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6일 이른 아침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새만금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이제 곧 사라질 새만금 갯벌을 만나러 갔습니다. 여러 일로 바쁜 아버지도 기꺼이 답사에 동행하셨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차를 타고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서 남쪽으로 230km 남짓 달렸습니다. 부안 나들목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변산반도 국립공원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얼마쯤 가자 드넓은 갯벌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 해창갯벌입니다. 새만금 지킴이 장승들이 열병하고 있습니다. 물 빠진 갯벌은 곧 맞이할 최후를 기다리듯 고요했습니다. 장승들은 적막 속에서 갯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저마다 무언의 절규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한쪽 구석에 십자가도 서 있었습니다. 2000년 전에 부조리한 사회의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수천만 년 간 생명을 길러낸 새만금 역시 부조리한 사회의 희생제물이 될 참입니다. 장승과 십자가의 모습들이 비장해 보였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해창갯벌에서 1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새만금 전시관을 찾았습니다. 정부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새만금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세운 곳입니다. 시민운동단체와 아울러 정부의 주장도 들어보는 것이 공평한 태도일 테지요. 그런데 이곳을 방문한 사람의 80% 이상이 새만금 사업을 지지한다고 합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의 명칭은 ‘친환경개발 새만금 사업’이더군요. 바다 한 가운데 33km되는 방조제를 건설하고 40,100ha의 땅을 만들어 ‘새로운 창조’를 한다고 합니다. 지난 3월 16일에 대법원은 개발론자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시대에 역행하는 오판은 역사가 심판할 것입니다.

농림수산부와 농어촌진흥공사는 새만금 간척의 목적과 의의를 국토계획 측면과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설명합니다. 새만금 사업에 대한 정부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3조원의 환경논쟁, 새만금》, 홍욱희,  지성사, 70~76쪽 참조)

1. 간척사업으로 40,100ha, 곧 여의도의 140배에 해당하는 국토가 확장된다.

2. 새로 조성될 담수호에서 연간 10억 톤의 물을 확보할 수 있다.

3. 연간 연인원 1,339만 명의 고용을 창출한다.

4. 생태마을, 야생화 공원, 인공 습지, 종합관광공원 등을 조성한다.

5. 교통 환경이 개선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경제논리만 설칠 뿐, 앞으로 사라질 갯벌의 가치나 그것이 미칠 영향 등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습니다. 갯벌은 쓸모없는 땅인가요? 40,100ha의 땅을 얻기 위해선 근처의 산을 훼손하고, 또 40,100ha되는 바다와 갯벌을 메워야 합니다. 이번에 사라질 갯벌의 넓이가 전라북도 갯벌의 90%라고 들었습니다. 갯벌이 매립되고 바다가 오염되는 것은 개발의 폭력입니다. 흔히들 이곳을 한반도의 콩팥이라고들 부릅니다. 콩팥을 떼어내어 만든 토지가 과연 그만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또 연간 1,339만 명의 고용을 창출한다는 것은 과장입니다. 설사 1,000만이 넘는 일자리가 생긴다 할지라도, 대대로 갯벌에 몸담고 살아오던 2만여 어민들의 삶과 수천 년간 그들을 품어왔던 갯벌을 파괴하는 것이 정당할까요? 무엇보다도 현대의 과학기술로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한번 죽은 생태계는 인간에 의해 완전하게 재생될 수 없기에, 새만금 사업은 명백한 반(反)환경 사업입니다. 이렇듯, 정부가 주장하는 새만금 사업의 효과는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무책임한 발상이고 또 아전인수 격으로 왜곡되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지와 오만일 뿐입니다. 개발론자들이 자연과 생태를 운운하는 것이 듣기에 거북합니다. 수천 년 간 숨쉬며 살아오던 생명의 터를 일시에 죽음으로 몰아넣고, 친환경을 운운하며 그 곳에 생태공원을 조성한다, 담수호를 만든다 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저들은 생명을 내세우며 생명을 토막 내고 있습니다.

발길을 돌려 해창 갯벌로 향했습니다.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승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물이 조금씩 들어오는 바다 쪽으로 걸었습니다. 저만치서 중년 부부가 굴을 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그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얼마 지나서 갯벌에서 벗어나 앞에 있는 해창산으로 향했습니다. 말이 산이지 큰 구덩이만 남아 있었습니다. 산 하나가 밑동이 잘려 통째로 사라졌더군요. 방조제 공사를 위해 흙을 파내고 채석하는 바람에 지금은 돌산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국토개발이란 것이 건강한 산을 깎아서 신음하게 하고, 생명이 약동하는 바다를 막아서 병들게 하는 것입니까? 경제논리로 자연을 파괴하여 또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이 발전입니까?

우리는 새만금 갯벌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새만금 갯벌에 대하여 경제적 관점, 생태적 관점, 그리고 윤리적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경제적 관점으로 보면, 간척지를 개발하는 것보다 갯벌을 보전하는 것이 보다 유익하고 지속적인 경제적 가치가 있습니다. 하구습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경제적인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갯벌을 보전하면, 간척지로 개발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유리합니다. 갯벌은 해산물 등 자원의 보고입니다. 또 생태 관광도 지속적인 가치 창출이 가능한 분야입니다. 더욱이 갯벌이 지니고 있는 정화 기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큰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꼭 토지의 가치와 비교해야 할까요? 갯벌은 갯벌 자체로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위적인 개발보다는 자연 자체로부터 생명의 무한한 가치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길을 찾는다면, 자연은 인류에게 지속가능한 발전을 보장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개발 위주의 발전 정책은 단기적 이익만 있을 뿐, 결국 그것은 막대한 손실만 가져올 것입니다.

둘째로, 생태적 관점에서 접근할 때, 간척 사업은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리고 자연의 질서를 교란시킬 것입니다. 방조제가 완성되면, 해수의 흐름이 뒤바뀌고 배수갑문을 통해 유출되는 담수가 정화되지 않아 일대 해양 생태에 심각한 피해를 끼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인 제임스 러브록은 좀더 포괄적인 관점에서 바다의 가치를 조망합니다.

생물권은 앞으로 인구가 더욱 늘어나고 농경지가 더욱 확대되더라도 균형을 잃지 않고 번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바다, 특히 대륙붕의 풍요로운 지역을 육지와 마찬가지로 마음대로 처분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서는 더욱 안 된다(《가이아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 제임스 러브록, 210쪽).

우리나라는 서해안에 세계적인 대륙붕을 가지고 있습니다. 러브록은 대륙붕이 지구의 항상성을 갖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열대우림과 더불어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라고 역설합니다. 중요한 것이라면, 그것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무책임하게 변형시키거나 없애서는 안될 것입니다. 대륙붕을 훼손시키면 어떤 반대급부가 돌아올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필경 커다란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러브록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홍욱희 교수는 새만금 간척사업이 ‘위대한 창조’라고 하며, 간척사업의 성공사례로 네덜란드를 제시합니다.

한때 네덜란드는 북해에 있는 델타 간척지, 티젤 담수호, 그리고 아이젤미어 간척지 등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간척으로 인한 자연재앙을 경험하고는 간척지를 습지로 복원하는 역간척 사업을 추진한다고 합니다. 스위스는 곧게 뻗은 하천을 본래 모습으로 되돌리고 있습니다. 독일은 하천의 콘크리트 둑을 헐어 생태계를 복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교훈을 우리가 제대로 배워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이 문제를 윤리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는 갯벌과 새로 조성될 토지의 가치를 금전적으로 환산하여 비교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에드워드 윌슨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생태계 수준의 경제가치와 생산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생태계 내의 모든 종, 특히 절멸위험에 처할 정도로 희귀한 종들을 구하는 것을 정당화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가치척도’라는 것은 야만적인 기업 회계에 봉사하는 노예이다(《생명의 미렁, 에드워드 윌슨, 182쪽).

생명에 값을 매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생명은 경제를 초월합니다. 생태계는 고사하고 벌레 한 마리 풀 한 포기의 생명도 창조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과학기술입니다. 인간은 자연을 걸고 도박을 해서는 안 됩니다. 윌슨은 생명을 대신하는 개발의 오류를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지구를 대상으로’ 도박을 하거나 자연계를 망치지 않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신종이 새롭게 등장하고 이들에 의해 안정된 생태계가 세워진다고 가정하고 논의를 시작해 보자. 그런 먼 훗날의 가능성을 믿고서 우리는 절멸 행위를 지속해야 하는가,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원래의 종과 생태계가 망가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가? 그런가? 지구의 생명의 역사를 지워 버리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도서관과 미술관도 태워 버리고, 악기도 장작으로 만들고, 악보도 종이로 만들고, 셰익스피어, 베토벤, 괴테, 그리고 비틀즈도 없애 버리자. 왜냐하면 이들 모두 상당히 좋은 대체물로 재창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생명의 미렁, 윌슨, 207 쪽).

생태계의 문제는 생명과 윤리의 문제입니다. 윌슨은 이 문제는 모든 위대한 결정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인 것이라 했습니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생명에의 경외를 지녀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오직 눈앞의 이익만 추구함으로써 인간이 부여받은 위대한 생명 윤리와 도덕적 책임을 저버린 것입니다.

짙은 구름 속에서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집니다. 왜 오늘은 시민단체의 시위가 없을까 궁금합니다. 돈과 권력의 힘에 밀린 것일까요? 아니면 전략적으로 후퇴한 것일까요? 원래는 사흘쯤 시간을 내어 방조제도 걷고 시민단체의 시위 현장에도 참여할 계획이었지만, 둘 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얼마 후에 중간시험도 있고 해서 계획을 수정하여 귀가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해창산을 뒤로 하고 차에 올랐습니다.

돌아오는 길의 하늘은 내 마음처럼 흐렸습니다. 아마도 다시는 보지 못할 새만금의 갯벌은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내가 걸었던 갯벌, 미역 냄새나는 바닷물, 고둥, 조개, 게, 해초들, 미세한 플랑크톤들… 이 모든 생명들이 사라지겠지요. 내 마음에 눈물이 고입니다. 새만금이 아프니 나도 아픕니다. 문득 목청껏 외치고 싶습니다.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

“자연을 내버려두라(Let it be)!”

이번 새만금 답사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였습니다. 교실 밖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한편으로는 실망했지만, 한편으로는 낙관적입니다. 예전에는 문제시 되지 않던 간척사업이 국가의 갈등 사업이 될 만큼 시민의식이 성숙하고, 자연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는 사실에서 작은 희망을 찾아봅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앞으로 해야 할 일 또한 많습니다. 새만금이 마지막으로 내게 안겨 준 이 경험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새만금을 향한 마음이 내 인생에서 자연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개발의 횡포로 사라져가는 새만금 갯벌과 그곳에 깃든 모든 생명들에게 미안함을 전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