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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님의 탄생기록들이 이토록 다른가?
최재석  |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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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12월 14일 (수) 21:47:03
최종편집 : 2017년 01월 15일 (일) 15:19:28 [조회수 : 7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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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관한 기록은 네 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나온다. 동정녀 탄생은 사도신경에서도 언급될 만큼 아주 중요한 교리인데도 불구하고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나오지 않는다. 특히 공관복음이라고 부르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관한 기록이 비슷하다고 말하는데, 왜 동정녀 탄생이 마가복음에는 나오지 않는가? 그리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두 가지 예수님의 탄생기록이 아주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성서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두 복음서에 기록된 동정녀 탄생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출생 연대가 서로 다르다고 한다. 예수님이 헤롯 왕 시대에 태어난 것으로 언급된 마태복음에서는 헤롯이 기원전 4년에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기원전 4년 이전에 태어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구례뇨가 기원후 6년에 총독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모가 구례뇨 총독의 호구조사 명에 따라 베들레헴에 올라갔다고 하는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기원후 6년 이후에 출생했다. 일반 독자들이 이 출생 연대의 차이를 간파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두 가지 예수님의 출생기록에는 독자들이 쉽게 그 차이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 많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예수님을 처음 경배한 사람들의 차이다. 마태복음에는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예수님을 경배하러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목자들이 예수님이 출생했다는 천사들의 노래를 듣고 아기를 경배하러 왔다. 동방박사들은 아기에게 경배하고 세 가지 귀한 예물을 드렸지만, 목자들은 빈 손으로 와서 출생한 아기가 구주라는 천사들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살던 곳과 아기가 출생한 장소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마태는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집에서 예수님이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가는 예수님의 부모가 나사렛 사람들인데, 호구조사 때문에 베들레헴에 갔다가 거기 마구간에서 아기를 낳아서 말구유에 눕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이 탄생한 직후 두 복음서에 기록된 요셉과 마리아의 행적이 전혀 다르다. 마태복음에는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이 애굽으로 피신했다가 헤롯이 죽은 다음에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의 눈을 피해서 그들이 살던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나사렛으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헤롯의 적의가 언급되어 있지 않고, 예수님의 부모가 정결예식을 위해서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요셉이 중심 역할을 하는데, 누가복음에서는 마리아가 중심에 있다. 마태는 주의 사자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마리아가 성령에 의해 잉태할 것이라고, 그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돌아간 후 다시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해서 애굽으로 피하라고 말하고, 헤롯이 죽은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요셉에게 알려준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그녀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고한다. 그리고 마리아가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린다. 목자들이 아기를 경배하러 와서 천사들이 구주가 나셨다고 한 말을 전할 때, 그 말을 마음에 새기는 사람은 마리아다.

두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이토록 서로 다른 것을 보면, 이 두 이야기를 기록한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탄생 기록과 결부시켜서 두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예수님 가문의 족보가 나오는 자리가 다르다는 점이다. 마태복음에서는 맨 첫머리에 족보가 언급되어 있고,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는 장면 직후에 나온다. 그러나 족보가 나오는 자리가 다르다는 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족보의 나열 순서도 두 복음서의 기록이 각각 다르다. 마태복음에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식으로 맨 위의 조상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예수님이 언급된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역순으로 아래서부터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로 시작해서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끝난다. 이렇게 순서가 반대로 기록된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주 이상한 것은 족보에 언급된 많은 인물의 이름이 다르다는 점이다. 마태복음에는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로 되어 있는데, 누가복음에는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에 언급된 예수님의 조부, 증조부 등이 누가복음에 나오는 조부, 증조부 등과 다르다. 그 두 가지 족보에 아브라함, 야곱, 이삭, 다윗, 요셉 등 주요 인물들은 공통으로 언급되어 있지만, 사람들의 이름이 대부분 같지 않다.

한 사람이 이렇게 다른 두 가지 족보를 작성했다고 볼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다른 족보의 작성자는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두 복음서에 나오는 탄생 기록의 문체가 다르다. 마태복음에서는 아기가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간결하게 기록하면서 천사가 요셉에게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알려준다. 그리고 마태는 42대에 걸친 족보를 14대씩 세 부분으로 질서 정연하게 나누었다. 여기서 그의 문체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산문적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태어날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해줄 뿐 아니라, 마리아의 찬가, 천사의 찬송, 시므온의 찬송을 통해서 예수님의 영광과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노래하기도 한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는 구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축제 분위기가 연출되어 있다.

사람마다 문체가 다르기 때문에, 두 글의 문체가 다르면 그 글들은 각각 다른 사람이 쓴 것이라고 판단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문체가 다른 것을 보면 두 복음서의 기록자가 다른 것이 분명하다.

이제 마리아가 구주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왜 마태와 누가가 이렇게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좀 더 분명한 답을 찾아야 할 차례다. 우리는 지금까지 두 사람이 그 사건을 기록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소위 공관복음이라는 범주에 드는 복음서들이다. 공관복음이라는 단어는 그 두 복음서에서 드러나는 관점이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두 사람이 기록했더라도 그들의 관점이 같다면, 두 복음서가 같게, 혹시 다르더라도 아주 비슷하게 기록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실상 예수님에 대한 마태와 누가의 관점은 아주 다르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유대인의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부각시키려 했고, 누가는 소외된 자의 편에 선 예수님을 나타내려 했다. 위대한 왕으로서의 예수님과 소외된 자들의 친구로서의 예수님을 부각시키려는 그 두 기록자의 노력이 동정녀 탄생에 관한 두 복음서의 기록 곳곳에서 발견된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마태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구성된 족보를 열거했고, 소외된 자들의 친구로 오신 예수님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누가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구성된 족보를 만들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권위 있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고 믿은 마태는 요셉이 수태고지를 받은 것으로 기록함으로써, 사회적 강자인 남성을 중심에 세웠다. 그러나 예수님이 소외된 자들의 편에 섰던 분이라고 믿은 누가는 약자인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은 것으로 기록했다.

마태는 유식하고 부유한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를 찾아와서 값비싼 예물을 드렸다고 기록한 반면, 누가는 무식하고 가난한 목자들이 빈 손으로 와서 천사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는 아기가 베들렘에 있는 부모의 집에서 출생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누가복음에는 마구간에서 출생했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탄생 장소를 마구간으로 설정함으로써 누가는 예수님이 소외된 사람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동방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묻자 헤롯왕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고 기록된 것을 보면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탄생은 왕과 왕의 대결로 그려지고 있다. 이 대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해야 했다. 그러나 누가는 요셉과 마리아를 시골 마을 나사렛에서 산 사람들로 설정해서 그들이 소외된 자들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기록자가 각각 자기가 생각하는 예수님 상에 맞게 인물, 장소, 사건을 설정한 것을 보게 된다. 따라서 복음서들이 객관적인 역사적 기록이 아니고 기록자들의 주관이 반영된 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즘 신학자들이 성경을 문학작품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지금까지 우리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탄생 기록이 아주 다르다는 것과 두 복음서의 기록이 다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예수님의 두 가지 탄생 기록이 이토록 다른 것은 두 사람이 그 복음서들을 기록했기 때문이고, 특히 그들의 예수님에 대한 관점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그 복음서들을 기록한 사람들이 동정녀 탄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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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나기 (112.214.202.24)
2016-12-16 12:45:49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의 내용 자체는 이미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것이지만 이렇게 기독교계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 연구 결과가 교인들에게 더 많이 소개되고 공유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적 수준이 올라가고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인들의 신앙 수준은 거의 미신 수준입니다. 이게 다 진리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성장과 번영에만 몰두하는, 그래서 스스로 하나님 자리를 꿰차려는 소위 "성공한 목사"들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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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
바두기 (75.139.159.141)
2016-12-29 23:01:48
목자들은 예수가 태어난 그 시간에 와서 경배한 것이고 동방박사들은 그보다 1년쯤후에 베들레헴의 어느 집에서 살던 예수님 가족을 방문한 것이라는게 바른 이해입니다. 그리고 집에서 태어났다는말은 이분의 추측이고 숭경 어디에도그런 말은없습니다.

이 글을 쓰신 분은 모두가 가질 수있는 의문을 나열했을 뿐 그것을 풀어 가르칠 능력은 없으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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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바두기 (75.139.159.141)
2016-12-29 23:08:00
그리고 족보가 다른 이유는 하나는 요셉의 계보이고 다른 하나는 마리아의 계보이기 때문입니다. 손댈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니라서 이만 포기하렵니다. 이곳에글쓰는 분들은 최소 개교회에서 제자훈련과 성경공부를 마친분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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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화평 (122.35.176.192)
2016-12-21 21:52:27
'개혁본부'님은 여기에 댓글을 8개나 달았네요. 이 칼럼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입니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어요. 이런 상식적인 글에 대해서 왜 이렇게 감정적으로 나오시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지금까지 맹목적으로 믿던 축자영감설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 같기 때문인가요? 눈가리고 아옹해서도 안 됩니다. 우격다짐으로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면서 믿으라고 해야지요.

'적그리스도'가 뭡니까? 그리고 '징계위원회'는 뭐고요? 오히려 상을 줄 만한데요. 감리교본부에서는 당당뉴스에게 상을 주어야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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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개혁본부 (211.247.34.187)
2016-12-22 12:42:13
우격다짐~?
ㅋㅋㅋ

맹목적? ~
아이구~ 켈켈켈~ 공부좀 더하시고 얘기하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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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
개혁본부 (121.127.76.13)
2016-12-20 13:37:44
이글 연재하신분~
당당~

다 기독교계를 떠나시길 권고 합니다.
이것은 논쟁이 아니라 "적그리스도"나 하는 짓 입니다.

감리교본부는 이글들을 참조 기록(복사)하셔서 "징계위원회"에 당부서는 회부 하시길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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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
화평 (122.35.176.192)
2016-12-18 01:07:01
기독교인의 언어는 순화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거룩해지려고 노력해야
하니까요. 그것이 성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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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
개혁본부 (121.127.76.13)
2016-12-20 13:30:23
미친개들에게는 "몽둥이" 밖에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걍 놔두면 물고 늘어져 "광견병" 걸립니다.
예방은 아주 강력히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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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5
개혁본부 (210.210.254.164)
2016-12-16 13:52:42
ㅋㅋㅋ
그 시대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급하면 통화해서 파악하는 시대가 아니라는것은 알테고,

즈그들이 뛰어봤자 낙타나 말을 타고 겨우겨우 옆동네, 옆나라 정도의 소식을 사람의 입을 통하여 전해 듣던 시대 입니다.

주관적인 기자들의 생각이 첨가되는것은 당연하지만, 그러다고 맨밑에 뭐라 쓰셨노?
"요즘 신학자들이 성경을 문학작품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이말의 그 의미는??? = 누구말 맞다나... 성경은 신화이고 문학작품이다.
고로 예수는 있되, 신은 없고, 인간의 그 모호한 불안감의 심리를 신의 존재성에 의지하는 심리를 추정하여 모든종교는 탄생하였고, 각자 취향에 맞는 종교를 선택하면 된다.~~~~ 뭐 ~ 이런 결론에 도달 합니데이~

그래서 신학교에서 잘 가르쳐야 하는데 특히 저쪽 서쪽에 있는 학교 출신들은 주구장창 변질된 에큐메니칼에 힘을 보태면서, 이러한 이론으로 그 머리가 가득 차 있으니... 진정한 참 신앙이라는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가장 좋은것은 타임머신 타고 한번 다녀와 보심이, 그 동영상들을 방송과
인터넷/SNS 등에 기제하면 가장 좋겠네.

참....
이글도 한마디로~
X까고 있네~~~ 라고 밖에.

그리고 느그들~
예수/하나님 믿지어지지 않으면 믿지말어~
그리고 이런데에 글도 쓰지마~
그리고 이러한 당당 매체도 접어 부려~

그 문학작품에 기대는 중생들의 이목을 끌어가면서 거기에서 기생한다는 그러한 이론의 양심은 정말 나쁜겨~

느그들은 신화와 문학작품으로~
우리는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것을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

이젠 당당은 기독교/감리교 매체를 벗어나 일반신문으로 거듭나시고, 본글을 쓴 아자씨는 기독교계를 떠나시고~

뭐하러 여기서 기웃거리나! 바쁜세상에~

참! 이 세계를 떠나면 당장 집안식구들 "생계"가 막막하겠군....
주일마다 강단에서서 설교연기하느라 참....속으로 웃음나오겠군.
그때마다 쌀과 돈을 생각하면서...그러면서 월급쟁이 기질로 견디는구나...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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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7
거듭나기 (112.214.202.24)
2016-12-16 19:32:41
그러니까 성경이 씌어지던 시절엔 팩트를 확인하기가 어려우니까 대충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것이 없으니까. 뭐 이런 말이지요? 일단 성경무오설은 부인하신 걸로 이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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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3
개혁본부 (210.210.254.201)
2016-12-19 09:31:21
대충쓸수 밖에 없었다 가 아니라~ 각자의 생각과 경험으로 철저히 썼으나, 전체적인 "조율" 즉 이론과 논리를 획일적으로, 서로가 만나서 정리하기는 힘들었다. 이게 정답이라는...뭘 제대로 파악하고 답글달기 바랍니다.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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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5
거듭나기 (211.34.110.112)
2016-12-20 09:55:29
팩트와 견해는 구분해야
글은 팩트와 견해로 구성됩니다. 팩트는 객관적 사실이므로 사람의 생각이나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없는 것입니다. 팩트가 달라진다면 오류, 조작, 왜곡 등의 경우이지요. 반면에 견해는 팩트를 해석하는 것으로 각자의 생각과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본 기사에서 기자(최재석 님)가 지적한 것은 팩트에 대한 것이지 견해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팩트가 다르게 기록된 것은 어느 한 복음서가(아니면 모든 복음서가) 오류, 조작 또는 왜곡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함의합니다. 복음서 기자마다 견해를 달리하는 것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팩트가 다른 것은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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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개혁본부 (121.127.76.13)
2016-12-20 13:20:20
그 팩트!
그 시대의 상황과 배경에 따른 견해 차이에서 발생한일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부의 빌미로 성경전체의, 님이 얘기한 기독교의 팩트가 달라진다? 그거 아주 웃기는 일이죠~

그 당시에 살아 보셨습니까?
타임머신 타고 가서 보고 오셨습니까?

지금의 시대의 논리에 빗대어 인간의 그 쥐ㅈ만한 지식으로 신의 전체적인 역사를 언급한 다는 그 자체가 벌써 틀려먹은 일 입니다.

이러한 논쟁들은 우리선배들이 이미 다 한 짓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성경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은 왜? 일까요?
답은 저 밑에 "묻겠습니다 (169.XXX.XXX.200)"님의 글이 아주 간결한 정답 이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회개하고 기도하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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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거듭나기 (211.34.110.112)
2016-12-20 15:28:40
견해가 팩트를 바꾼다?
시대의 상황과 배경에 따른 견해 차이가 팩트를 바꾼다구요? 견해에 따라 팩트를 바꾸는 게 바로 조작이고 왜곡입니다.
"이러한 논쟁들은 우리선배들이 이미 다 한 짓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성경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은 왜? 일까요?"라고 물으셨습니까? 바로 님 같이 이성적 사고의 문을 닫으신 분들과 그런 분들의 기분에 적당히 영합하여 밥통 챙기는 분들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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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개혁본부 (121.127.77.219)
2016-12-21 07:10:25
아이쿠~ 이젠 조금 감성적으로 변하네~ㅋㅋㅋ
그리고 난 "목사" 아니니 밥통 운운할일 없소이다. 일반 성도 올시다.
진정 이성적으로, 진정 학식적으로, 진정 그리스도 안에서의 큰 가슴으로 성찰하시길 권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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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포이멘 (183.109.98.239)
2016-12-16 06:47:53
사실과 진실, 그리고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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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그러나 (175.223.3.170)
2016-12-16 03:19:55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본인 생각대로 복음서를 하나 더 써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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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 (82.47.232.86)
2016-12-15 01:36:00
.
리플달기
2 15
newmark (175.208.203.53)
2016-12-15 10:54:29
동정녀(알마)는 젊은 여자, 처녀의 의미이며 히브리어 '에렘'에서 나왔으며 '에렘'은 '시들지 않은 싱싱함의 의미입니다. 님의 해석대로 '젊은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가임 여성들에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이 그게 무슨 특별한 징조가 돠는가요? 문학 작품도 문자적인 것 보다 앞뒤 문맥을 보고 해석 하거늘 하물며 성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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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6
거듭나기 (112.214.202.24)
2016-12-16 12:33:10
무슨 특별한 징조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특별한 징조가 되게 하려다보니 오역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하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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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6
묻겠습니다 (169.237.38.200)
2016-12-15 09:03:17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본 구절의 처녀는 히브리어 "알마"를 번역한것으로 구약에 7번 나오는데 처녀 또는 젊은 여인 , 두경우 다 쓰는 것은 왜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요? 이사야 7:14를 볼때 하나님이 메시야를 주실 징조를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젊은 여인이 남자와 동침해서 애를 낳을 것이다"라는 징조를 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게 자연스러운 해석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게 무슨 징조가 됩니까! "알마"는 처녀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리고 요셉이 임신한 마리아 데려오기를 힘들어 할때 천사가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고 데려오라고 한것은 뭡니까??? 성경이 안믿어지면 간절히 구하십시요...
리플달기
10 19
개혁본부 (121.127.76.13)
2016-12-20 13:23:07
빙고!
이 글에대한 "답" 중 가장 간결하게 답을 주신 글 입니다.
마라나타!

얘네들 다 적그리스도들 입니다.
신경 거두십시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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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8
거듭나기 (112.214.202.24)
2016-12-16 12:37:50
전체를 보라잖아요
그러니까 이사야서의 "처녀" 얘기만 보지 말고 전체 텍스트(7:1-8:15)을 보고 징조가 무엇인지 통전적으로 이해하라잖아요.
리플달기
11 18
개혁본부 (121.127.76.13)
2016-12-20 13:24:28
무슨전체를 보라는건데? ㅋㅋㅋ
해석이 안되면 타임머신타고 한번 그 세상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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