역] 이 하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서, 모든 민족에게 증언될 것이다. 그 때에야 끝이 올 것이다.
[현대인의성경] 이 하늘 나라의 기쁜 소식이 온 세계에 전파되어 모든 민족에게 증거가 될 것이니 그제서야 세상이 끝날 것이다.
                                        
성경은 “전파된다”는 단어가 수동적으로 기록되어있다. 즉 다시 말하면 (인간이 주어가 되어) 인간이 열심히 노력을 하여 복음을 이 세상 끝까지 능동적으로 전파하게 되면 그 때에 종말이 온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주어가 되어) 복음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어지면 하나님이 정하신 그 때에 종말이 온다는 뜻이다. 혹간은 기독교인들의 사역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므로, 동일한 의미가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그러나 위 본문은 기독교인으로서 전도적인 사명과 역할을 말하는 것이지, 복음의 전파가 어느 지역에 들어가야만 종말이 온다는 뜻이 아니다. 즉 그 시간과 때는 인간의 행위를 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시는 시간과 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늦게 전파하면 종말이 늦게 오는가? 바꾸어 말하여,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빨리 전파하면 종말이 빨리 오는가?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백투예루살렘이라는 주장은 땅끝을 예루살렘으로 정해 놓고 예루살렘이라는 지역으로 복음이 들어가면 그 때에야 비로소 예수가 재림하신다고 주장한다. 원래 백투예루살렘은 중국에서 먼저 주장된 구호인데, 그와 같은 주장을 한 일부 단체들이 중국에서는 이단들로 분류되고 있다.


 
3) 영적도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성경구절은 지역적인 영적도해 사상을 말하지 않는다. “땅 끝”을 어느 특정한 지역으로 해석하는 자체가 문제가 있으며, 전도는 지역 귀신과의 전쟁이 아니다. 지금도 이러한 영적도해 사상을 가르치는 선교단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 선교단체의 신학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영적도해는 피터 와그너, 신디 제이콥스, 밥 베켓, 조지 오티스, 루이스 부쉬, 존 도우슨등이 주장해 왔으며, 피터 와그너와 신디 제이콥스등 신사도운동 인사들이 주도적인 입장에서 가르쳐 왔으며, 루이스 부쉬가 주장한 “10/40 Window”의 배경이 영적도해 사상에 근거하고 있으며, 특히 존 도우슨은 예수전도단의 세계 총재이며, 예수전도단에서도 이러한 영적도해와 땅밟기기도에 대한 책들이 많이 발간되었다. 또 이러한 영적도해에 대한 땅밟기기도는 인터콥의 주 메뉴이었다.
    
심지어 예루살렘을 사탄의 본거지라고 주장한 단체도 있었도, 미국의 대통령과 이스라엘의 수상을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한 단체들도 있었다. 지역마다 귀신들이 있어서 이들을 대적기도, 선포기도, 땅밟기기도를 하여 쫓아내야만 기독교가 전도될 수 있다고 주장한 단체들도 있다. 이와 같이 세상을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과 전쟁 구도로 보는 해석은 기독교의 신학이 아니며 헬라철학의 이방적인 사상이다. 과거에 이단성이나 문제가 있다고 비판을 받은 단체들의 공통된 특징은 자기들의 단체 내부에서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변명을 하거나 “억울하게 조작을 당했다”고 말하며,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모두 수정하였다”고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과거에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는데 왜 수정을 하는지 의문이다.
 
“또한 사탄의 세력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직경 3000Km 전체를 강한 어두움의 진을 형성하여 장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바로 거룩한 곳에서 앉아있는 가증한 것, 즉 적그리스도를 멸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시기 때문입니다. 곧 마지막 어둠의 세력, 미운 물건, 즉 가증한 적그리스도가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에 앉아 세계를 호령하며 위엄을 떨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주님께서는 천군·천사들과 함께 강림하시어 적그리스도를 멸하고 인류역사를 마감시킬 것입니다, 사탄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완전히 봉쇄하고 어둠의 진을 치고 지금까지 있는 것입니다”(최바울, 백투예루살렘, 405쪽).
    
총신대 신학대학원장이었던 심창섭교수는 ‘인터콥의 사상도해’라는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아래 글은 위에서 인용한 신사도운동의 주장과 일치된다.
                                                  
“루이스 부쉬의 10/40창문 개념을 설명하면서 이곳 지역들이 가장 선교가 안 되고, 선교에 황무지인 것은 이 세상 신, 즉 지역 악마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인식이 있다. 복음의 서진 운동 즉 백투예루살렘 운동을 하게 될 때 전략적 선교를 수행해야 하는데 이것은 소위 21세기 운동의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전략적 영적 전쟁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다. 원래 전략적 영적 전쟁이란 피터 와그너를 중심으로 한 소위 신사도개혁운동의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핵심이론이다. 사단이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있어서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하시지 못한 제한된 영적 피조물이기에 그의 졸개인 악령들과 더불어 세계의 중요 지역에 중심 거점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민속학에서 나오는 지역 수호신의 개념을 놓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선교는 이 이론에 있어서 세계의 중요 지역을 장악하는 지역 악마의 정체를 드러내고 쫓아내면 되는데 이렇게 될 때 선교현장의 교회설립과 교회 성장 그리고 모든 선교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 지역을 장악하는 지역 악마을 쫓아내고, 예수님의 보혈은총으로 그 지역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이론으로 선교를 수행하면은 우선적으로 단기정탐 팀을 보내어 그 지역을 장악하는 악마의 정체를 규명하고, 그 지역의 교회지도자들과 연합하여 기도운동을 벌여야 한다. 지역 악마의 정체를 알아내고, 기도운동으로 악마가 추방되었다는 확신이 들게 될 때 대규모의 선교 팀을 조직하여 그 지역 전역으로 흩어져서 각종 선교사역을 수행하게 된다. 최한우씨는 21세기 운동의 지도자들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전략적 영적 전쟁 개념을 전략적 단기선교라는 개념과 특정 지역에서의 평화행진이라는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4) 마 24:14의 끝이 언제인가?
                                     
과연 마 24:14가 복음이 서진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면 종말이 온다는 뜻일까? 이미 앞에 올린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결코 그런 내용이 아니다.
                                      
마 24: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마 24: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마 24:3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평행구조인 마가복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막 13:4)
                                                                 
예수님은 제자들과 성전건물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예수님은 성전이 돌 하나도 나지 않고 무너짐을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인지”를 질문하고 있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두가지의 질문을 하고 있다. 첫 번째 질문은 “어느 때”에 “성전건물이 무너지는 일”이 있을 것인지를 질문하고 있는 것이며, 두 번째 질문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 조금 다르다. 마태복음은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이며 마가복음은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는 것으로서 ‘징조’에 대한 것을 물어본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시고, 약 40년 후(AD 70년)에 로마 티투스에 의하여 예루살렘성전이 함락되어 무너졌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5) 멸망의 가증한 것
                                 
그렇다면 성전이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진 사건이 과연 언제였는가를 살펴보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지어다” (마 24:15-16)
   
마 24장으로 임박한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멸망의 가증한 것”을 교회에서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징조로 해석한다. 그러나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스러운 것”은 다니엘서 9:27, 11:31, 12:11의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뜻한다.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은 주전 168년 수리아왕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BC 175-164)가 예루살렘 성전의 번제제단에 세운 우상(제우스신)을 가르킨다. 그런데 마 24장15절은 과거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래 일을 지칭하고 있으므로, 그 글을 읽는 독자에게 다니엘이 예언했던 에피파네스의 성전 훼손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장래에도 그러한 일이 또 다시 나타날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공생애 이후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주후 68년에 베스파시안이 예루살렘을 쳐들어오고, 주후 70년에 티투스에 의한 로마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공격하고 성전을 파괴한다. 그 때에 로마군대는 독수리가 그려진 휘장을 들고 성전에 들어가 동편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고 경의를 표하라고 강요하였다고 한다. 또한 유대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전쟁사에서 “그 도시가 점령되었을 때에 로마인들은 자기들의 우상들을 성전으로 가져가 동쪽 문 위에 놓고 희생제물을 바쳤다”라고 기록한다.
                                   
주후 68년에 로마의 베스파시안 장군이 예루살렘으로 진군하였을 때에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정반대로 성 안으로 들어감으로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남녀노소할 것 없이 학살당하였다고 하는데, 특히 “산으로 도망하라는 예언”을 기억하였던 유대인들은 ‘벨라’라고 하는 산악지역으로 도망함으로서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다고 한다(W. Hendrikson)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지어다” (마 24:15-16)
                                
이 예언은 일차적으로 주후 68-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을 말한다고 보며, 멸망의 가증스러운 것은 성전 제단 위를 차지한 이방종교의 우상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천국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때에 끝이 온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예루살렘의 종말을 말한다고 본다. 마태복음은 다니엘서가 기록한 에피파네스의 “멸망의 가증한 것”이 뜻하는 예표적이며 상징적인 의미를 이 성경구절을 읽는 유대인들은 다시 깨달으라는 뜻이며, BC 168년의 사건을 통하여 장차 일어날 AD 70년의 티투스의 예루살렘 멸망사건을 다시 예언한 것이다. 그 증거로 누가복음은 평행구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눅 21:20)
                                      
Richard. T. France가 마24장에 대해서 말한 것과 같이 “많은 독자가 종말의 표적을 찾느라 이 장을 열심히 살펴보지만 이 장의 많은 부분 특히 이 대목의 주제는 (그 어떤 의미에서든) 너무나 쉽게 종말이 임박했다고 결론 짓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라는 내용을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 24:14)
                                   
다시 말하여 위 성경구절에 대해서 그 사건과 시간에 대해서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추측으로 단정을 하여, “복음이 서진하여 한국과 중국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면 종말이 되어 예수가 오신다”고 해석을 하는 것은 오역이 분명하다. 더욱이 이러한 구절을 인용하여 지금이 마지막 시대라고 하며 임박한 종말론을 강조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본문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정리를 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땅 끝’이라는 의미는 예루살렘이나 북한이 아니며, 어느 특정한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혹은 아주 먼 거리를 뜻하는 관용적인 표현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둘째 성경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어느 지역에 복음을 전하면 종말이 온다는 인위적이고 능동적인 뜻을 말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종말의 시간과 때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셋째 마태복음 24장의 일차적인 해석으로는 AD 68-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하는 구절로 해석하여야 한다.
넷째 지역귀신에 의한 영적도해 사상에 입각한 백투예루살렘은 중국 이단들과 신사도운동의 주장으로서 이방적이며 무속적인 이원론으로서 잘못된 주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섯째 예언의 다중적인 성취의 관점에서 재림과 우주적인 종말의 예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하여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느 사건이며 어느 시간인지를 임의적으로 단정하여 해석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해석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은 24장의 후반부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 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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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교 (118.42.233.31)
2017-06-05 14:51:36
권사님은 웬만하면 예수님이 안오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거 같아요 ^^ 종말론이 위험할 수 있고 그로 인한 폐해도 있지만 마태복음 24장 말씀을 과거의 사건으로만 화석화시킴으로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이 뭐가 있을까요?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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