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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주 교수의 신앙이야기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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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4월 19일 (수) 00:17:38
최종편집 : 2017년 05월 09일 (화) 13:08:17 [조회수 :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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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주 교수의 신앙이야기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이덕주의 신앙으로 풀어낸 삶, 사랑 그리고 죽음

 

신앙과지성사 / 16,000원

 

 

   
 

“내 힘으로 너희 삼남매를 키울 수가 없구나. 그래서 어제 저녁 예배당에서 기도하던 중 너희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작정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부터 너희는 내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 자식이다. 그런 줄 알아라.” - 너희는 내 자식이 아니다

 

“야, 이덕주! 건방 좀 그만 떨어라!” 그건 아내 말이 아니라 그분 말씀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답시고 강단에 올라가 객담만 늘어놓은 나를 향한 그분의 호통이자 꾸지람이었다. 얼마나 부끄러운지! 얼마나 창피한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 발람의 나귀가 된 아내

 

우리는 그냥 십자가를 바라볼 뿐이었다.‘ 당신이 지셨으니 우리는 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내가 바로 그랬다. 오랫동안 내가 져야 할 나의 십자가를 잊고 살았다. - 거꾸로 십자가

 

그는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교회를 사랑하다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짧은 목회, 조용한 죽음이었지만 그 여운은 30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마음속에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 - 그래서 얻은 것은 사랑

 

“여기까지 왜 왔소?”

“죽으러 왔지.”

“그래서 얻은 게 뭐요?”

“사랑.”

 

 

내가 아는 이덕주

그동안 이덕주 교수는 한국기독교 역사학자로서 괄목할 만한 많은 역작을 내놓은 바 있다. 최근에는 이 시대가 요청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부흥사로서 그의 영성과 지성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덕주 목사가 누구냐? 그의 신앙과 학문은? 그의 신학은 언제 누구의 영향을 받고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그가 외치는‘ 자기신학’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매우 적절한 시점에서 출간되었고,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로 정년을 한 해 앞두고 자신의 삶과 신앙을 정리한 것이라 더욱 값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목사님은 단연 이덕주 교수지만 그와 30년이 넘는 신앙과 학문의 교분을 나누었음에도 사실 나는 그의 개인사에 관해서는 자세히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의 초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가면서 이 교수의 삶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으며, 나도 모르게 간간이 눈시울을 적셨다. 그리고 어떻게 이런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신앙고백적인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하니 이 교수가 더욱 믿음직스러워졌고 나의 신앙적 동지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진정성이 듬뿍 담긴 이덕주 목사의 신앙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청년 시절 어거스틴의『 참회록』을 처음 읽었을 때 받았던 그 충격과 감격의 무게를 이 책에서도 그대로 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과찬일까? 윤경로 장로(전 한성대학교 총장)

 

차례

 

프롤로그┃끝판에 처음 쓰는 나의 이야기

 

1. 나의 어머니, 나의 신앙

너희는 내 자식이 아니다

부엌에서 만난 질투하시는 하나님

오르락 기도 내리락 기도

어머니의 마지막 영적 전투

대한수도원 회심기

나의 호 ‘만보’ 풀이

 

2. 가르치며 배우는 찬샘골 신학교

히말라야를 보았다

얼음 깨면서 얻은 깨달음

빚진 자의 심정과 성령의 능력으로

거꾸로 십자가

겨자씨 방언 기도회

탈북민 신학생들의 살아계신 하나님

 

3. 말씀 속에서, 말씀을 읽다

하나님의 저울

신명기 하나님에서 창세기 하나님으로

칼국수 집에서 만난 하나님

마른 막대기로 목회하기

화살기도와 들을 귀

잠재우는 부흥회

 

4. 그분의 세미한 음성

평양에서 맘껏 부른 찬송가

무너진 묘비를 다시 세우다

강화 초대 교인들의 ‘일자 돌림’ 신앙

주문도 한옥 예배당의 묵언수도

머물 때와 떠날 때

야곱의 우물에서 비밀이 풀리다

 

5. 회개, 은총 가운데 은총

안식은 전공 필수과목

교수 반성문

발람의 나귀가 된 아내

목사와 장로가 주고받은 고백

 

6. 너의 처음 행위를 가지라

왜 모세는 십계명 돌 판을 깨뜨렸나

기도회는 많은데 기도는 적다

허물어라 세우리라

오늘의 신학생 95개조 논제

 

에필로그┃그래서 얻은 것은 사랑

 

 

끝판에 처음 쓰는 나의 이야기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쓴다. 전공이 역사(History)이기도 했지만 그동안 나는 남의(His/Her) 이야기(Story)를 주로 쓰고 말해 왔다. “그는 이렇게 살았다.” “그의 신앙과 사상은 이러이러하였다.”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 등등. 그렇게 지난 130년 한국교회사와 관련된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면서 가급적 내 생각과 의견을 드러내거나 반영하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역사학자로서 지켜야 할 객관적, 중립적 자세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쓰고 말한 것은 남의 것을 남에게 소개하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직접 내 말로 하지 않고 역사 주인공의 입을 통해, 역사자료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하려 하였다. 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시오.” 하는 식으로.

그런데 최근 들어 학생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많이 받고 있다.

“교수님은 어떻게 해서 신학교에 들어오셨어요? 왜 한국교회사를 전공으로 택하셨어요? 교수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한테 ‘자기신학’을 하라고 하시는데 교수님의 ‘자기신학’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교수님이 만난 하나님, 교수님이 체험한 성령, 교수님이 깨달은 말씀, 교수님의 신앙 이야기 말입니다.”

  내 이야기, 내 신학을 이야기해 달라는 요구다. 그동안 나는 신학교에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 고백’에 관한 구절을 근거로 “소위신학에서 벗어나 자기신학을 하라.”고 강의해 왔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번 질문하셨다. 첫 번 질문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였다. 이에 대해 제자들은 주변사람들에게 들은 대로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합니다.’ ‘엘리야라고 합니다.’ ‘선지자 중 하나라 합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틀렸다, 맞았다 하지 않으시고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여기서 베드로의 ‘주님은 그리스도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는 답이 나왔고 예수님은 그 답을 들으시고 ‘네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셨다. 여러분이 신학교에 들어와서 공부하는 내용도 두 단계를 거친다. 첫 단계는 남들이 소개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공부를 할 것이다. 바울은 뭐라 했고, 어거스틴은 뭐라 했으며 루터는, 웨슬리는, 바르트는 뭐라 했는지, 그리고 감신에서 강의하는 교수님들을 통해서도 다양한 신학을 소개받을 것이다. 이것을 ‘소위신학’(所謂神學, so-called theology)이라 한다. 남들이 고백하고 이해한 신앙의 진리를 배우는 과정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자기신학’(自己神學, self-confessed theology)이다. 직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령을 체험하고 깨달아 알게 된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신학과 목회이다. 여러분이 신학교에 들어오기까지 여러분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소위신학’이 무너지고 여러분 자신의 체험과 고백을 바탕으로 수립되는 ‘자기신학’의 감격을 누리기 바란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이런 강의를 해왔는데 이제 학생들이 내게 그 답을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문제를 내면 학생들이 답을 했는데 이번에는 학생들이 낸 시험문제를 내가 푸는 방식이 되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한 공생애 3년을 마감할 즈음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그런 식으로 나도 정년 은퇴를 1년 앞두고 학생들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았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학생들의 입을 통해 주님께서 내게 던지신 질문이라고 해야 옳을 듯하다.

  여러모로 이 책은 교수로서 나의 마지막 과제물이 될 것 같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수학여행을 하시던 중 던지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과제)을 나에게도 던지신 것 같다. 나는 그 질문을 구체적으로 “너는 나를 언제, 어떻게 만났느냐?” “너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느냐?” “나로 인하여 네게 어떤 깨달음이, 네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 “내가 너를 통하여 하고자 했던 일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느냐?”는 문제로 정리했다.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이다. 그렇게 내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내 신앙의 뿌리인 어머니 이야기부터 하게 되었다. 그래서 1부에서는 나의 어머니 윤태신 권사의 ‘아브라함’ 믿음과 그것이 내게 어떻게 전승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우리 가족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에 현주 형이 여러 경로로 밝힌 바가 있지만 내 입으로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난과 고독으로 점철되었던 내 어린 시절 이야기, 중학교 때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기도를 한 이야기 등이다.

  이 책의 2부와 3부, 4부에서는 최근 10년, 내가 감리교신학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말씀과 영적인 경험을 소개하였다. 감리교신학대학이 자리 잡고 있는 냉천동 언덕은 1972년 학부생으로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40년 넘게 내게 복음 안에서 얻는 진리와 자유가 어떤 것인지 깨닫게 해 준 은총의 언덕이었다. 학교 강의실과 연구실뿐만 아니었다. 외부 교회와 기관으로부터 강연과 강의, 설교 부탁을 받고 가서도 많은 은혜를 받았다. 나는 감신 교수 중에 외부 설교를 자주 하는 축에 속한다. 내가 외부 강연이나 설교 부탁에 응하는 이유는 내가 목사 안수를 받을 때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순종하고 가겠습니다.” 했던 서원기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학은 교회로부터”라는 나의 지론 때문이기도 하다. 신학과 교회는 구약의 예언자와 통치자의 관계처럼 때로는 견제하고 때로는 보완하며 건강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신학자는 교회 현장의 문제와 호소에 예민할 필요가 있다.

  5부와 6부에서는 최근 10년간의 내 고민과 관심을 다루었다. 주제는 ‘회개와 종교개혁’이다. 내가 한국교회사에 대한 첫 번째 논문, “초기 한글성서 번역에 관한 연구”를 발표한 것은 1985년이다. 그때 한국교회는 선교 100주년을 맞아 폭발적으로 성장한 교회의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하면서 자축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 내 마음속에 ‘이건 아닌데’, ‘축하할 일만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안티 기독교’, ‘개독교’란 용어가 퍼졌고 기독교계를 향해 “이대로는 안 된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경고가 울려 퍼졌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교회사를 공부하는 나로서는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처음사랑 회복과 회개’(계 2:4~5)에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초기 10년 동안의 내 연구는 ‘한국교회의 처음 사랑, 처음 행위’를 규명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초기 한국기독교사 연구』,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개종 이야기』, 『한국교회 처음 여성들』, 『한국 토착교회 형성사 연구』, 『한국교회 처음 이야기』, 『한국영성 새로 보기』 같은 책들이 그렇게 해서 나왔다.

그런 중에 세 차례 독일을 여행하면서 루터의 행적과 종교개혁 유적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 여행을 통해 교회의 개혁은 “조용하게”, “작은 곳에서”,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밖을 향하여 외치기 전에 나 자신을 돌아보아 잘못된 것을 회개하고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 말씀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또한 해야 할 개혁의 과제임을 깨달았다. 마침 최근 10년 사이 나는 회개의 은총이 어떤 것인지 경험할 기회가 많았다. 그런 회개와 반성의 몇 가지 예를 이 책에 소개하였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나의 잘못과 실수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독일 여행에서 돌아온 후 당시 비텐베르크대학 신학 교수였던 루터가 했던 것처럼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과 함께 가을 학기 교회사 수업시간 때 한국교회와 신학교, 그리고 우리 자신을 향한 ‘95개조 논제’를 만들어 대자보처럼 학교 게시판에 붙였다. 그것은 매년 가을학기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연례행사가 되었다. 마침 금년(2017년)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다.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드높이 올려질 금년에 나는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함께 “본질로 돌아가자. 나부터.”라는 다짐을 할 뿐이다.

  신앙고백 같은 글을 쓰는 내내 내 마음속에 수치심과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쓰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행여 이 글이 나의 자랑이나 과장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혹시나 이 책을 읽는 독자들로부터 칭찬이나 박수를 받고 싶어 하는 교활한 욕심이 내게 있지는 않나 두려운 마음뿐이다. 탈고한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 책을 내야 하나?” 하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기로 했다. 나를 택하시고, 이끌어 오신 그분에 대한 증언을 해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모든 의심과 불안을 떨쳐 버리기로 했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은총이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이 히포 주교가 된 직후(395년) 쓰기 시작한 『고백록』(confessiones)에서 타락했던 젊은 날의 이야기를 숨김없이, 길게 썼던 것도 이해가 되었다. 감리교 목사로서 나의 영적 멘토인 신석구 목사님이 해방 후 진남포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체포되어 순교하기 직전(1949년), “역사의 증언을 남겨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는 후배들의 요청에 못 이겨 자서전을 쓰면서 그 첫마디를 다윗의 기도로 시작했던 것도 이해되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3~24)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2017년 사순절을 앞두고

냉천골 감신대 만보재에서

이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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