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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세례가 능력이다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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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1월 07일 (토) 16:55:52 [조회수 : 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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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3장 15-17절

성령세례가 능력이다

 

가. 알곡 신자가 되어야 한다.

17절,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본문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성령세례를 베푸시는 분으로 소개하는 말씀이다. 아울러 그는 예수님을 심판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성도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고 알곡 신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불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주님은 우리가 알곡 신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 알곡 신자는 쭉정이 신자와 비교된다. 쭉정이 신자는 겉모양은 믿는 사람이지만 실상은 믿음의 의가 없는 사람이다. 바울은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고 하였다(롬2:28). 참 신자는 속사람이 충실하여 열매를 맺는 사람이다.

* 알곡 신자는 행함의 열매가 있는 믿음의 성도를 말한다. 주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다(마7:21). 알곡 신자는 옥토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을 듣고(현재, 분사) 깨닫는(현재, 분사) 자로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로 결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13:23).

 

나. 회개의 물세례만으로는 부족하다.

16절,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 요한의 물세례는 회개를 촉구하는 세례다. 물론 물세례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매우 유익하다. 그러나 물세례는 종교행위에 속하는 의식적인 것이므로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 세례를 받은 사람은 세상과 죄에 대하여 죽은 듯이 살아야 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아야 한다(롬6:3).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임도 알아야 한다(갈2:20). 그러나 물세례는 의식일 뿐이므로 신앙생활에 실제적 능력을 위해서는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

* 요한의 물세례와 예수님의 성령세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요한은 이를 비교하면서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하였다(6절). 요한과 예수님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듯이 물세례와 성령세례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성도가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물세례와 더불어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

 

다. 성령세례를 받아야 알곡 신자가 된다.

16절,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 본문은 성도가 성령세례를 받아야 알곡 신자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다. 본문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예수님이 또한 알곡은 거두어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는 심판의 주님이라고 가르친다. 이는 성도가 예수님의 성령세례를 받아야 알곡 신자가 되고, 그래야 심판을 받지 않고 결국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 성령세례는 물세례와는 달리 신앙생활에 실제적인 능력이 된다. 예수님은 성령세례를 통하여 세상과 죄에 대하여는 죽게 하고, 하나님과 선에 대하여는 살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신다. 특히 누가는 성령세례를 불과 연관을 지어 말했는데 이는 성령세례가 불같은 역사를 이루기 때문이다.

* 성령세례는 성령님 안에 항상 잠겨있는 것으로서 성령충만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성령님 안에 항상 잠겨 있어야 죄를 짓지 않고 선을 행할 수 있다. 특히 우리의 속에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올라야 죄의 뿌리는 불에 태워버리고 오히려 열정을 갖고 선을 행하는 알곡 신자가 될 수 있다.

 

라. 알곡 신자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

17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예수님은 구주이시며 동시에 심판주이시다.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시리라”라고 고백한다.

* 특별히 마지막 때에 주님은 불로 심판하신다. 바울은 주님의 심판을 가리켜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이라고 하였다(고전3:13). 그러므로 불로 심판하시는 날에 공적이 타지 않고 나타나려면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고 알곡 신자가 되어야 한다. 즉 불심판은 불세례로 극복할 수 있다.

* 본문에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지만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운다고 하였다. 여기서 ‘꺼지지 않는 불’은 주님의 불심판의 전형적인 상징이다. 쭉정이 신자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지옥의 꺼지지 않는 불꽃 가운데서 심한 고통을 당하며 크게 후회할 것이다(눅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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