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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법과 한국교회
최재석  |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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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10월 05일 (수) 00:07:57
최종편집 : 2016년 12월 07일 (수) 22:41:31 [조회수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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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부터 실시된 김영란 법은 부패한 한국사회의 정화를 위해서 꼭 필요한 법이라는 데에 대다수의 국민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부패의 늪에 빠진 한국교회가 교회의 정화를 위해서 그 법의 실시에서 배울 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가 OECD 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부패한 나라라는 말이 있는데, 한국교회 역시 세계 교회들 가운데서 가장 부패한 교회가 아닐까? 한국교회의 신인도가 해마다 떨어지고 교인 수가 급감하는 주요 원인이 교회의 부패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동안 정부나 시민단체들에서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책을 강구거나 운동을 벌여 왔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사회정화 센터를 세우고, 부정선거 방지를 위한 법을 만들고, 여러 가지 비리를 고발하기도 했다. 교회에서도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 기윤실이 조직되었고, 교단별로 총회장 선거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했고, 세습을 막기 위해서 세반연이 활동하기도 했지만, 교회의 부정부패는 줄어들 줄 몰랐다. 한국사회가 김영란 법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만큼 그 법이 한국사회의 정화를 위해서 획기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때에 한국교회도 획기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혁신적인 방안을 각 교단의 총회 차원에서 강구하면 좋겠다.

일부에서는 김영란 법으로 인해서 음식점, 술집, 꽃집 등이 장사가 안 된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한때 한우농가들이 김영란 법을 반대하기도 했지만, 부패한 한국사회의 앞날을 위해서 그런 고통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거나 도덕적 기준을 높이면 당장 거기에 대해서 불편을 느끼는 지도자들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대승적 차원에서 각 교단이 책벌에 관한 교회법을 강화하고 윤리를 강조하면 좋겠다. 인간은 죄향성을 지닌 존재여서 신앙 유무를 가릴 것 없이 자유롭게 놓아두면 타락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의 교인들이 두려워한 법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거룩한 사람들, 본받을 만한 사람들이라는 좋은 평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초대교회에서 덕스러운 삶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의 서신들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높은 수준의 윤리를 반복 강조했다.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은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교만, 불효, 배약, 무자비 같은 불의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정죄했다. 그리고 2장에서는 그들이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고,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고,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다고 종말의 때에 받을 심판에 대해서 언급했다(9-10).

바울이 세운 고린도 교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분쟁이었다. 바울은 분쟁을 일삼는 사람을 “육신에 속한 자”(3:3)로 규정하면서 육신을 좇는 사람은 최후 심판 때에 불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로마서에 이어서 고린도전서에서도 불의한 자, 음행하는 자, 우상 숭배하는 자, 탐욕스러운 자, 도적질 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6:10)고 종말의 심판을 분명히 했다.

이렇게 바울이 초대교인들의 악행을 열거하는 것을 보면 초대교회의 교인들이 여러 가지 악을 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부패를 막기 위해서 김영란 법을 실시하기 시작했지만, 바울은 초대교인들의 악행을 막기 위해서 종말의 때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법이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지만, 그들이 의로운 사람답게 살지 않으면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바울은 강조했다. 한국인들이 앞으로 김영란 법을 의식하면서 부정청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으로 보이는데, 초대교인들은 최후의 심판을 의식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죽기 전에 종말의 때가 올 줄로 믿었기 때문에 초대교인들에게 있어서 종말의 때는 임박한 일이었다. 그 임박한 심판날에 받을 벌은 김영란 법에 의해 처벌받는 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영벌이었다. 이렇게 임박한 무서운 벌을 면하기 위해서 초대 교인들은 그들의 육에 속한 삶을 버리고 영에 속한 삶을 살려고 힘써 노력했다.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은,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여전히 악을 행하는 것을 보면서 그 악에서 떠나라고 애타게 권면했다. 그들이 계속 죄를 지으면 심판 날에 행한 대로 벌을 받게 된다고 최후의 심판을 강조했다. 선을 행하라고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 2:13)라고 말했다. 따라서 바울에 의하면 진정으로 의로운 사람은 예수님을 구속주로 믿을 뿐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선을 행하는 사람이다.


선교 초기의 한국교회의 엄격한 계율

초대교회에서 종말의 때에 있을 심판을 믿었던 것처럼, 선교 초기의 한국교회의 교인들도 심판의 날에 있을 천국과 지옥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 선교 초기에 한국교회에서는 천국과 지옥을 대비하면서 죄인들이 견뎌야 하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유황불을 강조했다. 지옥의 유황불은 특히 부흥강사들의 단골 메뉴였다.

그리고 바울이 선한 삶을 강조한 것처럼 한국교회의 강단에서는 교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특별히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음행의 죄에 대해서는 지나칠 만큼 강조했다. 그 결과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아가씨가 결혼하면 성불감증을 겪는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노름을 금했고, 우상숭배의 죄를 강조하면서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했고, 담배를 피우지도 술을 마시지도 말라고 했다. 그래서 제사 때문에 혹은 담배나 술 때문에 교회에 나가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선교 초기에는 십계명을 어기는 사람들을 엄하게 책벌했다. 1990년에 선교사들이 세운 전북에 있는 모 교회에서는 1915년부터 1960년까지 45년 동안 많은 사람을 책벌했다. 그 교회에서는 우상숭배를 해서 제2계명을 어긴 사람 2명, 주일을 성수하지 않아서 제4계명을 어긴 사람 7명, 부모에게 불효를 해서 제6계명을 어긴 사람 2명, 간음하거나 축첩을 해서 제7계명을 어긴 사람 11명, 도적질을 해서 제8계명을 어긴 사람 1명, 모두 23명을 책벌했다.

여러 가지 금기 사항 그리고 엄한 책벌로 인해서 전도에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교회는 엄격한 법을 계속 실시했다. 그러한 엄격한 계율이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었고 결국 교회부흥에 큰 도움이 되었다.

초대교인들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의로운 사람들,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칭찬을 받은 것처럼, 한국의 교인들도 선교 초기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교인이라고 하면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그 사람 장로야.’라고 말하면 ‘아 그래?“라고 응대했다. 장로라는 말 한 마디로 그 사람의 신용이 보증되었다. 목사는 진실한 지도자로 존경을 받았다. 이렇게 주위 사람들로부터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인정받았다는 면에서 초대교회의 교인들과 선교 초기의 한국교회의 교인들이 비슷했다. 그런데 그들을 의로운 사람들로 만든 것은 엄격한 계율이었다.


현대 한국교회의 문제점

현대 한국교회에서는 초대교회와 선교 초기에 강조되었던 엄격한 계율을 외면하고 있다. 성경에서 거듭 강조하는 간음에 대해서도 별로 말하지 않는다. 교인의 기준으로 삼았던 금연과 금주조차 더 이상 강조하지 않는다. 금연이나 금주가 건강을 위해서 좋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해서 말할 만한데도 교회에서 금연이나 금주를 언급하는 것을 별로 듣지 못한다. 어느 교회에서는 담배를 끊지 못해서 교회에 갈 때면 우유를 마시고 은단을 씹는 집사를 장로로 세웠다. 교인들이 술을 즐겨 마시는 것을 알면서도 목사는 금주에 대한 말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러는가?

현대교회의 목사들은, 초대교회에서의 바울이나 선교 초기의 목사들과 달리, 교인들의 경건한 삶을 위해서 가르치거나 훈계하지 못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에 바쁘다. 사회가 도시화하면서 교인들의 이동이 자유로워져서 교인들의 구미에 거슬리는 훈계를 하면 교회를 떠나버린다. 그래서 교인은 가르칠 대상이 아니고 잘 모셔야 하는 왕이 되었다. 목사들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가게 되는 지옥의 형벌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물론 지옥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것은 천문학의 발달로 인해서 땅 밑에 지옥이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만, 이제 지옥을 비유적인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종말의 때가 있다는 종말 신앙도 외면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축복과 자비를 주로 언급한다. 물질적 풍요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번영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이 먹히기 때문이다.

교인들은 그들의 기호에 맞추어서 상품을 준비해야 할 고객이 되었다. 그래서 목사들은 힘든 행함은 제쳐두고 칭의의 은혜만을 강조한다. 그러한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따라서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제자도에 관한 설교를 하지 않는다. 거룩하게 살도록 교인들을 지도하지 못하는 교회는 예수님의 계명을 제대로 가르치는 교회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말하지만, 초대교회는 성령에만 취한 교회가 아니고 예수님의 법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교인들이 사회인들과 다른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때, 교인들이 존경을 받게 되고, 교회가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고, 교회가 부흥하게 된다. 세상을 본받지 말라는 말씀을 여기서 다시 묵상해야 한다.

목사들이 세상을 따라 악을 행해도 그들을 제재할 마땅한 법이 없고 복음의 참 의미를 모르는 교인들은 불의한 목사들을 구세주처럼 모신다. 지금 목사들이 성추행을 해서 7계명을 범해도, 교회의 돈을 유용해서 8계명을 범해도, 더 나아가 세상 법정에서 실형을 받아도 그들을 교회에서 제대로 벌하지 않는다. 음행으로 인해서 교회를 떠난 사람이 같은 도시에서 교회를 세워도 많은 사람이 그 교회로 몰려간다. 세상 법정에서 실형을 받아도 그 목사를 떠받든다. 현대교회에서 금기시하는 목회 세습도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더욱 가관인 것은 아버지가 자기의 은퇴식에서 뻔뻔하게 세습식을 거행하는데, 교인들과 동료 목사들이 앉아서 박수를 치면서 축하한다. 이렇게 지도자들이 앞 다투어 법도 윤리도 무시하는 곳에서 교인들이 선을 행하려고 노력하겠는가?

한때 목사라고 하면 스님들보다 훨씬 더 존경을 받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땡중’이라는 말이 있는데, 엉터리 중이라는 말이다. 전에 ‘그 사람 땡중 아니야?’라고 말했다는 데서 존경을 받지 못하는 스님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땡중’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기독교를 ‘개독교’, 목사를 ‘먹사’라고 부르게 되었으니 기독교인들이 그리고 기독교를 이끌고 나가는 목사들이 얼마나 불신의 대상이 되어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도 존경받던 목사들과 교인들이 지금 불신의 대상이 되었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성경의 교훈과 권면을 외면해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21세기에 와서는 초대교회나 선교 초기에 한국교회에서 강조되었던 종말의 때에 있을 심판을 강단에서 강조하지 않고 축복만을 언급하기 때문에 행함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다. 종말 신앙은 성경의 중심에 자리한 신앙의 주요 요소다. 예수님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을 외면하는 가르침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마지막 때를 대망하는 신앙이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고, 지금 그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 믿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의 삶에 따라서 그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 예수님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서 그 마지막 날의 심판을 설명하셨다. 따라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해서 달려가야 한다. 중도에 탈락하면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후에도 우리는 계속 악의 유혹을 받게 되어 있다. 사회에서 김영란 법 같은 법이 강제하지 않으면 우리는 부패의 바퀴에 붙어서 계속 돌아가게 된다. 믿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지켜야할 예수님의 법이 없다면, 우리가 그 법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탁락하고 만다. 우리가 종말 신앙을 외면한다면 예수님의 법은 강제력을 잃게 된다. 물론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믿고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지만, 인간이 선을 행하는 데에는 두려운 마음으로 예수님의 법을 지키려는 인간 편에서의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성경에서는 순종하라고 명하고 있는데, 순종하려는 노력 없이 순종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해주신다.’고 외치는 목사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여기저기서 보고 있다. 성령이 인도하실 것을 믿고 전혀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악을 행해서 정죄 받는 경우, 그들은 모든 책임을 하나님에게 전가할 것이다.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했기 때문에 자기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흔히 그들은 교회 재정을 유용하기도 하고, 음행을 범하기도 하고, 명예를 탐하기도 하고, 권모술수를 쓰기도 한다. 그러면 성령이 죄를 범하도록 그들을 인도하셨단 말인가? 그러실 리가 없다. 그것은 그들 자신이 저지른 악행이다.


마치면서

요즘 신학대학생들은 기독교 윤리학을 배우고 기독교 윤리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와 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윤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신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가 윤리를 외면했기 때문에, 행함을 등한히 했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이렇게 퇴락하게 되었고 한국교회의 신인도가 바닥에 떨어졌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고, 육적인 삶이 아니라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선한 삶을 살려고 힘써야 한다. 우리는 이런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수없이 들어왔다. 그러나 우리가 그 말을 많이 듣기는 했지만, 그렇게 살려고 힘써 노력하지는 않았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예수님의 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법을 어길 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고 마지막 날에 영광을 받을 수 없다.

율법은 전혀 무익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바울은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라고 말했다. 바울이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정한 할례나 제의를 통해서 구원받을 수 없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의 법을 힘써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교인들이 예수님의 법을 지키게 하려면 우선적으로 강단에서 예수님의 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열심히 가르치면서 목사들이 행함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김영란 법이 시행되면서 사회는 정화되어 가지만, 교회는 부패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았는가? 그러면 교회와 사회가 대조되면서 교회의 부패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교회가 사회를 인도하기는커녕 사회인의 지탄의 대상이 되어 간다면, 성령께서 얼마나 탄식하실 일인가! 그러한 교회에는 희망이 없다. 목사 부부가 딸을 살해하고 목사와 전도사가 성추행을 했다는 보도가 잊을 만하면 한 건씩 터져서 개독교라는 말을 듣고 있는데, 앞으로 교회의 부패상이 더욱 두드러진다면, 그러한 교회가 소돔과 고모라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교회가 사회에게 빛을 비추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김영란 법이 실시되는 것을 보면서 교회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이제 교회도 정신을 차리고 이 타락의 구렁텅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획기적인 방향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먼저 교회의 지도자들이 각성해야 한다. 소돔과 고모라에 내려졌던 하나님의 저주가 이 땅의 교회에 내려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땅에 최소한 열 명의 의인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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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116.33.84.49)
2017-06-27 00:15:07
대한민국 개신교는 그야말로 썩었다~!!!!
초대교회와 대한민국 초기의 개신교와 1960년대까지의 대한민국 개신교는 그야말로 도덕적이고 청빈한사람들이 다수였는데 지금은 그야말로 출세와 기복신앙 혹은 대형교회 목사들의 무분별한 성범죄로 인해 점차 타락해가고있으니...!!! 이걸보시면 예수그리스도께서 통곡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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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자녀 (152.99.38.73)
2016-10-11 13:24:56
요즘 교회 설교에서는 행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행위는 아무 상관없이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다고 하고 무슨 죄를 짓든지 회개만 하면 다 해결된다고 하니까 교인들은 죄 짓고 법을 어기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성경책을 들고 무단 횡단은 예사고 교회간판을 단 차량이 신호위반 과속 등 교통법규 위반도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추잡한 이권 다툼 싸움도 예사고 목사와 교인들이 서로 고소하고 온갖 비리와 범죄에 교인들과 목사 장로들 이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교인들은 죄 지어도 교회가서 회개만 하면 되잖아”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교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행동을 했기에 이런 말을 들어야 할까요? 요즘은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할 목사 장로들이 일반 사람들보다 욕을 더 많이 얻어먹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복음대로 바르게 살면 교회다니는 것이 자랑스럽게 여겨질 텐데 요즘은 교회다니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지고 교인들이 나쁜 짓은 더 많이 한다, 인색하다, 구두쇠다 소리 듣는 것은 예사 일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과 사도들은 대부분 행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이 어떠해야 되는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수도 없이 강조하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지만 목사들은 행함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목사들이 자기들은 소명을 받았느니 사명이 있느니 하나님의 종이니 대언자니 하지만 정작 그들은 목사 직을 직분이 아니라 밥벌이 수단 즉 직업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교인들 많이 모아서 헌금 많이 뜯어내서 큰 교회 짓고 돈 많이 받고 명예를 누리며 편안한 생활을 하려고 하며 교인들이 복음대로 살든지 잘못을 저지르든지 그런 것은 관심도 없고 상관하지도 않고 자기들도 복음대로 살지도 않고 자신들의 이권과 물욕만 신경쓰고 복음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희생할 생각도 없고 고난과 고생을 감내할 생각도 없이 교인들 위에 앉아서 대접만 받고 돈만 많이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가 개독교 소리를 듣고 목사, 장로, 교인들이 욕을 듣고 있는 것의 책임은 목사들의 잘못이 가장 크고 교인들도 목사들 눈치만 보면서 살고 성경대로 바르게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를 바로 잡고 교회가 복음 위에 우뚝서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잘못을 알고 있는 목사님들이 침묵만 하시지 말고 다른 목사들에게 욕 먹고 고생할 것을 각오하고 교회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고치도록 종교개혁자들과 같이 앞장서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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