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주 비가 온 후 갑자기 기온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이제 진부령은 여름옷들과 안녕을 기할 날씨가 되었습니다. 저도 오늘 아침 가을 옷을 꺼내 입으면서 이번 주 내내 내린다는 비가 그치고 나면 여름옷들을 세탁해서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날씨가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뀌는지라 한여름에도 뜨거운 햇살은 반가운 손님입니다.
지난 주간에 시외조부님의 장례가 있었습니다. 97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가셨습니다. 시외조모님이 일찍 소천하시고 혼자 몸으로 2남 4녀를 길러내셨고 구세군 부교로 신실하게 믿음을 지켜오셨습니다. 구세군 사관인 큰 아들은 월남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후 알 수 없는 병으로 먼저 천국으로 떠났고, 막내아들마저 질병으로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마음의 고생과 육신의 질고가 얼마나 심했을지 보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보낸 구세군 요양원에서 시외조부님은 때로는 사탕이 필요한 어린이아기 되셨다가, 때로는 정신이 돌아오셔서 증손자를 알아보시기도 예뻐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장례는 따듯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모님들께서 출석하는 교회마다 오셔서 예배를 드리고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증손들만 10명이 넘게 장례식장에서 뛰어오고 뛰어가며 가족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고단한 삶을 마치고 천국으로 가신 시외조부님과 한결같은 믿음으로 살고 있는 자녀들, 그리고 이제는 30,40대 부모가 된 손자와 손녀들, 아무것도 모르고 깔깔대는 증손들, 장례식장은 슬픔과 기쁨이 한데 어우러진 축제의 장소였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 90:10)’ 이 세상에 태어나 수고로이 살다가 마지막으로 한 줌의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 인생을 너무나 잘 표현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 높은 자리에 처하든지 낮은 자리에 처하든지 우리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한 번 태어나 한 번 죽는 연약한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황지우 시인의 ‘길’이라는 시에 ‘인생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란 생각’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어느 누가 쉽고 행복하기만 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누구나 자기만의 아픔이 있고 고난이 있고 슬픔이 있습니다. 편하고 재미있게 살기위해 예수를 믿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편하고 재미있게 살기를 원한다면 그냥 세상의 기준을 철저하게 따르는 것이 더 빠르고 정확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태어나 십수년을 부모의 부양을 받으며 살다가, 어른이 되어 책임지는 법을 배우고 누군가를 부양하는 삶이 얼마나 힘겨운지 깨달아가며 살아갑니다. 시간은 활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이 빨라서 뒤돌아보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렇게 때가 되면 마른 풀잎 하나 손에 쥐지 못하고 가볍게 주님 품으로 가야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오늘은 때로는 가볍게 인생을 바라볼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물로 받은 인생을 주의 자녀답게 진중하고 지혜롭게 살아야 하겠지만 어떤 순간이 너무 견디기 어렵다면 아주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믿음의 역사에서 본다면 우리가 사는 100년은 아주 짧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고된 노동도, 힘겨운 인간관계도, 우리를 괴롭게 하는 그 무엇도, 사실은 별것 아니라고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죽음 앞에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뿐입니다. 입사조건처럼 까다롭고 다양한 절차와 조건을 갖추어야만 하나님을 만나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뭘 잘 하지 않아도 되고 예쁘지 않아도 되고 1등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오늘 하루 곁에 있는 이들과 믿음 속에서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있기만 하면 됩니다. 살아있는 동안에 지킬 것은 단 하나 믿음뿐이고, 죽음의 순간에 가져갈 수 있는 것도 단 하나 믿음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오늘 하루 제가 지불해야 할 모든 의무는 그저 존재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가볍고 편안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그저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 행복한 하루, 감사하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