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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보아야 한다.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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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1월 14일 (토) 18:57:33 [조회수 : 2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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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8장 22-26절

분명히 보아야 한다.

 

가. 영의 눈을 뜨고 살아야 한다.

22절,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거늘...”

* 본문은 벳새다에서 한 맹인을 고치시는 과정을 통하여 분명하게 보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맹인은 예수님의 첫 번째 안수로 어설프게 보게 되었고, 두 번째 안수로 분명히 보게 되었다. 예수님은 단번에 고치실 수 있지만 의도적으로 두 번 안수하셨다. 사람이 눈을 뜨고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분명하게 보는지가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 예수님은 맹인을 고쳐주시며 영적 맹인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셨다. 그는 본다고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을 영적 맹인에 비유하셨다. 더욱이 그는 치유과정을 통해서 어설프게 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게 하셨다. 어설프게 보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주님은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고 하셨다(요9:41).

* 영의 눈을 뜨고 살아야 한다. 주님은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것을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권면하셨다(계3:18).

 

나. 어설프게 보는 것은 위험하다.

23절,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 예수님이 맹인에게 “무엇이 보이느냐”라고 물으셨다. 그냥 ‘보이느냐’라고 묻지 않고 ‘무엇이 보이느냐’라고 물으신 것은 의미가 있다.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명하게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맹인이 사람을 보면서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닌다고 한 것은 완전한 회복이 아니다(24절).

* 어설프게 보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 없다. 여기서 어설프게 보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지만 표적을 구하는 신앙을 지적한 것이다(앞, 11-12절). 이것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하여 따르는 신앙이다.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리는 기복적인 신앙이다.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라고 책망하셨다(앞, 18절).

* 베드로가 십자가 지실 것을 예고하시는 예수님을 붙잡고 항변했던 것은 어설프게 본 결과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만 생각했던 것이다(뒤, 32-33절).

 

다. 영적 일을 분명히 보아야 한다.

25절,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 예수님이 맹인의 눈에 두 번째 안수하시자 비로소 밝히 보게 되었다. 여기서 ‘밝히’(텔라우고스)는 ‘목표가 환히 보이는’(텔로스+아우게, 목표+새벽) 것을 뜻한다. 이것은 표적의 손가락을 보던 사람이 손가락이 가리키는 목표를 밝히 보게 되는 것을 말한다. 성도는 표적을 잘 읽어야 한다.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셨다(뒤, 27절).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니지만 바로 알고 따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아셨다. 사람들의 생각은 예수님을 기쁘게 하지 못했다(뒤, 28절). 비로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하자 기뻐하시고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시며 칭찬하셨다(마16장 참조).

* 예수님께 표적을 구하고 복이나 구하는 기복신앙을 넘어서야 한다. 성도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분명히 보고 주님의 길로 따라야 한다. 무엇인가를 구하는 신앙의 단계를 넘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주님께 헌신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라. 분명히 보아야 참 제자가 된다.

26절,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 예수님은 맹인을 고치실 때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고치셨다. 이것은 특이한 사항이다. 그리고 집으로 가라고 하시면서도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다. 이것도 특이한 사항이다. 그런데 본문에 주님의 의도가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

*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예수님이 고치신 사실을 마을에 들어가 소문내지 말라는 뜻이다. 다른 사본에는 “벳새다 마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말씀도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단지 기적을 행하는 분으로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제자가 되는 것을 원하신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기를 원하신다(뒤, 34절).

* 또한 이를 영적으로 해석하면, 무엇인가를 구걸하던 자리(마을)로 들어가지 말고 집을 세우는 자리(집)로 돌아가라고 하신 것을 뜻한다. 주님께 무엇인가를 구하는 기복적인 신앙의 단계에서 하나님의 집을 세우기 위하여 섬기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참 제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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