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 예수여, 당신 안에서, 숨 쉬는 한 나는 희망합니다."

말하자면 서양 중세 시대의 라틴어는 동양 중세 시대의 한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여러 나라들이 각자 자기 고유의 언어를 지니고 사용하였으면서도 식자들은 모두 라틴어를 구사했고 라틴어로 글을 썼다. 네덜란드인 에라스무스와 독일인 루터가 자유의지에 관해 논쟁을 벌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라틴어 덕분이었고, 루터의 모든 글들이 삽시간에 유럽 전역에 퍼질 수 있었던 것도 학문적 공용어인 라틴어 덕분이었다.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a.m., p.m., etc., AD 등도 모두 라틴어 약자다. 단순한 약자를 넘어 마치 한문으로 된 고사성어나 사자성어가 현대에도 쓰이는 것처럼 라틴어로 된 속담이나 경구는 현대 서양에서도 즐겨 자주 사용되고 있다.

‘나는 숨 쉰다.’는 뜻을 지닌 spiro(스피로)와 ‘나는 희망한다.’는 뜻을 지닌 spero(스페로)는 서로 비슷한 발음을 지녔으면서 라틴어 글귀나 속담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영어 spirit의 어근이 되는 spiro의 명사형 spiritus(스피리투스)는 ‘숨’ 또는 ‘바람’을 뜻하며 더 나아가 ‘영(靈)’을 뜻하기도 한다. 무당과 관련되어 만들어진 복잡한 한자어와 달리 본래 ‘숨’ 또는 ‘바람’을 의미하는 spiritus는 영에 대한 보다 본질적이고 정확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

“어느 추워진 아침 입술에서 처음으로 흰 입김이 새어나오고, 그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 우리 몸이 따뜻하다는 증거. 차가운 공기가 캄캄한 허파 속으로 밀려들어와, 체온으로 덥혀져 하얀 날숨이 된다. 우리 생명이 희끗하고 분명한 형상으로 허공에 퍼져나가는 기적.” 작가 한강이 그녀의 소설 <흰>에서 말한 것처럼 찬바람은 몸으로 들어와 온기를 품고 숨이 된다. 생명의 온기를 머금은 바람, 숨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다. 태초에 깊은 물 위를 운행하고 있었던 것도 결국 하나님의 숨결이었고, 진흙으로 빚은 인간을 생명체가 되게 만든 것도 하나님의 숨결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의 생명이며, 하나님의 숨결이다.

희망을 뜻하는 spero와 관련된 유명한 라틴어 속담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spero, spera.”(스페로 스페라) spera는 spero의 명령형이다. 그러니까 풀자면 이런 뜻이 된다. “나 희망하노니, 그대 희망하라.” 오랜 서양의 속담은 희망은 전염이 된다는 사실을, 한 사람의 희망은 다른 이의 희망의 불씨가 된다는 사실을, 그러기에 나는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렇게나 아름답고 간결하게 표현해준다.

숨과 희망이 함께 만나 이루어진 속담도 있다. 바로 이것이다. “dum spiro, spero.”(둠 스피로, 스페로) ‘~하는 한’을 뜻하는 접속사 dum으로 시작하는 이 속담의 뜻은 이렇다. “숨 쉬는 한, 나는 희망한다.” 숨과 희망은 이렇게 아름답게 하나가 된다. spiro와 spero, 어쩌면 숨과 희망을 뜻하는 두 단어가 이리도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생명과 희망은 끊을 수 없는 그 무엇이고, 본래 하나였던 그 무엇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명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고, 희망이 있는 자리에 생명이 있지 않던가. 생명의 숨결이 가득 넘쳐나기 시작하는 계절, 그 숨결과 함께 희망 또한 가득 피어나기를 마음으로 빌어본다.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창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