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무렵 뉴욕 사교계에는 보통과는 다른 의미에서 매우 유명했던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라는 여가수가 있었다. <플로렌스>라는 영화는 바로 이 여인에 관한 것이다.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했고 실제로도 음악에 매우 조예가 깊었던 그녀는 자신의 엄청난 부로 당시 뉴욕의 음악계를 든든히 지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무대에 서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엄청난 소동과 난장판이 벌어진다. 그녀는 이른바 끔찍할 정도의 음치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녀 자신은 신기하게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녀는 스스로를 대가에 견줄만한 굉장한 소프라노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녀는 음반을 제작하기도 했고 최후에는 카네기홀 공연까지 해냈다. 이 천진난만한 여인을 세상의 온갖 비난과 조롱으로부터 지켜준 사람은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었다. 그녀의 매니저이기도 했던 헌신적인 남편은 그녀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과 조롱을 모르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했다.

어린 시절 백악관에서 연주도 했던 재능 넘치는 피아니스트였던 그녀가 자신이 음치였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사실은 모든 게 장난이었다는 설도 있고, 방탕했던 첫 남편으로부터 얻은 임질로 신경계통에 문제가 생겨 자신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설도 있다. 신경계의 문제 때문이든 정신적인 문제 때문이든,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음악에 대한 그녀의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진실하였다는 점이다. 그녀의 주위에는 늘 그녀의 돈을 노리는 음악가들로 넘쳤다. 하지만 그들은 나중에 그녀가 무대에 서겠다고 나서자 정작 필요한 지원은 다 받아 챙기고도 비겁하게 자신의 명성에 해가 될까 두려워 음치였던 그녀와의 관계를 부정하고 그녀를 멀리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플로렌스는 그런 사람들에게조차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전쟁이라는 극악한 시기에 인간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음악에 대한 숭고한 사랑, 영화를 보는 내내 곳곳에서는 그녀의 순수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래도 그녀가 엄청난 부자였으니 자기 하고픈 대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지 않았겠냐며 그녀의 순수에 대해 냉소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의 순수는 보다 더 깊은 차원을 보여준다. 영화 속 그녀는 늘 유서를 곁에 두고 살았다. 임질에 걸린 환자의 평균수명이 50세 정도였던 것에 비해 그녀는 76세의 비교적 장수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평균을 넘어선 나머지 모든 삶 속에서 그녀는 늘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았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 그녀의 순수에 대해 이렇게 느낌을 적었다. “어떤 것이 극단적으로 지독히 순수할 때, 그 순수는 온갖 더럽고 천박하고 저열한 것들을 모두 덮기도 한다.”

모든 것은 테크닉 너머의 문제였다. 플로렌스를 향해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브라보라고 외쳤던 그녀의 남편은 바로 이 테크닉 너머를 보았던 것일 테고, 어쩌면 우리가 플로렌스를 통해 보아야 할 지점도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잠시 교회를 둘러보았다. 우리는 테크닉이 넘치는 설교와 찬양과 예배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그 현란하고 화려한 테크닉이 가져다주어야 할 순수가 유감스럽게도 잘 보이지 않는다. 테크닉 그 너머에 있어야 할 순수가 빠진 모든 것은 얼마나 기계적이고 공허한가, 플로렌스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