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처럼 일상생활에서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민족도 찾기 어렵다. 홀수인 1, 3, 5, 7, 9를 기수(奇數) 곧 양수라 한 반면 0, 2, 4, 6, 8과 같은 짝수는 우수(偶數)또는 음수라고 불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수’ 보다는 ‘양수’를 더 좋아하여 길수 혹은 상서로운 수로 삼았다.

  그 중에서도 양수가 두 번 겹쳐진 날들, 이를테면 설날(1.1), 삼짇날(3.3), 단오(5.5), 칠석(7.7), 그리고 중양절(9.9)과 같은 날은 명절로 삼았다. 이러한 날을 ‘기운이 꽉 찬 날’, ‘생명력이 충만한 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전통 혼례를 보면 신부가 신랑에게 두 번 절을 하는 반면 신랑은 답배로 한 번만 한다. 이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결합한다는 음양화합의 원리 때문이다. 출산 풍속에서는 아들, 딸을 구별하는 방법으로 7.7법이라 하여 숫자를 이용하였다. 또 식생활에서 반찬을 곁들이는 수에 따라 반상을 분류하여 3첩, 5첩, 7첩, 9첩 반상이라 불렀으며, 건축에서도 집의 칸 수를 세 칸, 다섯 칸, 일곱 칸, 아홉 칸, 열한 칸 등으로 사용하였다. 모두 복을 기원하고 마음의 소원을 담으려는 뜻이다.

  이처럼 한민족은 아기의 출생뿐 아니라 관례, 혼례, 상례, 제례는 물론 일상생활의 의식주와 지명, 시문, 전설, 생활의 격언과 지혜에 이르기까지 숫자의 논리를 빌렸다. ‘삼 세 번’이나 ‘내 코가 석자’라든지 ‘열두 폭 치마’, ‘십 년 감수’, ‘타향 천리’, ‘만일(萬一)’, ‘오만 소리’등은 다 숫자를 이용한 생활말투이다.

  수많은 숫자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수를 꼽으라면 석 삼(三)이다. 으레 어느 지역에나 삼각산(三角山)은 있으며, 제사상에 반드시 올려야 한다는 대추, 밤, 감의 ‘삼색실과’(三色實果) 그리고 ‘작심삼일’, ‘삼천리’, ‘삼척동자’, ‘삼종지도’, ‘일일이여삼추’(一日而如三秋) 따위 말들은 누구나 쉬이 쓰는 표현들이다.

  ‘석 삼’이 세 번 겹친 ‘삼 세 번’이란 승부방식은 흥미롭다.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곧잘 하는 이 승부법은 흔히 가위바위보와 같이 가볍게 승패를 가릴 때는 물론, 삼판양승제(三判兩勝制)와 같은 진검승부에서도 사용된다. 사실 한판으로 결정되는 승부에 승복하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가위바위보와 같이 단숨에 이기고 지는 일이 결정되는 경우에 있어서 기꺼이 승복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삼 세 번’은 관용이 불러들인 미덕이다. 분명한 다짐 없이 승패를 가리려했던 즉흥적인 가위바위보는 종종 아까운 패배에 대한 아쉬움 반, 시시비비를 불식시키려는 단계로서 예정에도 없이 ‘삼 세 번’으로 발전하게 마련이다. 이 때 ‘삼 세 번’은 처음 이긴 승자의 관대함 때문에 가능’하다. 이러한 양보는 지든 이기든 진정한 승복을 훈련시킬 수 있다. 그런 뜻에서 ‘삼 세 번’의 논리는 매우 정당해 보인다. 사실 우리는 날마다, 때마다 ‘삼 세 번’의 갈림길에 서 있다.

  사람들은 막다른 데 이를 때면 흔히 ‘뾰족한 수(數)’가 없다고 말한다. 이런 방법, 저런 수단 다 써 봐도 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뾰족한 수’가 없다는 당혹감, 그것은 일상의 상식이나 기왕의 경험에서 묘안을 찾을 수 없는 답답한 심정을 반영한다. 오죽 대안이 없으면 빤한 수들 가운데 뾰족한 수를 찾으려 했을까. 종종 다가서는 우리 앞의 절망은 온갖 친숙한 숫자로도 헤아릴 수 없는 눈앞의 깜깜함으로 존재하고 있다.

  ‘뾰족한 수’가 없는 경우는 막(幕)다른 궁한 지경에 처할 때이다. 막바지, 막판, 마구잡이처럼 기회가 없는 벼랑에 선 삶을 의미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 앞을 막아선 절망의 벽은 반드시 끝은 아니다. 마지막 순간이란 뼈저린 실감을 하는 사람에게도 ‘뾰족한 수’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인생 3막 4장, 혹은 7막 8장처럼, 막(幕)은 닫혀도 다음 막은 열리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시는 한, 그 뾰족한 수는 언제나 커다란 하늘처럼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