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으로 50이 되는 해니까 이제는 지천명(知天命)인가?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라니, 아직 그 경지까지는 한참이나 멀었는데... 이런 상념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스친 생각이 있었다. 가만, 불혹이나 지천명은 만 나이로 따지는 건가? 아니면 세는나이? 열심히 찾아본 결과는 다소 허망했다. 공자의 시대에는 중국도 세는나이를 썼던 모양이니 그 지천명의 나이는 세는나이 50인 셈이었다. 그럼 이미 작년이 지천명이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나는 내 나이가 지천명인 것도 모른 채 일 년을 보낸 것이다. 아니, 아직 음력설이 안 지났으니 아직은 지천명을 말할 수 있는 걸까? 육순과 환갑, 18세 이상이나 19세 이상 등의 용어를 떠올려보더라도 만 나이와 세는나이의 차이로 인한 생활 속에 혼동은 드물지 않다. 예전에는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사용했지만 지금은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사용한다는 세는나이는 외국인들에게도 큰 혼동을 주는 모양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띠가 음력설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2월 4일 입춘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이라는 말까지 들은 다음에는 나이와 관련해 더 큰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굳이 혼란스럽게 두 가지 나이 계수 방법을 혼용할 필요가 있을까? 국제적 표준에도 맞출 겸 세는나이 따위 없앴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천명의 정확한 나이를 조사하던 중, 나이의 계수 방식, 특히 세는나이에 대한 새로운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것은 만 나이에 대한 설명으로부터였다. “만 나이는 태어난 때를 기산점으로 하여 매 생일을 맞을 때마다 한살을 먹는다. 태어나서 얼마나 살았느냐를 나타낸다.” 읽는 순간 마음에 콕 하고 박힌 말은 ‘태어나서 얼마나 살았느냐’라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만 나이는 살아온 날을 계수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국어사전에는 나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이나 동ㆍ식물 따위가 세상에 나서 살아온 햇수.” 결국은 만 나이를 가리키는 나이의 정의를 보며 세는나이를 달리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이런 생각이었다. “아, 만 나이가 살아온 날을 계수하는 방식이라면 세는나이는 살아갈 날을 계수하는 방식으로 볼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본다면 만 나이와 세는나이는 이미 산 날과 앞으로 살아갈 날의 대조인 셈이다. 즉, 세는나이는 살아온 해가 아니라 살아갈 해를 바라보는 태도이고, 지난 과거를 셈하는 방식이 아니라 앞으로 올 미래를 셈하는 방식인 것이다. 확실하게 지나온 이미 닫힌 뒤를 바라보는 태도가 아니라, 불확실과 함께 지나게 될 열려 있는 앞을 바라보는 태도. 그렇다면 이처럼 불확실을 향해 열려 있는 세는나이는 신앙의 믿음, 소망과도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소망하며 이미 살아온 햇수에 이제 살아갈 한 해의 수를 더하는 나이, 그런 것이 세는나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혼란만 가중시키는 골칫덩어리라 여겨졌던 세는나이가 왠지 조금은 살갑고 다정하게 느껴졌다. 세는나이를 없애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고, 이런 식의 생각이 다분히 공상적이라는 것 역시 분명하긴 하다. 하지만 이왕 쓰고 있는 세는나이, 믿음과 소망의 의미를 담아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속절없이 다시금 더해지는 나이에 허탈한 미소 같은 상념을 더해 볼 뿐이다.

“사람은 나이가 많아진다고 지혜로워지는 것이 아니며, 나이를 많이 먹는다고 시비를 더 잘 가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욥 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