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8일 금요일

긍휼의 삶은 이웃을 향한 자신의 죄책감을 달래기 위한 일련의 선행도 아니고 최대한 많은 선을 쌓으려는 열광적 시도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에 동참하는 것이다. -헨리 나우웬, 기도의 삶 -

80세 노구의 마누할아버지가 길가에 나오셔서 뜨거운 태양 볕 아래 양산을 들고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계시다가 우리가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승합차 운전수에게 다가가시더니 부수앙가 공항에서 대절하여 타고 온 승합차의 렌트비를 선뜻 내 주시는군요. 선교현장에 기거할 곳 한 곳 없어 늘 짐을 싸 들고 다니며 동가식서가숙하는 보따리 선교사에게 이런 극진한 대접을 해 주시니 너무나 황송하고 감사합니다.

이번엔 집사람도 함께 오느라고 항공료와 택시비가 너무 많이 지출되고 경비가 너무 부담되어 이곳에 와서 쓰게 될 체류비는 어떻게 감당하나 염려하다가 그냥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믿음으로 왔더니 요번에도 할아버지가 이렇게 기쁨으로 맞이해 주십니다. 이곳 영세 어부들의 요즈음 하루 수입이 겨우 100페소 정도인데 2700페소나 되는 거금을 선뜻 차량 렌트비로 주시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뿐 아니라 일하는 아이들을 시켜 우리가 쓸 방을 깨끗이 치워 놓고 침대 위에는 호텔처럼 타올과 벼개를 가지런히 놓아 두셨습니다. 오자마자 식사 할 수 있도록 랍스타와 게도 사다가 삶아 놓으시고요. 랍스타나 게는 이곳에서도 비싸서 특별한 손님이 올 때나 대접하지요. 이런 친절은 분명 사람의 마음이기에 앞서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할아버지의 배려로 여장을 풀고 아늑한 밤을 맞이하려는 데 너무나 많은 비가 밤새도록 쏟아지는군요. 자다가 일어나 딱바누아 아이들이 걱정되어 가보고 싶었지만 깊은 밤이고 불도 없는 위험한 길이라 기도만 하고, 이른 아침 우산을 들고 할아버지가 주신 미끄럼 방지용 지팡이를 짚고 바닷가 아이들 처소를 갔습니다. 다행히 비 피해를 대비해서 지난 밤 부모들이 섬에서 나와 아이들과 함께 밤을 새워 주었군요. 허름한 천장으로 비가 좀 새긴 했지만 그리 큰 피해는 없고 각 가정의 아이들이 무사히 밤을 지낸 모습입니다. 눅눅한 들마루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배불뚝이 엄마가 오랜만에 나를 보자마자 인사 대신 “노 커피”라고 합니다. 비온 후 음산한 아침에 따끈한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 몸이 풀리고 좋을 텐데 커피가 모두 떨어졌지만 돈이 없어 못사는 가 봅니다. 아침 대신 마시는 커피를 마시지 못하니 오늘은 무슨 기운으로 하루를 살아갈지요. 한국에서부터 가져간 사탕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며, 내일 아침엔 커피를 많이 사 오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할아버지네 거실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데 건축업을 하는 거구 라우렐리오씨가 지난 번 치료해 주어서 고맙다고 집에서 기르는 닭을 한 마리 들고 왔네요. 비가 잠시 개인 틈을 타 오후에 그의 부인이 하는 손바닥만 한 점방에 들려 딱바누아 가족들 줄 커피와 설탕을 잔뜩 샀습니다. 닭을 선물한 것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지요. 내일 아침 딱바누아 아이들과 부모가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행복해 할 것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먼저 행복합니다.

<출33: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