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은, 특히 그 하반은 이 나라에 있어 암울 그 자체였다. 아직 현재 진행형이지만, ‘암울 그 자체였다’고 과거형으로 표현한 것은 2017년의 새해가 밝음으로 그 ‘암울’이 서서히 물러나 자취를 감추리라는 확신적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도 바랐던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이번에는 국민들의 촉수가 헌재의 심판에 모아지고 있다. 인용을 낙관하면서도 혹시 기각되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불안이 가슴속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헌재 재판관 대부분이 보수성향이다 보니 그 같은 불안을 키운 거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같은 불안은 기우라 치부해도 좋을 것 같다. 헌법재판소가 22일에 헌재 소심판정에서 열린 제1회 준비절차기일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지금 문제되고 있는 (세월호) 7시간 동안 피청구인이 청와대 어느 곳에 위치했었는지, 또 피청구인이 그동안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봤는지, 공적인 부분이 있고 사적인 부분이 있을 텐데, 시간대별로 밝혀 달라”고 한 요구에서 탄핵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탄핵의 헌재 심판에 대한 국민들의 또 하나의 불안은 그 기간이 오래 걸려 혼란이 장기화되는 건 아닐까 하는 점에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헌재는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탄핵 사유 9가지를 5가지 유형으로 나눠 심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힘으로 기간을 오래 걸리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아직 새해는 밝지 않았으나 벌써부터 여명의 빛이 비쳐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새벽의 여명은 시간이 가면 필연적으로 오지만, 인간세상에서의 그것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엄밀히 말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다시 말해 그에 대한 헌재 판결의 인용이 국민 전체의 바람은 아니다. 소수일지라도 그 기각을 바라는 사람도 있다. 소위 박사모라든가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같은 박 대통령의 비호세력들은 촛불의 민심을 거스르기 위해 맞불집회를 열고 있다.

맞불은 무엇이고 맞불집회는 또 무엇인가. 맞은편에 놓아 거세게 번지고 있는 산불을 잡기 위한 불이 맞불이고, 나라를 고통으로 몰고 가는 암 덩이를 제거하려 모여든 민심의 촛불에 타격을 주기 위해 모이는 게 맞불집회이다.

집권 여당의 친박, 그중에서도 진박이라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라. 친박은 박근혜 대통령과 친한 측근을 말하고, 진박은 그중에서도 진짜 친박, 진실한 친박을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진박들은 진짜 진실한가.

입에 게거품을 물고 나라를 이 지경이 되게 한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며 다대수의 국민을 조롱하기도 하는 것이 진실인가. 증인들을 불러 모아 놓고 박-최 게이트의 진상을 밝히려는 국정조사에서 그 위원 된 자들이 진상 은폐를 돕는 것도 진실인가.

그들 모두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의 자녀, 자손들이 박근혜 같은 사람이 다시 대통령이 된 나라에서 살기를 바라느냐고. 아마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이니까, 아니면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다니까 그러는 거지, 그 같은 나라를 자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을 통해서 인간이 어디까지 뻔뻔해지고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를 똑똑히 보고 있다. 박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보이고 있는 행태를 보며 다대수의 국민들은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그 같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탄핵 판결을 늦춰 보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며 예뻐지려 미용시술을 받은 얼굴에 철판까지 깔고 있다.

최순실에 의해 농단된 것은 국정전체의 1% 미만이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적은 것인가. 한 사람에 의해, 그것도 비선에 의해 그 방대한 국정 전체의 1%, 아니 0.1%만 농단되었다 해도 충분히 탄핵 사유가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18일 박근혜 대통령 측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를 보면 모두가 궤변으로 일관되어 있다. 여기에 그 모두를 다 열거할 수는 없고 하나만 예로 들면, 연설문 등 비밀누설 의혹과 관련한 최순실의 역할을 키친 캐비닛이라 말하고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우리나라 아닌 미국의 이야기로, 대통령이 저녁식사에 초대하여 담화를 나누며 국정에 도움이 되는 말을 듣는 지인이나 친구를 키친 캐비닛이라 하는데, 박 대통령은 TV를 보며 혼자서 밥을 먹는 혼밥족이라는 걸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만약 최순실이 박 대통령의 키친 캐비닛 역할을 했다면 그것이 바로 크게 잘못된 점이다. 미국에서는 대통령과 키친 캐비닛과의 만남을 숨기지 않고 개방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는 이번 게이트가 불거지기 전까진 국민 누구도 알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로부터 연설문 표현 같은 것의 도움을 받았다고 실토했는데, 그녀가 정말 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정해 줄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 ‘공황장애’를 ‘공항장애’라 하고, ‘회폐’라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을 쓸 정도의 국어능력이라는 게 그녀가 국정조사특위에 보낸 불출석사유서를 통해 밝혀졌다. 그러자 국민들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뭉개져 버리고 말았다. ‘공항’이 ‘장애’를 일으키면 항공기 사고가 나는데, 최순실의 ‘한글장애’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엄청난 사고를 내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고나 해야 할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들은 박근혜를 항성(恒星)으로 하는 행성(行星)들이다. ‘친박’이 어떻고 ‘비박’이 어떻다고들 하는데, ‘박(朴)’이 항성이고 그 앞 글자 ‘친’이나 ‘비’가 행성으로서의 위치를 나타낸다.

그런데 그 행성들이 왕성하게 세포분열을 하여 동류들을 늘여가고 있다. 진박, 진진박, 숭박, 존박, 종박, 반박, 틈박, 변박, 졸박, 탈박, 복박, 짤박, 멀박, 비박, 증박, 혐박 등등으로 말이다. 물론 비박계로 분류된 사람들은 박 대통령의 측근이랄 수 없다. 그런데 이를 신라의 골품제에 빗대어 ‘진박’은 ‘성골’, ‘친박’은 ‘진골’, ‘멀박’은 ‘6두품’, ‘비박’은 ‘평민’, ‘멀박’은 ‘불가촉천민’이란다.

박-최 게이트를 통해 ‘역린(逆鱗)’이라는 말이 세간에 떠돌고 있는데, 그 ‘역린’은 《한비자》의 <세난(說難)>에 나오는 말로,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것을 건드린 자는 용의 노여움을 사 죽음을 면치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옛날에는 임금을 용으로 비유하기도 했는데, 박 대통령은 공교롭게도 용띠라 한다. 그래서 ‘미르재단’이라는 이름도 용의 옛 이름인 미르를 가져다가 지었다 한다.

어쨌든 박 대통령에 있어서의 ‘역린’은 사람에 따라 그 견해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필자는 그것을 ‘최순실’이라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을 건드리는 사람은 결코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이는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 “이 사람이 아직도 있어요?”라는 말이 과부족 없이 증명해 주리라고 생각한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하자면 최순실의 역린은 정유라가 아닐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고 대통령 자리를 꿰차고 있는 한 나라는 혼란을 면키 어렵고 국민들이 불행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만도 없는 일, 촛불도 계속해서 들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 봐야 한다. 그럼에도 그가 물러나지 않는다 해도, 헌재의 판결은 앞당길 수는 있을 게 아닌가.

그리고 우리 크리스천들은 따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기도이다. 우리는 역사를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되 인간들을 통해서 하신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기에 촛불을 드는 한편 기도도 쉬지 말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에게, 이 땅에, 2017년의 새로운 태양이 떠올라 온누리를 밝게 비추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미용보다 국정에 더 관심을 갖는 대통령, 머리를 감다 세월호와 같은 위기의 보고를 받고는 무엇을 생각할 사이도 없이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지하벙커로 뛰어가 상황을 파악하며 대책을 세우는 대통령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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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

군주민수(君舟民水):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다. 강물이 배를 뜨게 하지만, 그게 화가 나면 배를 뒤집는다.

<촛불의 민심이 바라는 연말연시>

송박영신(送朴迎新): 낡은 박근혜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