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이 편치 못하다. 몇 달 전부터 계속 그렇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그 이유를 짐작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국정농단, 그렇다. 그것이 터지고 그 진상의 일각이라도 알면서 마음 편할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라 거의 없을 것이다.

작년 12월, 최순실의 태블릿PC가 JTBC에 의해 세상으로 불거져 나오자 화들짝 놀란 박근혜 대통령은 바로 그 이튿날 서둘러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 그 후로 두 번을 더 사과했고 국회의장까지 방문하여 사태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그 진정성을 믿는 국민은 그다지 없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를 부정직한 사람 중의 하나라고 여기기는 했으나 인간이기를 포기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그 뒤로 보인 그의 행태는 인간으로서의 도를 넘은 것들이었다. 자신의 입으로 직접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해 놓고는 그 말을 곧바로 손바닥 뒤집듯 간단히 엎어 버렸다. 특검 조사도 받겠다고 하여 그 날짜까지 정했으나 그 또한 지키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유라는 게 가관이다. 당사자는 아니라는데 특검이 약속을 어기고 날짜를 언론에 흘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검은 오히려 청와대 쪽을 의심하는 눈치다보니 진실게임처럼 되어 버렸다. 백번 양보해서 청와대의 말이 진실이라 해도 청와대 경내에서 하는 조사인데, 밖에서 알고 있다고 모르는 것과 다른들 무엇이 얼마나 다르겠는가.

가관인 것은 또 있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들고 가 압수수색을 하려는 특검을 청와대는 보안이라는 이유를 들어 물리적으로 가로막았다. 여기에서 보안이라니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청와대가 보안을 지켜야 할 구역이라는 것 때문이 아니다. 아무런 공적 직함도 없는 최순실과 주사 아줌마나 기 치료 아줌마까지 거침없이 드나들고,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외국인 말 장수까지 무사통과시킨 청와대가 아닌가.

박‒최 게이트에 대한 범죄 사실은 검찰의 말마따나 차고 넘친다. 드러나 확인된 것만도 그렇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추종세력들은 ‘(실체가 없는 것을 무리하게) 엮은 것’이란다. 그러는 가운데 그러한 박 대통령에게 물러나라고 하는 촛불의 민심에 맞불을 놓아 태극기를 들고 나온 이들도 생기드니 이제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그에 고무된 그들은 펄럭이는 태극기가 촛불을 껐다고 기염을 토한다. 박 대통령은 태극기집회에 모인 수가 촛불 수의 두 배가 넘는다고 말한다.

과장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그러나 태극기의 운집도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다. 만만하기는커녕 거센 물결과도 같다. 그런데 나는 국정농단 자체보다 이를 더 우려한다. 처음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미미했으나 이토록 커져 버린 것이다. 이리되자 자못 송구스럽다는 듯 꿀 먹은 벙어리로 일관하던 여당도 활기를 띠며 대선 주자라 자처 하는 사람들까지 태극기를 들고 나서서 탄핵을 반대한다 어쩐다 떠들어 대고 있다.

어떤 이는 박 대통령을 가리켜 “죄 없는 사람”이라며 “이런 사람을 탄핵한 국회를 탄핵하고 철거해야 한다” 했고, 또 어떤 이는 “이런 식으로 대통령을 몰아내면 앞으로 우리나라 헌정 질서가 제대로 굴러가겠느냐”며 “헌정이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 탄핵을 반대한다” 했다. 심지어 촛불집회를 가리켜 북한의 지령에 의한 것이며 종북세력들의 집회라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종북세력이란 북한정권을 따르는 세력이라는 말인데, 정말 그런 사람이 있기는 한 것인가. 만약 있다면 국민의 몇 %나 될까. 아마 0.01%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걸 가지고 종북세력 운운하다니 강 위를 나는 새가 똥 한 점을 떨어뜨렸으니 강물은 모두가 똥물이라는 격이다.

국민 열 명 중 여덟이 탄핵을 찬성하고 한 명 남짓한 사람이 반대하는데도 절대 다수가 자기들과 같은 의견이란다. 하기야 열 명 중 한두 명은 적은 수가 아니다. 범법자를 보고 옳은 사람이라 한 이들이 그만큼이니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며 여론전을 편 탓이 크다. 박 대통령은 검찰과 특검의 조사에 불응하고 헌재에도 나가지 않으면서 1월 1일에 기습적으로 기자 간담회라는 것을 가지더니, 25일에는 보수 인터넷방송 ‘정규재TV‘에 출연해 억지로 엮은 것이다, 억울하다며 여론전을 폈다.

박 대통령과 그 추종세력들의 이 같은 여론전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어 태극기의 거센 물결을 만들어 냈고 보수층의 결집도 이루어 내었다. 무서운 일이다. 범죄행위를 보고 옳다 우겨대고, 범법자들을 벌주자는 사람들을 보고 나라를 망치려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불어나고 있으니 참으로 무섭고 우려스러운 일이다. 박근혜 같은 사람이 또다시 나와 대통령이 되고, 그 대통령을 최순실 같은 사람이 요리하여 국정을 농단하는 세상을 우리의 자손들에게 물려주어도 좋다는 말이니 이보다 무서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태극기는 국정농단 같은 범죄행위를 옹호하거나 찬양하기 위해 드는 것이 아니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불렀던 3.1 독립 만세와, 환희 넘치는 감격을 안고 거리로 몰려나와 이루었던 8.15 광복의 태극기 물결을 돌아다보라. 태극기는 그럴 때 그런 마음으로 드는 것이다.

악을 보고 선이라며 악을 써대고 있는 이 엄연한 사실을 머잖아 나라의 동량이 될 어린 세대가 지켜보고 있는 현실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