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임종석 칼럼
오, 위대한 우리의 반면교사여!— 철저하게 자기를 위하여 사는 방법 —
임종석  |  seok9448@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7년 01월 29일 (일) 16:43:49
최종편집 : 2017년 02월 16일 (목) 11:41:45 [조회수 : 1950]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생명은 사람이다, 사람에겐 두 개의 생명이 있으므로

 

세상에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동물이 됐건 식물이 됐건 살아 있는 것에는 다 있는 게 생명인데, 그것이 모든 생명체가 살아 있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물을 각각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그것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셨다.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시고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리라’ 하셨다.

그렇다면 정복하고 다스린다는 것은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정복’이라면 물리적인 힘으로 대상을 억눌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로 이해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자연을 파괴하고 동식물을 생명 없는 것들처럼 함부로 하는 일을 성경이 말하는 정복으로 오해하는 일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정복도 다스리는 것도 대상을 잘 보살피고 이끌어 관리하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다.

생물을 식물(食物)로 하거나 무엇인가의 재료로 쓰되 생명 없는 것들처럼 하지 말고, 모든 생명체를 향해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며 해야 한다. 그러지 않은 결과는 부메랑이 되어 인간들을 괴롭히고 결국 파멸로 몰고 갈 것이다. 지구의 온난화나 멸종되어 가는 동식물들이 무엇보다도 증거이다.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아 그분과 교제할 수 있는 신분이 되었다. 그뿐 아니라 인간에게 만이 온 우주의 모든 피조물을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이 주워졌다.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리라’ 하신 말씀이 그것을 대변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인류의 모든 문명과 문화가 창출되고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잘 보살피고 이끌어 관리한다고 하는 다스림이 바로 통치의 본질이라고 하는 사실을 망각함에 따라 대상에 대해 함부로 하여 문명과 문화가 오히려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로 전락된 예도 만들었다.

인간세상에서의 집권자들도 마찬가지다. 통치의 본연의 모습을 모르거나 망각한 채 집권하면 화를 부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나라를 이토록 힘들게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국민이 집권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집권자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거나 망각한 무지 아니면 건망증이 부른 결과이다.

아무리 큰 집단이라 할지라도 그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은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생명체이다. 사람은 누구 하나 하찮을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은 다른 무엇의 그것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소중한데, 전술한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에게는 두 개의 생명이 있는데, 지금까지 말한 육체를 살아 있게 하는 생명과 영생하는 영적 생명의 둘이다. 그런데 후자의 생명이 함께 함으로 전자의 생명이 다른 어떠한 것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의 생명은 사람이다. 후자의 생명은 인간외의 어떠한 생명체에도 없기 때문이다.

 

 

가장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인격이다. 피조물 중 인간 외의 어떠한 것에도 없는 것이 인격이기 때문이다. 인격이 있기에 사람이라는 말이다. 인격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말도 된다.

그렇다면 인격을 가장 인격답게 하여 고상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이다. 물론 동물에게도 사랑이 없다 할 수는 없다. 동물도 제 새끼는 사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들의 사랑처럼 지‧정‧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종교인데, 그 소중히 여김을 극대화하면 사랑이 된다. 보라. 예수께서 남기신 삶의 궤적을. 그것은 그 자체가 사랑이었다. 그러기에 기독교를 가리켜 사랑의 종교라 하는 게 아닌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예수께서 어떤 율법교사로 하여금 하게 하신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살아야 하고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선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려면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을 말하면 하나님을 중심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를 중심으로 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이다. 극히 조심스럽고 불경스럽게 들리기 쉬운 말이지만, 자기가 없으면 하나님도 있을 수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있기는 있지만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기가 있기에 영적 눈이 있고 감각이 있어 하나님을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존재들이다(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체가 다 그렇지만). 자기를 중심으로 산다는 말도 된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산다 하지만 실은 자기를 중심으로 사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그 방법은 각기 다 다르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은 고조선의 건국이념으로 우리나라 교육의 기본이념이 되었는데,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 된다. 그와 반대로 서로 물고 뜯으면 공멸하는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그분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은 가장 확실하게 자기를 위하는 일이 된다. 그분의 품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속박이 아니라 자유가 된다. 그 품은 우주보다 넓기 때문에 무한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 그 품밖에 있으면 두 다리로 달리는 것이 고작이나, 그것도 웅덩이에 빠지거나 벽에 부딪치기도 하나, 안으로 들어가 안기면 양 어깨에서 날개가 나 드높은 창공을 마음껏 날게 된다.

말장난으로 들리는가. 아니면 말을 위한 말로 들리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아직 하나님의 품에 안겨 보지 못한 사람이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이다. 그러니 두 눈 딱 감고 한 번 체험해 보라. 하나님의 그 넓고 크고 따스하고 포근한 품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방법은 단 하나, 못된 자아를 버려 버리고 말씀(성경)에 따라 그분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그대는 모든 일에 적극적이 될 것이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어디에서도 그리될 것이다. 하는 일이 재미있어질 것이고, 능률도 오를 것이다. 그리함으로 그대는 이 땅에서 이미 하늘나라를 맛보며 그 나라를 건설하고 있는 것이 된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이웃도 사랑한다

 

물론 이 세상이 온전한 하늘나라는 될 수 없다. 갖가지 어려움과 핍박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천국백성에게는 그런 것조차도 기쁨과 행복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찬송가에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가사가 있는데,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 곧 믿는 우리의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찬송가를 입으로만 부르는 것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 가사의 내용을 삶을 통해 체험하며 누려야 한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하나의 지식으로만 가져서는 안 된다. 나를 살게 하는 생명의 양식으로 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자유를 만끽하는 가운데 진정한 행복을 향유하게 되고 환경을 초월해 부요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물질이 적어도 풍요 속에 배가 부른 삶을 살게 된다.

어떤가. 이보다 더 자기를 위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런데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그분의 뜻에 사는 것이 결국은 가장 자기를 위한 것이 된다는 데에 이견을 말할 사람이 있을까 싶다.

천하보다 소중한 존재가 자기이니 결코 자기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욕심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존재들이다. 관리를 하지 않고 방치해 두면 탐욕스런 존재가 되어 자기를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만다.

지금 나라에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고 있는 이들도 결국 자기를 사랑할 줄 몰라 방치한 결과이다. 그들은 탐욕에 제동을 걸지 않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위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나, 그것이 잘못이었다.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한다. 진정으로 자기의 인격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은 남의 인격도 소중히 여긴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것이다. 성경에는 그런 것이 직접적으로 쓰여 있진 않지만, 그런 정신으로 가득하다.

기독교만큼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종교는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 기독교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귀천이 없이 같은 인격체이다. 필자가 아는 목사님 한 분은 그러니 나이가 많다고 해서 젊은 사람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필자는 가슴이 뜨끔해지곤 한다. 현직시절 3,40대의 대학원생들과도 친구처럼 허물없는 사이가 되자고 하는 의미에서 반말을 해 왔던 터라 퇴임을 하고나서도 그 버릇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려 주셨던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의 예배에 참석해 보고 깜짝 놀랐다. 예배를 마치며 하는 축도에서 ‘-지어다’라 하신 것이다. 필자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지어다’는 반말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해라체가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반말도 하면 안 되는데 여러 사람에게는, 그것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리에서는 해라체로 말해도 좋다는 것인가.

우리는 지엽적인 것보다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면에 더 마음을 써야 한다. 가지나 잎사귀가 튼실하려면 뿌리가 건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릇의 겉은 깨끗하나 담긴 내용물이 더러워서는 안 되고, 회칠한 무덤 같아서도 안 된다.

 

 

누가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엉망으로 만들었나

 

지금도 하절기의 유원지 같은 데에서 교인들이 벌이고 있는 꼴사나운 광경을 가끔은 볼 수 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는데도 개의치 않고 찬송가를 부르며 예배를 보는 모습니다. 심한 경우는 기도를 한답시고 악을 쓰는 모습도 연출한다. 남들에게 피해가 된다면 예배는 드리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 된다. 그리고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내가 은혜롭게 부르는 찬송도,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지 않을 것이다. 이웃에 대한 배려는 사랑의 첫 단계이다.

필자는 지난 5일 TV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2차 변론기일에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기도를 하고 있는 한 사람을 보며 아직도 저런 사람이 있다는 데에 적이 놀랐다. 어찌 보면 독실한 신자 같기도 하지만, 그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 쉬운 법정에서였다는 사실은 그를 영락없는 광신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했다. 알고 보니 그는 박 대통령 측 대리인 서석구 변호사였다.

그렇다고 그 같은 그만을 나무랄 수도 없을 것 같기는 하다. 촛불집회에 맞불을 놓기 위해 모인 태극기의 물결 속에 십자가가 등장하는가 하면 가운까지 챙겨 입고 나온 목사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런가 하면 박근혜 대통령을 가리켜 ‘하늘의 천사’라 목청을 돋우기도 했다. ‘하늘의 천사’에게 사악한 국민들이 십자가를 지웠다는 것일 게다.

며칠 전(25일)에는 6차례나 특검의 소환에 불응하던 최순실 씨가 강제소환 되자 표독스런 표정으로 눈에 독기를 품고 악을 쓰며,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 자백을 강요한다, 어린 손자까지 멸망시키려고 그런다, 억울하다는 등의 말을 쏟아냈다. 처음 검찰에 출석하며 입을 가린 채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국민 여러분 용서해주십시오 라며 고개도 들지 못했던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가 하면 같은 날 박근혜 대통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오래전부터 누군가가 기획하고 관리해 온 것 같다, 거짓말로 쌓아 올린 커다란 산이다, 라는 등의 말을 작심이라도 한 듯 쏟아냈다. 그러며 민심에 맞불을 놓기 위해 모인 태극기 집회에 대해서는, 촛불시위보다 두 배도 넘게 모였다,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호해야 한다, 법치를 지켜야 한다, 그런 것 때문에 여러 가지 고생 무릅쓰고 나온다고 생각할 때 가슴이 미어지는 그런 심정이다, 는 등등의 의미의 말들도 주워섬겼다. 그것도 자기를 추종하는 수구 인터넷 방송 ‘정규재TV’와의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 그런 심정’이다. 누가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엉망으로 만들어 누적인원 1000만이 넘는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추위에 떨며 고생하게 했는가.

우리는 지금 막장드라마보다도 더 막장 같은 현실을 보며 괴로움을 겪고 있다. 이렇게 되어 버린 현실에서 우리 국민들이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대통령으로서의 체통 같은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그저 그런 사람으로서 만큼이라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염치도 수치심도 모르는 그런 짓을 그만두고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도 지켜 주었으면 좋겠다. 인간이기조차 포기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위대한 반면교사를 앞에 놓고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자유민주주의시민으로서의 공부를 하고 있다. 가장 소중한 나의 ‘생명’, ‘나’라는 존재를 위하여. 그리고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철저하게 자기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체로 천하보다 소중한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저들처럼 사는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자신을 멸망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예수를 바라보며 그분을 닮아가려 애쓰는 삶, 그것이 가장 자기를 위한 길이다. 자기를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는 길이다.

 

 

임종석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94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1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잔나비 (221.167.227.42)
2017-01-29 19:40:47
박근혜 = 나쁜 사람.!!!
리플달기
4 3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