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향 후배의 출판기념회

빗방울 하나가    -강은교-

무엇인가가 창문을 똑똑 두드린다.

놀라서 소리나는 쪽을 바라본다.

빗방울 하나가 서 있다가 쪼르르륵 떨어져내린다.

우리는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

보슬비가 창 밖에서 연두 나뭇잎들을 두드리고 있는

소리가 들려온다.  신의 심장 박동소리다.

어제 오후 두 시간 가까이 운전을 하고 Ellicott City  Maryland

한  성공회 상당에서 개최하는 고향 후배 K 의 환갑잔치 겸

책 두 권의  출판 기념회,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단편 소설집),

‘워싱톤 강창구  ‘워싱턴 강창구(시사 평론집) 에 다녀왔다.

나는 교포 작가들의 출판 기념회 초청에 축하화한을 보내거나

간단한 메모와 함께 책 비용을 우편으로  송금하는 걸로 대신하곤  한다.

그  작가나 글을 싫어해서가 전혀 아니다.

그 이유는  괘벽스런  나의 오랜 독서습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인테넷 서점들을 통해서  읽을 책들을  면밀히 사전  검색한 후

한번에 수십권씩을 주문한다.   책이 UPS 로 배달되면 우선 책의 앞 부분

 20 페이지를 대충 읽어보고 읽을 책들을 선택한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책들은 서재  장식용으로 사용한다.

책의  선택기준은 그  책의 문학적  수준이나 예술성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남녀 간의 연애처럼   나의 개인적인 기호와

책과 나 사이의 섬세한 궁합으로 결정한다.

다른 한 가지 선택기준은 내가 비록 ‘독서광 파’ 에 속하지만

경제학에 나오는 ‘기회비용’ 이론을  철저하게 적용한다.

며칠 전에 고향 후배  K 작가 가

“ 선배님, 너무 먼 길이고 해서  저의  출판 기념회에

선배님을 초청하는 것이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하는

간단한 전화 멧시지와  함께 ‘출판기념 사인회’ 순서지를

카카톡으로  보내왔다.

순서지에는 나를 축하 말씀 연사 8명 중 한 명, 그리고

축하노래 가수로 명시되어 있었다.

솔직히 무척 난감했다.

나는 이름 앞에 어마어마한  타이틀이 붙어 있는

7명의 교포 유명인사들에  틈에 낄만한  위인도  못되고,

그런 자리에서 축가를 부를만한  명창도 아니다.

더구나  오랫동안 교포사회와 담을 쌓고 살아온 탓으로

교포신문에 실린 그의 글들을 거의 읽어본  적이 없는

그의 글에 대한  문외한 이다.

가끔  아주 가까운 지인들의 출판 기념회에 참석할 때마다

저자의 책이나  글들을 제대로 정독해 본 적이(?)  없어 보이는

평론가들의  뛰어난 상상력과 용기에  감탄하곤 한다.

그들은 작가를 고무풍선처럼  하늘 높이 띄워

‘노벨 문학상 추천 후보”  문턱에서 터뜨리기가 일 쑤다.

‘작가는 오직 글로만  자신을 말하고, 작가 작품에 대한 가치는

독자들이 자진해서 지불하는 매출 총액으로 평가된다.” 는 것이

나의 평소 지론이다.

나라고 어찌 나의 글에 대한 일말의 긍지와 자부심이 없겠는가?

그러나  이 세상은 나의 상상력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높고 깊으며,  지구촌  방방 곳곳에

천하의 재패를 끔꾸고 있는 수많은 영웅들과 호걸들이

용틀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특히 인테넷 시대는 ‘만인 작가시대’ 이다. 자기 이름 앞에

시인이나 작가라는 단어만 큼직하게 붙일 수 있는 용기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유명 시인, 유명 작가 행세를 할 수 있는 사회다.

어찌 생각해 보면 슬픈 작가들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슬픈 한 에피소드가 있다.

누구에게도 시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한 슬픈 시인이

외딴 집에서 살고 있었다. 달이 밝은 오느날 밤 한 도둑이

집에 침투해서 값진 물건들을 자루에  가득 챙겨들고

문을 열고 막 도망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도둑님,  제발 오늘 밤 저의 간절한 소원 하나만

들어주고 가싶시요” 하는 정중한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차 들켰구나!’  도둑은 깜짝 놀라 어겁결에 자루를

마루에 떨어뜨리고 도망갈 채비를 했다.

“ 제발……도둑님! 저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그 자루에 찬

물건들을 모두 다 당신에게 선물하겠습니다.” 이번에는 금방이라고

울음이  떠져나올 것 같은 목이 매인 애절한 목소리였다.

“애라 모르겠다. 이왕 지사 걸린 것,  최악의 경우 도둑물건들을

 빼앗길 것밖에 없지 않겠는가.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 준다는 데

이 상황에  주인의 간절한 소원이 무엇인지 못들어 주겠는가? “

도둑은 뒤돌아서 서 주인에게 “당신의 그 간절한 소원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도둑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평생 시를 써온 시인입니다.

그런데 여지껏 나의 시를 읽고 찬사를 보낸 사람이  단 한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밤이면 혼자서 시를 읽으며 감탄하는 것이 나의  습관입니다.

오늘 밤 도둑님께서 제가  읽는 시들을 듣고 감탄사들을 연발만

해  주신다면 도둑님이 원하는 것들은 모두 드리겠습니다.”

이 이야기의 슬픈 후편은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기겠다.

“여보, 그 먼거리를 혼자서 운전을 하고 꼭 가야 해…” 하고

걱정순이 케롤이 출발하려는 나에게 마지막 제동을 걸었다.

“ 그래 꼭 가야 해. K  후배는 이 지역에 살고있는

나의 유일한 고향 후배거든….”

“그리고  몇년 전 내 생일파티  때는 가게 문을 닫고

부부가 참석해서 판소리 공연을 벌인 적도 있잖아…”

K 는 14여년 전 이 지역에서 개최된  ‘흥사단 미주 전국총회’ 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해우하게 된 고향후배다.

한국 해병대 출신인  그는 한마디로 만능 박사다.

글, 운동,  노래,  춤, 말, 사업, 구라 …. 정말로 능통하지 않는 분야가

별로 없어보인다.   그에 더해  그동안 적극적인 사회활동과

봉사를 통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묵직한 현직, 전직 감투 몇개를

거뭐쥐고 있다.  그 무엇 보다  2002 년도에 미국으로 이민 온 후

 바쁘고 고달픈  이민 생활 중에서도  한국 판소리를 3년간 배워

명창급 수준이 되었고,  마라톤 동호회에 조인하여  연마한

마라톤 실력(3시간 30분 01초 기록)으로 치열한 경쟁의 예선을 통과하고

금년 4월에는 그 유명한  마라토너들의 꿈인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당당하게 완주하고 돌아왔다.

그런 그는 내가 고향 선배라는 이유로 평소에 나를 무척 따르고 챙긴다.

좋은 말들이나 찬사들은 축사를 하실  다른 7분들이 차고 넘치도록

할 것이고, 노래는 가사를 끝까지 기억하고 있는  애창곡인

‘기다리는 마음’ 을 부르면 될 듯 했다.

그런데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래 차리리 고향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낫겠다.’

그의 다 방면에 걸친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정열의 뿌리는

그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일 것이다.

나는 한 때 풍수지리와  수맥 연구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그 연구를 통해서 얻은 나름데로의  지혜는

“인간들의 성격과 기질, 운명을 결정 짓은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혈통이나, 가정환경 및 교육뿐 아니라 태어나서 자란 고향의

토질,  지형, 기후, 산세…. 그리고   바람과 물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는

사실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인테넷을  열고 K가 때어난  고향

해남군(海南)군  화산(花山) 연정리(蓮井里)를 검색해 보았다.

내가 태어난 마명(馬鳴)리에서  2 키로매타 떨어져 있는

한 작은 촌락이다.

‘남쪽 바닷가에 위치한   꽃동산, 연꽃끼들이 여물가는 밭”

그 동네 이름만으로도  한편의 아름다운  詩가 되고도 남았다..

나는  그  옆 농네인  ‘말이 우는  땅 馬鳴리에서 태어나

13년을 자랐다.

연정리는 천동기 시대의 무덤인 고인돌(지석묘)  48기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전라남도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다.

지석묘는 본래 촌락의  무사들이나  고관들의 묘라고(?)

나는 알고 있다.  또,  말이 우는 곳이라는 의미는  

역사적으로 기마민족의 후예들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해남은  역사적으로  제주도, 진도에 이어  조선 시대

3대 유배지 중 하니다(사실은 해남과 진도는 지리적으로 같은 지역이다).

베스트 셀러 수필집 ‘나무야 나무야”  반항 작가 고 신영복 교수가

 마지막 수필집(?)인   ‘변방을 찾아서’ 에서 ‘해남 땅끝 마을’을

그의 첫 순례지로 택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 나의 아호인 해암은 중학교  이학년 때  그 땅끝 마을 해변가에서

내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내가 글에 아호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건방지고 오만하다며 비난하는 지인들도 가끔씩 있다.)

해남은 반여자들(REBELLIONS)의 땅이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선비 고산 윤선도 유배생활을 한 곳이기도 하고

정약용이 유배생활은 한 강진과 인접해 있다. (정약용의 처는 해남 사람임)

 한국의 대표적 반항 작가와 시인들

소설가 황석영(윤선도 집안이 애갓집), 시인 김남주, 시인  황지우,

그리고 무소유의 반역 스님  작가  법정스님(나의 집안)을 배출한 모판이기도 하다.

교통체증 탓으로 20분 정도 늦은 시간에 출판기념 사인에 도착할 수 있있다.

보스톤, 뉴욕, 펜실베니아, 메릴렌드, 버지니아 지역에서 모여든

60여명이 넘는 축하객들 자리를 잡고 파티는 이미 시작되었다.

필요하면 꿀벌때들 처럼 날아들었다가

이해관계가 없으면 철새들 처럼 떠나가는

삭막한  인터넷 시대에 보기드문 훈훈한 분위기였다.

매사를 뜨거운 가슴으로 두드리고  성실히  가꾸어 나가는

나의 친구이자 고향 후배인  K  작가의  넉넉한 성품 덕일 것이다.

04/24/2017 아침 메모

해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