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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고르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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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7월 13일 (목) 00:00:00 [조회수 : 3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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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고르반으로


복음과 희망(www.gospel-hope)에 "이민성도" 라는필명으로 올린 글 내용이 좋아서,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 필자는 미주교회에서 전문직업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분으로 미주교회들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쳤는 바 오늘날의 한국교회 실상에서 대단히 유익하고 귀담아 들어야할  "어느 평신도의 외침"이라고 판단하여 연재합니다.  당당뉴스가 책임지고 실명을 보호합니다. 여러 글들은 無順입니다.(당당뉴스 운영자)


얼마 전에 제법 큰 규모의 교회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강사목사가 열심히 말씀을 전하는데 그 내용의 핵심은 "담임목사님 말씀을 잘 순종하면 복받는다" 는 내용이었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성경에 나오는 순종의 사람들인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와 갈렙.... 등장시키면서 그들이 순종함으로 어떻게 축복을 받았는지에 대한 열변을 토하는 것이었다.

강사의 열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께 순종해라, 담임목사님께 순종해라, 순종의 표시는 마음을 바치는 것이다. 마음바치는 것이 무엇이냐, 바로 물질을 바치는 것이다, 고로 축복을 받는다" 는 논조였다.

그리고 설교가 끝난 후 봉헌 시간이 있었는데, 담임목사가 나와서 헌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과 그 내역을 일일히 거명하고 내용까지 읽어주었는데 장장 20분을 할애하는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집회모습은 1980년대 한국의 부흥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부흥회를 열고서 건축헌금을 작정시킬 때는 강사목사가 실컷 설교를 한 후 1억바칠 사람, 1천만원 바칠 사람.......나중에는 10만원까지 떨어지면서 성도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엽기적인 모습들이 있었다. 한국에 유명부흥사들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잘 하여야 곳곳에 불려다닐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으며 그런 엽기적인 집회들을 통해서 교회를 건축한 곳도 상당수였다.

그런데 21세기를 맞이 한 미국에서 한국의 무지한 1980년대의 엽기적인 모습을 작은 교회도 아닌 큰 교회에서 보니까 감개가 무량(?) 하였다. 나중에 들어보았는데 그 교회의 교인들은 십일조봉투가 있는데 매월 도장까지 찍어준다는 것이다. 만약 십일조가 2개월이나 밀리면 왜 십일조를 내지 않느냐는 식으로 압박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선교나 구제는 땡전 한 푼도 지출하지 않으며 가끔 신문에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하여 교회예산의 1%도 되지 않는 장학금을 내어 놓는 정도에 그치는 짠돌이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였다. 그러니 그런 교회에 정신이 똑바른 사람들이 누가 다니겠는가? 내가 보기에는 지금까지 다녔던 본전이 아까워서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처럼 보였다.

왜 이런 어두운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이런 엽기적인 모습을 누가 만드냐는 것이다. 바로 "교회를 사물화 하거나 기업처럼 생각하는 담임목사" 이다. 예배시간마다 헌금자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고, 십일조 확인도장을 찍고, 수십종류의 헌금명목을 만들어서 교인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면서 복음증거를 위한 선교와 구제는 전혀 하지 않으며, 담임목사는 그 헌금으로 마련한 백 만 달러에 훨씬 넘는 집에서 배를 떵떵 거리면서 살고 있는 그러한 엽기적인 모습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고 있다는 말인가?

규모가 작은 이민교회들로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교인들의 물갈이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자기의 심복이라는 사람들을 재정부에 심어 놓고서 온갖 명목으로 교묘하게 교회재정을 사용하는 목회자들이 한 두명이 아니다. 작은 교회에서 할일이라고는 교회재정관리하고 성가대, 구역장 정도밖에 없다. 그 중에서 재정부 일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인들은 안수집사나, 장로가 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재정부를 거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순수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섬기다가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기 돈도 아니고 공금이기 때문에 담임목사가 원하는 모양으로 이리저리 개 줄에 묵여다니는 사람처럼 끌려다니는 것이다. 묵었던 것이 1, 2년이 아니고 5년 10년이 흐르면 그것이 하나의 교회관행처럼 되기 때문에 아무도 반기를 들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연말이면 모든 예산의 항목을 분산하여 교인들의 눈에 담임목사가 실제적으로 사례를 얼마 받는지도 모르게 공동의회 등에서 교묘하게 눈속임을 하는 것이다. 공동의회 사회자가 담임목사인데 누가 의문을 품고서 질문이라도 하면 완전히 "역적" 이 되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에 감히 말하지 못하고 그냥 "거수기노릇"을 하는 것이 오늘날 이민교회의 실정이라는 것이다.

한편, 어느 정도 역사가 있고, 담임목사가 한 두번 이상 바뀐 교회의 경우에, 기득권을 가진 재정장로들이 재정권을 붙잡고서 담임목사의 목에 개 줄 같은 것을 묵고서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곳도 있다. 자기를 최고로 인정해주는 목사이면, 자기 돈도 아니고 교회돈이기 때문에 온갖 아부성의 돈을 주지만, 만약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담임목사의 사역마다 딴지를 걸면서 뒤통수를 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이러한 이민교회의 실정이다 보니 이민교인들의 수평이동률은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 평균 두 세번 이상은 교회를 옮겼다고 여겨진다. 아이러니컬 한 것은 현재 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이민자출신이었다면 아마 그 분들 역시 평신도 시절에 평균 4-5회 이상은 마음에 드는 교회를 찾아서 옮기다가 결국 신학을 한 사람들도 상당 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수평이동이 극심한 상황에 대해서 교인들은 목회자 탓만으로 돌리고, 목회자는 교인탓만을 돌릴 수가 없는 배경이 너무나 오랫동안 고착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목회자 때문에 교회를 옮기는 비율이 교인들 때문에 교회를 옮기는 비율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어떤 불신자를 전도하여도 정말 추천할 수 있는 교회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저런 교회에 보냈다가는 완전히 사기를 당하는 것은 아닐지, 저런 교회에 보냈다가는 더 상처를 받는 것은 아닐지, 저런 교회에 보냈다가는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지 하는 걱정이 더 앞선다는 것이다.

제법 큰 사업을 하면서 천주교회에 오랫 동안 다녔던 부부가 옆 집사람의 간절한 전도로 개신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새신자교육도 받고 각종 예배시간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열심히 다녔다. 천주교회에서 교리공부를 비교적 열심히 한 편이었기 때문에 담임목사의 설교를 이해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3년정도 열심히 다녔다.그런데 멀쩡한 교회를 놓아두고서 건축을 한다고 전교인이 건축헌금을 작정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담임목사가 광고를 하는 것이었다.

천주교회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천주교회에 다닐 때부터 장애인들을 위한 특수선교기관의 후원자로서 매년 상당액(수입에 30%)을 선교구제비로 지급해 왔던 부부였기 때문에, 건축헌금의 작정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서 작정보다는 적당한 금액을 헌금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부터 담임목사의 설교를 들어보니 "돈 있는 사람들이 요즈음 더 독합니다. 하나님께 바칠 줄을 모릅니다. 그 돈을 가지고 천당갑니까? 부자가 천당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악의 뿌리입니다. 하나님께 저금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건축하는데 물질을 바치면 바치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손만대까지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라고 논조를 거의 한달 이상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 부부는 지금까지 천주교회에 있을 때나 개신교회로 옮겼을 때나 조금도 물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던 적이 없었고, 자기들의 수입의 30%이상을 장애인들을 위한 특수선교기관에 바쳐왔으며, 개신교회에서도,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꼬박꼬박해왔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여겼는데, 담임목사가 계속 "부자는 하나님께 바칠 줄 모르는 도둑놈이다" 라는 논조라는 설교를 들으니 기분이 이상해지더니 나중에 죄책감까지 들고, 그리고 건축헌금을 많이 내지 않아서 자기들 한테 하는 소리가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하게 되더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어보니 담임목사가 심방을 교회 장로집에 심방을 가서는 "그 부부가 돈은 있지만 천주교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다보니 건축헌금을 화끈하게 할 줄 모르는 옹색한 사람이다" 라고 매도를 하였다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나서 다음 주일날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는데 담임목사의 설교가 귀에 들어올리가 없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돈에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나중에 되어서야 그 부부들이 장애인선교기관에 오랫동안 보냈던 선교비보다 그 교회의 선교 구제비가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는 것과 반면에 담임목사가 받는 실제적인 사례가 교회의 선교구제 예산보다 5배나 많았던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교회를 계속 다녀야 하는가에 대한 부부의 고민메일과 전화를 받고서 어떻게 대답을 해주어야 할지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교회는 죄로부터 자유하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이 부부와 같이 욕을 당하고, 죄책감이나 가지게 만들고 결국 담임목사의 눈과 사람들의 눈 때문에 호주머니를 열게 만드는 곳이 교회라면 천국이 아니고 지옥이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들은 지금까지 모양은 다르지만 교회 건축을 하면서 무수하게도 이런 비슷한 종류의 죄악들을 자행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권사나 안수집사에 피택을 받으면 평균 200-500만원의 감사헌금을 내어야 하고, 장로피택을 받으면 500-1천만원 정도의 감사헌금을 교회에 내는 것은 상식적으로 되어 있다. 이민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장로나 권사에 피택을 받으면 수천달러는 예사이고 수만달러의 감사헌금을 강요받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로 되어 있다. 그런 헌금을 내지 못하고 장로와 집사가 되는 사람들은 담임목사가 시키면 무조건 순종함으로 은공에 보답하는 행세라고 해야 하기 때문에 담임목사 종이 되는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고르반사상"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고르반" 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드린다 되었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 보였던 스스로를 속이는 고르반행위에 대하여 강한 책망을 하셨다. 부모에게 공경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고르반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알아서 해 주실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르반을 백성들에게 강요하여 호주머니를 털도록 한 것이다.

이 고르반이 가장 적나라하게 나타난 것이 바로 루터가 개혁을 부르짖었던 시대에 있었던 "헌금을 내기만 하면 죄가 사해진다는 면죄부판매" 였다. 모든 종교권력자들은 "고르반" 에 대단하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 친척이 굶어죽어가고, 이웃이 배고파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하늘을 찌르는 교회건물을 짓는데 "고르반" 하면 하나님이 축복해주실 것이라고 하여서 지었던 엄청난 건물들이 전 유럽에 널려 있는 것이다. 그 건물 속에 종교권력자들이 자리를 잡고서 정치와 결탁하고서 백성들의 목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반동으로 튀어나온 것이 바로 공산주의들이었다. 잘못된 고르반의 부작용이 그대로 사회에 튀어 나온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건축은 전부 교인들에게 세사에서 얼터리로 살더라도 무조건 교회에 바치면 된다는 "잘못된 고르반"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 부작용이 교회는 엄청나게 많고 신학생이 1년에 1만 7천명씩 쏟아져 나오며 다섯명에 한 명이 그리스도인인데도 부동산투기와 전반적인 사회의 부패와 빈부의 격차와 가정의 파괴는 전부다 훨씬 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이민자들이 "잘못된 고르반"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똑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탈세하고, 불법을 행하여 일단 돈을 벌어서 교회에 "고르반"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는 "샤머니즘, 기복주의, 이기주의" 으로 교회에 넘친다는 것이다.

이민교회의 희망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성도들이 날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읽고, 묵상하며, 가족들과 나눔으로서 먼저 가정이 회복되어야 한다. 가정을 파괴하면서 교회에 "고르반" 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부부와 자녀를 축복하실 것이라는 것은 불교에서도 얼마든지 있어며 그것은 미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신앙은 먼저 내가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날마다 하나님과 일대일로 교제하는 예배적인 삶이 제1이고,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서 가족들이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면서 공동체적인 사랑의 삶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제2이다. 이것은 동시적일수도 있고 순차적일 수도 있다. 이러한 가정 속에 말씀과 성령이 유기적으로 역사하시면 그곳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가지고 이웃들과 나누는 것이 하나님의 교회와 나라와 의를 이루는 사랑의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참된 교회는 무시하고, 상처를 주면서 건물과 조직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속이면서 무조건 "고르반" 만 하면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실 것이라는 것이 얼마나 오늘날 교회가 교회도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지역교회, 시스템교회를 부정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주님을 복음을 증거하고, 복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인종과 남녀노소와 지식유무와 빈부의 차를 뛰어 넘어서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가 되었다는 동질감을 가지면서 함께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함께 말씀을 배우고, 함께 성찬을 나누는 교회는 작은 천국이며 우리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세우고 지켜나가야 할 곳이다.

지역교회나 시스템교회는 천국에서의 삶에 대한 모형이자 모델이다. 천국은 인종차별, 지식유무, 남녀노소, 빈부의 격차가 일체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가진 그리스도인들만이 모이는 곳이다. 따라서 이 땅의 지역과 시스템교회를 통해서 끊임없은 갈등 속에서 우리의 주권자는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하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거룩한 공회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사람이 왕노릇하고, 계급적인 직분을 만들며, 돈있고, 권력이 있고, 명예가 있는 사람들이 대우를 받는 곳이 교회라면 그 교회는 지옥의 모델이지 천국의 모델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개인의 생명과 가정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 파괴를 하면서까지 사람과 조직에 "고르반" 하면서 충성하라는 것은 인간우상집단이거나 구원이 전혀 없는 종교조직이지 결코 천국의 모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지극히 어두운 상황 속에서 선지자들이 부르짖었던 것이 "하나님을 알자 힘써 하나님을 알자" 라고 하였던 것이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잘 모르니까 교회라고 모여 놓고서는 말도 되지도 않는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민교회에서 당하는 "잘못된 고르반"으로 인하여 당한 아픔을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길" 밖에 없다. 악한 사단은 우리들로 하여금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과 더 멀어지게 만들도록 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교회라는 조직과 제도와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 권사까지 악하게 이용하여 믿음에서 떨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고, 묵상하면서, 성령께서 먼저 나와 가족들을 도와주시고 회복해주시도록 사모하면서 간절히 구해야 할 것이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위로의 성령님, 도와주시는 성령님, 보혜사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과 종교조직과 사람들에게 매이지 않는 진리 안에서 자유한 삶을 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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