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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목사는 동역자인가, 피고용인인가? 목회자인가 직원인가?부목사들에 대한 처우, 이대로는 감리교회의 미래가 없다.
방현섭  |  racer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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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07월 17일 (일) 17:05:02
최종편집 : 2016년 07월 20일 (수) 23:23:10 [조회수 : 16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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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학대학 동기들에 비해 7년 늦게 입학하였다. 일반대학도 좀 다니고 이런저런 직장생활도 하고 군대에도 다녀온 후 뒤늦게 부르심을 받았다. 군 전역 후 여름수련회에 참석했다가 소위 은혜 체험을 하고 입시학원을 다녔지만 7년이라는 공백을 채우기에는 부족하였는지 그해에 낙방을 하고 심기일전하여 다시 일 년을 공부하고는 좋은 성적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신학대학에 왔지만 나는 늦깎이로 신학대학에 오게 된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겪은 다양한 경험들이 나의 신학공부에 매우 유익한 자양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솜털들이 막 굵어질 나이인 스물밖에 안 된 청년들이 교회에서 전도사님으로 섬김을 받으면서 쭉 목회자의 길을 가는 것보다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직급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를 경험하고 이런저런 긍정적 부정적 체험을 하며 살았던 것이 목회와 교우들을 이해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쉬지 않고 6년을 내리 공부하면서 교육전도사 생활을 한 후 대학원을 1년 마쳤을 때 목회를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수련목회자 제도가 없었기에 목사가 되려면 당연히 단독목회를 해야 했는데 선친들의 기도 덕분인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십여 명 남짓의 작은 교회였지만 그래도 교인이 있는 교회가 어디인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목회를 했다. 목회를 하면서 작은 교회는 계속 작은 교회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교회성장이 쉽지 않다보니 목회자들이 3년 과정을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으면 보다 나은 조건의 교회로 이임하거나 부목사로 가기 때문에 작은 교회는 그냥 서리 전도사들의 진급을 위한 교회로만 남게 된다. 그래서 나는 작은 교회의 존재를 증명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교인들에게 ‘10년을 있을 테니까 날 쫓아낼 생각은 하지 말라’고 선전포고(?)를 했다.

안수를 받고 몇 차례 더 나은 조건으로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작은 교회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포기했다. 사실은 부목사 생활을 한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이도 적지 않으니(당시 30대 중반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부목사로 가기에는 좀 많은 나이었다) 불러주는 곳이 많지도 않았지만 그동안 살아온 내 삶의 궤적이 나를, 좋게 말하면 자존심이 강한 사람, 나쁘게 말하면 강렬한 에고이스트로 만들었기에 담임목사를 섬기며 돕는 목회를 한다는 것이 그리 매력적이지도 않았고 가능해 보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주위에서 만나는 부교역자들은 목사라기보다는 직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비굴한 회사원처럼 보였고 성스러운 사역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자가 당연히 보장 받는 권리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생계를 위해 그리고 언젠가 큰 교회 목회자가 될 꿈을 안고 배운다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것 같았다. 부목사들을 보면서 나는 대기업 대리로 사는 것보다는 구멍가게 주인으로 사는 게 더 속편하다는 천박한 논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지만 부교역자들의 삶이 자존감 넘치는 축복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목회를 시작한 후배들이 안수를 받고 부목사로 이임할 고민을 하는 것을 보면 나는 대부분 뜯어 말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라고 조언하기까지 했다.

그것이 한 10년 된 이야기이다. 그 사이에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수련목제도가 생겼다. 수련목 제도도 몇 번의 변화를 맞아 이제는 단독목회를 전혀 하지 않아도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고 안수를 받은 후에도 수련목회자로 사역했던 교회에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한때 수련목회자로 진급한 목회자는 단독목회를 한다는 조건으로 안수를 주었다. 그러다보니 안수 받기 위해 작은 교회를 찾아 나오거나 개척을 했는데 안수를 받은 이후 곧바로 부목사로 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전에는 담임전도사가 부임하면 3년은 자리를 지켰는데 이때는 길어야 1년, 짧으면 서너 달 만에도 가버렸다. 이런 불합리한 절차를 없앴으니 얼핏 보면 생계나 목회를 위한 조건이 훨씬 좋아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내 신학생 시절에는 교회학교나 중고등부를 담당하는 교육전도사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적어도 대학원생 정도는 돼야 교육전도사가 될 수 있고 신학생은 그냥 간사나 총무이다. 전에 대학원생이 했던 역할은 이제 부목사들이 한다. 파트타임 부목사가 교육을 맡는 경우도 많다. 말하자면 노동강도는 높아졌으나 그에 대한 대가는 박해졌다고나 할까?

그 이유는 같은 값이면 더 고급인력을 쓸 수 있게 됐고 이왕이면 저비용으로 부교역자를 고용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말로 하면 더 값싸게 부릴 수 있게 됐다. 전에는 교회가 최소한 부목사 가족이 살 집은 마련해주었다. 여기에 승용차(물론 업무용)를 내주기도 했고 집의 관리비를 내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차량은 고사하고 아예 집을 주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기 살 집은 자기가 마련해서 오라는 것이다. 부동산 임대료가 가파르게 상승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고용환경이 열악해져 사회에 산업예비군들이 널려 있는 것처럼 교회에도 목회예비군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렇게라도 자리를 구할 수 있으면 감지덕지이다.

문제는 열악해진 경제환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가 되기로 결단한 이들에게 가난의 문제는 어느 정도 각오가 돼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갈 것이고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릴 것이라고 찬송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이 한 몸 던져서 충성하겠다고 나선 젊은이들이건만 이들을 대하는 교회와 담임목사의 태도는 값싼 노동력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궁핍하고 어려운 환경이지만 거룩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존감과 동역자들의 격려이다. 비록 어리지만 젊은 패기와 창의력, 풋풋함으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이들을 맞이하는 교회는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고 그들의 신실한 신앙심과 헌신을 순수하게 대해주지도 않는다. 현실은 시궁창이나 다름없다.

얼마 전 신학대학 후배 목사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이름을 들으니 낯설지는 않지만 얼굴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부목사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나에게 글을 보내왔다. 그의 글을 조금 손 봐서 소개한다. 이 글은 한 개인이 썼지만 나에게는 한 개인이 아닌 부목사라는 집단적 인격, 집단적 명사(名詞)가 쓴 글처럼 다가온다.

부목사의 비애(하소연)

12년의 담임목회를 했을 때는 부목사들의 하소연이 잘 맘에 와 닿지 않았었다. 아마 부목사의 경험이 없는 담임들도 부목사들의 마음과 상황을 잘 모를 것 같다. 요즘말로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은수저인 사람인 흙수저를 이해하지 못하듯이, 교회의 성골과 진골도 마찬가지이다.

배움의 기회로, 도전의 기회로 삼고자 부목사를 지원하여 보니 그 현실이 들은 대로 너무 비참하기 짝이 없다. 감리교회는 부목사가 소위 쿠테타를 일으켜 담임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목사나 담임목사나 같은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부목사는 성도들에게 사랑과 존경의 표시도 받을 수 없고(받으면 시기, 질투로 인해 쫓겨남), 광야의 외치는 전도자의 마음으로 설교도 할 수 없다. 성도들을 위로(장례)할 수도, 축하(결혼) 할 수도, 그래서 슬픔과 기쁨을 마음으로, 진심으로 함께 할 수 없게 제도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부목사는 철저히 입단속해야 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의 하루는 대개 새벽 차량운행서부터 시작한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씻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잠이 모자라 기상시간은 점점 늦어져 4시가 되었다. 새벽 차량운행 후 잠깐 아침에 쉴 수도 있지만, 장례가 나면(다른교회의 경우) 새벽기도 후 바로 장례진행을 하고 때론 멀리 지방까지 위로 예배를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새벽에 나오지만 정해진 퇴근 시간은 없다. 화요일 저녁엔(다른 교회의 경우, 본인 차례가 왔을 때) 중보기도 담당, 수요일은 수요 예배준비 및 정리, 금요일은 금요 기도회 때문에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간다. 토요일은 당연히 주일 준비로 늦게 퇴근한다.

평일에 당번일 경우 밤 9시까지 교회에서 운영하는 공익카페 OOO에서 써빙을 해야 한다. OOO는 공휴일이나 주일이나 쉬는 날 없이 거의 365일 오픈하기 때문에 전 직원(사찰집사, 사무집사, 심방전도사, 두 명의 부목사, 수련전도사)이 매일 돌아가면서 당번을 서야 한다. 당번자는 수요 예배도 없다. OOO는 모든 예배 시간에도 운영되고 있다.

목사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월요일에는 가족들과 함께 하며 공과금 납부, 은행업무 등 가정사를 돌봐야 하지만 카페 당번이 걸리면 출근해야 한다. 아이들이 아파 병원에라도 가야 하면 매우 곤란하게 된다. 몸과 마음의 피로가 심각하다. 어떤 후배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교회가 기도원이라도 소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기도원의 유지, 보수 등의 업무까지 떠맡아야 한단다. 그런 일은 밤 11시 12까지 계속된다.

반면 담임목사는 새벽기도에 안 나와도 된다. 수시로 빠지고 월요일은 고정적으로 빠진다. 담임목사는 평일 밤 9시, 10시에 전화를 하여 다음날 새벽 설교를 준비하라고 한다. 사모와 군목 안수를 받은 자식은 아예 새벽기도를 안 한다. 그러나 부목사들은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 담임목사는 성도들에게 “기도해라, 하나님 응답하신다. 기도 안하면 문제 생긴다”고 권면한다. 담임목사 사모는 사모대로 수시로 집합시킨다. 사모의 하소연이며, 잔소리며, 수발을 다 들어주어야 한다. 수시로 문자 보내 ‘OOO에 관심 가지고 봉사 하라’고 독촉해댄다. 담임목사 사모는 부목사들과 직원들에게 스트레스를 풀며, 심지어 부목사들과 성도들에게까지 욕도 서슴없이 한다. 담임목사 부부가 부부싸움이라도 한 날이라 치면 전 직원은 눈치 보느라 정신이 없다. 결제를 받아야 할 서류는 기분 좋은 날을 골라 사인을 받는다.

담임목사 사무실은 계절에 따라 에어컨과 히터가 돌아간다. 그러나 부목사실은 여름에는 선풍기로 만족해야 하며, 겨울에는 개인이 개별로 구입한 미니 난로로 발을 녹인다. 담임목사가 정치적 목적으로 지방 목사들을 접대하고자 교회로 초대하면 직원들은 아침 7시부터 카페에 나와 봉사해야 한다. 담임목사가 외부에 기고하는 글도 다 부목사들이 쓴다. 물론 담임목사가 쓴 것처럼 써야 한다. 그런 담임목사 눈치 보면서 생존하기 위해 부목사들은 서로 싸우고 시기한다. 같은 신학대학 출신 선·후배의 관계는 다 깨졌다.

말이 많은 곳이 교회이다. 설교를 조금 다르게 하면 성도들 입에서 곧 “말씀이 달라, 은혜 많이 받았어, 내 영의 갈급함을 채워주시네!, 도전의 말씀을 받았어” 등등의 말이 나오고 퍼지고 붙여진다. 그럼 담임목사 주위의 아부쟁이들은(실제론 존경의 맘이 없는 것 같다) “목사님 조심해야겠어요, 성도들이 부목사 설교에 너무 은혜 받는데요”라고 말한다. 이들은 담임목사에게 총애와 신뢰를 받기 위해 남이 하는 이야기처럼 담임에게 전달한다. 부목사는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 분의 뜻을 전하는 위로와 권면의 명설교를 해도 안 된다. 성도들이 은혜와 감사의 감정을 숨겨하고, 은혜 받은 것을 간증해서도 안 된다. 북한도 아니고 교회의 현실이라는 것이 참 어이가 없다. 내가 사역했던 교회의 순수한 성도들은 담임과 그의 가족들의 여가생활과 삶을 위해 물질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얼마 전 방송 고발 프로그램에 나온 “축사노예의 만득이인 것” 같다.

부목사로 사역하는 선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가족 때문에 벙어리, 귀머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부목사는 담임목사의 부조리 불합리한 모든 것을 감추어야 하고, 참아야 한다. 막말과 욕설, 심지어 물건을 집어던지는 것도! 담임목사가 화를 내며 던진 서류철을 머리에 맞은 후배도 있다. 부목사는 오직 담임목사의 수족이 되어, 때론 사찰처럼, 용역인부처럼, 비서처럼 섬겨야 한다.

부당한 대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올해 1월부터 부목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교회에 올 때 담임목사가 ‘우리 교회 부목사는 보통 2년 정도’라고 했다. 일종의 암묵적 계약인 것 같았다. 그래서 2년 동안은 안심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6개월 만에 아내와 아이들, 우리 다섯 식구는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내 생각에 우리 가족이 쫓겨나게 된 이유는 성도들의 ‘부목사와 담임목사에 대한 비교’에 대한 소문 때문이다. 설교도, 기도도, 찬양인도도 담임목사처럼 하거나, 담임목사보다 더 잘, 더 열심히 해서는 안 된다. 설교는 그저 교리적 설교, 별다른 감동과 찔림이 없는 평이한 설교만 해야 한다. 찬양인도도 평신도 찬양인도자라면 몰라도 담임목사와 똑같이 목사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부목사는 잘 하면 안 된다.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목사이지만 담임과 부의 차이가 많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했다. 담임목사는 어느 정도 은퇴보장이 있는 반면 부목사는 그렇지 않다. 부목사는 나이 40 넘으면(요즘은 일반기업도 구인 시 연령제한을 두지 못하게 하는 추세이다) 더 이상 부목사 지원하기가 쉽지 않다. 담임으로 청빙 받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개척을 하거나 개척할 돈이 없으면 생존을 위한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 가족이라도 살려야 한다. 그것이 부목사의 현실이다.

세상의 기업에서는 한 회사를 나오면 다른 회사에 들어 갈 수 있지만, 교회 부목사는 한 교회에서 좋지 않게 쫓겨나면 특별한 인맥이 없는 한 다른 교회에 지원하기 어렵다. 담임목사는 자기에게 순종하지 않은 부목사의 길을 막기 일쑤이다. 이임하려는 교회에 연락하여 악담을 하거나 그 교회에서 문의가 오면 결코 좋은 말을 해주지 않는다. 세상의 회사는 노조라도 있지만 교회 부목사들은 노조도 없이 그냥 당한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 쫓겨난다면 억울하지 않겠는데 갑자기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교회 안에서 강자인 담임목사 앞에 약자인 부목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한다. 이참에 부목사들 노조를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왜 담임들은 교회를 자기의 왕국으로 만들고 있을까? 마치 교회와 성도들이 자기들의 소유물인 것 처럼 말이다. 전혀 그 분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지내는 모습은 찾아 볼수 가 없는 것 같다. 사도바울은 교인들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떨었노라” 라고 고백한다.

백성이 없으면 왕도 없는 것이다. 백성 없는 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성도 없는 목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섬김과 존경을 받다보니 그것이 착각이 되어 자신이 왕인 것 처럼 행동하게 되는 것 같다.

목회자의 정체성에 대해서 바울은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목사들)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그저 “다 너희의 것이요” 라고 한다. 사실 목회자 없는 믿음의 공동체가 더 건강한 것 같다.

얼마 전 한 섬에서 성폭행 당한 교사가 “또 다른 제2의 성폭행의 피해자들의 생기지 않도록 용기 내어 폭로했다”고 말했다. 지금 나도 그런 심정이다.

이 글 안에 부목사의 애환과 비애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실 별로 새롭지는 않다. 이미 십여 년 전에도 들어왔던 이야기이다. 내가 들은 이야기 중에는 이 글보다 더욱 심한 경우도 있고 거의 대부분의 부목사들이 이런 환경에서 부목사 생활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고, 부목사들의 이런 처우를 알고 있음에도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 주위에서 아무런 개선을 위한 도움도 주지 않으며, 부목사들 자신도 개선을 위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담임목사들이 부목사들을 동역자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교회운영을 위한 소모품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교회 성장은 정체됐지만 해마다 나오는 충성심과 헌신성을 겸비한 신학대학 졸업생은 수요를 초과해 쏟아져 나온다. 자연스럽게 경쟁체제로 돌입했다.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 투신하였는데 줄 잘 서서 담임목사에게 헌신해야 하는 구조가 돼버렸다. 그러다보니 비인격적 대우를 받거나 비정상적 고용을 강요해도 저항할 수 없다. 그렇게라도 해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성교회와 기성교회의 목회자들이 과연 젊은 목회자들을 동역자로 인정하고 용납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목회자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이 목사,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위해 부름 받은 성직자라는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정체성을 부정하고 흔들면 견뎌낼 목회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데 아버지, 삼촌뻘 되는 선배 목회자들은 이 젊은이들을 목사로 대우하지 않으며 동역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보이는 현상 그 자체로만 본다면 외주업체로부터 아웃소싱 받은 계약직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설령 계약직 노동자로 본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계약직 노동자라고 해도 그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존엄한 인간성, 인격이 있으며 한국의 노동법은 그런 대우를 용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극악한 기업주들이 아니라면 결코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미래가 암담하다. 내가 속한 감리교회의 현실이 더 잘 보여서 그렇겠지만 한국 감리교회에게는 아예 미래라는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냥 오늘만 살다가 죽을 것 같은 타락하고 패역한 패륜아같이 보인다. 기성 목회자들은 한국 감리교회를 새롭게 하고 건강하게 만들 미래 주역들의 날개를 꺾고 있다. 비판의식도 없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지저분한 일까지 기꺼이 하는 무뇌아, 그저 생계에나 연연하는 비굴한 사람들로 만들고 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누구인데 오히려 젊은 목회자들에게 패기가 없고 창의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부목사들 자신이 상황을 바꿀 노력과 행동을 하지 않은 잘못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은 철저한 을, 아니 병이나 정이다. 결국은 모두 큰 상처를 입는 치킨게임으로 끝날 것이다.

이건 한 개인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전적으로 감리교회 미래에 관한 문제제기이다. 목사들이 서로를 동역자로 인정하고 용납하고 서로를 위한 영역을 만들어 배려하지 않는다면 여기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는 시공간이 아니라 무한경쟁의 아비규환만 남게 된다. 간혹 같이 학교 다녔던 또래의 부목사가 규모도 있고 괜찮은 교회의 담임목사로 초빙되어 갔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마음이 뿌듯하기도 하고 이제는 담임목사로 가는 나이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부목사를 살뜰하게 챙겨준 담임자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든다. 그러나 과연 그런 교회를 맡아 담임목사로 갈 수 있는 경우가 앞으로 얼마나 될까?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부목사들이 신앙적 정체성을 잃은 회사원으로 전락하고 손금이 닳토록 비벼대는 아부쟁이가 되거나 감리교회에 상처를 입고 떠나가게 될까? 이대로라면 미래가 암담하다. 정말! 모든 목사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이런 세상, 이런 감리교회를 만들었다는 사실 앞에 모든 감리교회 목사는 공범임을 통회하며 자백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런 현실에서 미래를 살아야 할 당사자인 젊은 목회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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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법규 (122.101.20.157)
2016-07-18 10:19:37
교회가 일반 사회와 똑같아서야....
목회의 길이 정말 고행의 길이고 가시밭길을 걷는것 같이 힘든길인가 봅니다.
담임목사가 아니라면 나머지 사역자들은 담임목사 부부를 써포트하는 인력들이고
교회내에서 담임목사가 귀잖아하는 일이나 허드렛일을 해주는 마치 옛날 시골에
돈 많은집에서 일해주고 세경받는 머슴(?)과 같은 처지인가 봅니다.
그런일 해준다고해서 부 목사나 전도사들에게 넉넉한 급여를 주는것도 아니질 않습니까.
한국 사회가 어딜가나 이렇게 수직적인 구조가 참으로 많은데 이런것은 이제 시대가
변한만큼 수평적인 관계로 고쳐져야 합니다.
자기가 힘이 있고 능력이 있을때 동료사역자들에게 위험을 보이긴 보다 더 그들을
섬기고 귀하게 생각해주는 문화로 이제는 바뀌어야합니다.
내가 힘들었으니 너도 똑깥이 힘들어봐야하고 고행의 길도 겪어봐야 한다란
생각은 이제 시대에 뒤 떨어지는 발목잡기 생각이나 다름이 없는것 아닐까요.
일반 사회나 이쪽 목회 계통이나 권력있는 사람, 권한있는 사람을 대하는 모습은
전혀 다를바가 없는것 같습니다.
또한 사모가 교회에와서 이것저것 간섭을하고 참견을 하는 모습은 절대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어찌보면 꼴 볼견(?)일수도 있습니다.
본분을 어느정도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을 당하는 사람입장에서는 이런것이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고 시험을 받게하는일인지 잘 모르시잖습니까?
아직도 이런 봉건적 형태의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니 많이 아쉽군요.
리플달기
37 14
그만둬 (110.5.255.2)
2017-12-17 00:37:42
성도들의 삶을 보면 이런 얘기 안나옵니다.
이런 치킨 게임 만든게 다 누구인줄 아십니까?
생활 어렵다고, 부흥이 안된다고, 부목으로 버티다보면 10년쯤 지나 자리하나 생길거라는 막연한 기대 가지고 배울것도 없는 사람 밑으로 머리 조아리며 들어간 자신들 때문입니다.
훈수 둘 마음은 없지만,
그런 상황을 스스로 인식하고도 부목으로 계속 사는 건 진짜 '노답'입니다.
저같으면 교회에서 그나마 믿어주는 교인들에게 개척 뜻 밝히고,
(그렇다고 따라나오라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끔 최악이니까요)
있는 것 없는 것 끌어 모아서 교회 개척하세요.
기왕 월세가 싸면(형편따라 다르겠지만 요즘으로 치면 월 50 미만) 좋겠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분 처럼 설교하고 진짜 은혜받았으면,
부목사 사임하고 간다고 마냥 신경끄고 있지는 않을겁니다.
아니라면 '지가 설교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목사의 착각이겠죠.

그래도 오지 말고 사람들 사는 곳에요.
월세라도 좋으니 교회 칸 막아서 집 하고요...
죽기 작정하고 전도하고,
주변에 도움도 청하고,
살다보면
어느새 돕는 손길들도, 어느새 와있는 사람들도 있을겁니다.

하나님 돌아가신 거 아닌데 생계형 아니라 사명 감당하는 인생하나
못 돌보시겠습니까?

밖에서 성도들 사는거 보십시오.
최저생계비 누가 안챙겨주나 목 빼고 기다릴 맘이면
빨리 그만두는게 낫겠습니다.
리플달기
9 13
777 (120.32.129.57)
2016-09-01 16:03:19
세상보다 더 세상적인 교회의 치부를 보여주는 글이군요.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교회는 이렇지 않았을텐데... 과연 이를 교회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고 이런 사실을 모른체 그냥 다니는 것이 과연 예수님을 믿는 길인지 의문입니다.
리플달기
15 13
이상길 (1.248.69.11)
2016-07-19 08:31:27
십일조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가르치는 교회들...
밥벌이를 위해 전도니 선교니 사역이니 주의 종이니 복음전도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하셨는데...
입으론 하나님 섬기지만
속으론 재물(복,축복)을 섬기는 자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그 때 가서야 알게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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