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진부령에 첫 눈이 내렸습니다. 주말에 아이들이 심심해해서 함께 마당에 나가서 야생초를 심고 질경이 씨앗을 훑어서 모았습니다. 질경이 씨앗을 어떻게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그냥 심심한 아이들의 놀이로 모은 것입니다. 지천이 질경이인데 아이들은 구지 애써 모은 씨앗 중 일부를 땅에 도로 뿌리고 내년에 질경이가 더 많이 나는지 확인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함께 마당에서 놀이와 노동의 사이를 오가며 손을 움직이는 동안에 마음이 명랑해졌습니다. 몸으로 하는 노동이 가장 정직한 노동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처음으로 장거리 운전을 해서 출장을 다녀오니 남편이「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이라는 책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이 책은 6.25전쟁 중 함흥에서 피난길에 올라 흥남철수 때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성심당의 창업주가 밀가루 두 포대로 노점 찐빵 가게를 시작한 이래 4백여 명의 직원이 함께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자녀의 눈에는 무조건적이고 무식하게 보이는 신앙을 가진 아버지의 “평생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살겠다.”는 삶의 목표가 어떻게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이윤을 이웃과 나누면서도 기업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더욱 반가운 책입니다.

    살다보면 다양한 일을 만나게 됩니다. 흥남철수 때와 같이 기사일생으로 생명을 보전하게 되는 경험을 한 이들도 있고, 한창 경제가 성장하면서 부를 축적하게 된 사람들도 있으며,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크고 작은 삶의 실타래들을 풀어내면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살아간다는 것은 주관적인 입장에서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주관적인 삶의 자리에서는 웃고 우는 일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성심당의 창업자와 같이 삶의 목표를 세우고 가치를 창출해 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생명력을 가지고 개인의 삶을 이끌어 나가는 힘이 됩니다.

   2000년 전 사람들은 예수님이 베풀어 주신 기적 자체에 열광하고 관심을 가졌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곳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 기적 자체는 목표나 가치가 아니었습니다. 죽었던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지만 나사로는 다시 죽었고 지금 이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기적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지였습니다. 기적을 보고 다시 기적을 바랬던 사람들은 떠나갔고 사라졌지만, 기적 너머에 있는 가치를 본 사람들은 아직도 믿음의 역사 속에 살아서 숨 쉬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본 ‘거울나라의 엘리스’라는 영화에서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에서 배울 수는 있다.”라는 대사가 여러 번 반복되면서 엘리스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즈음 정치상황에 대입해 보면 잘 맞는 말입니다. 과거를 잊거나 외면했거나 방조했기에 지금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으니 이는 우리 모두가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한 결과입니다. 경제적인 부유함을 얻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엄숙한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비슷한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두 가지 공동의 가치,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치를 잊지 않고 믿음의 선조들의 과거를 거울삼아 배워나가는 사람이야 말로 믿음의 역사를 면면히 이어나가는 사람입니다. 삶의 목표를 개인의 영달에만 두면 공동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두 가지 가치를 지켜나갈 수도 없습니다.

   요즈음은 우리 모두가 강도 만난 이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함께한 이웃은 서로를 잊지 않는 법입니다. 서로 보듬고 아끼며 함께 하나님이 주신 분명한 삶의 가치를 세워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