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수 십 년의 인생, 좀 긴 홈스테이가 다시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어떤 애니메이션영화에서 한 천사 같은 존재의 입으로부터 다시 한 번 삶의 기회가 주어진 소년을 향해 이 대사가 흘러나왔을 때, 이 말은 결코 가볍지 않은 떨림을 가져다주었다. 홈스테이. 그래, 인생이란 게 그런 거지. 마치 잠시 머물다 떠나는 홈스테이처럼 그렇게 잠시 살아가다 잠드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홈스테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좀 더 곱씹어 보았다. 말하자면 홈스테이는 남의 집에 잠시 머무는 것이다. 남의 집이니 가구나 살림도구 따위를 사들일 필요도 없고, 잠시 사용만 하다 적당한 시간이 되면 그저 떠날 테니 특별히 정을 붙일 이유도 없다. 평균을 다 살아도 80년에 불과한 인생, 이제 그 평균을 다 살아낸다 해도 벌써 절반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다. 이 이야기를 20대 청춘들에게도 들려주면서 이렇게 말을 덧붙였다. “이렇게 네 번만 지나가면 끝이라는 거죠.” 어떻게 지나왔는지도 모를 순식간의 20년일 터이다. 그렇게 네 번이면, 평균수명을 다 살게 된다 해도 그렇게 네 번이면 끝이 날 인생이다.

성경은 이 홈스테이 인생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 이른바 나그네 인생.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여러분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으니 여러분은 나그네 삶을 사는 동안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벧전 1:17) 나그네의 삶은 어떤가? 나그네의 삶 역시 홈스테이 인생처럼 가벼운 삶이다. 애당초 나그네에게 큰 짐이란 불가능하다. 먹고 자는 것을 절대적으로 타인의 친절에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 기댈 친절을 얻지 못한다면 그저 굶고 노숙해야 하는 존재, 나그네는 이 불안과 위험을 대가로 딱 그만큼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간다. 그러니 성경이 우리를 향해 나그네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부름인 셈이다.

영혼의 모든 타락과 멸망은 이 나그네이기를 포기한 순간부터 찾아온다. 내세(來世)에 담긴 한자어 그대로 ‘오는 세상’을 믿지 않고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누리려는 순간, 내가 머물고 있는 거처가 홈스테이가 아니라 내 집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흐르지 못하는 저 강물처럼 삶은 냄새를 풍기며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내 집이라고 생각하니 채워야 할 것도 많고 필요한 것도 많다. 내 집이라고 생각하니 관리할 것도 많고 신경 쓸 것도 많다. 내 집이라고 생각하니 내 집에 유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대가를 요구하고 그를 감시한다. 홈스테이 인생을 포기하는 순간, 자유를 내려놓은 딱 그만큼의 불안과 근심을 안고 살아간다.

성령은 바람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요 3:8) 이것은 예수님의 언어유희였다. 헬라어에서는 바람이나 성령이나 매한가지 똑같은 단어이기 때문이다. 바람은 나그네처럼 언제나 자유롭다. 우리는 조금 더 바람처럼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트윈폴리오의 노래로 익숙한 <바람만이 아는 대답>의 원곡자 밥 딜런이 이제 막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의 노래 <Blowing in the wind>의 한결같은 후렴구를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자유로운 바람은 언제나 모든 문제의 해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겨우 수 십 년의 인생, 이제 좀 긴 홈스테이가 다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면 자유로운 나그네로 살아가기가 한결 수월해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