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1. 한 어머니가 노래방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고등학생 딸의 말을 듣고 취업상담교사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오후에 카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다 격분하여 교사를 찔렀던 것이다. 목을 크게 다쳐 병원으로 가던 교사는 길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고, 어머니는 사건 1시간 후 자수했다. 변호인은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이라고 선처를 호소했으나 바로 어제 법원은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판결 2. 한 30대 남자가 헤어지자는 동거녀를 때려 숨지게 했다. 남자는 숨진 여인을 동생 소유의 밭에 시멘트를 부어 암매장했다. 경찰 수사에 덜미를 잡혔으나 그는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다 유골이 발견되어 마침내 자백했다. 이 살인사건에 대해 법원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며칠 전 2심이 열렸고 재판부는 이 5년을 3년으로 감형했다. 우발적으로 범행임을 고려하고 유가족과 합의를 봤다는 것이 양형의 이유였다.

살해 후 암매장 사건에 대한 양형의 이유 중 유가족과의 합의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민사사건도 아닌 형사사건에서 합의가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경험했던 것이다. 특히나 이 사건은 살인사건이었다. 형사사건에서 국가는 죽은 자를 대신하여 법정에 범인을 고소한다. 이 순간 국가는 죽은 자의 억울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가족이라 할지라도 이 자리에서 당사자가 아닌 사람의 목소리가, 합의가 판결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도대체 어떤 종류의 합의였을까? 새롭게 알게 되는 부조리가 이 세상에는 아직도 이렇게도 많다.

정의의 여신을 뜻하는 유스티티아(Justitia)는 그리스신화 속 정의의 여신 디케의 로마식 버전이다. 한 손에는 검을 들고 한 손에는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은 중세를 거쳐 아이템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되는데 바로 눈을 가린 안대다. 검과 저울이 상징하는 바는 명징하다. 정의는 준엄하게 심판해야 하며, 또한 공정하게 심판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중세시대에 추가된 안대는 처음 도입되었을 때에는 부정적인 의미에서였으리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권력자들의 구미에 맞춰 제멋대로 집행된 법에 대한 풍자와 조롱의 의미로 시작되었을 이 안대는 이후 점점 더 긍정적인 의미로 발전되어 오늘날 정의의 여신의 핵심적 요소가 되었다. 그 발전된 현대적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정의는 결코 사람을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가 권력자이든, 부자이든, 정의는 그가 누구인지에 의해 판결을 굽히지 않는다. 이런 의미로 현대의 정의의 여신은 눈이 가려진 채 검과 저울을 들고 서 있다. 사실 이 가린 눈은 준엄한 검과 공정한 저울보다 정의와 관련하여 훨씬 더 결정적이고 본질적이다. 법의 정의란 결국 적용의 공평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뿌리 깊고 지독한 성차별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적용의 공평함을 상실한 판결을 바라보며 길 잃고 상처 받은 정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너희는 또한 가난한 사람의 송사라고 해서 치우쳐서 두둔해서도 안 된다.”(출 23:3) 정의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성서의 하나님 역시 판결에 있어 적용이 공평해야 함을 명령하신다. 심지어 죄인이 가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의는 연민으로도 굽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되고 누구에게는 안 된다면 그것은 이미 정의가 아니며, 정의를 넘어선 사랑 또한 이미 사랑이 아니다. 더 나아가 믿음으로 얻어지는 의를 말할 때조차 우리는 의의 공평무사(公平無私)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정의가 부디 강물처럼 이 땅에도 흐르기를.

“재판할 때에는 공정하지 못한 재판을 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여 두둔하거나 세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편들어서는 안 된다. 이웃을 재판할 때에는 오로지 공정하게 하여라.” (레 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