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마틴 루터(1483-1546)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바야흐로 대희년이라 할 수 있다. 루터 개혁유산의 모태상속자라 할 수 있는 독일은 올 10월 31일을 개신교 주와 가톨릭 주를 막론하고 모든 주 총리가 합의하여 국가공휴일로 지정하였다. 이미 2016년 10월 31일부터 ‘루터의 해’가 시작되어 일 년 내내 기억을 기념하고 있는 중이다.

   ‘팝-오라토리오 루터’는 천 명의 목소리로 꾸민 합창 프로젝트인데 1월 초부터 전국 순회연주회 중이다. 3월 11일 사순절 둘째 주일에는 힐데스하임(Hildesheim)에서 독일 개신교회와 가톨릭교 간 ‘기억의 치유’를 주제로 화해예배를 드린다. 지난 500년 동안의 루터 효과와 그 파급력을 담아낸 ‘세계 개신교 500년’이란 전시회는 독일 역사박물관에서 4월부터 열릴 예정이다. 개혁의 산실이었던 비텐베르크(Wittenberg)에서는 5월 20일부터 16주 동안 종교개혁 만국박람회 ‘자유의 문’이 열리는데, 첫 주간에 독일교회의 날(5.24-28)이 베를린과 비텐베르크를 연계하여 대대적으로 개최된다. 

  이미 독일개신교회(EKD)는 대희년을 앞둔 10년 전부터 ‘루터 10년’ 프로젝트를 출범하였다. 2008년 여름에 설립한 비텐베르크 재단은 ‘루터 2017-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교회와 사회 그리고 정부의 협력기구이다. 종교개혁의 역사적인 의미를 규명하고, 미래의 전망을 세우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 만큼 종교개혁의 영향권은 당시 교회의 문제를 넘어서 봉건 시대의 경계를 허물고 유럽의 정치적 지형을 바꾸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 아우구스티누스 회 수도사 마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城)교회 정문에 대자보를 붙였다. 그 유명한 ‘95개 논제’이다. 이 선언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권위를 신앙적으로 비판한, 교회의 심장부에 떨어진 시한폭탄이었다. 루터는 처음부터 개혁의지를 표명한 것은 아니었으나, 점점 온 세상의 다른 주장과 맞서게 되었다. 그는 거대한 종교권력과 정치권력 앞에서 순간순간 목숨을 걸고 결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터가 일으킨 파문은 교황을 정점으로 한 당시 세계관을 흔들었고, 급기야 중세기 천년역사에 균열을 가져왔다. 종교개혁은 종교를 넘어서 황제와 영주들 간 정치적 대립을 부추겨 결국 그리스도교 신, 구파의 대립과 분리, 길고 지루하게 반복된 전쟁을 불러 왔다. 종교개혁으로 독일의 종교지도는 물론 유럽의 국경선이 새로 그려졌다.

  엘베 강가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는 그 역사의 중심에 위치한다. 독일의 종교개혁지를 여행하는 이들은 대체로 루터와 밀접한 유적들을 순례한다. 루터가 태어나고 또 소천 한 아이스레벤(Eisleben), 루터가 공부하고 수도사로 일한 에어푸르트(Erfurt), 어린 루터가 살았던 아이제나흐(Eisenach), 보름스(Worms)에서 피난하여 게오르크 기사 행세를 하며 숨어 지냈던 바르트부르크(Wartburg) 성(城) 그리고 개혁 발상지로 평생 루터 부부가 살았던 비텐베르크 등은 모두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이다.

  루터는 비텐베르크를 출발점으로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아우구스부르크(Auguburg), 라이프찌히(Leibzig)와 보름스에서 길고 복잡한 논쟁을 벌이고, 심문을 받았다. 루터가 도발한 전쟁은 단판 승부가 아니었기에 그가 자처한 ‘비아 돌로로사’는 고달프고 험난했다. 루터가 다툰 여러 도시들은 훗날 ‘루터의 도시’(Lutherstäte)란 명예를 얻는다.

  독일 전역에 존재하는 루터의 도시들은 단순한 옛 자취가 아닌 현존하는 생생한 역사유산이다. 1529년 스파이어(Speyer)는 개신교회를 가리켜 ‘항의하는 자’(프로테스탄트)라고 불리게 된 제국회의가 열린 곳이고, 1531년 슈말칼덴(Schmalkalden)은 루터 지지파 영주들이 동맹을 결성하여 황제와 대항했던 곳으로, 결국 황제가 화해의 손길을 내민 계기가 된 곳이다. 그리하여 1555년 아우구스부르크에서 마침내 황제와 루터 지지파 사이에 ‘아우구스부르크 평화회의’(Peace of Augsburg)가 열렸다. 그 핵심은 “제후의 영지 내에서는 제후의 종교를 따른다”는 합의였다.

  500년 전, 온 세상과 맞섰던 젊은 루터의 용기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신앙혁신의 과제를 던져 주었다. 루터와 개혁자들의 신앙유산은 여전히 깨어있어 오늘 생기를 잃은 개신교회와 그리스도인을 향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신앙의 본질회복을 외치고 있다. 사실 종교개혁의 전통과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굳이 독일로 떠날 것 까진 없다. 내가 선 삶의 자리에서, 교회의 현실 안에서, 다시 하나님 앞에 겸허히 서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내일의 신앙유산을 이어 가기 위해 ‘다시 오늘의 광야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